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마법사-162화 (162/247)

제 6 장 의적이 된 루드웨어 (4)

보물을 우송하고 있던 루드웨어 일행들은 저녁무렵 한림객잔(翰林客棧)이란 곳

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림객잔?"

"이름은 좋네..."

멋드러지게 써져 있는 글자를 보며 감탄을 하는 루드웨어였다.

문을 열고 천천히 객잔안으로 들어서자 진하게 풍기는 먹냄새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놀랍게도 손님들의 대부분이 유림의 선비들이였기 때문이다.

"뭐야...이 어줍지 않은 분위기는..."

보통 객잔이라 함은 여행자들이 쉬어가는 쉼터와 같은 곳으로 고된 여행 끝에

마시는 소홍주 한잔으로 여독을 씻어 내는 곳을 말한다.

하지만....한림 객잔 전체에서 풍겨 나오는 이 진한 먹냄새는 지친 이들로 하여

금 더욱 고단한 하루를 유도할 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걸려져 있는 한시들은 무

식한 이들로 하여금 소외감을 이끌게 하기에 충분했다.

"휴..."

편하기 쉬기는 틀렸다고 생각한 루드웨어는 일행들과 함께 천천히 근처에 있는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는데, 이 놈의 객잔은 물은 가져다 줄 생각은 하지 않고

냅다 지필묵을 앞으로 내미니 루드웨어의 눈에는 당황하는 빛이 역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뭡니까..."

"한림객잔의 전통입니다. 이곳으로 온 손님들은 먼저 지필묵을 들고는 자신이

가장 감명 깊에 외운 시를 한 수 적는 것으로 등급을 매기게 되지요."

"등급..?"

"예. 시 한 수 못 외우며 글씨 또한 악필 일때는 하급, 시는 외웠으나 글자가

악필이면 중급을, 시를 외우고 글씨가 어느정도의 수준에 이를 경우에는 상급의

대우를 하게 되지요."

점원의 말에 진천명은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며 물었다.

"그럼 상급과 하급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급의 경우에는 무엇을 주문한다 해도 가져오는 것은 국수 한그릇과 백건아

한잔 외에는 더 이상을 내주지 않지만, 중급일 경우에는 오리구이와 소홍주까지

주문이 가능하고 상급을 경우에는 한림객잔의 명물인 용봉쌍비라는 최고급 요

리까지 주문이 가능합니다."

"젠장할..이거 완전히 선비전용 식당이잖아."

"예. 한림객잔은 선비전용 식당이 맞습니다만..."

점원의 당연하다는 말에 루드웨어로선 잘못 걸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

지만 어떻하랴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르는 것이 순리이거늘.....

"근데 특급은 없는가?"

"예. 특급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이 곳에 있는 선비들에게 만장일치

로 천하의 명필이라는 인정을 받아야하며 특급의 대우로는 일주일간 객잔 무료

이용권과 함께 은자 백냥의 상금이 주어집니다. 물론 이런 돈을 빙자로 수십명

의 선비들을 데리고 와 사기를 치는 분들도 없지는 않지만, 저의 단골 중에는

유림에서 한 끗발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기 때문에 그런 사기는 절대 통하지 않

는다고 할 수 있지요."

만자일치라면 충분히 사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객잔의 모습으로

보아 유림의 선비들의 아지트와 같은 곳으로 변모를 하여 특정 계층의 손님들

을 단골로 만드니 이 객잔의 주인의 수완은 상당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또 메뉴의 경우에는 일정한 등급을 매기고 있으니 상급의 실력이 있다 해도 돈

이 없어 국수를 먹는다면, 수준이 떨어지는 선비로 놀림을 받을 수 있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상급의 음식을 시킬 수밖에 없으니 이것 또한 수완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가 먼저 하도록 하지요."

진천명은 정파의 오룡의 일인이나 학식이 높지는 않지만 알고 있는 시는 몇 수

있었기에 붓을 들어서는 종이에 시를 적어 나갔다.

[귀원전거 (歸園田居) 도연명(陶淵明)

종두남산하(種豆南山下) 초성두묘희(草盛豆苗稀)

남산 아래 콩을 심었으데, 잡초만 무성하고 콩싹은 희미하기만 하구나

침신리황예(侵晨理荒穢) 대월하서귀(帶月荷鋤歸)

새벽까지 겇니 잡초를 뽑고서, 달이 매달릴 때 쯤 호미를 매고 돌아오누나.

도협초목장(道狹草木長) 석로첨아의(夕露沾我衣)

길은 좁은데 풀과 나무는 자라, 새벽 이슬에 옷이 젖는구나

의점부족석(衣沾不足惜) 단사원무위(但使願無違)

옷이 젖는 것은 아깝지 않으나 다만 원하는 것이 어긋남이 없기를...]

도연명의 속세를 벗어난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는 도교적인 시를 적은 진천명은

천천히 자신이 적은 것을 점원에게 내밀었는데, 그는 그것을 들고는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찾아갔는데, 글씨를 보자마자 주인은 고개를 내젖더니 붓으로

글자를 써 놓고는 점원에게 건네 주었다.

"저희 주인님의 말로는 손님께선 중급이시라 합니다."

"중급.."

루드웨어는 그 순간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어느정도 쓴 진천명의 글

씨를 악필이라 평가하니 단순한 장사수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

이다.

주위를 돌아보니 몇몇 선비들이 오리고기와 소홍주를 먹는 것을 보니 그들도

중급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사자인 진천명의 경우에는 자신이 명필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악필

정도는 아니였는데 이러한 평을 받자 조금 노기가 솟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

을 보던 여사랑이 붓을 들고는 말했다.

"그럼 이번에는 제가 한번 써보지요."

다소곳하게 불을 들은 여사랑은 그 얼굴과는 달리 일필휘지로 종이에 시를 써

내려가니 침착하고 천천히 써내려는 진천명에 비해 그녀의 성격이 드러나는 순

간이였다.

[산중문답(山中問答) 이태백(李太白)

문여하사서벽산(問余何事栖碧山) 소이불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

나에게 묻기를 이곳에 사냐하니, 웃으면서 대답을 아니 하였더니 마음이 스스로

한가하네

도화유수요연거(桃花流水杳然去)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복숭아 꽃이 물에 흘러 아득이 흘러감에 따로 천지가 있어 인간세계가 아니구

나.]

여사랑이 멋드러지게 이태백이 시를 써놓았는데, 진천명의 경우에는 자신보다

그 필체는 어수룩하다 여겨 그녀 역시 중급을 면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영 딴판이였으니 놀랍게도 여사랑은 주인장에게 상급이란 평을

받게 된 것이다.

"말도 안돼!"

도저히 이 결과를 믿지 못하게 된 진천명은 주인장을 보며 따지러 가려고 했는

데, 그 때 점원이 손을 들어서는 말했다.

"이 결과를 가져가면 손님께서 항의를 하실 것이라 하시면 주인님이 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화를 가누지 못한 진천명은 점원의 말에 노기를 띄우며 말했는데, 그것을 보며

점원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필(筆)이라 함은 심(心)을 담는 그릇이지 교(巧)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하였습

니다."

"무슨 소리지?"

"손님의 글씨는 기교는 있으나 사람의 마음이 없지만, 이분 여협의 글씨는 교는

없으나 글자에 사람의 마음이 있으니 어찌 상급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

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을 들은 진천명은 어느정도 깨달은 바가 있었다.

무공에서도 단순히 기교만을 중시하고 그 초식 하나하나에 정신을 일치하지 않

는다면 그것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지만, 초식 하나하나에 정신을 일치한다면 진

정한 초식의 뜻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공도 이러한데 글씨 또한 그런 이치가 없겠는가.

진천명은 그러한 것을 알고는 포권지례를 하며 점원에게 사죄를 청하고는 말했

다.

"저의 성급함이 큰 결례를 할뻔 했습니다. 주인장님께 좋은 말에 감사하다 전해

주십시오."

"네. 그러도록 하지요."

점원 또한 진천명의 사람됨에 감탄을 하고는 천천히 주인장에게 가서 말했고,

주인 또한 진천명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병의 술을 건네주었다.

점원은 진천명에게 술을 건네주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니 그 말에 그는 또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님께서 손님은 드디어 뜻을 깨우쳤으니 축하한다면 손님께 축하주를 선물

하고 싶다고 합니다."

"오! 강호 말학 진천명 주인장의 뜻을 감사히 받는다 전해주십시오."

"예."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 한림객잔의 주인장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이 훤히 드러났고, 루드웨어는 이젠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가 어느정도 이 세계에 오기전에 수업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세세한

분야에 대해서는 겉핥기 식으로만 익혔을 뿐이다.

중점적으로 익힌 것은 무공이였으니 명필이고 악필이고를 떠나 그런 글자를 구

분할 능력조차 없는 것이 현재의 루드웨어였기 때문이다.

'젠장 어떻게 하지...'

아는 시야 몇 개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글자로 써서 성적을 매긴다는 것은 정

말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껏 진천명에게 폼 잡았는데...흑흑흑....'

이젠 자신의 위엄도 사라질 수밖에 없구나 생각한 루드웨어는 천천히 붓을 잡

고는 패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려고 했는데, 그 순간 다른 생각이 들어서는 벼루

에 붓을 내려놓고는 점원을 보며 말했다.

"주인자에게 본인은 붓을 잡지 않겠다고 전해주시오."

"예?"

뭐 가끔씩 한림객잔에 찾아온 무인들이 시를 한 수 적으라는 말에 얼굴을 붉히

며 난동을 부린 적이 없지는 않았지만, 점원의 눈에 보이는 자는 난동을 부리는

것이 아닌 오히려 인잫나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 있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어

다.

"하지만..그러시다면 저희 객잔에선 음식을 내어 드릴 수가..."

그 순간 루드웨어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고, 점원은 크게 놀라 뒤

로 넘어지고 말았는데, 그 모습에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한 루드웨어는 진청명에

게 눈짓을 했다.

진천명은 그제서야 루드웨어가 하려는 일을 알고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앞으

로 나가서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니 진천명의 말을 들은 선비들은

영문을 모르기는 하지만,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하며 탁자를 들고는

객잔 안에 어느정도의 공간을 만들었다.

"여러 유림의 선비분들께 죄송스럽지만, 본인은 강호에서 밥을 빌어먹고 사는

자로 적은 획수보다 휘두른 검의 숫자가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제가

여러 선비님들과 겨루어 필을 가늠한다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은 일인지라 이

렇게 앞으로 나서게 되었으니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루드웨어는 앞으로 나서서는 검을 들어 기수식을 취하니 그 자세

에서 뿜어 나오는 모습은 실로 마치 고요한 달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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