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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6화 (16/139)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6화

다음날, 백현은 출근길에 어제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어제 그 이야기 다시 해 봐요. 태웅이가 뇌물을 받았었다고요?”

[그래! 시장한테 받았나 봐. 받았다기보다 요구한 거겠지.]

최용규의 말에 조금은 민망해진 강백현.

“태웅이가 원래 그랬어요? 물론 내 여자친구 가로챈 나쁜 놈이긴 한데, 그래도 그럴 애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나도 몰랐어 인마. 뒷돈 그렇게 받는 줄 상상도 못했지. 실무는 걔가 했으니까 내가 알아차릴 리가 없었지. 나는 책임지는 역할이고, 그 녀석은 문건 만들고 실제 행동하는 역할이니까.]

“선배하고 같이 근무하니까 선배가 더 잘 알았을 것 같은데, 좀 의외네요. 태웅이가 선배 앞에서도 실수는 안 했었다는 거잖아요.”

[그렇지! 어쨌든 태웅이가 너 싫어하는 건 확실하다. 아마 너 잘되는 꼴 보기 싫었을 거야.]

“와, 진짜 의외다. 선배 죽었을 때 가장 먼저 연락 온 게 걔였는데, 사실은 내 얼굴 보려고 그랬던 건가요?”

[자세한 사정은 나도 모르지. 귀신 됐다고 다 아는 거 아니다?!]

“근데 선배는 왜 여기 있어요? 성현 씨 보러 안 가요? 여자친구라면 사족을 못 쓰잖아요. 말도 안 통하면서 항상 옆에 있고 싶어 했잖아요.”

[크크, 지금 런던은 밤 12시야. 벌써 불 끄고 잔다.]

“어휴! 다녀오셨네. 벌써 다녀오셨어. 죽어서도 정성이네요.”

백현은 한심하다는 듯 최용규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래도 싱글벙글 좋아죽겠다는 표정이다.

백현이 그런 그를 향해 물었다.

“그나저나 그 여자는 요새 뭐해요? 이제 안 죽는데요?”

[죽긴 왜 죽어? 살아야지. 난 성현이 잘 되길 빌 거야. 이제 너 5급 합격시켜줬으니까 성현이한테 함부로 말하지 마라. 나도 유령으로서 인권 있어! 말할 권리 있다고! 알겠어?]

“오케이! 오케이! 인정합니다! 대신 언성은 높이지 맙시다. 저흰 거!래!관!계!니까.”

늦은 시간, 백현이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잠시 그런 그를 바라보던 최용규는 심심했는지 어디론가 사라졌다.

* * *

다음날, 오전 8시 30분.

백현은 출근하자마자 청소 중인 계약직 근로노동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미자 이모, 일찍 출근하셨네요.”

“어? 아! 백현 씨구나. 내 이름 알고 있었어? 다~ 저기요라고 부르는데….”

“당연히 알죠! 저도 여기서 이제 두 달 다 됐는데요.”

“그래요?”

“에이! 반말로 하세요. 제가 나이 20살은 어린데! 이모! 혹시 불편하신 점은 없으세요?”

“아! 특별히 없는데!”

“저번에 제가 일찍 출근한 날이 있었는데, 이모,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쉬고 계셨잖아요. 휴게실 없는 거 한 번 동장님께 말씀드려볼게요.”

“안 돼! 그거 얘기하면 계약 연장 안 돼.”

“아니에요. 제가 얘기하면 되요. 미자 이모랑 저랑은 아는 사이 아니라고 하면 되죠!”

“말만 해줘도 고마워. 진짜 쉴 곳 없어서, 사람들 다닐 때마다 지하 계단이나 여자 화장실에 숨어 쉬는 것도 솔직히 힘들긴 한데….”

“그렇죠? 그러고 보면 학교나 공공기관이나 똑같아요. 가장 가까운 사람 안 챙기고… 공무원 참 썩었네요?”

“후후, 백현 씨가 그런 말 하니까 이상하다. 본인도 공무원이면서!”

강백현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2개 뽑았다.

“이거 드세요. 포도봉봉 좋아하시죠?”

“어? 어떻게 알았어?”

“에이! 맨날 청소 끝날 때마다 포도 봉봉 뽑아서 지하로 내려가시잖아요. 오늘도 힘내시고! 앞으로도 재밌게 지내요. 이모!”

“응. 그래.”

자짓하면 소외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은 평소 공무원 앞에서 말이 없다.

만인은 평등하건만, 공무원은 그들에게는 갑 오브 갑.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다시는 지역사회에서 청소근무자로 재취업이 안 될 수 있기에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공무원과는 다른 강백현의 이런 사소한 한 마디가 최미자에게는 너무 좋았다.

그냥 대화였을 뿐인데…….

이런 배려가 어색한 계약직 청소근로자에겐 감동으로 다가온다.

강백현은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공무원 준비기간, 자신도 공사판을 전전하며 사회에서 낙오자인 듯 시선을 받으며 살았었다.

그들에게 잘 해주는 이유는 간단했다.

어제 미진이한테 들었던 말.

엄마, 아빠가 돈 안 모으고 뭐했냐고?

엄마, 아빠는 이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병수발을 드느라 모은 돈을 다 썼다.

아버지는 원래 차량을 운전하셨고 어머니는 가게를 내셨는데, 차량도 팔고 가게도 내놓으며 거의 모든 재산을 부모님을 모시는 데 썼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윤미진이 괘씸했지만, 이제는 상관 하지 않을 거다.

사랑 따윈 이제 필요 없다. 더 이상 사랑을 쫒지 않을 거니까.

성공만을 위해 달리고, 부정부패는 뭐든 다 척결할 것이다.

다만, 엄마한테는 좀 미안했다.

이제 결혼해서 행복한 모습만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당분간 그렇게 되긴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사실 백현에게는 모아둔 돈이 3천만원 정도 있었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바로 신혼주택 대출로 7천 정도 받아 1억짜리 전세로 아파트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혼이 물 건너간 지금, 모든 계획을 처음부터 전면 수정해야만 한다.

오늘도 주민센터에 가장 먼저 출근한 줄 알았던 백현.

하지만 팀장이 이미 출근한 채로 자리에 앉아 백현에게 말했다.

“어? 백현이 왔나?”

“네. 팀장님 출근하셨어요?”

“그래. 어휴~ 일찍 왔네. 아직 8시 20분인데.”

“마지막까지 열심히 해야죠. 커피 드실래요?”

“좋지.”

“팀장님은 블랙 드시죠?”

“응. 설탕 없이.”

“네. 알겠습니다.”

눈썰미가 좋은 백현은 이미 주민센터의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평소 하는 일은 접수센터에 앉아 민원인들의 업무를 도와드리는 일.

9시부터는 제법 바빠진다.

“다음 순번 오세요!”

“네.”

“선생님, 어떤 일로 오셨어요?”

“등기부등본 떼러 왔습니다.”

“네. 일단 신분증 주시고요. 왼쪽 검지손가락 지문 좀 올려주세요.”

민원인이 지문을 찍었다. 그런데 잘 찍히지가 않는다.

“어? 다시 한 번 해보실래요?”

“아, 또 안 되네.”

“음… 선생님, 잠시 손 좀 봐도 될까요?”

민원인의 손을 보다 잠시 고개를 젓는 백현.

“지문이 많이 지워지셨네요. 농사 힘드시죠?”

“뭐 다 그렇지 뭐.”

“조금씩 줄이셔요. 너무 많이 하시니까 지문이 닳아버렸잖아요. 다시 한 번 찍어볼게요.”

6번의 시도 끝에 지문이 찍혔다.

백현이 미소를 지으며 등기부등본을 떼어줬다.

“1000원 주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선생님도 고생 많으시네요. 들어가세요!”

그리고 다음은?

젊은 여성이다. 그녀는 불안하고 초조해보였다.

“선생님? 몇 개월이세요?”

“2주 됐어요.”

“아! 그러시구나.”

아직 부기가 빠지지 않은 것을 보니 마음이 안타까웠다.

주변 시선 의식하는 것도 좀 그랬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둘이 얘기하시죠.”

아직 20대 초반.

그녀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았다.

회의실로 들어간 백현은 따뜻한 물 한잔을 내주며 입을 열었다.

“불편하시죠?”

“아… 네. 조금 쑥스러워요.”

“괜찮아요. 남편 분은….”

“갔어요. 교통사고로 세상 떴네요.”

“아… 그러셨구나. 일단 여기 작성해주시고요. 애기는 제가 잠시 봐드릴까요?”

“아~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허락을 맡은 백현이 포대기를 건네받아 아이를 받았다.

주민센터로 신생아를 데리고 오는 이유는 단 하나.

한부모 가족지원 서비스 때문.

“소득은… 어떻게 되세요?”

“아직은 없습니다.”

“음… 가족 분은 단 둘이신가 봐요.”

“네. 제가 시설 생활하다가 나와서 오빠랑 결혼했는데, 오빠가 먼저 가는 바람에….”

“그러셨구나. 일단 한부모 가족지원 서비스라는 게 있어요. 그거 신청하러 오신 것 맞죠?”

백현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계급여는 수령하고 계신가요?”

“아니요.”

“아… 그럼 월 284만원 정도 수입이 없으시면 저희가 지원이 가능하거든요. 이건 신청한다고 바로 되는 게 아니라 심의가 있어야 되요. 그런데 제가 꼭 선정되도록 위원들에게 말씀드려 볼게요.”

“감사합니다.”

백현은 꼼꼼했다.

그녀가 놓칠 수 있는 민원 서비스를 하나하나 다 챙겨주었다.

“그럼 여기 신청서 작성해주시고요. 혹시 산모, 신생아 관리 서비스라고 들어보셨나요?”

백현의 말에 신기한 듯 호기심을 갖는 그녀.

“그런 게 있나요?”

“네. 저희 주민센터에서는 안 되시고요. 선생님께서 부주시 보건소로 가셔서 신청을 하셔야 돼요.”

“아…….”

“이 서비스에 대해서 설명해드려도 되죠?”

“네!”

백현이 팜플렛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일정기간 동안 건강관리사가 출산가정을 방문해서 산후관리를 도와주는 복지프로그램이에요. 첫째시니까, 지원기간은 출산 후 2개월 이내, 기간 중 5일 가능하시고, 5일 이용하시다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시면 15일까지 연장이 가능해요.”

“아… 좋네요. 신청할게요.”

“네. 그런데 이게 비용이 들어요. 단태아시니까 하루에 102,000원정도 지출이 되시는데, 선생님께서는 일단 기준 소득이 지원 조건에 충족되시는 것 같거든요. 가족관계증명서는 여기서 떼어 가시고, 건강보험공단 가셔서 건강보험증 사본, 또는 출산하신 병원의 출산진단서를 보건소로 가져가시면 거기에서 처리를 해주실 거예요. 아! 맞다! 오늘 저희 주민센터, 몸 불편하신 분들 이동목욕차량 지원하는 날이거든요. 이제 금방 끝나니까 그거 타고 보건소 가시면 되겠다! 걸어서 오셨죠?”

“네.”

“그럼 차량 타고 보건소까지 편하게 가셔서 한 번에 업무처리 끝내세요. 아~ 그나저나 애기가 정말 귀엽다. 엄마 닮아서 예쁘게 생겼네.”

“후후, 그렇죠?”

아직 20대 초반 젊은 엄마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부기도 다 빠지지 않은 채로 힘든 몸을 이끌고 온 주민센터.

역시 공무원은 이런 맛으로 하나 보다.

잠시 후, 사회복지사 박재성이 보건소 직원과 함께 주민센터로 들어왔다.

차를 마시러 회의실로 온 박재성을 백현이 웃음으로 맞이했다.

“아! 재성이 형 오셨어요?”

“어. 백현이?”

“형! 차량은요?”

“지금 막 출발했는데? 애는 뭐야? 아! 선생님하고 같이 계셨구나.”

민원인과 같이 있는 것을 보며 웃음 짓는 박재성.

그런데 강백현은 급한 일이 있는지 애기 엄마한테 아이를 다시 건넸다.

“저 선생님, 잠시만요. 애 좀 받아주세요.”

“네.”

“저 차량 좀 잡아올게요!”

밖으로 뛰어나간 강백현이 이제 막 출발하려는 이동목욕 차량을 붙잡았다.

“잠시만요! 잠시만! 잠시만!”

그러자 이동목욕 사업 및 차량 담당인 정기남, 임예숙 주무관이 밖으로 나왔다.

“어? 백현이! 너 여기서 근무했구나?”

“네. 선배님! 5분만 이따가 출발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저희 민원인 중에 산모분이 오셔서, 지금 보건소 가서 복지신청 해야 하는데 가는 길에 좀 태워주세요. 사정이 좀 딱해서요.”

“아… 그래?”

정기남 주무관에 이어 임예숙 주무관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 지원 사업 설명은 해드렸나요?”

“네. 일단 산모, 신생아 관리 프로그램은 설명해드렸습니다.”

“아! 그것만 설명하면 안 되는데. 저희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굉장히 많아요. 유축기 대여사업도 있고, 엽산제, 철분제 지원 사업, 영유아 발달지원 사업, 영양플러스 사업 등등 많거든요.”

“아! 죄송합니다. 거기까진 설명을 못 드렸네요. 일단 제가 금방 모시고 오겠습니다. 뒷자리 여유 있죠? 아! 혹시 유아용 카시트 있나요?”

“카시트는 없는데!”

“네. 알겠습니다. 그럼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강백현이 다시 회의실로 돌아갔다.

그러자 민원인과 상담 중인 박재성 사회복지사가 보였다.

“재성이 형! 형 차에 카시트 있죠?”

“어!”

“그거 좀 빌려줘요.”

“뭐?!”

“아! 선생님! 차량 준비됐거든요. 제가 모실게요. 가시죠!”

“네. 감사합니다.”

“아유~ 애가 정말 귀엽네. 아유! 귀엽다!”

백현이 산모를 보건소 차량에 태우고는, 박재성의 차량에서 카시트를 빼서 보건소 차량에 장착했다.

그렇게 차량을 떠나보내고 박재성에게 말을 걸었다.

“형!”

“응?”

“나 그만 둬요. 들었죠?”

“들었다. 나한테는 말 하나도 안 하고 그만두더라?”

“응. 근데 더 좋은 데로 가요.”

“그래. 대전으로 간다며!”

“아니야. 충남으로 가게 됐어요. 가서도 잘 해야죠.”

“뭐?! 충남?”

“곧 다시 볼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아~ 나중에 얘기해줄게요. 아~참! 강복남 할머니가 좋아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오리훈제집 사장님이 재성이 형 정말 이야기 잘 들어주셔서 좋다고. 열심히 하시니까 보기 좋네요.”

“칫, 싱겁긴! 그것보다 카시트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해요? 차 있는 형이 퇴근 전에 보건소 들려서 받아가야죠. 그럼 금요일날 소주 한 잔 해요!”

“소주고 뭐고, 그것보다 밥이나 먹자. 오늘 목욕 7명 했더니 진이 빠진다, 진이 빠져!”

“뭘 진이 빠져? 형 덕분에 몸 불편하신 분들 잘 씻었지. 순대 괜찮아요?”

“얼어죽을 무슨 순대야! 짬뽕 콜!”

“오케이! 거기에 탕수육 추가하고 배갈 한 병! 점심시간 됐으니까, 팀장님께 말하고 바로 나올게요.”

“어.”

강백현은 그만두는 게 아쉬웠다.

부주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이렇게 즐거운데!

재밌고 보람찬데!

하지만 세상은 힘이 있어야 바꾼다.

그러니까 이제는 주무관이 아닌 사무관으로 국가 정책, 시책을 바꾸기 위해 열심히 발로 뛰어야 한다.

D-30일.

퇴직까지 남은 시간.

백현은 하루하루를 굉장히 보람차게 보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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