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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6화 (6/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6화

    집에 돌아온 강백현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제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야 했다.

    철밥통 공무원, 30년간 그냥 시키는 일만 하면 잘리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죽은 선배 때문에 모든 일이 꼬여버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찍힌 게 그리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업무를 하나도 안 했네.’

    철밥통. 그래. 철밥통.

    공무원들은 욕먹어도 싸다. 자기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주변에서 이렇게 띵까띵까 쳐 놀고 있으니 집단으로 욕을 먹는다.

    어쩌겠는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관행인데….

    지방직 공무원들은 서로 다 한 통속인데….

    공무원 임용되면서 가장 화가 났던 것은 서비스 의식 부재였다.

    시민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줘야 할 시장 새끼는 선거철이 돌아올 때만 반짝 일하는 척을 할 뿐, 평소에는 이권사업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

    매년 열리는 백제문화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부주시에 방문하는 수많은 관광객들.

    이걸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업자들과 그들에게서 돈을 뜯어내려는 시장 및 관료들.

    걔네들 때문에 거지같은 일을 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조경 담당이었을 때, 백제 문화제 기간 동안 꽃이 피질 않아서 진짜 피 말리게 고생했던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조경 업체가 그냥 껍데기만 조경업체였던 것.

    전문성은 하나 없고, 그냥 돈만 보고 들어온 신규 업체였던 것.

    그게 시장 놈의 6촌 친척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피가 거꾸로 솟았던지….

    그때 강백현은 밤을 새워가며 전국 조경업체에 전화를 했다.

    병신 같은 업체가 싼 똥을 닦아주기 위해 직접 전문 조경업체와 연결해서 꽃의 수분을 마쳤고, 문화제 기간에 맞춰 꽃을 피워냈다.

    물론, 돈은 시장하고 그 6촌 새끼가 다 쳐 받았고.

    그것뿐만이 아니다.

    조형물 사건.

    이건 진짜 쓰레기 중 쌍 쓰레기였다.

    철제로 된 구조물. 거기에 전구만 끼워서 밤에 반짝 빛내서 화려한 모습을 연출하는 조형물이 있다.

    아무리 봐도 5천만 원이면 떡을 치는데, 시장 이 새끼는 이 예산을 4억으로 잡았다.

    하필이면 그 담당이 자신이었기에, 그냥 볼 수만은 없어서 상부에 말했다.

    이거 5천~1억으로 삭감해서 예산 절감하자고.

    정당한 건의였다.

    돌아온 건 인사명령.

    윗선들은 알면서도 집행한 거다.

    그래서 병신 취급 당한 거고!

    그렇다. 다 한통속이다.

    지방은 다 그렇다. 부주시만 그런 게 아니라 전국 방방곳곳 안 그런 데가 없다.

    특히 나이 쳐 먹은 새끼들은 더 했다.

    IMF 이전세대, 특히 공무원 개나 소나 다 들어오던 시절에 임용된 놈들이 더 했다.

    그 놈들은 발전의지가 없었다.

    오늘 동장 놈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동장 놈은 인정해줘야 할 게 있다.

    그건 돈 욕심은 없다는 거.

    그냥 한량한 곳에서, 관심 안 받는 곳에서 쉽게쉽게, 얇고 길게 정년까지 하고 싶어 한다는 점.

    물론 돈 받고 뇌물 쳐 먹는 놈들보단 낫지만, 이쪽도 비난받을 부분이 없는 게 아니다. 왜? 부주시에 도움 안 되니까.

    대한민국에 도움 안 되니까.

    그런 놈들이 우리 엄마, 아빠가 죽어라고 고생해서 낸 세금, 축내고 있으니까.

    지금은 온갖 불만이 강백현의 머릿속을 헤집어대고 있었다.

    대한민국 공무원? 평생 얼마나 가져갈까?

    20억? 25억?

    열심히 일하는 놈이나 맨날 띵까띵까 노는 놈이나 똑같이 쳐 받는다.

    특히 2011년 이전 임용된 꼰대 새끼들은 연금도 존나 많이 쳐 받는다.

    한 새끼당 250만원에서 400만원.

    1년이냐고? 네버네버, 월 250에서 400이다. 연 5천만 원을 아무것도 안하고 연금으로 쳐 받는다.

    그래. 안다. 퇴직금 안 받고 연금으로 받는 거.

    그런데 받아도 존나 많이 쳐 받잖아.

    거기에 퇴직수당이라고 따로 있다. 이게 8천에서 1억이야!

    퇴직금 안 받는다고? 개소리 하지 말라고 해! 그럼 이 수당부터 삭감 하던가!

    연금 다시 한 번 말하자.

    15년만 월 400받아도 7억 5천이다.

    90살까지 살면? 15억을 쳐 받는다.

    그럼 그 돈은 어디서 나는데?

    공무원 연금 때문에 국고 바닥난 지 오래다.

    세금으로 쳐 메꾸고 있다.

    국고 예산의 절반이 공무원 연금, 군인 연금 메꾸는 거다.

    아니라고?

    세상 사람들 다 안다.

    그런데도 기득권들은 자기들 권리 얻으려고 목숨 걸고 투쟁한다.

    공무원 노조도 마찬가지다.

    자신도 공무원이었지만, 열심히 일하지 않는 그 놈들 때문에 욕을 먹는다.

    슈발! 슈발! 입 밖으로 욕이 나왔다.

    차라리 그 시간에 효율적인 민정 서비스 구축을 통해서 시민들한테 인정받을 생각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라는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받을 권리만 주장하는 개새끼들이 주변에 판을 치는 게 문제다.

    백현은 결심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힘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중앙부처 공무원이 되어서 정책 바꾸고, 썩어빠진 공무원들부터 잘라내야겠다고.

    “선배! 나오시죠?”

    [뒤질래? 성현이 지금 울고불고 난리 났잖아! 이 쌍놈아!]

    최용규가 빡친 말투로 강백현한테 소리쳤다.

    “뭐라고요? 뒤져요? 쌍놈이요? 약속대로 자살 막았잖아요. 제가 왜 선배한테 욕을 들어야 합니까?”

    [성현이 지금 내 사진 불태우고 있는 거 알고 있냐? 내가 준 선물들 다 쓰레기통에 쳐 박히고 있고.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유령 주제에 건방지다. 제 아무리 선배여도 이건 아니었다.

    “오히려 잘 된 거 아닙니까?”

    [뭐? 잘 돼?]

    “네. 잘 됐죠. 선배 잊고 새 인생 시작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와~ 돌았네! 너 뭐 믿고 나한테 덤벼? 너 5급 공채 붙고 싶지 않아?]

    유령의 협박에 강백현이 웃었다.

    [왜 웃어? 뭘 잘했다고 웃어?]

    “아니! 성불하려던 선배 행동 잊었어요? 지금 아주 기고만장해졌네요? 선배 죽인 거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아요? 지금 그 여자가 문제에요?”

    최용규는 백현의 말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날 죽인 새끼는 도대체 어디 있는데?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몸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워~워! 몸 빨개집니다. 분노하면 위험합니다! 그 상태 오래 지속되면 원귀 되는 거 아시죠?”

    [원귀? 네가 원귀를 어떻게 알아?]

    “당연히 알죠. 선배도 저승사자한테 들었을 거 아니에요?”

    확실히 그렇다.

    몸이 붉어지면 이질적인 느낌이 몰려온다.

    [‘이게 그거였나?’]

    천국 대신 이승으로 다시 돌아가길 택한 최용규.

    그를 향해 초월적 존재(저승사자)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승에 남는 것은 막지 않으마. 다만, 원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게. 그때가 되면 다시는 천계에 올 수 없을 거네.』

    [‘그래. 백현이 말대로 흥분하지 말자.’]

    최용규의 결심이 바로 서자, 그의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백현이 그걸 확인한 후 따지듯 말을 퍼부었다.

    “하여튼 뭐가 문제입니까. 김성현 안 죽게 도와준 거잖아요.”

    [야! 그래도 이건!]

    “잘 생각해요. 난 선배 목소리를 대신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선배는 이승에 미련이 있고요. 혹시 죽기 전에 못한 말이 있으면 용성이나 어머니, 아버지한테 전달해줄 수도 있고, 선배 죽이고 도망친 범인을 찾아서 감방가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저 뿐이에요. 절 이용하고 싶지 않아요?”

    확실히 그랬다.

    여자친구 일만 해결하면 곧바로 뜨려고 했는데, 이승에 미련이 남는다.

    자기가 마무리 짓고 가려던 일들이 수백, 수천 가지씩 떠올랐다.

    [확실히 듣고 보니 그렇네.]

    “그렇죠?”

    [너한테도 해줄 말이 있었고.]

    “네?”

    [건방진 새끼! 존나 잘 됐다! 여자한테 차이니까 보이는 게 없냐? 네가 죽은 내 심정을 알아?! 너 죽을 때까지 내가 괴롭혀줄게. 그렇게 해줄게!]

    “그 말 진심입니까?”

    [그래 인마! 진심이다. 네가 어쩔 건데?]

    * * *

    백현은 참았다.

    미래를 위해 보험은 들어놔야 하니까.

    다행히 선배는 떠나지 않았다.

    떠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자기 말고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강백현이 일할 때도, 잘 때도, 출퇴근 시에도 수시로 왔다갔다하며 말을 걸고 요구사항을 전했다.

    그러나 백현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은 몸을 사려야 할 때.

    일단 시험은 붙고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백현은 자신의 앞에 앉은 20대 청년에게 물었다.

    “조한울 선생님? 청년수당 신청 때문에 오신 건가요?”

    “네. 한 달에 12만5천원씩 3년간 지원해준다고 해서요.”

    “직장은 구하셨고요?”

    “네. 구하려고요. 주유소에서 일해도 받을 수 있다고 해서요.”

    “네. 선생님께서는 지금 기초생활 수급자라서 신청은 가능하세요. 그런데 주유소에서 일한다고 하면, 한 가지 단점이 있어서 이 제도 추천은 못 드리겠네요.”

    “네?”

    “이거 신청하시면 3년 뒤에 기초생활 수급자 자격 박탈당하는 조건이에요. 450만원에 수급자격 박탈당하시는 것보다는, 4대 보험 안 들고 그냥 기초수급자격 유지하면서 더 좋고 안정적인 직장 구하신 다음에 그때 신청하시는 게 좋아 보이십니다.”

    강백현의 설명에 젊은 친구가 금방 알아듣고 다시 물었다.

    “그럼 이 제도는 신청 안 하는 게 낫겠네요.”

    “네. 그리고 이거 굉장히 번거로워요. 돈 지출하신 내역을 매번 증빙해서 메일로 보내주셔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하셔야 되는 부분이라서, 10만원 씩 받으려고 총 36번이나 해야 되고, 의료비, 생계비 지원 혜택 없어지는 것까지 생각하면 선생님 입장에서는 절대 신청하시면 안 될 제도예요. 혹시 나중에 더 안정적인 직업 얻으시면 그때 신청해주시면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제가 편하려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 피해 안 보시도록 말씀드리는 부분이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몰랐네요. 제도는 정말 좋아보였는데.”

    “국가가 하는 게 뭐 다 그렇죠. 이런 꼼수 섞인 제도는 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제일 잘 압니다. 언제든 문의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강백현의 친절한 설명에 김한울이란 청년이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주민센터를 나섰다.

    그걸 보며 뒤에 있던 최용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상담 좀 하네? 업무숙련도도 높고.]

    백현이 일할 때의 모습을 처음 보는 최용규.

    그는 강백현의 뒤쪽에서 천천히 그의 일상을 바라보았다.

    다음은 한 노인이 들어왔다.

    허리가 펴지질 않아 아이 없는 유모차를 밀고 들어오는 노인.

    “어휴~ 어르신! 유모차 밀고 여기까지 오시면 어떻게 해요?”

    강백현이 난리를 치며 노인에게 말했다.

    그걸 보며 유령 최용규가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저 새끼! 본성 나오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선생님, 다음부터는 전화를 주세요. 저희가 찾아가는 복지서비스라고, 전화만 주시면 매주 수요일 오후마다 선생님같이 불편하신 분들 댁으로 직접 방문해서 민원이나 편의 봐드리는 서비스 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직접 오시지 마시고 전화주세요. 아시겠죠?”

    “고마워. 우리 젊은 청년이 참 친절하네.”

    “기본이죠. 저희는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는데 당연히 친절해야죠. 안 그래요? 그런데 어떤 일로 오셨어요?”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강백현은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가끔 똘기를 보여주긴 했지만, 적어도 동네 주민, 민원인, 그리고 시민을 향해 쏟아내진 않았다.

    그리고 그건 가족한테도 마찬가지였다.

    식당 일을 끝나고 집에 온 엄마에게 강백현이 말했다.

    “엄마, 이리 와 봐.”

    “응?”

    “어깨 주물러줄게. 많이 힘들었지?”

    이제 막 퇴근해서 뻐근한 몸을 벽에 기대 쉬고 있는 엄마.

    그 등을 주무르는 강백현이었다.

    “후후, 아들이 주물러주니까 기분이 좋네.”

    “엄마, 이제 좀 편하게 다녀요. 언제까지 돈 버실려고? 이제 쉬실 때도 됐구만.”

    “그런 게 어디 있어. 먹고 살려면 일해야지. 그리고 엄마 나이 대에는 일해야 오히려 편해. 집에만 있으면 오히려 더 병 걸릴 걸? 이렇게 움직이니까 병도 안 치르고, 건강할 수 있는 거야.”

    “칫, 알았어요. 엄마,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자.”

    “응?”

    “아빠 일어나면 다 같이 나가서 먹어. 아빠 매일 24시간 교대로 경비일 하고, 엄마는 식당일 하잖아. 집에까지 와서 엄마가 저녁 준비하는 거 보면 내 마음이 안쓰러워서 그래요.”

    아들의 말에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깃들었다.

    최용규는 가족에게 따뜻한 강백현을 보며 자신의 지난날을 반성했다.

    서울대 입시나 행시를 핑계로 가족에게 싸늘했던 젊은 시절의 행동이 후회로 밀려왔다.

    사무관이 된 이후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4급으로 승진하겠다는 욕심으로 가족을 등한시했던 게 사실.

    자신에게 부족했던 것을 가지고 있는 강백현이 조금은 부러워졌다.

    어깨 주물러드리는 걸 마치고 함께 나가서 외식을 하는 가족.

    집안 꼴도 거지같은데, 왜 저런 게 행복해 보이는 건지….

    죽어보니 알겠다.

    강백현은 외식 후,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열심히 했다.

    자신이 예전 고등학교 때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 최용규가 말했다.

    [백현아. 내가 널 잘못 본 것 같다. 너한테 좀 오해했나 봐. 다음부턴 화 안 낼게.]

    자신이 솔직한 심정을 말하는데, 녀석은 여전히 컴퓨터 화면에만 집중하고 있다.

    [강백현, 우리 화해하자. 무시하지 말고 들어 봐. 내가 너를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아. 너한테 많이 미안하고…]

    “선배, 집중하는데 조금만 조용해주실래요?”

    [뭐?]

    이어폰을 벗는 강백현.

    그리고 문제집이 떠 있는 줄 알았던 컴퓨터 화면에서 마우스로 주문 버튼을 누른다.

    최용규가 그걸 보았다.

    [성주단지?]

    “네. 그거 도착하면 위험할 때마다 거기에 들어가 있으면 돼요! 알아보니까 선배 몸 붉어지는 거는 원귀 될 때 그러는 건데, 성주단지에 몸을 넣으면 막을 수 있다고 하네요.”

    [병신! 내가 그런 걸로 가둬질 것 같아?]

    다음날…

    성주단지가 집에 도착했다.

    백현이 엄마가 물었다.

    “아들, 이게 뭐야?”

    “아~ 할아버지 성주단지, 바꿔드리려고요.”

    “성주 단지?”

    “네. 제 주변에 안 좋은 일이 많이 생기네요.”

    백현이 엄마와 백현의 대화.

    최용규가 낄낄대며 웃었다.

    [킥킥, 개그 치지 말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그 말을 무시하고 성주단지에 햅쌀을 넣는 강백현.

    이 집안 좀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난다.

    방 안에 있던 백현이 유령 최용규에게 말했다.

    “기억 안나요?”

    [뭐가?]

    “15년 전 선배가 수능 끝나고 우리 집 놀러왔을 때, 우리 할아버지 성주단지 가지고 장난 쳤던 거.”

    [아… 그게 성주 단지였어?]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이 있긴 했다.

    노발대발 하면서 난리 치던 강백현의 고등학교 시절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왜 나한테만 선배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들릴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성주단지 가지고 장난치다가 선배 손톱 부러졌었잖아요. 그때 자기 혼자 다쳐놓고, 사과는 못할망정, 나 때문에 다쳤다면서 졸라 팼었잖아요!”

    그제서야 최용규는 알아차렸다.

    [잠깐! 야! 잠깐!]

    “후회해도 끝났습니다. 오늘부터 우리집 성주신 하십시오. 이미 이승에 머물러 있으니 아마 저쪽에서도 뭐라 안할 것 같은데, 무르기는 없습니다. 의식 시작하겠습니다.”

    강백현이 할아버지가 모시던 성주신 단지에서 오래된 손톱을 하나 꺼냈다.그러자 최용규가 맥을 못 쓰고 있다.

    [으아아아악!]

    “이제 자기 위치를 제대로 알겠죠? 이제부터 내 말 듣는 겁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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