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깨러 왔습니다 1화
충청남도 부주시청 허가과 공무원 8급 강백현.
그가 원하는 건 딱 하나였다.
비리 척결.
“선배님, 정말 비밀보장 되는 것 맞죠?”
“그래. 백현아, 비밀보장 해준다니까? 자! 내가 해결한 감사결과 보고서 여기 봐봐. 하나같이 다 잡은 거 봤지? 비리 잡으면 다 징계하고, 파면도 시키고 해임도 다 시킬 거야. 시정조치는 당연히 할 거고.”
“네.”
“그러니까 한 번만 도와주라. 이번에 이거 해결되면 나 승진도 할 수 있고, 너도 더러운 일 이제 그만해도 되고 좋잖아.”
중앙부처 감사실 5급.
사무관이자 공직기강 감사팀장인 최용규.
부주고등학교 선배이자, 1학년 때 같은 룸메이트라서 더욱 친했던 선배.
그는 서울대에 입학 후 엘리트 코스를 거쳐, 행정고시(5급 공채)를 패스했다.
그래서 중앙부처 감사실에 있었고, 지금은 잠깐 충청남도 공직기강 감사팀의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반면, 백현은 그저 그런 지방국립대 졸업 후, 3년 만에 간신히 지방공무원 시험을 합격하여 9급으로 임용되었다.
공무원 임용된 지 3년이 지났다.
나이 서른 둘.
그런 강백현이 부주시 공직기강 감사를 맡은 최용규 형님을 만났다.
그게 바로 오늘의 일이다.
오랜만에 본 둘이었지만 매일 만났던 것처럼 반가웠다. 그만큼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이였다.
“알겠습니다. 선배님 믿고 축사 신축관련 건하고, 백제문화제 조형물 업체 선정 과정에 관련된 문서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절대 제 이름 노출되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그래 인마. 우리는 이 일 해결될 때까지 서로 만난 적도 없고, 연락도 한 적 없는 거야. 따로 내가 연락할 때까지 모른 척 하고. 알겠니?”
“알았어요. 선배, 진짜 잘 좀 해줘요. 우리 허가과장님이나 국장님이나 시장님까지 다 한통속이거든요. 제가 내부고발한 거 걸리면 저 진짜 공무원 인생 끝나요. 진짜 비밀 지키셔야 합니다.”
“그래. 그렇게 할게. 고맙다. 백현아.”
“아닙니다. 그나저나 선배, 고생하셨네요. 부럽습니다. 중앙부처 공무원이라니….”
“너도 시험 봐. 32살이면 안 늦었다. 요즘 5급 공채 한 2년 준비하면 돼.”
“그거야 선배님이 머리 좋으시니까 가능하신 거죠. 저는 지금 이 생활에 만족하렵니다.”
“어휴~ 이 조그마한 부주시에서 너도 고생 많이 한다. 시장 따까리 하고, 과장 똥꼬 빨고, 씨발 어디나 다 썩긴 썩었어. 맞지?”
“감사실은 그래도 파워 있잖아요.”
“큭큭, 내 자리는 그래. 힘 좀 있지.”
충남지역에서는 1년에 1, 2명밖에 뽑지 않는 중앙부처 감사실.
지방 9급 일반행정 합격인 자신과 달리 선배는 서울대 졸업 후 5급 공개 채용에 수석으로 합격, 그 자리에 있다.
그래서일까? 사실 강백현은 선배 최용규가 부러웠다.
“좋습니다. 자료 복사본 여기 있습니다. 출력문서라서 제 이름 워터마크 찍혀있거든요. 인터넷 접속 끊고 출력한 거라서 기록은 안 남았는데, 출력물에는 남아있네요. 그래서 진짜 노출 안 되도록 조심해주셔야 됩니다. 아시겠죠?”
강백현이 내민 문서를 바라보는 최용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부성면 축사 신고 허가서』는 물론 『백제문화제 조형물 입찰계약서』, 『백제문화제 축제 간 조경업체 선정 결과』등등.
딱 봐도 비리가 있을 법한 문서다.
그런데 그 문서뿐만이 아니다.
관련 법규까지 포스트잇으로 적혀 있는 것을 보니, 백현이 녀석이 터트릴 기회를 엿보면서 평소 단단히 준비한 자료였나 보다.
“장난 아닌데? 언젠가는 나 아니어도 터트렸겠네?”
“그런 거 아니었어요. 선배, 그냥 혹시 저한테 공격 들어오면 커버 치려고 모아뒀던 자료죠. 더 이상 묻지 마세요. 일단 선배님이 원하신다니까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저 부서 옮겨서 제가 이거 출력한 거 알지도 못해요. 제가 당시 그 부서도 아니었고요.”
“그래? 아! 알았어. 내가 너 무조건 노출 안 되게 할 테니까, 한 잔 마시자. 우리 후배의 승진을 위하여!”
“위하여!”
술잔이 높게 올라갔다.
그리고 강백현은 선배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동시에 마음속 깊이 바랬다.
이걸로 비리, 관행 등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특정 인물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닌 부주시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 되면 좋겠다고….
* * *
다음 날. 강백현은 웃는 얼굴로 출근했다.
보통은 민원은 물론이고 계장, 과장, 국장의 말도 안 되는 요구 때문에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다. 어젯밤에는 그 체증이 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강 주무관님, 무슨 좋은 일 있어 보이십니다.”
“여린 씨가 보기에 그래 보여요?”
“네. 오늘 컨디션 좋으신데요.”
“기분 탓이겠죠. 일 합시다!”
“네!”
오늘은 허가과장이 연가를 쓴 날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자신을 갈구는 사람이 없으니까.
더구나 오늘은 민원도, 업체에서 찾는 전화도 없다.
띵까띵까.
이럴 때는 역시 여자친구랑 톡이다.
강백현 : 자기야~ 뭐해?
윤미진 : 나? 그냥 쇼핑 하고 있어.
강백현 : 쇼핑? 그래도 돼? 과장님이 뭐라고 안 해?
윤미진 : 과장님은 지금 고스톱 치는데? 오늘 민원인 없어서 완전 한가해. 주제동 주민센터 오길 잘 한 것 같아. 완전 죠아~ 근데 자기얌?
강백현 : 웅!
윤미진 : 나 속옷 하나만 사주면 안 돼?
강백현 : 속옷? 왜? 저번 주에도 사줬잖아.
윤미진 : 그 말투 뭐야? 나 좋으라고 사는 거야? 다 자기 기분 좋게 해주려고 사는 거잖아.
강백현 : 킥킥, 알았어. 맘에 드는 거 골라. 휴대폰 결제 하면 내가 승인번호 알려줄게.
윤미진 : 우리 여보~ 최고!
강백현 : 웅!
여자친구 윤미진.
같은 공무원 동기.
강백현과는 올해 말,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주제동은 부주시에서도 외곽에 있는 곳.
여기에 주민센터가 왜 있는지 모를 정도로 인구도 적은 곳이다.
그런데 교통은 또 좋은 편.
보통 외곽이면 교통 인프라는 나쁜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부주시 공무원들은 누구나 주제동 주민센터에 가고 싶어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엄청 편하니까. 진짜 편하니까. 할 일 거의 없으니까.
원래라면 저 자리는 강백현이 갔어야 했는데 미진이한테 양보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원했으니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문자가 도착했다.
[승인번호 (455134) 결제창에 입력시 153,000원이 정상 결제됩니다. - K마켓]
‘아, 좀 비싼데?’
그래도 여자친구를 위해서 이 정도 금액은 감내할 수 있었다.
강백현 : 승인번호 455134라네.
윤미진 : 자기야! 고마웡!
강백현 : 응. 사랑해~♡
사랑하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텐데….
강백현은 스스로도 콩깍지가 씌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내 모든 것을 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한 달 내내, 평생 사줘도 된다. 내 사람이니까. 사랑하니까.
그 날 점심 강백현의 전화가 울렸다.
부주고등학교, 대학교 동기인 김태웅이다.
강백현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받았다.
“뭐냐?”
- 야! 너 그거 들었어?
“뭐?”
- 최용규 선배, 어제 교통사고 났대.
“뭐? 최용규 선배가?”
최용규, 분명 자신과 같이 어제 술을 먹었는데… 교통사고라니.
김태웅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 그래. 아~ 이 선배 미쳤나 봐. 어제 술 엄청 먹고 대리 운전 불렀는데, 대리운전 새끼가 신호 어기고 가다가 4차선 도로에서 교통사고 내서 지금 천안 단국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대. 아~ 이 선배 결혼 3개월 밖에 안 남았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냐? 지금 오늘 내일 한단다. 선배님 여자친구가 울면서 전화 왔더라.
“……”
충격이었다. 마지막까지 자신하고 술을 마시던 선배가 왜? 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내 서류는? 설마 아니겠지?
- 야! 백현! 강백현! 왜 아무 말이 없어? 오늘 같이 가자. 너 갈 수 있는 거지? 저녁 7시부터 8시까지만 면회 할 수 있대. 오늘 내일 한다니까 가자고.
“어… 가야지.”
- 그래. 이따가 데리러 갈게. 너 차 없잖아.
“응.”
그날 저녁. 천안 단국대의 중환자실.
교통사고가 얼마나 심하게 났는지 선배는 온 몸이 부어 올라있다.
선배의 어머니는 실신해서 자리에 없고, 중환자실에는 부모님 대신 여자친구가 곁을 지키고 있었다.
태웅이가 그녀에게 물었다.
“의식이 없는 건가요?”
“네! 흑흑, 어떡해요. 빨리 깨어나야 하는데… 우리 용규 씨 진짜 이대로 가면 안 되는데….”
강백현은 바이탈 사인을 쳐다보았다.
맥박이 105를 유지하고 있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모든 게 자신의 탓 같았다.
‘선배님, 이렇게 가시면 어떻게 해요? 제가 뭐가 됩니까? 얼른 깨어나세요.’
그런데 갑자기 최용규가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맥박이 순식간에 떨어진다.
“선배! 선배! 간호사! 의사선생님! 의사선생님!”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
백현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옆의 환자를 보고 있던 간호사가 놀라서 호출 버튼을 눌렀다.
간호사는 바이탈 사인을 보더니 다급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가주셔야 합니다. 다들 나가주셔야 합니다.”
10분 후, 고개를 저으며 나오는 의사와 간호사.
선배 여자친구는 절규하고 면회객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게 선배의 마지막.
중환자실 밖.
강백현이 의자에 앉은 채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김태웅이 다독였다.
“울지 마. 인마.”
“이렇게 가시면 안 되는데! 나 어떡하냐?”
“사람 가는데 뭐 순서 있냐? 아 씨발… 선배 좋은 사람이었는데…. 진짜 정의롭고 불의를 봐도 참지 않고 진짜 좋은 사람이었는데… 씨발….”
두 친구는 선배를 위해 기꺼이 울었다.
쪽팔린 거 전혀 없었다.
강백현은 정말 자신이 죄인인 것만 같았다.
어제 같이 술만 안 먹었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선배…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완전 죄인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선배의 유령이 보인다. 말소리도 들린다.
‘백현아… 울지 마.’
“선배?”
‘그래. 네 잘못 아니야. 내가 만나자고 한 거잖아.’
손을 앞으로 내밀어 만져보려 하지만 그냥 통과하고.
“백현아, 뭐해? 정신 차려! 너 왜 그래?”
“아니… 선배가 보이는 것 같아서….”
“미친놈아! 이제 헛것이 보이냐? 그냥 내 품에 안겨서 울어. 울자.”
자신의 등을 토닥이는 친구.
눈물을 닦고 다시 앞을 쳐다보았을 때, 백현의 앞에 있던 선배의 유령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