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의 마법사 2부 -55-
성기사대회의 준결승전 이제 남은 사람은 모두 4명이였다. 루드니아, 로크, 핫도리 한조, 레
비나, 유력한 우승 후보들이 대거 탈락한 가운데 성기사대회는 전번대회 우승자인 레비나를
제외하고는 4강의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새로운 인물이 갈아치워진 것으로 이러한 일들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성기사대회 역사상 처음 출전한 인물들이 4강에 대거 진출한 예는 없었기 때문이다.
도박가들은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를 레비나로 뽑는 것은 주저하지 않았지만, 예측불허의
상황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이번 대회에서는 확실하게 레비나를 우승자로 확정짓는 것은 성
급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성기사대회 준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장내에 계신 신사, 숙녀 여러분은 정숙해 주십시
오.]
안내 방송이 시작되자 대기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시합은 루드니아와 로크, 둘다 처음 출전한 성기사대회지만, 파란을 일으키고 준결
승에 까지 진출한 자들이였다.
루드니아는 드미트리가 준비한 시녀들에게 시중을 받으며 시합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뭐야?'
자신을 시중하는 많은 시녀들에 루드니아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였다. 이제 완전히 기억을
되찾은 로노와르였기에, 일단은 자신에게 이상한 저주를 건 루드웨어가 미워 계속 장단을
맞춰주고는 있었지만, 이런 시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기사대회의 출전해서 준결승전을 치룬다고 하는데, 이제 완전히 기억
을 찾은 루드니아로선 인간들의 시합은 우스울 따름이였다.
간단히 힘만 약간 개방해도 그녀의 일검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이 대륙에 몇 명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대선수라는 로크는 운이 좋아서 준결승전에 진출한 선수였기
에, 결승진출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되었다.
"루드니아님 출전 시간입니다."
레드나이트의 게르하인이란 사나이는 기억을 잃었을 때 자신과 꽤 친한 사이였다고 들었기
에, 루드니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르하인은 이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었는데, 평상시의 그녀와는 다르게
너무나 얌전했기 때문이다.
"어디 아프신데라도?"
"없어."
간단하게 말한 루드니아는 언제 갖고 왔는지도 모르는 자신의 애검 멀티엘레멘트스워드를
잡았다.
분명 자신이 가출을 할 때는 이 검을 갖고 온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이것이 자신의 손에
들어왔는지 궁금한 루드웨어였다.
대기실에서 시합장의 복도를 지나던 루드니아는 복면을 쓰고 있는 남자를 볼 수 있었는데,
게리하인은 조용히 루드니아에게 그에 대해 말해 주었다.
"이번 시합에 준결승까지 진출한 핫도리 한조라는 사내입니다. 준준결승에서 성기사 로드아
이언을 꺽은 남자이지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루드니아는 그의 곁을 지나쳤는데, 그 순간 어디서 많이
느껴봤던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루드니아는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좀 처럼 생각이 나지 않는지라 그
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
"어이!"
루드니아의 목소리에 핫도리 한조는 흠찟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뒤로 돌아서서는 낮은
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시오."
"혹시 당신 언젠가 나 본적이 없어?"
"글쌔요. 시합장 이외에선 본적이 없군요."
"그래? 그럼 내가 잘못 봤나 보지."
그녀는 핫도리 한조의 말에 자신이 잘못 느꼈다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돌리고 다시 시합장으
로 걸어갔는데 그 순간 뒤에서 휴 하며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저 놈 봐라? 날 알긴 아나본데?'
오랜 세월동안 이제 연륜도 생겼는지. 핫도리 한조의 한숨을 잽싸게 판단한 루드니아였다.
하지만 확실히 그가 누구인지 모르기에 모르는 척하고 지나갈 수 밖에 없었다.
한편 핫도리 한조, 아니 레그르토는 어머니의 말에 가슴이 섬찟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휴! 들키는 줄 알았네. 그나저나 이상하군, 어머니의 기도가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그것도
아주 섬찟하게 말이야..혹시..'
레그르토는 혹시 어머니가 기억을 되찾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것이 사
실이라면 준결승에서 레비나와 싸우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였다.
소드오버러의 레비나와 싸우면서 어머니도 알고 있는 세가지 기술을 썼다가는 자신의 정체
가 들킬 것은 당연한 일이였기 때문이다.
시합장으로 루드니아가 들어서자 그녀의 친위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이 젊은
기사들로 이루어진 이들은 총원 300명으로 성기사대회의 여신을 향하여 각자가 차고 있던
검을 뽑아서는 그녀를 위하여 검을 하늘로 들어올렸고, 루드니아 역시 그들을 보며 자신의
검을 들어올려 답을 해주었다.
루드니아 친위대는 이제 그녀가 한마디만 한다면 죽음을 무릅쓰고 용암속이라도 뛰어들 완
벽한 그녀의 부하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성기사 대회의 여신 루드니아님 만세! 만세!"
"만세! 만세!"
각지에서 몰려든 젊은 전사나 기사들도 친위대의 행동을 보며 자신의 병장기를 하늘로 치솟
아 올리니 이제 성기사대회는 루드니아의 독무대로 바뀌고 말았다.
그들에게 대적할 유일한 상대인 은빛의 기사 소녀 친위대는 은빛의 기사 스베안황태자가 루
드니아에게 패배하여 의기소침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때 한 소녀의 귀를 째는 듯한 비명
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꺄아악!!"
소녀의 비명에 놀란 사람들은 모두 소리가 난 쪽을 지켜 보았는데, 그녀는 덜덜 떨리는 몸
을 겨우 가누며 환상에 잠긴 어린 소녀가 되어 한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다시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는데, 황제는 물론 오성신의
교황마저 경기를 외면한 곳에서 한 소년이 십여명의 기사를 대동한 채 귀빈석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 것이다.
그 순간 다른 소녀 친위대 역시 장내를 무너뜨릴 듯한 기세로 비명을 질렀으니 이 비명의
원인을 제공한 소년은 바로 제국의 황태자 스베안이였다.
순식간에 루드니아 친위대의 기세를 눌러버리고 좌중의 시선을 차지한 스베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향하여 손을 흔들어 주었고, 그 비명은 더욱 더 커져갔다.
"저 녀석은 뭐야!"
자신의 친위대가 소년에 의해 기가 죽자 열 받은 루드니아는 노기가 가득한 눈으로 그를 처
다 보았는데, 소년 역시 귀빈석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루드니아를 노려보고 있었으니 둘의
눈싸움은 심판관이 아니였으면 평생동안 이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심판관의 말이 떨어지자 스베안은 조용히 시선을 외면하고는 귀빈석의 상좌에 앉았고, 경기
장을 소란스럽게 했던 소녀 친위대들도 정숙을 지키며 자리에 앉았다. 요즘에 생긴 강녕중
하나로 소녀 친위대는 스베안 황태자를 사모하는 모든 나라의 소녀들로 이루지며, 반드시
시합의 질서를 비켜 황태자를 사모하는 소녀들이 결코 극성팬이 아님을 보여주자라는 것으
로 완벽한 질서를 지키며 정숙을 하니, 이제 기사의 기사도를 승부를 거는 루드니아 친위대
와 막상막하의 경지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쳇!"
루드니아는 소녀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며 조금 기분이 나빠지긴 했지만, 일단은 시합을 치
루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을 안정시키고 자신의 상대를 처다보았다.
로크라는 전사는 한눈에 봐도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낡은 가죽메일에 더 낡은 검을 지니며
조금 긴장한 얼굴로 서 있는 그의 모습은 한 눈에 봐도 촌티가 작작 흐르고 있었으니. 세렌
된 스베안과 루드니아에 비해선 한참 모자른 자라고 할 수 있었다.
[징!!]
드디어 시합이 시작되고 두 선수는 각자의 위치에서 병장기를 고쳐 잡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조금 차이가 났는데, 귀찮은 듯 여유를 부리며 검을 잡는 루드니
아에 비해서 로크는 진지한 표정으로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보며 루드니아는 도발하는 듯이 손가락을 들어서는 그에게 덤비라는 표시를 취했
다.
"음..."
그 모습에 조금 약이 오른 로크였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루드니아라는 여자가 강자라
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루드니아에게 다가선 로크는 그녀와의 거리가 열발자국정도로 가까
워지자 갑자기 스피드를 올려서는 그녀의 복부에 검을 찔러갔다.
"흥!"
루드니아는 그의 세도하는 모습을 보며 우습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고는 살짝 왼발을 뒤로
돌려서는 한 손으로 그를 향하여 거검을 수직으로 휘둘렀다.
"찻!!"
역시 준결승에 오른 만큼 그 정도의 검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로크는 살짝 옆으로 거검
의 강타를 피하고는 검에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오호 꼴에 마나도 쓸 줄 아는군."
그의 모습을 보며 루드니아는 자신도 다원소의 마나를 검에 집중시켰고, 검에서는 무지개빛
의 검광이 일기 시작했다.
"헉!!"
대기실 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레그르토는 가슴이 철렁함을 느꼈다. 루드니아가
보여준 다원소의 마나는 이전이 보여준 것과는 달리 완벽하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기억을 되찾았단 말인가...젠장!"
위기감에 빠져 들 수 밖에 없는 레그르토였다.
한편 시합장은 루드니아가 검에 집중한 무지개빛의 검기가 가득차 환상적이 나이트의 모습
으로 변해 있었으니 음악만 있었으며 춤추는 사람도 있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음악이 없어 댄스걸의 모습을 볼 수 없었기에, 시합은 계속 진행되었다.
검에 마나를 집중한 로크는 그녀를 향하여 검기를 날리기 시작했다. 푸른색의 검기는 빠르
게 루드니아의 다리와 복부 3군데를 향해 날아갔고, 그 것을 보며 루드니아는 가볍게 자신
의 거검을 방패삼아 검기를 막으려고 했는데, 그 때 로크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보였다.
'뭐지?'
그 순간 안 좋은 기분이 든 루드니아는 그가 날린 검기에 시선을 집중했는데, 그녀의 거검
에 막히는 코스로 날아오던 그의 검기는 갑자기 엉뚱하게 방향이 바뀌더니 검을 피해 그녀
의 어깨와 머리를 향해 날아온 것이다.
"꺅!!"
검기란 것은 일단 검에 마나를 집중하여 그것을 발산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검기는 중간에
방향을 바꿀 수 없는 것이 보통인데 로크의 검기는 방향을 바꾸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루드니아를 공격했고, 갑작스런 변화에 머리로 날아로는 검기는 막았지만, 양어깨로 날아오
는 검기는 막지 못하고 강타당하여 비명소리와 함께 루드니아는 땅으로 자빠지고 말았다.
"루드니아님!!"
루드니아 친위대는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놀라 그녀의 이름을 절규와 비슷하게 울
부짖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로크는 자신의 검기가 정확히 루드니아의 어깨에 맞았기 때문에 검을 잡을 수 없다 생각하
며 승리의 웃음을 흘렸는데, 그때 천천히 루드니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로크는 양 어깨에 엄청난 피를 흘리며 일어서는 루드니아를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저 정도의 상처를 입으면 팔에 힘조차 없을텐데, 그녀는 검을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
이다.
"이 자식 죽여버리겠어!!"
자리에서 일어난 루드니아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고, 로크를 향하여 분노의 외침
을 한 순간 엄청난 마나력이 분출되면서 시합장에 마나의 돌풍을 만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