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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10화 (10/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0화

    디저트까지 나오고 벌써 30분이 지났다.

    강백현은 불안했다.

    “어디 간 거야?”

    대답해줄 유령 놈도 보이질 않는다.

    분명 전 여자친구 곁에 있을 게 분명했다.

    똑딱똑딱.

    하소연 할 곳은 없고, 시간은 흘러가고.

    웨이터는 곤란한 표정으로 강백현에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 영업 종료까지 30분 남았습니다.”

    같은 시각.

    메리야트 호텔 가장 최상층, 로얄 플래티늄.

    호텔 회장 전용으로 아무도 예약할 수 없는 방에서 아버지와 딸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니! 김성현! 똑바로 보고 이야기해!”

    “말했잖아요. 해외로 가겠다고.”

    “둘이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 거 아니었니? 너도 오케이 했잖아. 만나는 거 노력해보겠다고.”

    회장의 말에 김성현이 뒤돌아섰다.

    방금까지 비련한 표정으로 창가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에 굳은 결심이 서려 있었다.

    “제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요. 회장님, 아니 아빠. 사업 목적 때문에 절 이용하시는 거라면 전 거부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놓아주세요.”

    “……”

    회장의 입가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메리야트 호텔 그룹은 사업 분야의 확장을 위해 성한 그룹과 접촉하고 있었다.

    호텔업, 요식업을 넘어 건설, 면세점, 의료기기, 제약 방면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할 수 있는 좋은 기회.

    더구나 1998년, IMF 당시 메리야트 호텔 그룹은 500억이라는 자금을 성한 그룹에게 수혈해주어 두 그룹의 관계를 돈독히 한 바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호텔에만 치중했던 메리야트와는 달리, 성한 그룹은 다방면으로 사업 구조를 개편, 그로 인해 대한민국 10대 재벌 그룹의 위치까지 올랐다.

    반면 메리야트 그룹은 겨우 100위.

    20년 전에는 비슷한 순위를 유지하던 사이였지만 이제는 한참 올려봐야 할 존재였다.

    더구나 지금 메리야트 그룹은 사업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힘들 지경에 몰려 있었다.

    “성현아, 난 처음부터 네가 용규 그 친구 만날 때 탐탁치 않아했다. 하지만 반대는 하지 않았어. 왜? 그건 네 결정이었으니까. 그 친구가 기업들을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면서 나를 곤란하게 했을 때도 난 녀석을 내치지 않았다. 너희 둘의 결혼을 기꺼이 응원했잖아. 그건 너도 알지 않니?”

    “……”

    “하지만 결국 녀석은 살해당했어. 누구한테 당했을까? 도현 그룹? 민군 그룹? 나도 모르겠어. 녀석은 언젠가는 너는 물론 나까지 위험에 빠트릴 수 있었다고! 하지만 성한 그룹은 달라. 저들은 우리 그룹을 정상까지 올려놓을 수 있어. 너도 이 나라에서 차세대 여성CEO로 주목을 받을 수 있겠지. 네가 원하던 여성 리더로서의 성공을 위해, 기웅이란 그 남자, 다시 한 번 만나보는 건 어떻겠니?”

    집안 사정.

    재벌의 가문은 때론 기업을 위해 사랑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그건 남성, 여성에 구분이 없었다.

    김성현은 그게 싫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이해해 주셨다.

    그래서 최용규와 밝은 미래를 꿈꾸었다.

    그런데…왜? 아버지는… 아니 회장님은 왜 마음을 바꾼 건데?

    용규 씨는 석연치 않은 죽음을 당하고 범인은 잡히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단순 뺑소니 교통사고가 아니라 타살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한 달만 시간을 주세요. 잠깐만 다녀오고 답변 드릴게요.”

    “보름. 보름이야. 부디 아빠가 왜 이렇게 나오는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그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최용규는 마음이 아팠다.

    모든 게 성현이 자신을 사랑했기에 벌어진 일.

    나의 죽음이 타살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교통사고였을까?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고통스럽다.

    적어도 교통사고 때 즉사했으면 범인의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니다. 지금은 자신의 죽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성현이의 앞날에 닥쳐올 고통을 막아야 한다.

    그래도 보름이란 시간이 있었다.

    그녀 스스로 고민하고 또 고민할 것이다.

    부디 올바른 판단을 내리길 최용규는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성한그룹에 시집가서 평생 불행해지지 않게.

    좋은 사람 만나서 부디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아니면 혼자 독신으로 살더라도 보람차게 살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천계에 자신과 같이 손잡고 갈 수 있도록.

    ‘기다릴게. 성현아.’

    * * *

    같은 시각.

    강백현은 영업 마감을 앞두고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김성현 이 여자, 전화를 받지 않는다.

    “사장님, 계산해드릴까요?”

    “얼마죠?”

    “택스 불포함 50만원 나왔습니다. 카드로 결재해드릴까요?”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50만원, 부가세 포함 55만원.

    순식간에 뜯긴 금액.

    교통비에 톨게이트비까지 합치면 토탈 60만원이다.

    “네. 6개월 할부로 부탁드립니다.”

    내려오는 길.

    선배는 없었다.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한테 55만원 독박 씌운 그 망할 년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심지어 음식도 다 남긴 독한 년!

    망할 년! 우라질 년!

    그녀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 * *

    다음 날, 망할 귀신이 나타났다. 그래서일까? 반말이 튀어나왔다.

    “뭐야? 이 스부랄!”

    [진정해봐.]

    “진정? 난 60만원 날렸는데?”

    [성현이한테 연락 올 거야. 일단 받아.]

    그때 걸려오는 전화. 그 여자다.

    - 어젠 미안했어요.

    “왜 전화 했습니까? 또 뜯어 먹으시려고? 그래서 일부러 비싼 곳 예약했죠? 저 엿 먹이려고!”

    - 아니에요. 그럴 의도는 없었어요. 어제는 개인사정이 있었습니다. 직원분이 실수해서 돈을 받으셨더라고요. 첫날 출근한 분이라 실수하신 것 같아요. 정말 사과드리고, 계좌번호 보내주시면 어제 식사비 제가 보내드리겠습니다.

    “됐네요. 선배한테도 뜯어먹고 저한테도 뜯어먹을 생각이죠? 저한테 얼마나 더 뜯어먹으려고? 이걸로 호감 살 것 같아요? 그쪽이랑 이제 다신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연락하지 마세요!”

    - 백현 씨! 백현 씨! 무슨 말이에요?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말입니다.”

    전화가 끊기고 강백현이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망할 유령 새끼! 열 받네.”

    그러자 유령 최용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성현이, 꽃뱀 아니야.]

    “그건 선배 생각이고. 그 여자 꽃뱀 맞아. 전형적인 꽃뱀. 호텔로 부른 것도 그렇고, 중간에 사라진 것도 그렇고 뻔해. 그러다가 내가 돈 냈다니까 뜯어먹을 게 남아서 전화한 거지. 솔직히 김성현, 그 여자 이제 짜증나거든? 아~ 열 받네.”

    강백현이 단단히 화가 난 상태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최용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제 연락 안 될 거야.]

    “전화를 왜 안 받아? 더 뜯어먹을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버린 거야? 내가 화내니까 안 받는 거냐고!”

    [그런 거 아니야! 유럽으로 떠나는 비행기 타던 중이었어. 그러니까 못 받는 거야.]

    진짜 전화를 받지 않는다.

    두 번을 해 봐도, 세 번을 해 봐도 받질 않는다.

    강백현이 짜증을 내며 더 이상의 통화를 포기했다.

    “아니, 아니다. 됐어. 됐어! 다 끝났고, 이제 내 시험이나 도와줘. 이제 곧 면접이니까.”

    주민센터에서 끝나면 바로 면접 준비.

    그리고 또 공부.

    지금 강백현에게는 여자가 중요하지 않다. 분명 그랬다. 이제 여자라면 질색이다.

    그게 꽃뱀이든, 아니든 이제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한 친구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장례식장에 함께 갔던 태웅이.

    최용규 선배 밑에서 일하던 7급 주무관이다.

    “어? 태웅아. 오랜만이다. 그동안 왜 이렇게 연락이 뜸했냐?”

    - 응. 그럴 일이 있었어.

    “뭐야? 목소리가 왜 그런데?”

    - 아니, 너한테 죄진 것 같아서.

    웃겼다. 죄는 무슨? 엮일 일이 없는데… 돈을 빌려준 사이도 아니고, 태웅이하고는 의를 상할 일도 없다.

    “왜? 장가라도 먼저 가? 아니면 여자친구라도 생겼어?”

    - 응. 그렇게 됐어.

    예상대로 녀석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이다.

    “치! 그게 왜 죄 짓는 거냐. 축하한다. 나야 너 잘 되면 땡큐지. 누구야? 내가 아는 사람이야?”

    - 응. 아는 사람이야. 청첩장 보낼게.

    “뭐야? 얼굴이라도 보여줘야지. 바로 청첩장부터 보내?”

    - 미안하다. 결혼식 오라고는 안 할게. 너한테 해 줄 말이 없다.

    전화를 끊는 태웅이.

    그리고 도착한 문자.

    그건 바로 청첩장 URL 주소.

    그런데 충격이었다.

    가장 친한 절친 녀석이 자신이 너무나 잘 아는 여자와 함께 웨딩 사진을 찍었다.

    그 여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다 알고 있는데, 그 여자랑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

    전화를 걸었다. 녀석이 안 받는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또 안 받는다.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었다.

    겨우 받았다.

    “야! 김태웅! 이 새끼야! 야!”

    - 응.

    “너 언제부터야? 언제부터 미진이랑 만났어? 어? 이 새끼! 내가 미진이랑 헤어진 지 6주 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너랑 결혼하냐고! 야! 야! 말을 해! 말을 하라고!”

    - 그래서 내가 할 말 없다고 했잖아. 그래도 친구니까 응원만 해줘라. 결혼식에 오라곤 안 할게. 우리 20년 친구잖아. 맞지?

    김태웅. 내 불알친구와 내 엑스걸프렌드와 결혼한댄다.

    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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