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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24화 (24/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24화

    집에 돌아가는 길. 최용규가 말을 걸었다.

    [남자네?]

    “뭐가 남잡니까?”

    [강력처벌 부탁드립니다! 남자잖아.]

    “몰라요. 말 꺼내지 마요. 지금 기분 별로 안 좋습니다.”

    사랑했던 여자의 뜻밖의 반응.

    그리 유쾌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답답한 마음이다.

    강백현은 그동안 미진이와 쌓였던 추억을 하나하나 지우기 시작했다.

    일단 사진을 지운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의 배신.

    하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결혼까지 간 후 파탄 난 것은 아니라서.

    이제 변해버린 삶인데 더 이상 미련 가질 필요는 없었다.

    당분간은 성공만을 위해 달리겠다고 생각한 백현. 그가 결심을 다잡으며 집으로 향했다.

    * * *

    공무원을 그만두는 날이다. 빈자리는 생각보다 허전했다.

    “백현아, 진짜 가냐?”

    “네.”

    “고생 많았다. 고생 많았어.”

    주민센터 직원들이 전부 강백현이 떠나는 것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강백현에게는 마지막 할 말이 남아있었다.

    “동장님.”

    “응?”

    “저 한 가지만 부탁드릴게요.”

    “뭐가?”

    “제가 버릇없고 막무가내인 것은 아는데, 이거 하나는 꼭 하고 가고 싶었거든요.”

    “뭔데?”

    “저희 주민센터, 청소 하시는 분들 이름 기억하세요?”

    “아… 그걸 왜 물어?”

    백현은 자신이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말을 꺼냈다.

    “최미자 씨랑 최정희, 고경숙씨 이렇게 세 분이시거든요. 그 분들 휴게실 좀 만들어주세요.”

    “휴게실?”

    “네. 쉴 곳 없어서 지하 기계실 계단에서 쉬고 계시는 거 안쓰러워서 못 보겠어요.”

    “그래도 갑자기는 좀… 내가 다음 예산 심의 때 해당 안건 태워볼게.”

    “아니요. 당장 해주세요.”

    “나 곤란하게 할래?”

    “네. 전 그 분들하고 약속 했거든요. 휴게실 만들어주시지 않으면, 동장님 출퇴근 기록 제가 수기로 작성해둔 게 있어요. 무단 퇴근 하신 거요. 팀장님 고스톱 친 있고, 그밖에 다른 것들도 다 있으니까 일단 이것부터 해주세요. 그거 아시죠? 퇴직하는 사람이 젤 무서운 거. 이미 전 내부고발자로 전례도 있으니까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꼭 해주세요.”

    백현의 말에 동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

    “야! 강 주무관! 너 왜 이렇게 막무가내야?”

    하지만 백현은 그저 요구사항을 관철할 뿐이다.

    “저희 회의실에 일단 파티션 세워서 휴게실로 만들어도 될 것 같네요. 지금 저희 회의실 너무 넓잖아요? 앞문, 뒷문 이렇게 2개 있으니까 반반 나눠도 당장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백현의 말에 팀장이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

    “그냥 좋게 마무리 하고 가면 다 편하잖아. 마지막까지 왜 그래?”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테니까요. 잘 생각하시고 판단해주세요. 동장님. 팀장님. 저~ 이제 진짜 갑니다.”

    강백현이 4개월간 정들었던 주민센터를 떠났다.

    이제는 정말 백수.

    백수 기간은 앞으로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

    임용이 되면 그때부터 다시 공무원.

    전화도 많이 왔다.

    일단 허가과 태곤이.

    - 선배님, 퇴직하신 겁니까?

    “왜? 왜 전화 했어?

    - 아, 미치겠습니다. 김여린 주무관 일 때문에 힘들다고 저한테 히스테리 부리고 난리 났습니다.

    “그래봐야 뭐 남는 게 있냐? 자기 일은 자기가 하는 거지.”

    - 그러게 말입니다. 소주 한잔 사주십니까?

    “미친 놈! 야, 이제 난 백수인데 네가 사야지.”

    - 나오십니까?

    “됐어. 집에서 쉴게. 아버지랑 오늘 목욕탕 갈 거야.

    - 넵. 언제든 연락 주십쇼. 제가 사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동기. 건축과 진영이의 전화.

    “넌 또 왜?!”

    - 뭐가?

    “아! 태곤이 전화오고 나서 바로 너한테 전화 와서 그렇지. 왜? 백수 생활 궁금하냐?

    - 아니? 그것보다 들었냐? 태웅이 정직 3개월 당한 거.

    “정직? 집에서 쉬겠네.”

    - 응. 그런데 그것 때문에 태웅이 울고불고 난리 났나봐. 맨날 나한테 전화 온다.

    “정직이면 뭐, 공무원 계속 할 수 있는 거잖아. 뭘 울고불고 난리가 나?”

    - 아니야. 미진이가 파혼하자고 했대. 더 이상 태웅이는 희망 없다고.

    “그게 사실이야? 대박! 미쳤다.”

    - 너도 잘 헤어졌다. 남자 잘못 되니까 바로 버리는 여자, 왜 만나냐? 너도 좋은 여자 만나.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은 일단 멘탈 좀 회복하려고.”

    - 대전에는 언제부터 출근해? 공무원 연수는 언제고?

    “아직 멀었어. 나중에 좋은 소식 있으면 들려줄게.”

    - 좋은 소식은 뭘? 9급 공무원이 뭔 좋은 소식이냐? 그것보다 시장이 너 괴롭히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응. 이미 대전에서 임용되는 거 막았어. 징계보류 건으로 임용유예 시켰나 봐.”

    - 진짜야? 야! 넌 그런데 가만있어? 당장 난리 치고 해야지! 이제 너 공무원도 아닌데!

    “됐어. 나중에 자기가 후회할 날이 오겠지. 그것보다 나 바빠서 끊는다.”

    - 백수가 뭐가 바빠?

    “응. 아버지랑 목욕탕 가기로 했어. 나중에 통화하고 끊자.”

    - 야!

    강백현이 전화를 끊고 거실로 나왔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아버지.

    “아빠. 많이 기다리셨죠?”

    “나가자.”

    “네.”

    부주시는 작은 동네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건물 이름. 건강타운.

    지하 1층은 당구장과 PC방.

    1층은 안내데스크, 2층 여탕, 3층 찜질방, 4층 남탕, 5층 헬스장, 6층 볼링장.

    한 건물에서 운동하고 씻고 놀 수 있는 신개념 복합건물.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그저 그런 시설 중 하나겠지만, 지방에서는 이런 건물이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물론 젊은 친구들한테도 인기 만점.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주름진 이마. 늘어진 피부.

    거친 손. 얼마나 고생했는지 원래 나이보다 10살은 더 나이 들어 보인다.

    “아빠, 얼른 탕에 들어가요.”

    “이놈 자식 봐라? 네가 어린이냐?”

    “왜요?”

    “무슨 어리광을 부려?”

    “헤헤, 빨리 들어가요. 여기 녹차탕에 들어가면 피부 좋아져요.”

    탕에서 몸을 불리며 강백현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는 꿈이 뭐였어요?”

    “나? 대통령.”

    “진짜요?”

    “그래. 내가 학생 때는 다 대통령 아니면 과학자였어. 지금은 뭐 스트리머하고 연예인이 꿈이라던대?”

    “그건 또 어디서 들으셨대?”

    “이놈아, 내가 하는 일이 경비야. 그걸 왜 몰라? 너보다 젊은 사람 더 많이 만나고 댕기는데.”

    “아빠, 제가 꿈 왜 물어봤게요?”

    “나도 모르지. 왜 물어봤는데?”

    “음…. 저도 꿈을 높게 잡으려고요. 제 아는 선배도 아빠처럼 꿈이 대통령이었대요.”

    “대통령은 아무나 되나?”

    “그렇죠. 그런데 꿈은 일단 높게 잡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선배는 1차로 목표로 한 게 50살에 장관 되는 거였대요. 그래서 20대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했고요.”

    “행정고시? 합격했어?”

    “네. 합격했어요. 그래서 저도 그 선배처럼 꿈 높게 가져보려고요.”

    “지금 와서?”

    “네.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겠죠.”

    “음, 좋은 선배를 뒀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서 일하는데?”

    “음… 죽었는데요?”

    “뭐야? 왜? 어떻게?”

    “교통사고로요.”

    “어휴! 재수 없을 라니까! 이놈아, 생각 좀 하고 살아! 죽은 놈을 왜 따라 해?”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백현은 일순간 할 말을 잊었다.

    “빨리 나와. 사우나 누가 오래 버티기나 해. 진 사람이 음료수 사고!”

    “아….”

    사우나 덥긴 더우나 버틸 만하다.

    하지만 오늘은 아버지한테 일부러 져주기로 했다.

    “아오! 못 버텨. 못 버티겠네.”

    “크크, 젊은 놈이 엄살은?”

    “먼저 나가요! 사우나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니깐?”

    사우나에서 남자의 대결에서 패배로 산 음료수를 마시며 목욕탕을 나오는데 부재중 통화가 무려 10통이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흑흑… 형아. 나야.

    “윤수? 왜 울어?”

    - 학교 와줄 수 있어?

    “왜? 무슨 일인데?

    - 웅현이가 나 때려서, 나도 때렸는데, 웅현이 엄마가 엄마나 아빠 불러오래. 그래서! 그래서! 나 아빠가 없잖아. 근데 무조건 데려오래. 흑흑… 으앙으앙….

    윤수가 심하게 우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받았다.

    - 윤수 아빠?!

    “누구세요?”

    - 나 웅현이 엄마에요! 우리 애 얼굴을 이렇게 만들면 어떻게 할 거예요?! 당장 와요! 당장 와서 애 무릎 꿇고 사과시켜요!

    “일단 가겠습니다. 조민 초등학교 3학년 2반 맞죠?”

    - 아니, 애 아빠가 아들 교실도 몰라? 그러니까 애가 이 모양 이 꼴 아니에요?! 당장 와욧!

    강백현이 고개를 젓자 아버지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윤수한테 무슨 일이 있나 봐요. 학교 가볼게요.”

    “윤수? 윤수가 왜?”

    “자세한 건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일단 가 볼게요.”

    그런데 아버지가 손을 잡았다.

    “같이 가. 윤수 그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너한테 전화를 다 했겠냐?”

    조민초등학교.

    3학년 2반.

    윤수네 교실에 도착했다.

    윤수네 담임선생님은 어려 보였다.

    대처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아줌마의 고함을 받아낼 뿐.

    “선생이면! 선생답게 저런 애들은 분리시키고 단단히 교육시켜야지.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안 그래?”

    “아… 어머님, 그게 아니고요.”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니야?! 도대체 뭐했어? 우리 애 맞고 있는 동안, 너는 도대체 뭘 했냐고?!”

    “오늘은 오전 수업 밖에 없었고요. 이미 수업은 다 끝나고 하교시킨 상태에서 싸움이 벌어진 거라서 제가 할 수….”

    “말대답 하는 거 봐. 야! 너 몇 살이야?! 너 몇 살인데 자꾸 핑계를 대?”

    “어머님, 제가 몇 살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이게 꼬치꼬치 말대꾸를 하네. 너 한 번만 더 말대꾸 하면 다시는 선생질 못하게 만든다?! 어?!”

    그때 도착하는 한 여성.

    “윤수야. 이리 와!”

    “흑흑… 으아아아앙.”

    윤수가 이제 막 도착한 여성에게 쪼르르 달려가더니 울음을 터트린다.

    수려한 외모, 거기에 완벽한 몸매와 미모까지 모두 갖춘 여성.

    그래서일까? 아줌마의 입에서 거친 소리가 흘러나왔다.

    “네가 윤수 엄마야?”

    “그쪽은 누구신데요?”

    “『그쪽은 누구신데요?!』 아주 살판났네. 자식새끼 내버려두고 밖에서 남자만 꼬시러 다니지? 너 그런 애지?”

    “말조심 하세요. 저 윤수 엄마 아니고요. 그냥 윤수 아는 누나에요. 그리고 아줌마! 아줌마 지금 이러는 거 아주 악질인 거 아시죠?”

    “악질?!”

    김성현은 차분하게 윤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윤수야. 누나한테 말해 봐. 누가 먼저 때렸어?”

    “웅현이가 먼저 때렸어.”

    이제는 당사자한테 물어볼 차례.

    김성현이 뚱뚱한 꼬마를 향해 물었다.

    “웅현이! 윤수가 그렇게 말하는데 네가 먼저 때렸어?”

    “하지만! 윤수가 캡틴맨 뽑기 뽑은 거 달라니까 안줬단 말이야!”

    “뽑기 안줘서 때린 거야? 왜?”

    “내가 달라는데 안 줬어. 안 줬단 말이야.”

    김성현이 고개를 팍 들었다.

    “아줌마! 애를 가르치려면, 상황부터 파악하고 가르치세요. 지 새끼 편만 드니까 지가 잘못한 줄도 모르고. 도대체 집에선 뭘 가르치는 거예요?”

    “뭐야?! 야!”

    하지만 김성현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그가 교실 밖에 있는 남성을 불러냈다.

    “김 변호사.”

    “네. 아가씨.”

    “여기 녹음된 자료에요. 아이들 녹취록이라서 증거로 인정될지는 모르겠지만, 잘 확인해서 처리해줘요.”

    “네. 알겠습니다.”

    “윤수야.”

    “응….”

    “가자. 병원 가서 치료 받자.”

    김성현이 윤수를 데리고 떠나고, 남은 김 변호사는 김성현의 말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교실에 남았다.

    “법적으로 처리할까요? 아니면 여기서 끝낼까요?”

    “네?! 아저씨는 누구신데요?”

    “저는 장엔로펌 아동학대 전문변호사 김조한입니다. 명함 여기 있습니다.”

    변호사의 등장에 입을 꽉 다문 아줌마.

    “선생님?”

    “네?”

    “선생님께서도 아동을 가르치실 때, 누군가의 입장만 들어주시거나 아무 조치도 안 하시면 안 됩니다. 이 부분은 아동학대 혐의도 인정될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앞으로 주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합의된 것으로 알고 있겠고요. 무슨 일 있을 때는 저한테 연락주세요. 저희 법무법인에서 대응하고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모든 상황이 끝나고 학교에 도착한 강백현이 윤수와 함께 내려오는 김성현을 발견했다.

    “윤수야! 괜찮아?”

    “형아… 흑흑… 형!”

    그런데 김성현의 눈빛이 싸늘하다.

    “도대체 강백현 씨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네?!”

    “뭐하는 사람이기에, 애 아빠가 전화를 안 받냐고요? 빨리 병원부터 보내세요! 그리고 다음부터 이런 일 없도록 주의해주세요. 정말 경우가 없는 사람이야!”

    그녀가 화가 난 채로 벤츠 차량의 조수석에 탔다.

    그리고 변호사가 뒤따라온다.

    그 또한 아무 말 없이 운전석에 탑승, 시동이 걸리자마자 운전을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던 백현의 아버지.

    “무슨 상황이니?”

    “저도 모르겠는데요?”

    “일단 병원부터 가보자. 윤수!”

    “응. 흐으… 흐응.”

    “괜찮아. 남자가 울 것 없어. 좀 까진 것 밖에 없네. 병원 가서 연고 바르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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