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마법사-94화 (94/247)
  • 드래곤의 마법사 2부 -40-

    로노와르의 레어에서 간만에 즐거운 휴가를 보내고 있었던 레그르토는 조금씩 따분해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수석궁정마법사로 고된 일을 처리하던 그에게 잠깐의 휴식은 꿀맛 같았지만, 조금

    시간이 흐르자 다시 밖으로 나가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젠장!! 일을 그렇게 처리하고 나왔으니, 제국황궁에서 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고, 뭐 재

    밌는 일이라고 없을까?"

    한참동안 따분함을 쫓을 이벤트를 생각하고 있던 레그르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엇인가를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제국의 정기적인 축제와 같은 행사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기사대회!! 하하하하 그게 있었군, 오랜만에 바깥바람이나 쌔볼까. 알파식스야!!"

    "부르셨습니까."

    레그르토가 부르자 로노와르의 레어를 지키는 고렘 알파식스가 낮은 저음의 목소리로 대답

    하며, 그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 나갈테니까. 집 잘지키고 있어."

    "예."

    "후후후. 아! 그전에 보석이라도 몇 개 갖고 나가야지, 간만에 호화여행이나 해야겠당."

    알파식스에게 명령해 보물창고에서 보석을 갖고 오게 한 레그르토는 보석을 받자 마자 주문

    을 외워서는 제국의 황도로 텔레포트했다.

    이 시간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 예상했던데로 황궁에서 자신이 쓰고 있던 실험실은 텅 비

    어 있었는데, 다른 수석마법사가 쓰고 있을터인데도 이상하게 실험실은 자신이 떠났을 때와

    똑같이 모양으로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이번 수석궁정마법사는 마법실험도 안하나?"

    이상하게 생각들긴 했지만, 어차피 이곳에 오래 있을 것도 아닌 레그르토 였기에, 후드로 얼

    굴을 깊숙히 가리고 조용히 방문을 열고 방을 나섰는데, 복도 쪽의 방문에 황태자 스베안이

    쓴 벽보가 붙어 있었다.

    [본 실험실은 신성 로아냐드제국의 황태자의 스승이신 레그르토님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

    구결방으로 지정하겠노라. 제국의 황태자 스베안 백]

    자신을 잘 따르던 스베안이 자신을 잊지 못하고, 황궁의 실험실을 영구결방으로까지 만든

    것을 보며 레그르토는 눈물이 날 지경이였다.

    잘 가르친 제자 하나 열 자식 안 부럽다는 고대마법사들의 명언이 가슴 깊이 새겨지는 순간

    이였다.

    "과연 내 제자로다. 부모 복은 없어도 제자 복은 있구나..."

    오자마자 가슴 벅찰 정도의 감동을 받은 레그르토는 조용히 실험실 복도를 지나 밖으로 빠

    져나갔다.

    성기사대회 때문인지 황궁에는 당직 기사들과 시녀, 시종들 외에는 다른 이의 모습은 보이

    지 않았다. 아무래도 성기사대회를 관전하기 위해 모두 원형경기장으로 나섰는 듯 했다.

    "으메...한참 됐나보다."

    조심스럽게 기사들과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성을 빠져 나온 레그르토는 플라이마법을 사용

    하여 제국의 원형경기장으로 날아갔다.

    뚜껑이 없는 원형경기장은 이미 많은 관중으로 꽉 차여 있었다. 지금 경기장 문으로 들어가

    면, 좌석표가 없을 것은 뻔한 일이였기에 레그르토는 무임으로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조심

    스럽게 경기장의 최외곽의 벽위에 앉아 시합을 지켜 보았다.

    10여미터 밑에서 팝콘 판매원이 돌아다니며 팝콘을 파는 것을 본 그는 염동력으로 두세봉지

    를 끌어와서는 자신의 옆에 놓고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이글아이!!"

    먼 곳을 볼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하여 레그르토는 어떤 시합이 벌어질 까라는 기대감으로 시

    합장을 지켜보았다.

    시합장에선 블로드소드를 들고 있는 전사 한명과 패션센스도 없이 성기사대회에서 검은 로

    브를 입고 후드까지 눌러써 악당 마법사라는 것을 티내는 자가 싸우고 서로를 보며 대치하

    고 있었다.

    "호오!!"

    시합이 시작되자 대거를 들고 있던 후드의 마법사가 전사의 블로드소드를 검 끝으로 막는

    것을 보며 패션센스와는 달리 꽤 실력 있는 자라는 것을 알고는 탄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얼마 후 레그르토의 그 탄성은 경악으로 바뀌고 말았으니, 그 자의 손에서 뻗어 나

    오는 백색의 섬광이 상대 전사를 일격에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던 레그르토는 경악감에 중심을 잃고 수십미터의 바닥으로 떨어질 뻔했지만, 간신

    히 중심을 잡아 죽음은 면할 수 있었는데, 아직도 그 충격은 벗어나지 않았다.

    "아...아버지?!"

    분명 자신이 본 것이 맞다면, 그 기술은 아버지가 동방의 먼 대륙에서 익혔다는 섬광비도술

    이 기술은 한 노인에게서 직전으로 전수 받았다고 들었으니 섬광비도술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대륙에 단 세 명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직전인 자신인 것이다.

    분명 악취 마법을 사용하여 미쓰릴 갑옷을 왠만해서는 벗지 못하게 만든 어머니는 제하고

    자신 역시 시합을 구경하고 있으니 남은 것은 아버지뿐이였던 것이다.

    "확인 작업이다!!"

    레그르토는 만약의 경우를 위해 아버지가 확실한 지 확인하기 위해 재빠르게 밑으로 내려가

    서는 선수 대기실로 걸어가는 아버지의 뒤를 쫓았다.

    대기실 안으로 들어간 레그르토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보며 심장

    이 이탈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부부싸움 심각하나 보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루드웨어가 루드니아를 향해 검을 찔렀고, 루드니아 방어

    도 못하고 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다행히 옆에 있던 한 드워프가 그 공격을 해소하고는 아

    버지에게 무엇인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것을 본 레그르토는 드디어 파경의 시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려고 하다니, 그건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모든 여자에

    게 친절한 아버지였는데란 생각을 하며 입맛이 쓸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런 행동 때문에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기에, 레그르토로선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 앞에 나서지 못하는 그였기에 멀리서 안타깝게

    지켜 볼 수밖에 없었으니, 이것이 불행한 가정이라는 것을 느끼는 그였다.

    하지만 부부문제란 것이 조금 미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였기에 제삼자가 끼어들었다가

    는 더 큰일이 벌어질 수 있다 생각하고는 조용히 후드를 뒤집어쓰고 어머니의 곁을 지나 아

    버지를 따라갔다.

    "으헝헝헝.."

    아버지의 울음소리였다. 레그로토는 역시 엄마에게 손찌검을 하고 마음이 편할 아버지가 아

    니였다는 생각을 하고 중얼거렸다.

    '불쌍한 아버지....'

    루드웨어의 부하인 듯 한 자가 앞을 지키고 있었기에, 레그르토는 더 이상 나서지 못하고

    벽 뒤에 숨어서 서글픈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했다. 아버지가 부부싸움 중에 손찌검을 했다고 울 사람이 아니였기 때문

    이다. 뭐 공중파 마법 드라마의 슬픈 장면을 보면서도 눈물을 찔끔거리기는 하지만, 지금 듣

    는 울음소리는 엄청 서글퍼서 울고 있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도데체 엄마가 뭐라고 했길레 저러시지..?'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내 그 이유가 떠올랐다.

    '맞다!! 엄마 지금 기억상실증 상태잖아. 저렇게 서글프게 우는 걸 보니 엄마가 아빨 모른

    채 했다고 생각해서 울고 있겠지? 손찌검도 모른 척하니까 홧김에 한 것일테고...아! 아빠가

    울만도 하군.'

    최초의 기억상실증 드래곤이란 것을 짐작하지 못한 아버지가 불쌍하게 보여, 어머니의 상태

    를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이 파렴치한 충격요법을 어머니에게 썼다는 것을 들

    킬 염려가 있었기에 발이 앞으로 나서지 않는 그였다.

    대륙에서 둘도 없는 강력한 존재인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죽도록 당할 것은 뻔한 일이였기

    때문이다.

    "에잇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데 어떻게든 되겠지...미안해요 빠빠.."

    눈물을 흘리며 외면하던 레그르토는 비련의 주인공의 슬로우비디오 뜀박질을 흉내내며 경기

    장을 빠져나갔다.

    거리는 신성기사대회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경기장밖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 공중파 마법 비젼을 보며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관전하며 소란스럽기

    그지 없었기에, 레그르토는 간신히 인파들 사이를 헤치며, 고급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있었

    다.

    '아주 비싼 레스토랑'이란 이름의 이 식당은 정말 가격이 비싸기로 유명했지만, 그 음식 맛

    이 훌륭했기 때문에 레그르토는 공금을 사용하여 손님을 접대할 때는 반드시 이 레스토랑에

    들려서 식사를 해결하곤 했다.

    그 탓에 대외접대업무는 세달도 가지 못하고 짤리기는 했지만, 그 덕에 황태자의 눈에 띄여,

    승승장구 순식간에 수석마법사까지 올랐던 레그르토였다.

    수석궁정마법사가 된 후에도 제자인 스베안황태자의 주머니를 이용하여 가끔씩 들리던 레스

    토랑인데, 주머니에 있던 보석이 어머니의 것 이였기에, 눈치 보여서 못 먹었던 것을 마음껏

    먹어보자는 심산으로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이 비싼 레스토랑도 날이 날인만큼 사람들이 꽉꽉 매여져 있었다. 입구에 들어선 레

    그르토를 보며 깨끗하게 빼 입은 중년 지배인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자리 없는기야?"

    "예약은?"

    "예약? 음...이게 예약 아니야?"

    레그르토는 예약을 했느냐는 물음에 살짝 그의 손에 금화를 하나 쥐어주었고, 금화를 받은

    지배인은 살짝 레그르토가 쥐어준 금화의 액수를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저의 레스토랑에서 예약을 잘못 처리한 모양이군요. 그나저나 자리가 없는데, 합석이라

    도 하시겠습니까?"

    "음..어쩔 수 없지..근데 말이야..부킹은..."

    부킹이란 이야기를 하며 레그르토는 다시 금화하나를 지배인에게 더 쥐어주었는데, 지배인

    의 얼굴은 금화를 받은 순간 생각이 났다는 듯 머리를 손가락으로 몇 번 치고는 말했다.

    "아! 이제야 생각이 나는군요 마침 혼자 계신 미녀 분이 있는데 그 쪽으로 가시겠습니까?"

    "당신 정말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지배인이야. 자주 들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레스토랑의 왼쪽 창문 쪽에 위치해 있는 곳이였는데, 그

    곳에선 우아한 손놀림으로 스테이크를 칼질하고 있는 미녀가 있었다.

    갈색의 긴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인은 푸른색의 레이스가 아름다운 여성용 여행복 차림을 하

    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성기사대회를 관전하기 위해 온 여행자인듯 보였다.

    생각 외로 상당한 미녀가 자리에 앉아 있자. 레그르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지배인은 미녀손님에게 다가가서는 정중하게 말했다.

    "손님. 저희 식당에서 약간의 실수를 예약손님의 자리가 없는데, 잠시 양해를 구할 수 있겠

    습니까?"

    지배인의 말에 여인은 살짝 끄덕이며, 합석을 허락했고, 레그르토는 그 순간 얼굴 가득히 미

    소를 지을 수 있었다.

    "고귀하신 분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한 레그르토는 그녀의 앞자리에 앉고는 대외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자리를 함께 한 것도 인연인데 성함을 여쭈어 봐도 될런지요."

    레그르토의 느끼함이 가득한 말을 들은 여인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소개를 했다.

    "레비나 아디스라 합니다."

    "아름다우신 이름이군요. 전 레그르토 아시오스라고 합니다."

    레그르토는 레비나란 이름을 어디서 들어보긴 했다는 생각은 했지만, 지금은 앞에 있는 여

    성을 꼬시는 것이 더욱 급한 일이였기에, 모든 것을 잊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기로 결심했

    다.

    과거 러브즈데거를 가지고 백명의 첩을 두려했던 과거의 자신으로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