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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7화 (17/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7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백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중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아빠,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뭔데? 왜 이렇게 거창해? 날짜 잡혔니?”

“당신도 참!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 어련히 말할까봐! 결혼은 언제 하려고? 상견례 하자고 하니?”

아직도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하는 어머니, 아버지.

그걸 보면 미진이가 딱히 부모님께 나쁜 짓을 한 건 아닌 것 같다.

하긴 그래서 좋아했지~ 걔가 진짜 나쁜 년인 건 맞지만, 어른을 대하는 센스는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좋아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실대로 말할 때.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까 고민하던 백현이 생각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엄마, 미진이 생일날, 도시락 싸들고 방문하셨다면서요.”

“그래. 어떻대? 괜찮대?! 맛있었대? 저번에 엄마 생일 때, 미진이가 정성스럽게 도시락 싸서 우리 식당 들렸었잖아. 그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똑같이 해주고 싶더라. 그래서 한 번 들렸지. 그거 만든다고 사장 여편네가 얼마나 눈치를 주던지! 좋아했니? 뭐래? 아파보이던데, 표정이 안 좋아보였어.”

왜 엄마가 미진이한테 찾아갔는지 이제야 이해를 한 백현이었다.

한참 서로 사랑했었는데! 미래를 약속했었는데 이제 파탄나 버린 커플.

부모님께는 죄송스럽다. 그래도 결심을 무를 순 없다.

사실대로 말하기로 결정한 백현이었다.

“이제 저희 끝났어요.”

“…….”

“미진이랑 헤어졌다고요.”

눈을 동그랗게 뜨는 엄마, 그리고 아빠.

이윽고 상황파악이 되었는지 멍했던 엄마가 아빠를 붙잡고 통곡을 했다.

“여보, 쟤가 왜 저래? 미진이랑 왜 헤어져! 미쳤나 봐! 정말 미쳤나 봐!”

“무슨 사정이 있겠지.”

“미진이 얼마나 참하고, 좋은데! 왜 헤어져!”

아빠도 말씀은 안하셨지만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사실 제가 잘못했어요. 좀 소홀했고요.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미진이 사무실은 찾아가지 마세요.”

“백현아! 가서 빌어! 응? 미진이 같은 애가 세상에 어디 있다고 그래? 어?!”

엄마의 말에 백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양복으로 갈아입은 뒤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데 아빠가 부른다.

“어디 가?”

“잠시 친구 좀 만나고 올게요.”

“백현아.”

“네. 아빠.”

“나중에 아빠랑 따로 얘기 좀 하자.”

“알겠습니다.”

아빠한테는 참 미안했다.

당비당비당비.(당직/비번/당직/비번/당직/비번)

하루 24시간 근무하고, 다음날 쉬고, 그 다음날 24시간 근무하는 체계.

휴게시간은 또 왜 그렇게 넣는지, 한 달 내내 일해도 버는 돈은 180 내외.

그래서 매일 볼 때마다 피곤해 보이신다.

나중에 목욕탕이라도 같이 가서 때라도 밀어드려야 할 텐데….

‘괜찮아. 5급 공채 합격한 거 아시면 기뻐하실 거야.’

아직은 밝힐 수 없다.

공무원 그만뒀다는 소리도 못했고.

경찰 조사도 여전히 진행 중이고.

엮인 게 너무 많은 상황.

모든 게 바로 옆에 따라다니는 유령 선배 최용규를 만나서 벌어진 일이지만, 그래도 이제 후회하지 않는다.

신출귀몰.

어느샌가 나타난 최용규가 말을 걸었다.

[어디 가?]

“친구 만나러 갑니다.”

[친구 누구?]

“선배는 몰라도 돼요.”

[뭘 몰라도 돼? 나 너희 집 성주신 아니었냐?]

“그것보다 여자친구부터 챙기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비행기 곧 탈거야. 잠깐 성현이가 화장실 가서 여기 온 거고.]

최용규의 말에 강백현이 씩 웃었다.

“그래도 선배는 화장실 엿보고 그런 건 아니죠?”

[날 뭘로 보는 거야?]

“알았어요. 선배, 오늘은 내 옆에 나타나지 마요.”

[왜?]

“그냥 그런 일이 있어요. 친구하고 만나는 자리니까 오늘은 빠져줘요.”

사실 백현이 오늘 만나는 멤버는 최용규가 다 아는 멤버였다.

다 학교 후배들이니까 선배가 모를 리 없었다.

건축과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불알친구 진영이와, 허가과에서 같이 일하던 동문 후배 태곤이.

하나같이 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

그런 사람들과의 소중한 자리에 선배가 있는 게 못마땅한 백현의 속내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이다.

술자리에 가장 먼저 나온 사람은 태곤이었다.

최근 징계위원회 때 간사로 만났기에 그리 오래 못 본 것은 아니다.

“와 있었냐?”

“아! 선배님!”

깍듯이 일어나서 예의를 차리며 인사하는 녀석.

백현은 그를 향해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태곤이 인마! 나 징계하려고 하고! 실망했다?”

“헤헤, 에이! 잘 되셨잖아요. 이모! 닭발하고 소주 좀 주세요.”

“소주는 뭘로 드릴까?”

“이슬로 주세요. 아! 닭발 좀 맵게!”

“괜찮겠어? 진짜 매운데!”

“그럼요! 저희 매운 거 잘 먹어요.”

김태곤을 바라보며 빙긋 웃는 강백현.

매운 닭발에 소주.

그리고 남자 둘.

뭐가 더 필요할까?

“나 징계한 것, 어떻게 됐냐?”

“흐지부지 됐죠 뭐. 지금 아무도 그 이야기 안 꺼내고 있어요. 국장님도 과장님도…… 그리고 국장님하고 저희 허가과장님하고 한바탕 했나 봐요.”

“한바탕 했다고?”

“네. 선배가 저희 과장님이 국장님 욕한 거 녹음한 거 있잖아요. 그거 터트려서 일이 완전 꼬였나 봐요. 근데 선배!”

“어?”

“국장이 2000만원 떼어먹으려고 했던 건 어떻게 아셨어요?”

김태곤의 말에 강백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당사자가 바로 옆에 있다. 푸르스름한 유령. 바로 선배다.

‘아~ 또 왜 온 겁니까?’

하지만 당장 떼어낼 방법도 없고 해서 결국 대화를 이어갔다.

“다 아는 방법이 있지! 뭘 다 꼬치꼬치 캐묻냐? 그나저나 여린 씨는 뭐하냐? 또 내 욕하고 있지?”

“헤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허가과장님한테 엄청 혼났나 봐요. 일 못한다고 욕 엄청 먹었어요. 수기기록물 확인 안하고 이 일 벌였냐고!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냐고! 아, 그리고 선배가 작년에 일 처리하신 것처럼 신축허가 신청 최종 반려되었고요. 선배님께서 조례하고 법률 다 확인하고 꼼꼼하게 처리하신 부분이라 특별히 문제될 게 없더라구요.”

강백현은 그 말에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내가 일처리 똑바로 안 했을까봐? 나 이래봬도 공무원 연수원 수석이다! 승진 서열 1위였고.”

“네! 알죠. 아니까 참 그렇네요. 아~참! 대전으로 가신다면서요.”

“그래. 이제 너랑 같은 9급이다. 정확히는 1년 후배가 되겠지.”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한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죠!”

그리고 늦게 오는 한 사람.

오늘 모임을 주최한 녀석.

징계위원회가 열릴 것 같다고 미리 알려준 고마운 친구.

바로 건축과에서 일하는 건축직 8급, 공무원 조진영이다.

“백현아! 미안! 늦었네.”

“왔냐!”

그를 보며 일어서서 인사하는 후배 태곤이.

“선배님 오셨습니까?!”

“그래! 태곤이. 허가과에서 잘 하나?”

“네. 조진영 선배님, 앉으세요. 이모! 여기 잔 하나 가져다주세요! 술 한 병 더 주시고요!”

건축과 조진영은 미소를 지으며 백현에게 말을 걸었다.

“다행이네. 잘 풀려서!”

“그래. 네가 미리 말 해줘 잘 풀렸지 뭐.”

조진영은 미소를 지었다.

“크크, 병신! 어떻게 그렇게 사고를 치냐? 지금 너 때문에 시청 난리 난 거 알지? 과장들, 계장들 서로 막 견제하고 난리 났어. 누가 승진하나 그것 막 감시하고!”

“안 그래도 태곤이랑 그 얘기 하고 있었어. 그런데 정말 난리 났냐?”

“그래! 정말 그렇다니까! 누가 시장한테 뇌물 줬는지 우리 말단들한테까지 계장, 과장들이 살살 떠 보고 있잖아. 그래서 상황이 존나 웃긴다! 안 그러냐? 태곤아!”

“저도 그 얘기 많이 듣습니다. 허가과장이 뇌물 줬나, 안 줬나 도시개발과장님한테서도 몰래 연락 왔었습니다.”

“그래? 대답 안 했지?”

“당연히 대답 안 하죠. 알면서도 대답 안하는 게 저희가 살아남는 길이잖아요. 요즘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어요.”

역시 시청에 근무하는 녀석들이라 그런지 정보가 많다.

강백현은 또 궁금한 점을 물었다.

“시민안전국장님하고 안전과장님은 어때?”

“뭘 어때?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당하고 난리 났지. 그래도 시장이 어떻게든 손쓰려나 보더라.”

“그래?”

“응. 어쨌든 물증은 없잖아. 심증만 있고. 선관위도 그게 문제인 것 같아. 소문은 파다한데,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나봐.”

“계좌 들여다보지 않았어?”

“그래? 그것까지는 몰랐는데! 넌 그거 어디서 들었냐?”

진영이의 질문에 백현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백현아~ 내가 말했다고 해야지!]

최용규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미쳤나? 이래서 오지 말라고 한 건데.’

아무튼 지금은 무관심이 최선이다.

관심을 안 주면 선배도 금방 질려버릴 테니까.

“그나저나 백현아! 넌 어떻게 하게? 퇴직신청 했다며!”

“응. 그렇게 됐어. 아! 나 대전 일반행정직 9급 합격했어.”

“응. 그건 알아! 다 소문났어. 이미 너희 동장님이 다 소문내고 다니더라. 그것 때문에 제대로 한 방 터트렸을 거라고! 미련 없으니까.”

동장은 입이 싸다.

소문의 근원. 하지만 이것도 예상한 일. 백현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것도 분명 이유가 됐겠지. 뭐, 부주시에 이제 미련은 없다.”

닭발에 소주가 나왔다.

각자 잔을 따르고 마시고.

백현이 오늘 자리의 이유를 물었다.

“근데 왜 불렀냐? 연애로 바쁜 우리 진영이가 여자친구를 마다하고 나를 부른 이유는? 요즘 잘 안 되냐? 아니면 청첩장?”

“아니! 아직 그럴 단계 아니야. 근데 너는?”

“나? 묻지 마라. 나도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야. 그나저나 오늘 왜 부른 거야?”

“태웅이. 오늘 자리는 태웅이가 마련해달라고 했어. 너 꼭 불러달라고.”

“뭐? 김태웅?!”

강백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리고 옆에서 유령 최용규가 실실 웃었다.

그걸 알아챈 강백현이 눈을 치켜올리며 최용규를 노려보았다.

‘알고 있었던 겁니까? 처음부터 태웅이 오는 거 알고 있었던 겁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들어오는 한 사람.

“기숙사 멤버들! 다들 와 있었냐?”

모두가 반갑게 그를 맞이하지만, 한 사람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강백현이 눈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김태웅! 너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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