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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 깨러 왔습니다-2화 (2/139)
  • 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2화

    다음날, 저녁.

    부주시 장례식장.

    최용규 선배의 장례식에 들렀다.

    상주는 용규 형 동생 최용성.

    선배 부모님 중에 어머님은 보이지 않고 아버님만 보인다.

    “오셨어요?”

    “그래. 용성아. 미안하다.”

    “아니에요. 절부터 올리세요.”

    강백현은 선배의 영정 사진을 보며 두 번의 절을 올렸다.

    그리고 상주와 고개를 숙인 채 한 번의 절을 한다.

    “선배님 참 좋으신 분이셨어.”

    “네. 그러셨죠. 마지막 날까지도 일하다가 돌아가신 거래요. 자료 조사한다고 부주시 공무원 만나러 갔다고 하더라구요. 바보 같죠?”

    “……”

    강백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건네 준 자료는 어떻게 됐을까? 분명 차 안에 있었을 텐데….

    차 안에 직접 싣는 것까지 봤으니 사고 현장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내 목숨과 같은 제보 자료들.

    그걸 들키면 자신은 매장 당한다. 그걸 알기에 그날 선배가 만난 게 자신이라는 것을 밝힐 수가 없다.

    다행히 가족들은 그 부분에 대해 모르는 모양이었다.

    죄송하고 미안하지만 앞으로도 그걸 밝힐 생각은 없었다.

    남은 기간, 공무원 해야 되니까.

    밝히면 내부 고발자가 나라는 것이 밝혀지니까.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일까?

    또 보였다.

    선배의 유령이 스쳐지나갔고, 그는 여기저기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 여기 있어! 울지 마! 울지 말라니까, 괜찮아! 괜찮아.]

    “선배….”

    강백현이 유령을 향해 말을 걸었다.

    그런데 선배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더니, 자신의 생전 여자친구 옆에 딱 달라붙어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다.

    형수님은 울고 계셨다.

    검은 정장을 입은 그녀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방구석에서 슬픈 감정을 홀로 삭히고 있었다.

    희노애락.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누는 사람들.

    부주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그들 사이에서 같이 자리에 앉은 친구 김태웅이 백현에게 권했다.

    “많이 먹어. 원래 이런 데 오면 많이 먹어줘야 되는 거여.”

    “응. 그래야지.”

    장례다보니 자리에는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그에 따라 또래들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충청도 사투리가 나왔다.

    “그래도 선배가 잘 살긴 잘 살았지? 오는 사람이 많잖여.”

    “그려. 그렇지.”

    “후-우, 눈물 밖에 안 나온다. 존나 열심히 살고, 공부 존나 해가지고 행시 붙었더니, 이게 뭐냐? 자료 조사하러 공무원 누구 만나고 헤어지다가 죽었다는디, 그 새끼는 진짜 누구냐? 선배 죽인 새끼… 만나면 죽여 불랑게.”

    김태웅의 말에 강백현이 놀란 표정을 애써 지웠다.

    ‘설마… 나인 걸 아는 건 아니겠지?’

    죄인. 같이 있었던 게 죄인이었다.

    죄책감이 몰려왔다.

    강백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갈게.”

    “뭐여? 왜 벌써 가?”

    “들어가 봐야 해. 미진이 이틀 연속 안 만나주면 삐져.”

    “그려. 여자친구도 중요하지. 가 봐. 나중에 보자고.”

    “응.”

    그렇게 나오는 길. 사실 여자친구 핑계를 댄 것은 죄책감 때문이었다.

    자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선배는 죽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미진이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 응. 자기야. 어디야?

    “나 선배 장례식장. 이제 막 나왔어.”

    - 그래? 지금 친구들하고 모임 하고 있는데 자기 나올 수 있어? 우리 친구들이 자기 보고 싶어 해.

    “친구들 모임은 좀 그런데? 오늘은 일찍 들어갈게.”

    - 안 돼. 친구들한테 다 자기 온다고 했단 말이야. 얼굴만 보여주고 가.

    “……”

    - 왜 대답이 없어? 나 곤란한 상황 만들 거야?

    “알았어. 갈게. 주소 보내줘.”

    - 응!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여자친구가 친구들과 모인 장소로 향했다.

    스테이크 전문점.

    그곳에서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4명의 여자가 수다를 떨고 있다.

    백현이 등장하자 여자친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들아! 우리 남친! 잘 생겼지?”

    “어~ 미진이 너랑 잘 어울린다. 잘 생기셨어요!”

    “맞아. 맞아. 눈썹도 닮았엉.”

    “킥킥, 맞아! 그러고 보니 닮았네.”

    평소라면 웃어줬을 텐데, 오늘은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그래서 미진이와 약속했던 것처럼 인사만 하고 집에 가기로 결심했다.

    “제가 좀 바빠서 들리기만 했거든요. 재밌게 노시고요. 나중에 시간 되면 뵙겠습니다.”

    “뭐야? 왜 벌써 가? 앉아.”

    “말했잖아. 미진아. 오늘은 좀 아니야.”

    “백현 오빠!”

    “미안, 친구 분들, 나중에 시간 내서 한 번 또 찾아뵙겠습니다. 좋은 시간 되시고,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여자친구의 전화가 계속해서 울렸다.

    강백현은 다시 오라고 할 것 같아, 집에 도착해서야 전화를 받았다.

    “응. 무슨 일 있어?”

    - 오빠, 다시 와.

    “왜? 갔다 왔잖아.”

    - 계산도 안하고 가면 친구들 앞에서 난 뭐가 돼? 오빠는 오빠 생각만 해? 내 생각은 안 해? 친구들 앞에서 쪽팔려 죽겠잖아!

    평소라면 받아줬을 것이다.

    사랑했으니까.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그럴 감정이 아니었다.

    나 때문에 선배가 죽었다.

    죄책감이 든다.

    그런데 그런 감정을 안고 있는 상태에서 여자친구가 칭얼대는 것을 웃으면서 받아줄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만하자.”

    - 뭘 그만해?! 빨리 안 와? 안 올 거야?

    “안 가. 그리고 미진아. 내가 약속 잡은 것도 아니잖아. 네가 일방적으로 잡아놓고,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오라고 한 거잖아.”

    - 오빠는 내가 오라면 와야지! 그게 남자친구 아니야? 나 사랑 안 해? 사랑 안하냐고!

    “사랑 이전에 기본 문제 아닌가 싶다. 그만하자. 전화 끊어.”

    - 백현 오빠! 대답해! 야! 강백현! 야! 야!

    전화를 끊은 백현이 스마트폰 전원을 아예 꺼버렸다.

    그리고 집에 들어갔다.

    그러자 엄마가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왔니?”

    “네. 들어가서 잘게요.”

    “그래.”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몰려온다.

    의식이 멀어져간다.

    그런데 눈꺼풀이 감기자마자 경찰이 깨웠다. 엄마도 옆에 있는데….

    “강백현 씨? 일어나보세요.”

    “네?”

    “경찰입니다. 강백현 씨, 잠깐 저희랑 같이 가서 조사 좀 받으실 수 있겠어요”

    “…무슨 일이시죠?”

    “최용규 씨 교통사고 건 때문에 그렇습니다.”

    경찰서.

    조서를 작성하는 강백현.

    “강백현 씨, 이번 뺑소니 사고 조사 중이거든요. 그날 있었던 사실 그대로 쓰세요.”

    “네? 뺑소니요?”

    “네. 4차선 도로에서 교통사고 내고 뺑소니를 쳤는데, 그게 단순 뺑소니가 아닐지도 몰라서요. 2번을 부딪혔거든요.”

    “저는 거기까진 모릅니다.”

    “네. 그런데 마지막으로 통화하셨던 분이 강백현 씨고, 지금 대리운전기사분도 깨어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대리운전 부를 때 강백현 씨랑 같이 있었다고, 사진 보니까 기억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있었던 일 그대로 써주세요.”

    “…알겠습니다.”

    부주경찰서 조 경사의 말에 그날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쓰는 강백현.

    그래야만 자신이 범인이라는 혐의를 벗을 수 있고, 수사가 빨리 진행되어 뺑소니범을 잡을 수 있다고 해서였다.

    그리고 3일 뒤. 모든 게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왔다.

    일단 최용규 선배가 장담한 것과 달리 공직기강감사 결과가 흐지부지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갑자기 시골의 한적한 주민센터로 발령이 났기 때문.

    여기는 주제동과 달리 교통이 좋지 않고, 주요 시내 지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모두가 기피하는 곳이다.

    어이없는 직위해제.

    그 이유는 분명 내부 문서 유출.

    들킨 것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선배와의 만남.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바로 자신에게 일어난 것이다.

    설상가상.

    여자친구의 전화에선 쌀쌀맞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오빠! 미쳤어?

    “다짜고짜 그게 무슨 소리야?”

    - 미친 거 아니면 어떻게 내부고발할 생각을 다 했어? 머리가 어떻게 됐어? 그런 거야? 아주 사고는 다 치고 다니고 있네. 너 때문에 나까지 싸잡아서 의심 받는 거 몰라?

    “할 말은 그것뿐이야?”

    - 그럼? 내가 오빠 편이라도 들어줄 줄 알았어? 『오빠, 걱정하지 마. 내가 오빠 곁에 있을게.』 이딴 말을 기대했던 거야? 백현 오빠, 완전 잘못 봤어. 내 친구들이 오빠랑 당장 헤어지란다. 쪼잔하고 배려심 없다고, 더 좋은 남자 주변에 많다고 소개 받으래.

    “너는 지금 나한테 지금 그게 할 말이니? 위로는 못해줄망정 지금 나 욕하는 거야?”

    - 됐어. 그만 해. 오빠 어차피 이제 승진도 끝났고, 허가과장님, 문화재과장님, 국장님, 시장님까지 고발했다며! 이제 나랑 사귄다는 말 절대, 꺼내지도 말고, 연락도 하지 마. 오빠랑 나랑은 진작에 헤어졌던 거고, 이제 연락도 안 하는 사이야. 알았어? 그리고 내 사진 싹 지워! 지워!

    “너 진짜 잔인하다. 난 네가 말하면 다 해줬는데, 어떻게 넌 내 입장에서 하나도 생각을 안 하니?”

    연인 관계.

    그 끝은 진짜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이틀이 지났다.

    미진이는 자신의 전화를 아예 차단한 것 같았다.

    톡을 보내도 읽지 않고, 전화를 받으면 아예 안내 멘트로 직접 전환되어 버린다.

    공무원 자리의 담당 전화를 걸어도 그녀가 받지 않고, 옆에서 당겨 받는다. 그리고는…

    - 죄송해요. 지금 미진 씨가 전화를 못 받는 상황이거든요. 시간 되면 전화 드리라고 할게요.

    동료 직원이 이딴 멘트나 지껄인다.

    그리고 그 날 오후.

    놀랍게도 프로필 사진에 새로운 남자가 올라와 있다.

    [오늘 만남, 즐거웠어요.]

    진짜 한 순간이다.

    비록 남자의 뒷모습만 있었지만, 사실인지 아니면 자신을 골탕 먹이려 하는 수작인지는 몰라도, 백현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1주일 전만 해도 선배와의 과거를 추억하고 미진이와 함께하는 밝은 미래를 꿈꾸었는데, 이제 직장에서도 따돌림 당하고 여자친구도 잃었다.

    백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새로 발령받은 주민센터의 선배 팀장이 물었다.

    “어디 가?”

    “잠깐 옥상 가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그래. 다녀와라.”

    팀장님께 말씀드리고 올라간 옥상.

    주변은 변한 게 없는데…

    그런데 멀리서 목소리가 들린다.

    [강백현! 강백현!]

    “네?”

    [너 역시 들리는구나! 들리지? 내 목소리 들리지?]

    백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뒤쪽에서 푸르스름한 영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귀신이었다.

    “선배? 최용규 선배?”

    [야! 내 말 들리니? 들리지! 야! 너 귀신 아니지?]

    “무슨 소리에요? 귀신은 선배잖아요. 선배 죽었잖아요.”

    [그래. 인마! 나 죽었어. 죽었는데, 그것보다 내 여자친구가 죽게 생겼다. 빨리 전화해! 빨리! 빨리! 스마트폰 들고 내가 불러주는 번호로 걸어! 지금 당장! 당장!]

    선배 유령의 말에 강백현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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