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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2화 (12/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2화

    김성현에게 다시 연락이 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강백현도 연락할 생각은 없었다.

    술 먹고 한 실수.

    하지만 그녀는 이제 볼 일 없으니 괜찮았다.

    더구나 오늘은 연가 신청서 내는 날이다.

    “백현아, 내일 연가 왜 쓰는 거야?”

    “평가 보러 갑니다.”

    “평가? 무슨 평가?”

    “다녀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뭔데? 싱겁게!”

    비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시험에 합격한 것은 아니니까.

    대전시청.

    일반행정 9급 최종 면접이 내일이다.

    대부분 20대, 30대 젊은 사람들이지만, 간혹 40대, 그리고 50대인 분도 한 분 계셨다.

    적어도 몇 년간은 준비했을 터인데, 공무원 선배로서 조금은 미안했다.

    ‘와도 썩어 문드러진 곳인데…. 뭐가 좋다고 다 지원했을까? 고생만 할텐데….’

    그래도 강백현은 희망을 안고 이곳에 온 지원자들을 응원했다. IMF 이후 세대는 그나마 나으니까.

    옛날처럼 관행이라며 뇌물 받고, 뒷돈 받아가며 이권 사업 챙기는 행태와는 거리를 두려는 분위기가 젊은 사람들에게는 있었다.

    면접 질문이 시작되었다.

    한 사람씩 들어가기에 무슨 질문이 나올지는 사실 몰랐다.

    예상문항 100개.

    예전에는 그거 하나하나 다 준비해서 들어갔었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그렇게 했을까?

    하지만 공무원 경력이 있는 강백현에게는 어떤 질문을 할까?

    그가 긴장한 얼굴로 면접장 안으로 들어갔다.

    “강백현 씨!”

    “네.”

    “일단 앉아요.”

    면접관은 세 명.

    그들의 앞에는 책상이 있었지만 강백현에게는 의자 달랑 하나.

    그래서 다리를 오므린 동작부터 구두, 양말, 양복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가감 없이 노출된다.

    “공무원 경력이 있네요. 부주시에서 3년 전 임용되었고요.”

    “네. 맞습니다.”

    “부주시에서 잘 있다가 왜 대전으로 지원하셨나요? 뭔가 특별한 계기라도 있으셨나요?”

    강백현은 정답을 알고 있었다.

    다시 시험 본 계기, 이유.

    그건 그들이 좋아하는 대답을 해주면 된다.

    “대전에서 근무하고 싶었습니다. 부주시보다 살기도 좋고, 교육여건도 좋아서 제가 평생 근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최용규도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그래. 잘 한다. 그렇게만 대답해.’]

    “그렇군요. 그렇다고 해도 지금 막 8급으로 승진했는데, 다시 9급부터 시작하셔야 해요. 괜찮겠어요? 자신보다 늦게 임용된 사람이 나중에는 먼저 승진할 텐데……. 차라리 7급 임용 시험에 응시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핵심을 찌르는 질문.

    여기서 사실대로 7급을 보았고 떨어졌다고 대답하면 어떻게 될까?

    최용규는 조언을 해주려고 강백현의 곁에 붙어 말을 꺼내려 했다.

    왜냐하면 강백현은 항상 돌직구를 던지니까.

    동장에게도 그랬고, 자신의 윗사람한테도 자신의 할 말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강백현은 최용규의 조언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굳이 7급 지원했다가 떨어졌다고 대답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에게 마이너스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이미 면접관들이 원하는 대답을 잘 알고 있는 백현이 입을 열었다.

    “저를 위해서 조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은 실력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좀 더 노력해서 앞에 계신 면접관님처럼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별 것 아니지만 이게 처세술.

    자신의 약점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강점은 더욱 강조하는 것.

    면접에서 보는 건 바로 응시자들의 이런 대처다.

    최용규는 강백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가 이렇게 말을 잘 했나?’

    자신에게 하는 것을 보면 투정거리고, 욕설만 내뱉고, 하등 쓰레기나 다름없는데, 하는 짓을 관찰해보면 최근에는 좀 이해가 안 갈 때가 많다.

    하지만 아직 면접은 끝나지 않았다.

    질문이 이어졌다.

    “공직자가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뻔한 대답.

    청렴, 봉사, 희생정신. 그런 대답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공무원 경력 3년의 백현은 달랐다.

    “초심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초심이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죠?”

    강백현은 스스로의 생각을 곱씹었다.

    사실은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대한민국 공무원은 부패했습니다. 소위 우리끼리 하는 말로 썩어 문드러진 걸레들입니다. 자신의 이권을 위해, 승진을 위해 불법적인 일을 눈감아주는 게 비일비재하죠. 처음에는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자세로 왔던 공무원들이 지금은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신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현재 힘이 없기 때문.

    그렇게 대답하면 면접에 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현은 마음과는 조금 다르게 대답했다.

    “저는 공무원에 처음 임용되었을 때,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자세로 임했습니다. 그런 자부심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고요. 하지만 초심을 유지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었습니다. 만약 대전에서 공무원 생활을 한다고 하면 저는 처음 임용되었을 때의 초심을 바탕으로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자세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훌륭한 대답까진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면접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한 대답이었다.

    같은 공무원 신분인 그들도 한 때 그런 마음을 가졌을 테니까.

    경험자와 비경험자의 차이.

    그들이 느끼는 공감대.

    거기서 승패는 갈린다.

    “강백현 씨. 고생했어요. 돌아가 봐도 좋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면접을 끝내고 나오는데, 최용규가 강백현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기분을 내고 있었다.

    [축하! 축하한다!]

    “어지러워. 가만히 좀 있어요.”

    [합격! 합격이야!]

    하지만 최용규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진 강백현이었다.

    “진짜입니까? 거짓말 하는 거 아니고요?”

    [진짜야. 다 동그라미 치더라니까?]

    “알았어요. 됐어요.”

    강백현은 사실 기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쫓겨나듯 가는 자리. 사실은 9급으로 가고 싶지 않다.

    그냥 보험.

    이제 5급 공채 시험 막바지다.

    5급 공채, 3차 시험까지 앞으로 5일.

    이제는 여기에 집중해야 할 터.

    여기에 합격해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유령에게 머리를 숙였다.

    “선배. 아니, 용규 형.”

    [형?]

    최용규는 갑자기 친근하게 나오는 강백현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백현은 진지했다.

    “응. 나 솔직히 물어볼게요. 5급 되면 장점이 뭐예요?”

    [장점? 내가 정책을 만들고 내가 만든 정책대로 나라가 움직이는 거? 지방직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게 안 되잖아.]

    “그거야 머리 좋은 사람들이 하면 되는 거고.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뭐? 그럼 왜 5급 되려는 건데?]

    “당연히 비리에 얼룩진 놈들 박살내고 싶어서죠.”

    [뭔 일 있었냐?]

    최용규 선배의 질문에 강백현이 다시 되물었다.

    “선배 혹시 진한 선배 알아요?”

    [진한이? 기숙사 옆방에 있던 주진한? 나 3학년 때 2학년. 한 학년 후배지만 잘 알지. 나랑은 안 친해도 너랑은 많이 친했잖아. 공부도 잘 했고. 그 진한이가 왜?]

    강백현은 자신의 속내를 처음으로 드러냈다.

    “내가 건네 준 자료, 다 진한 선배가 맡았었던 거예요. 문화재과, 허가과의 각종 비리 문서들. 그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진한 선배가 압박을 엄청 받았었나봐요.”

    [그래? 그럼 걘 뭐하는데? 공무원 그만뒀냐?]

    “아니… 그건 아닌데요.”

    [그럼?]

    강백현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죽었어요. 자살 했죠.”

    [뭐?! 자살을 했다고? 그럼 왜 나한테는 연락 안 했는데?]

    “그거야 선배한테 전화 했는데 그땐 선배가 잠수 탔었으니까.”

    [언제 죽었는데?]

    “4년 전… 선배 한참 시험 준비하던 그 때죠.”

    4년 전. 한참 고시 공부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다.

    전화도 끊고 학원, 집, 학원, 집을 반복하고 있었을 때.

    그 때 죽었었던 건가?

    하긴 같은 연배의 동창도 아니고 1년 후배다. 기숙사 후배기도 했지만 같은 방도 아니고 옆방이라 그리 친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선배가 물었죠? 너 이거 가지고 한방 터트릴 것 같다고요. 나 실제로 그랬어요. 그걸 선배가 대신 해주길 바랐죠. 하지만 이제는 힘들어요. 이미 선배가 죽은 것 때문에 내부고발자로 찍혔거든요. 그 분들도 이제 다 대비하고 조치를 다 했겠죠.”

    [그래. 너도 그럼 나처럼 감사실 가는 수밖에 없겠다.]

    “맞아요. 그것도 선배가 있던 자리, 중앙부처 공직기강감사팀. 거기로 가야 되요. 그러니까 꼭 도와줘요. 이번에는 진짜 도와줘요.”

    최용규는 강백현의 진솔한 토로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꼭 안아주었다.

    하지만 그대로 손이 통과했다.

    유령으로서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동작은 없었다.

    [강백현.]

    “네?”

    [내가 너 꼭 그 자리 가도록 해줄게.]

    “당연히 그래야죠. 선배 때문에 이 지경 된 건데….”

    [그리고 너 최고 자리로 올려줄게.]

    “아이고~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대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성현이한테도 잘 하고, 나한테도 잘 하고.]

    “네?”

    [그렇게 하면 내가 너 대통령도 시켜준다!]

    최용규의 말에 강백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대통령은 너무 심했다. 어이구 유령 선배!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말고 5일 뒤 5급 공채 면접이나 준비합시다.”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까 좋네요.”

    강백현은 선배의 말에 웃으면서 대응했다.

    매일 티격태격 싸우기만 했던 사이.

    하지만 솔직해지니 마음이 편하다.

    최용규도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아는 것을 털어놓았다.

    [근데 백현아, 솔직히 말해도 되냐?]

    “뭐가?”

    [미진이, 네 여자친구였다던 미진이 조사해봤는데……]

    “응. 왜요? 또 태웅이 뜯어 먹고 있어요?”

    [아니, 아무래도 네가 호구였던 것 같은데?]

    최용규의 말에 강백현이 아무 말 없이 성주단지에서 그의 15년 전 손톱을 꺼내 꽉 쥐었다.

    그러자 강백현에게만 들리는 유령의 비명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으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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