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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3화 (3/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3화

    선배의 말에 번호를 눌렀다.

    010-5624-XXXX.

    감미로운 컬러링 소리가 들려온다.

    “선배?”

    그런데 유령이 사라졌다. 안 보였다.

    “나 미쳤나? 또 헛것 본 거야?”

    그래서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갑자기 또 들려오는 선배 유령의 목소리.

    [야! 끊으면 어떻게 해!]

    그걸 보며 강백현이 머리를 쥐어 싸맸다.

    “와, 미치겠네. 자꾸 유령이 말을 걸지? 선배, 그만 성불하세요.”

    [성불? 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빨리 걸어! 다시 걸어! 잠깐 성현이 보러 갔다 오려니까 바로 끊고 있냐? 야~ 빨리 전화 걸어! 지금 자살하려고 하니까 빨리 걸어! 알았어?]

    선배가 난리를 쳤다.

    요리조리 날아다니고 강백현의 시야 앞에서 계속 얼쩡거리며 소리쳤다.

    [걸어! 걸어! 빨리 걸어! 걸어! 씨발, 걸어!]

    “아~ 알았으니까 걸게요. 걸게요. 그러니까 가만히 좀 있어 봐요.”

    강백현은 선배의 요구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컬러링 소리.

    이번에는 다행히 여성의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 누…구세요?

    그러자 선배 유령이 막 소리쳤다.

    [스피커로 해! 스피커!]

    유령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바라는 것도 많네.’

    스피커로 전환했다.

    - 누구세요? 전화하신 분 누구세요?

    강백현은 뭐라고 해야 될지 몰랐다. 그러자 옆에서 선배가 재촉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 지금 사람 죽게 생겼다니까!]

    ‘후우, 진짜, 죽어서까지 날 괴롭히는구나.’

    귀신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던 강백현.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최용규 선배의 말을 들어주었다.

    “최용규 선배님의 학교 후배 강백현이라고 합니다. 장례식장에서 뵈었었는데…”

    - 아… 죄송해요. 기억이 잘 안 나서….

    “아, 그러시구나. 알겠습니다. 아무 일 없으시죠?”

    - 네.

    “네. 제가 전화를 잘못 걸어서요. 죄송해요. 끊을게요.”

    - 아… 네.

    전화를 끊은 강백현이 한숨을 내쉬고서 선배에게 말을 건넸다.

    “괜찮은데요?”

    [기다려봐. 갔다 올 테니까.]

    쌩 하고 사라지는 유령.

    그러더니 순식간에 돌아와서 강백현에게 또 다시 소리쳤다.

    [야! 성현이 지금 울음 터졌잖아. 울면서 유서 쓰고 인마! 야! 빨리 다시 전화 안 해? 죽으려고 한다니까!]

    어이가 없었다.

    같이 기숙사 살 때 그 버릇.

    후배를 마음대로 하려는 버릇이 나온 것이다.

    “선배! 내 꼴을 봐요. 내가 지금 남 걱정 하게 생겼어요?”

    [넌, 인마! 우리 성현이 죽는다는 데 아무렇지도 않아? 야이 개새끼야! 씨발 놈아! 너 때문에 나 죽은 거 생각 안 나냐고?]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다. 자신 때문에 선배가 죽었다는 생각.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선배가 만나자고 해서 만난 거고, 그것 때문에 공무원 집단에서 병신 되었고, 여자친구도 잃었다.

    근데 왜 내가 죄송해? 내가 뭐 때문에?

    “선배, 말은 똑바로 합시다. 나 지금 개털이에요. 누가 누굴 도와요?”

    [와! 씨발, 이 새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빨리 우리 성현이한테 다시 전화해. 전화해서 만나자고 해! 지금 유서 쓰고 있다고.]

    “다른 사람한테 말하세요. 전화 목소리 들어보니까 자살하려는 사람도 아닌 것 같고, 저 스스로도 내 인생 망친 선배한테 좋은 감정은 못 느끼겠네요.”

    [야! 강백현! 다른 놈이 내 말을 쳐들었으면 너한테까지 왔겠냐? 다른 사람들은 내 목소리가 안 들리고 내 얼굴을 못 보니까 너한테 온 거잖아!]

    한숨이 흘러나왔다. 누가 갑인지, 누가 을인지 구분 못하는 유령.

    “선배, 자살이 그렇게 쉬운 줄 아세요? 그리고 혹시 압니까? 자살 하면 천국 갈지? 그럼 선배한테도 좋은 것 아니냐고요.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요.”

    [이 병신아! 자살하면 천국 못 가. 자살하면 무조건 지옥 가게 되어 있어. 내가 다 알아보고 하는 소리야. 인마! 그러니까 빨리 전화해! 전화기 들어! 들으라고!]

    선배의 표정이 압권이다.

    요리조리 왔다갔다, 한 눈에 봐도 정신없어 보이는 선배.

    그 얼굴에 망연자실, 당혹, 다급함 등 여러 가지 표정이 휙휙 지나간다.

    강백현은 자신의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유령이 된 선배가 자신을 해코지 하면 어떻게 되지? 만약 망령이 되어 자신을 평생 저주한다면?

    “알겠어요. 전화해볼게요.”

    [오케이! 알았다.]

    백현의 말에 최용규는 재빨리 대답하곤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유령 최용규는 여자친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호텔 방 데스크에 놓인 편지.

    그건 유언.

    엄마한테, 아빠한테 보내는 편지.

    내용은 용서해달라는 것.

    용규 씨 곁으로 가겠다는 것.

    “용규 씨! 용규 씨! 나 혼자 어떻게 살아. 바보같이 흑흑. 진짜!”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으면 저런 선택을 할까?

    먼저 죽은 지금의 상황이 너무 미안했다.

    최용규 자신은 천국에 갈 수 있지만, 여자친구가 자살하려는 것을 내버려둔다면 그녀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이승에 남은 것이었다.

    도와주고 싶었다. 여자친구만은 행복하게 살게 하고 싶었고, 만에 하나 삶을 마무리하더라도 지옥이 아닌 천국으로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약속과는 달리 강백현의 전화가 다시 걸려오지 않는다.

    ‘이 자식! 왜 전화를 안 해? 말했잖아. 전화해주기로!’

    스르륵!

    호텔에서 순식간에 부주시 시골의 한 주민센터로 이동하는 최용규.

    헌데 옥상에 녀석이 없다.

    좀 더 찾아보니 계단 밑에 앉은 채 한숨을 쉬고 있는 강백현이 보인다.

    한심한 표정, 모든 것을 잃은 듯한 허망한 얼굴.

    그도 한계에 이른 것이다.

    그제서야 상황을 포착한 최용규가 강백현의 눈앞에서 애원했다.

    [백현아, 내가 뭘 해주면 되겠니? 어떻게 하면 내 말을 들어줄래? 응?]

    “됐거든요? 알아서 사시고, 제 곁에서만 떨어져 주실래요? 안 나타나 주시면 더 감사하겠고요. 저 보세요! 모든 것을 다 잃었어요. 선배는 선배만 생각해요? 선배 때문에 인생 망친 저는 생각 안 해요?”

    최용규는 솔직히 강백현을 매정한 새끼라고 생각했다.

    중환자실 앞에서, 장례식장에서 울던 모습은 어디가고 이제는 자신을 원수취급하다니.

    그럼에도 그의 마음을 돌려야 했다.

    어떻게든 여자친구 성현이를 살려야 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돌이킬 수 없었다.

    그래서 말했다.

    [야! 너 5급 공무원 시켜줄게.]

    “네?”

    [너 내부고발 들켜서 좌천된 거잖아, 이대로는 가능성 없잖아! 5급 공채 시험 봐. 행정고시 보라고! 시험 보면 내가 귀신이니까 옆에서 답 다 말해주면 되잖아!]

    “떨어지면?”

    [안 떨어져. 안 떨어지게 해줄게. 내가 너 존나 대단한 놈 만들어 줄테니까, 우리 성현이, 성현이만 살려줘라. 진짜 지금 신발 벗고 나갔어! 이 개새끼! 후회하지 말고 빨리 전화해! 빨리! 빨리! 씨발! 씨발!]

    다급한 마음에 욕이 나온다.

    그러자 강백현이 눈을 치켜 올렸다.

    “씨발? 씨발이라고 하셨어요?”

    [아니, 백현아, 제발. 응? 진짜 농담 아니라 급해서 그래요.]

    “알았어요. 전화 걸어 볼게요. 대신 제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까 멘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용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강백현이 전화를 다시 걸기 시작했다.

    ‘제발 받아라. 성현아! 받아! 받아!’

    다행히 최용규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한숨을 돌린 최용규가 멘트를 쳤다.

    [안녕하세요. 전화 드렸던 강백현입니다.]

    “안녕하세요. 전화 드렸던 강백현입니다.”

    - 네. 무슨 일이시죠?

    유령 최용규는 통밥을 굴렸다.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여자친구를 구할 수 있을까? 다행히 그는 두뇌회전이 빨랐다.

    곧바로 정답이 나왔다.

    [최용규 선배님이 저한테 전해준 편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강백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편지? 그런 거 없잖아요.”

    [야! 그냥 시키는 대로 말해!]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강백현이 미묘하게 대사를 바꿨다.

    “선배님이 편지를 맡기셔서요.”

    - 편지요?

    최용규는 인상이 찌그러졌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대사였기에 곧바로 다음 대사를 말했다.

    [네. 주소 말씀해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3~4일 안에 도착할 겁니다.]

    최용규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말했다.

    “네. 시간 되시면 한 번 뵙죠. 3일 후 어떠세요? 그때 편지 가져다드리면서 식사 한 번 하고 싶은데요.”

    아바타처럼 따라만 말해주면 되는데, 후배 녀석이 자꾸 자기 멋대로 말을 바꾼다.

    [이 ㅅㅂ! 누가 만나래? 최대한 시간을 끌어서 정신적으로 회복할 시간을 줘야 할 거 아니야?]

    그러자 음성 차단 버튼을 누르고 반항하는 후배.

    “끊어요? 거짓말이라고 해요?”

    [알았다. 그대로 가. 일단은 시간 끌어.]

    망자가 된 최용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었다.

    미치고 팔딱 뛸 것 같은 심정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백현을 설득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한 마디로 갑을이 바뀐 것이다.

    - 아, 그럴까요?

    “그럼 3일 뒤에 부주시에서 보죠. 식사 괜찮으시죠?”

    - 네.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연락 주세요.

    전화가 끊기자, 최용규가 여자친구가 있는 호텔로 향했다.

    불행 중 다행일까?

    테라스에 나와 신발을 벗었던 그녀가 무언가 결심한 듯 다시 호텔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적고 있던 유서를 핸드백에 집어넣은 후, 침대에 누우며 중얼거렸다.

    “용규 씨 미안! 편지만 확인하고 따라갈게. 미안해. 정말 미안. 흑흑!”

    최용규는 안도했다.

    다행히 자신이 여자친구의 목숨을 살렸다.

    그래서 다시 강백현한테 돌아왔다.

    [고맙다. 백현아, 살았다. 살았어.]

    “이제 반말은 그만하시죠?”

    [뭐?]

    “선배 때문에 여자친구한테도 차이고, 내부고발자로 몰려서 내 인생 조졌는데, 약속대로 5급 붙을 때까진 내 옆에 붙어서 서포트 하라고요. 알았어요?”

    [야… 나 네 2년 선배잖아.]

    “응. 근데 지금은 난 사람이고 선배는 귀신이잖아요. 사람이 귀신 말을 왜 들어요? 귀신이 사람 말을 들어야지.”

    강백현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빌어먹을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진짜 5급 공채에 합격하여 중앙부처 사무관이 되는 수밖에 없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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