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사이비 도사 루드웨어 (2)
그렇게 반시진 정도가 지났을 때 드디어 먼 곳에서 사람이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평범한 여행객인 듯한 이십대중반의 장정은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있는 듯, 연
신 얼굴을 싱글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하나의 봇짐이 있었는데, 그것을 신주 다르듯이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물건인 듯 했다.
"호오! 딱 걸렸군!"
강태풍은 만만한 상대가 걸렸다는 생각에 나무에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그때 도
사의 말이 떠올랐다.
'도사님이 반 시진 후에 나그네의 목을 베어야 다시 살아 날 수 있다고 했는
데....'
산골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강태풍은 요즘 들어 불경기로 나뭇짐도 안 팔
리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우연히 줏은 대도를 들고 산적질을 하고 있는 것이지
만, 사실 사람을 죽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어느정도 힘을 쓰는 장정이란 소리를 듣긴 했지만, 고의로 사람을 상하게 한 적
이 없었던 그로선 과연 저 나그네를 죽일 수 있을까란 생각에 식은 땀이 흐르
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저 나그네를 죽이지 않는다면, 어머니를 보살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주먹을 쥐며 결의를 다진 태풍은 나그네가 가까이 오자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헉!!"
갑자기 사람이 나무에서 뛰어내리자 길을 지나던 나그네는 크게 흠찢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강태풍의 착지는 꽤 괜찮았다.
"흐흐흐 여기서부턴 본 어르신의 구역이다 가진 것을 모두 내 놓거라."
"사..살려 주십시오!!"
나그네는 산적을 만났다는 생각에 울상이 되어 강태풍에게 빌고서는 급히 주머
니를 뒤져서는 돈주머니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는데, 강태풍은 고개를 젖고서는
가슴에 꼭 안고있는 보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봊짐도 내려 놓거라!"
"헉..안됩니다. 이것만은 절대 안됩니다!! 옷이라도 벗어두고 갈테니 이것만은 제
발."
그의 눈물을 흘리며 말하자 강태풍으로선 도저히 봇짐을 뺏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보통때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였지만, 지금은 이 나
그네를 죽여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트집잡을 수밖에 없었다.
"감히 본 어르신의 말을 거부하다니 죽어봐야 겠구나!"
"아이고 살려 주십시오."
그는 태풍의 말에 고개를 땅으로 처박으며 빌고 있었지만, 봇짐만은 무슨 연유
가 있는 듯 절대로 손에서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풍으로선 그를 봐줄 수가 없는 입장이였기에 그의 앞으로 가서는 눈
을 꼭 감고는 대도를 휘둘렀다.
"끄아악!!"
그 순간 대도에서는 둔탁한 느낌이 들며 자신의 몸으로 액체가 튀어져 나오는
것을 느낀 강태풍이였다.
나그네는 크게 비명을 지른 후 고통스러운지 발광을 하기 시작했는데, 태풍은
그가 죽을 때 까지 대도를 내릴 칠 수밖에 없었다.
"끄어억!! 어머니....."
몇번을 내리 친 후에야 나그네의 움직임을 천천히 멈추어 갔다.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가는 그의 눈에는 원통함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
었기에 눈을 뜬 강태풍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흐억!!"
아직도 완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은 듯이 피눈물이 계속 흘러내리는 그를 보며
무서워진 태풍은 그의 등짐과 봇짐을 빼앗고는 도망치려 했는데, 놀랍게도 죽어
가는 그의 손은 봇짐을 놓으려 하지 않는 듯 뺄 수가 없었다.
"에잇!!"
어쩔 수 없는 태풍은 대도로 그의 손목을 내리쳤고, 그 순간 피가 튀며 손목이
잘려져 나갔다.
간신히 봇짐을 빼앗은 강태풍은 재빨리 그 자리에서 도망을 치며 산으로 올랐
고, 한참을 띈 후에야 간신히 몸을 쉴 수가 있었다.
"휴...헉!!"
간신히 멀리 도망처왔다고 생각한 그가 짐을 펴보려고 했는데, 놀랍게도 봇짐에
는 그것을 놓지 않으려 하던 나그네의 손목이 그대로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손목을 떼어내서는 멀리 집어던진 후에야 간신히 안도의 한 숨을 내쉬
고는 짐을 풀어보았는데, 봇짐에는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비싸 보이는 비단으로 만들어진 옷 한벌과 가락지 몇 개, 그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차라리 그가 맨 처음 자신에게 준 돈주머니의 돈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았기에
태풍으로선 그가 왜 이것을 놓으려 하지 않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또 봇짐에는 반 조각난 옥패가 하나 있었는데, 싸구려 잡옥으로 만들어진 패인
지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태풍은 숲에다 버리고는 물건을 들고 자리에서 일
어났다.
"도사님이 시키는데로 나그네를 죽였으니 이제 난 살아난 것인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에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모실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으로 달래며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그였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오두막에 도착한 방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자신의
옷에 나그네를 베었을 때 튀긴 피가 묻어 있다는 것을 생각이 미쳐서는 부엌으
로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한남자가 감자를 훔쳐먹고 있었다.
"누구냐!!"
"....."
들켰다고 생각한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는데, 놀랍게도 그는 도사 루드웨어였
다.
"흠흠..잠시 배가 고파서...."
입가에 묻은 감자 부스러기를 닦은 루드웨어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 땀을 닦고
는 그를 보며 말했다.
"나그네를 죽였는가?"
"...예..."
태풍의 말에 루드웨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제 자네는 다시 어머니를 모실 수 있을 것이네. 그렇게 말한 루드웨어가 손
을 한번 휘젖자 그곳에는 투명한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는데, 놀랍게도 그는 강
태풍이 죽인 나그네였다.
[어..어머니...어머니....]
피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부르고 있는 나그네의 영혼을 보며 그는 뒷걸음질치
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를 부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강태풍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
낄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에 사람을 죽였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죽인 자에게도 어머니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루드웨어는 태풍을 보며 작별의 인사를 하고는 천천히 부엌을 빠져 나왔다.
한쪽 주머니가 볼록한 것을 보면 감자 몇 개를 더 가지고 가는 것을 알 수 있
었지만, 도사니까 그냥 봐주기로한 태풍은 서둘러 옷을 갈아 입고서는 어머니가
누워 있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몸은 괜찮으세요?"
"태풍이로구나...."
그의 어머니인 진씨는 태풍이 돌아온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힘이 없는지 이내 쓰러지고 말았다.
"어머니 누워 계세요."
"에고....우리 태풍이에게 너무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저녁을 올릴께요"
저녘을 차린다는 말과 함께 밖으로 나간 태풍은 아픈 어머니를 두고 가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부엌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이라고 해봤자. 먹을 것은 감자와 몇가지 나물 뿐이였지만, 내일이면 나그
네에게서 뺏은 돈과 물건을 팔아 맛있는 것을 해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태풍은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몇가지 잡일을 처리한 태풍은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는
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이 감으면 자신이 죽인 나그네의 목소리가 귀를 울리는 것처럼 들리고 있었
고, 두 눈에서 흐르는 원통함의 피눈물이 자꾸 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일 어머니를 위해 고기를 사다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간신히 잠
을 들 수가 있었다.
다음날 간단하게 아침을 준비한 후 방으로 들어간 태풍은 어머니가 눈물을 흘
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의아하게 생각한 태풍은 도저히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 무슨 슬픈 일이라도 있으시나요?"
"태풍아...."
한참을 망설이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의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태풍아...이 예기는 안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구나."
"무슨 예기인데요?"
태풍은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말에 무엇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일까 걱정
되었다.
"태풍아 사실 너에게는 동생이 있단다."
"예?"
"니가 어렸을 때 도저히 두 아이를 키울 수가 없어 다른 곳에 양자를 보내었
지....흑흑흑..그런데 어젯밤 꿈에서..그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이 어미를 찾는데
도저히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단다..."
"...."
처음 듣는 이야기에 태풍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동생이 있었다니
한번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품에서 반쪽의 옥패를 꺼내어 그에게
건네주고는 말했다.
"니 동생은 밑 마을 대장장이 장씨네 집에 양자로 보냈단다. 볼 수 없어도 좋으
니 그 아이의 소식만을 듣고 싶구나.. 이 옥패는 네 동생을 보낼 때 주었던 것
이니 나머지 반 쪽의 옥패를 가지고 있는 아이가 네 동생일게다."
"예. 제가 한번 찾아볼께요."
아프신 어머니의 소원을 들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옥패를 처다 보았
는데, 그 순간 그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헉!"
놀랍게도 그 옥패는 어제 자신이 살기 위해 죽인 나그네가 가지고 있던 잡옥으
로 만든 옥패와 같은 것이였기 때문이다.
놀란 강태풍은 자신도 모르게 옥패를 떨어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내가....'
자신이 살기 위해 죽인 나그네, 그가 바로 강태풍의 동생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