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의 마법사 2부 -31-
드미트리 황제는 본선을 통과한 준호와 일행들은 황궁으로 초대했다. 물론 이것은 루드니아
가 드미트리의 멱살을 잡고 조른 덕에 가능한 것이였다.
예선을 힘겹게 통과한 루드니아는 자신과 정신연령이 비슷한 짓을 하고 돌아다닌 실레이드
와 콜리드가 마음에 들었고, 게르하인 역시 준호의 뛰어난 실력에 감동하여 그를 영입하고
싶은 마음에 드미트리의 옆구리를 암암리에 수백번을 찔렀다.
어쨋든 이런 이유로 일행은 황성에서 머물 수 있게 되었고, 예선경기장 근처의 여관에 머물
러 있던 리안나와 멜드리나, 레몬트 역시 합류했다.
지구 대변동의 시기 이후 과거의 유물은 모두 사라진 후였기에, 준호로선 인간이 직접 인력
을 사용하여 만든 성은 언제 보아도 상당히 이채로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성들은 지금에 와서는 장난감성이 아니였을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신성제국 로아냐드의 황성, 그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웅장하에 뒤로 자빠지게 하기
에도 충분할 정도로 엄청났기 때문이다.
"우와!!"
긴 역사를 가지며, 오랜 시간 대륙에 제국으로 군림해 왔던 황성은 수백년이 지났지만, 어디
하나 부서진 흔적이 없었다.
이는 영구마법을 걸어놓은 탓도 있지만, 제국의 역사상 황도로 적이 침범해 온 적은 단 한
차례도 없기에, 수백년 역사의 성을 고스란히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준호의 일행이 마차를 타고 안으로 들어서자 성의 근위병 수십명이 양쪽으로 도열하여 예를
취했다. 한명 한명 흐트러진 자세가 보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성의 근위병이 상당한
훈련을 받은 정예병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상자료에서 보았던, 영국 근위병의 모습도 이들에 비하면 초라하다고 할 정도였다.
준호는 황성의 있는 병사들은 모두 철저한 훈련과 예절을 배워야 하는구나 생각하며, 마차
를 타고 안으로 들어섰는데, 그 생각은 루드니아가 머무르는 궁에 와서는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루드니아는 제국 황성의 구석에 위치한 작은 성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황제의 마차를 타고
궁의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군데 군데 붉은 갑옷을 입고 뒹굴고 있는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
기 때문이다.
"저건..."
"응 저들이 바로 나를 호위하고 있는 레드나이트야."
충격이였다. 엄청난 무게의 검을 휘두르는 루드니아에게 검술을 가르친 사람이 현 레드나이
트의 단장 게르하인이라는 것을 듣고 준호는 조금 레드나이트들이 궁금했었다.
일개 성의 근위병들의 모습을 보며, 막연하게 레드나이트들은 이들보다 더 멋있겠지라고생
각했는데, 지금 보는 그들의 모습은 뭐랄까 한마디로 동네 날건달 같았다.
멀리 보이는 수십종류의 꽃이 만발한 정원의 한편에선 두명의 기사가 낮잠을 자고 있고, 성
문의 입구에선 낮술 먹고 토하는 기사가 있는가 하면, 한 쪽에선 주먹다짐에 또 한쪽에선
응원을 하고있으니, 이것이 어찌 오랜 역사를 가진 로아냐드제국의 기사단이라 할 수 있겠
는가? 눈물이 앞을 가리고 있었다.
게르하인 역시 이 장면에 조금 얼굴이 벌개지는 것이 찔리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평범한 축에 속하는 준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은 전
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루드니아는 본선에 통과했다는 것을 빨리 자랑을 하고 싶었던지, 마차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보이는 기사나 시종, 시녀에게 자랑을 해대기 시작했고, 실레이드는 시녀들의 모습을
보며 침을 뚝뚝, 콜리드는 멀리서 주먹다짐을 하는 기사들을 승부에 돈이라도 걸 듯이 옆구
리에서 금화를 꺼내 들고 있었다.
"휴..."
한 숨 밖에 나오지 않는 준호였다. 어느새 궁의 입구에 마차가 도착하자 루드니아는 여염집
규수는 절대로 흉내내면 안 되는 마차에서 펄쩍 뛰어내리기를 감행하며 문을 열어주던 시종
을 난감하게 만들었고, 드미트리는 급하게 루드니아가 다치지 않을까 뛰어내려갔다.
"루드니아..그런 장난은 하지 말라고."
"왜?"
이렇게 되물으니 할말이 없는 드미트리였다. 처음에는 조금 얌전한 듯 했지만, 요즘 들어와
점점 이상해지는 루드니아였다. 도대체 레그르토와의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성스러울 것 같은 미모를 지닌 루드니아의 방정맞은 행동을 보며 새삼 가정교육의 중요함을
깨달은 드미트리였다.
옆에 있는 시종장의 얼굴을 확인한 드미트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짐은 오늘 저녁을 루드니와 함께 이곳 할 예정이니 준비하도록."
"예. 폐하."
황제의 말을 들으며 오늘 저녁은 거나하게 먹을 수 있다는 데에 감동받는 준호였다. 시종들
의 안내를 받고 궁안으로 들어간 일행은 각자 방을 안내 받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루드니아
가 거처하고 있는 성의 방은 남아돌고 있었기에, 일행들이 각자 개인룸을 써도 부족하지 않
았는데, 이상하게 리안나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준호의 방에 와서는 침대에 앉아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리안나 도대체 뭐가 그렇게 화난건데.."
리안나를 좋아하는 준호로서는 심통을 부리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서 온갖 짓을 다해보았지
만, 그 이유를 알 수 없느지라 힘 없는 목소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십분을 준호가 빌자 그제서야 조금 마음이 풀리는지 리안나는 준호의 품에 안기고
는 조용히 말했다.
"준호가 루드니아란 여자만 보고 나는 안봐주니까 그렇잖아.."
"거참 그것가지고 삐진 거야?"
"....."
자신의 말에 리안나는 더 삐진 것처럼 손으로 밀어 버리고는 밖으로 나가려하자, 다급한 준
호는 급하게 리안나의 손목을 잡으며 빌 수 밖에 없었다.
"리안나 내가 잘못했어. 한번만 용서해달라구."
"왜그래. 난 안삐졌어."
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삐졌다. 자신의 손목을 뿌리치며 나가려고 하는 리안나를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안은 준호는 조용히 말했다.
"아무리 그 여자가 리안나보다 이쁘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리안나뿐이야."
신관주제에 시집도 못가면서 뭇남자를 희롱하는 리안나는 신의 벌을 받을 것이 분명했지만,
지금은 준호의 사랑한다는 소리에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 어떻해 아무래도 사랑에 빠진 것 같아...'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는 리안나였다. 아버지인 실레이드에 의해 의도적으로 접근하긴 했
지만,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준호에게 사랑에 바진 리안나였다.
드래고니안으로 태어나 헤즐링같은 사랑을 받지 못한 리안나는 신전으로 들어간 후, 바람둥
이 아버지를 욕하며 꾿꾿이 살아왔기에, 지금까지 연인의 사랑이란 것은 한번도 접해 본적
이 없었던 것이다.
준호는 조용히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리안나의 얼굴을 보며 조용히 입을 맞추어나갔다. 하
지만 원래 이런 류의 이야기에선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으니....
"준호야 밥먹자!! 응? 얼씨구!!"
실레이드였다. 어느새 희황찬란한 옷으로 갈아입은 실레이드는 준호와 함께 돌아다니며 시
녀를 꼬시려고 찾아 온건데, 예상치도 않은 장면을 보게 된 것이다.
"헉!!"
"어머.."
키스장면을 들킨 두 연인은 얼굴이 벌개지며, 고개가 숙여졌는데 실레이드는 잠시 이 두 사
람을 지긋이 처다 본 후 한 숨을 쉬고는 조용히 문을 닫으며 말했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하나 부탁하네 사위..."
"...."
뭐라 할말이 없는 준호였다. 준호의 문을 닫고 나간 실레이드는 이제 지참금으로 우주선이
라도 받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즐겁게 성의 복도를 투스탭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한 참을 생각하자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이렇게 외롭게 살고 있는데, 둘은 썸띵이 나서 희희낙락하고 있는데 어찌 실레이드
의 성격으로 배가 아프지 않겠는가?
실레이드가 복도에서 이렇게 배 아파하며 쪼그려 앉아 있을 때 그의 친구이자 영원한 적인
콜리드는 복도를 막고 있는 실레이드의 뒷통수를 밟으며 말했다.
"뒷통수 조심해라."
콜리드는 그의 뒷통수를 밟으며 희열을 느끼면서, 이어질 실레이드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었
는데, 이상하게도 실레이드가 그 자세에서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자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
었다.
쪼그려 앉아 있는 그의 앞에 가서 똑같은 자세를 취한 콜리드의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는
데, 무슨 생각인지 혼자 열 불내고 있었기에 검지손가락을 들어 그의 이마를 눌러 고개를
들러올렸다.
"뭐야."
"어라..이제 정신이 드나보네. 도대체 뭔 생각을 그렇게 하는거야?"
"몰라도 돼 너 같은 멍청한 오크가 이 지성체 드래곤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냐."
"등신!!"
그 말에 조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다 사라진 콜리드는 러시안민속춤으로 그의 이마를 발
로 삼연타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네 녀석을 보아하니 누가 좋은 걸 가져서 배가 아픈 표정이라서 이 몸이 상담 좀 해주려고
했더니..거참..계속 고민하고 있어라."
콜리드는 못 볼 것 봤다는 식으로 말하며 가던 길을 걸아갔는데, 당한 후에야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지 실레이드가 급하게 뛰어와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그게 말이지...중얼중얼중얼.."
예상치도 않게 모든 이야기를 쏟아붇는 실레이드를 보며 조금 황당할 수 밖에 없는 콜리드
였지만, 그래도 셀 수 없는 시간을 같이 보낸 처지라. 카운셀러를 해주기로 결심했다. 하지
만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콜리드는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이상해지더라고, 둘이 사랑에 빠진 것 같아서 배아파서 그런가?"
"휴..."
콜리드는 실레이드가 왜 배아파하고 있는지 어느정도 알 수 있었다.
"실레이드 그건 말이야...모든 세상의 아버지가 다 그렇다고."
"엥? 그건 또 무슨소리?"
"아무리 막대하고 키운 딸이라고해도, 수십년을 키운 딸인데 어떤 남정네가 와서 턱하니 집
어가는데 좋아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냐? 네 녀석은 그 딸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지금 화가
난거라고."
그의 말을 들으며 실레이드는 다시 생각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자신도 아버지였던가? 드
래고니안으로 태어난 딸을 키운 것은 어찌보면 자신이였다. 신의 검으로 폴리모프하며 틈틈
히 바람을 피던 실레이드는 어느날 드래고니안으로 자신의 딸이 태어나자 황당함을 느꼈다.
이상한 모습으로 태어난 리안나는 인간이 어머니에게서 버림을 받고 얼마나 울었던가? 그녀
를 다독여주며 일곱 살까지 키우다가 신전에 맡긴 그는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일년에 한번
씩은 꼭 리안나를 만나 주었다. 물론 리안나는 그 일년에 한번인 만남이 상당한 고역인 것
처럼 느껴졌지만 말이다.
게을러 터져 먹기로 유명한 드래곤이 일년에 한번 씩이나 찾아가며 애지중지한 딸 리안나,
그것이 준호에게 넘어가니 부정에 터져나온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실레이드는 그래도 친구인 콜리드에게
물어 볼 수 밖에 없었다.
"어떻하지?"
"어떻하긴 뭘 어떻해. 세상 아버지가 딸이 아깝다고 시집 안 보내는 것 봤냐? 담담히 지켜
보라고 담담히. 참나 세상 살다보니 별 꼴을 다보는군."
콜리드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실레이드의 부정을 보며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맨
날 앙숙으로 지내며, 천하의 바람둥이인 그에게 이제 철이 들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조금은
도와주어야 겠다는 결심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