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남편찾아 삼만리 (6)
'그나저나 낯설지 않은 느낌의 소유자란 말이야...'
삿갓의 무사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은 한번도 없지만, 몸에서 풍겨나오는 기운
이 어디서 느꼈던 것인지라 로노와르로선 이상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기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짙어져 가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 스며있는 마나가 그와 반응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있었기에 쉽게 지울 수가 없었다.
'한번 이야기나 해봐야겠군.'
단단히 결심을 한 로노와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일본도의 무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다른 이들은 모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녀님 너무해요. 내가 찍은 남잔데."
초희의 말에 잠시 그녀를 째려보는 것으로 걸음을 멈춘 로노와르는 그의 앞자
리에 앉았는데, 삿갓의 무사는 그녀가 다가왔음에도 한치의 미동도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어요. 저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로노와르의 말에 삿갓의 무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는데, 그의 눈빛을 보는 순
간 그녀는 조금 흠찟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울한 기운이 흐르는 눈빛의 밑으로 들여다보이는 얼굴은 처음보는 얼굴이였
지만, 그 우울한 눈빛이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로노와르의 말을 들은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젖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서는 무엇
을 생각하는지 모르는 명상에 잠겼고,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뒤 돌
아설 수 밖에 없었다.
"만나보니 어때요?"
초희는 그 남자가 상당히 궁금한 듯 기대에 찬 얼굴로 물어보았지만, 무어라 말
을 해 줄 것이 없었다.
"글쌔 너무...과묵하다랄까?"
"음..."
자리에 앉은 로노와르는 그 눈빛을 어디서 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루드웨어라도 있으면 물어보았을텐데...'
이상하게 루드웨어라면 한 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로노와르였다.
다음날 역시 일행들은 무림맹을 향해 길을 떠났는데, 로노와르는 놀랍게도 삿갓
을 쓴 사람과 동행을 제안했다.
"저희랑 같이 움직이겠어요?"
그녀의 말에 삿갓을 쓴 사람은 조금 놀란 얼굴을 취했지만, 잠시 후 다시 평정
을 찾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같이 가는 것을 선택했다.
무엇 때문에 그가 자신들을 쫓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자신들을 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루드웨어를 만난다면 그의 비밀을
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삿갓을 쓴 일본도의 무사의 이름을 알고 싶기는 했지만, 워낙 말이 없는데다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조금 무서웠기 때문에 일행들은 그를 묵립(?笠)이라 부
르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조용한 남자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도움이 된 것은 그 특유의 분위기 때
문에 산적들이 접근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일단은 그를 앞세우고 가다가 나타난 산적은 잠시 흘깃하는 눈짓에 몸을 피하
고 마니 여인들의 대도적용 호신남(對盜賊用 護身男)으론 꽤 쓸모가 있는 자였
다.
하남 무림맹을 향해 가던 로노와르 일행은 산속에서 길을 잘못 잃게 되었기에
큰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휴.."
하남으로 가는 여정을 담당하고 있던 도연랑은 무엇이 잘못됬을 까라는 생각에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길을 아는게 아니였어?"
"그것이 지도를 보고 가고 있었는데....지름길이 있어서 그곳으로 갔거든요. 그런
데..."
그 말을 하는 순간 초희의 안색은 크게 변하고 말았으니 로노와르 역시 그녀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초희야..."
"예.."
"솔직히 말하렴..."
"흑흑..언니 미안해염.."
그 말과 함께 안초희는 도연랑에게 달려들어서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휴..."
이야기를 들어보니 천영살대 유란을 골리기 위해 잠시 지도에 장난을 친 것인
데, 그것을 잊어 먹고 있었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일단 장난을 한 것을 제외하고 나니 산속 깊숙히 들어온 것이 되는지라 도연랑
은 한 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날을 이미 저물어가고 있으니 가까운 마을로 들어가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한 그
녀는 야숙을 결심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때 묵립이 그의 앞으로 다가와서는
땅에다 글자를 적고는 산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뭐야?"
로노와르는 그가 적은 글이 무엇일까 궁금해서는 도연랑에게 다가왔다.
"산 위쪽에 산장이 하나 있다는데요."
"그래?"
일단은 머무를 곳도 없는지라 로노와르는 다른 이들에게 손짓을 해서는 묵립을
따라갔다.
한참을 산 위로 올라가자 그가 쓴데로 하나의 산장이 드러났는데, 애석하게도
이미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곳인지라 조금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밤이슬을 막기에는 그런대로 쓸모가 있다고 생각한 로노와르는 초희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이고는 말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쉬도록 하자."
"예."
산장은 사람이 살지 않은지 오래되었는지, 지저분하기 그지 없었고 여기저기 무
너진 흠적이 보였다.
하지만 그런데로 쓸만한지라 도연랑은 초희와 유란에게 저녁준비를 시키고는
소심랑과 함께 산장의 주위를 살펴보기 위해 움직였다.
"선도산장(先導山莊)이라..."
산장의 입구 앞에는 큰 현판에 선도산장이란 글씨가 쓰여져 있었는데, 그 필체
가 상당히 운치있고, 힘이 서려 있는지라 이 산장의 주인이 서예에 상당히 조예
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행들이 머물고 있는 본관을 지나 도착한 곳은 작은 건물이 서 있었는데, 안으
로 들어서자 수많은 책이 있었다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방 대부분을 서재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수만권의 장서가 꽃혀 있었을 것이란 짐작을 할 수 있었기에 이 곳이
유림에 있는 선비가 살고 있었던 곳이라 짐작할 수 있었는데, 서재의 한 구석에
반정도 남은 책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음...역경(易經)이라..."
사서삼경의 하나인 역경이 쓰여 있는 책이였는데, 잠시 살펴보니 이 책의 주인
이 꽤 많이 읽었는지 종이의 군데군데는 손때가 묻어 있었다.
훼손된 역경을 서재 위에 대충 올려놓은 도연랑은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그
때 등뒤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구냐!!"
사람의 인기척이라 생각한 도연랑은 뒤로 돌아서는 크게 소리쳤는데, 그 순간
발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창문 쪽으로 빠르게 도망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매 가자!"
"예!"
도연랑은 급히 소심랑에게 소리치고는 도망간 사람을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당한 경공을 지니고 있었는지 그녀들이 창문을 통해 빠져나왔을 때는
이미 그의 종적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음.."
창문을 뛰어넘은 후 다시 경공을 사용하여 도망간 듯 한데, 바닥에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경공의 실력은 자신과 비슷하거나 그 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신녀님 쪽으로 돌아가야 겠다."
"예."
경공의 실력으로 자신들 두 사람이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두
연랑은 급히 본관쪽으로 돌아왔다.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예."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그런 기운을 느낀적이 없었으니 원래 이곳에서 살고 있
었던 사람일 수도 있다. 일단은 모두 이곳에 모이게하고, 함부로 움직이지 말도
록 지시하여라."
"예."
일단은 이곳에 살고 있었다면 자신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도연랑이 말하는 경공을 실력이라면 충돌하면 조금 귀찮은 일이 생기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것으로 결정한 로노와르였다.
간단한 음식이 만들어지자 일행들은 간단히 저녁을 해결 한 후 순번을 정해 경
비를 서게 한 후 잠을 청했는데, 묵립은 그녀들이 머무르고 있는 방의 한 구석
에서 고개를 숙인채 잠을 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 모르게 앉아 있었다.
첫 번째 경비를 서고 있는 초희는 멍하니 그의 얼굴을 처다보고 있었는데, 듬직
한데다가 말이 없는 무뚝뚝함이 이상하게 그녀의 마음에 쏙 들고 있었다.
"이봐요. 자는거에요?"
"...."
초희는 구석에 앉아 있는 묵립을 불러보았지만, 역시나 아무 말도 없었기에 한
숨을 쉬고는 주위를 흝어보았다.
그 순간 창문쪽에서 달빛으로 사람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기에 크게 놀라서는
전음으로 우란을 깨웠다.
[유란! 유란!]
[뭐야?]
[창문 쪽에 도언니가 말한 사람이 있어!]
잠에서 깬 유란은 그녀의 말에 자는 척하며 조심스럽게 몸을 틀어서 지켜보았
는데, 아니나 다를까 달에 비친 검은 그림자가 보이고 있었기에 천천히 다른 이
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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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의 사나이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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