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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마법사-73화 (73/247)
  • 드래곤의 마법사 2부 -18-

    왕위를 둘러싼 두 왕자의 치열한 내전이 한창인 그로인왕국은 마치 천고의 원수들이라도 만

    났는양 싸우고 있었다.

    남부와 북부로 나뉘어진 이 두 세력의 수장은 각각 2왕자 리데스와 3왕자 카트러스로 왕이

    왕병으로 사경을 헤메고 있는 이때에 왕위를 쟁취하려 하려 휘하의 귀족군들과 힘을 합쳐

    싸우고 있었는데, 이상한 일은 정작 왕위 제 일 계승자인 제 1 왕자 그리드는 남의 일인양

    방관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리드가 거느린 세력은 전무하며 영지라고 해봤자 서쪽의 작은 땅이 전부이기는 하지

    만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이 두 왕자에 속하지 않은 중립의 세력을 흡수 할 수 있었음

    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 1 왕자가 천하가 알아주는 바보라면 모를까?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라 불려왔던 그가 왜

    두 왕자의 왕위 다툼을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마 당사자인 그리드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드 왕자의 서쪽 영지, 영지라고 해봤자 영지에 사는 이는 태어날 아이까지 합쳐봐야 천

    명이 넘지 않을뿐더러, 왕국의 제 일 왕자가 거처하고 있는 성은 30명의 병사와 7명의 기사

    외에는 싸울 군대조차 없는 아니 들어갈 공간조차 없는 협소한 성이였다.

    이 협소한 성에서 볼만한 것이라고는 1000년이란 기나긴 시간동안 그 자리를 지킨 거대한

    잣나무 한그루 뿐이였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더 초라한 성이라고 느끼게 했다. 생각해

    보라 자그마한 성에 성보다 높은 잣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면 어떤 모양새로 보이겠는가?

    몇몇의 영주민이 이 모양새가 괴이하여 몇번이나 잣나무를 베자고 상소를 올렸었지만, 이상

    하게도 1왕자 그리드는 잣나무를 베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한 낮의 시간, 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달구고 있는 이 시간 갈색머리의 젊은 청년 한

    사람이 잣나무 아래에 앉아 류트를 켜고 있었다.

    내노라하는 음유시인의 솜씨보다 더 뛰어날 듯한 그의 류트의 소리는 그리 크지 않으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게 성내에 잔잔하게 울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청년의 류트소리를 들으며

    작은 상상의 나래로 빠져 들고 있었다.

    "그리드..."

    언제 끊어질까 두려울 정도의 여린 목소리가 젊은 청년의 주위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청년

    의 주변에는 사람의 형상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도데체 이 목소리는 어디서 들려

    오고 있는 것일까?

    그리드라 불리는 청년은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라도 하는 것 처럼 미소지으며

    류트를 켜는 것을 멈추고는 말했다.

    "아무도 없구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렴?"

    독백인양 중얼거리는 청년의 부탁, 그 부탁의 말이 끝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청년이 등

    을 대고 있는 잣나무의 한 부분에서 손바닥만한 연녹색의 빛의 구슬이 생겨나더니, 청년의

    어깨위로 날아오는 것이였다.

    청년은 빛의 구슬이 자신의 어깨에 올라오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키스를 해주지 않으렴?"

    그 순간 구슬의 빛은 점점 약해지더니 구슬 안에 있던 것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것은 손바

    닥만한 키의 작은 요정이였다. 요정은 투명빛의 날개를 등 뒤로 가지란히 놓고는, 청년의 볼

    에 작은 입술을 맞추었다.

    작은 키의 연녹색 머리칼, 앙증맞은 코의 귀여운 용정은 청년의 볼에 키스를 하고는 부끄러

    운지 날개를 작게 떨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고, 그 모습을 보며 청년은 다시금 미소를 짓

    고는 오른 손을 요정이 있는 어깨에 대고는 손바닥을 폈다.

    청년이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지 요정은 청년의 손바닥위로 올라갔고, 청년은 자

    신의 눈 앞에 손을 가져가며 요정의 모습을 처다 보았다.

    "나의 작고, 귀여운 아르키아네스."

    "사랑하는 나의 그리드."

    그 둘은 서로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봐라보며 사랑의 언어를 주고 받았다. 아르키아네스는

    손바닥 위로 날아 올라와 그리드의 입에 키스를 했다. 요정의 크기로 보아 한입거리였기에

    어떻게 보면 참으로 어색하게 보이는 장면이였지만, 둘은 상당히 만족해하는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나의 사랑 아르키아네스, 당신을 만난 것은 나의 가장 큰 행복인 것을 아는가?"

    "저 역시 당신을 만난 것이 가장 큰 행복이랍니다."

    닭살이 돋을 정도의 언사를 거리낌 없이 뱉는 두 인물이였다. 갈색머리의 청년 그리드, 그는

    알고 있다 시피 그로인 왕국의 제 1 왕자이다. 그가 왕위 계승을 거부하고 한적한 시골에

    머무르는 이유는 바로 잣나무 요정 아르키아네스 때문이였다.

    그리드가 아르키아네스를 처음 만나 것은 7살 때, 왕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있던 그리드는 작

    은 영지를 선물로 받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이 영지다. 영지에 처음 들어선 그리드는 성

    보다 더 큰 잣나무에 이끌려 이곳으로 왔는데 그 때 거미줄에 걸린 아르키아네스를 보게 된

    것이다.

    요정을 처음 본 그리드는 아르키아네스를 구해 준 후 작은 새장에 가두어 놓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름시름 앓고 있는 그녀를 보며 후회하고는 다시 잣나무가 있는 곳에 놓아주

    었다.

    그 뒤로 자주 잣나무 근처에 찾아 온 그리드와 요정 아르키아네스는 금새 친해져고, 그 후

    로 20년이 지난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르키아네스. 너와 결혼한지도 벌써 5년이 지났구나."

    결혼? 공식석상에서 그리드는 미혼의 왕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놀랍게도 그는 요정인 아르

    키아네스와 결혼을 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둘만의 언약일 뿐이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

    람은 그리드의 유모 멜드리나 뿐이였다.

    "사랑해요."

    아르키아네스는 그리드의 류트위에 앉아 그의 모습을 처다 보았고, 그리드는 조용히 류트를

    켜며 노래하시 시작했다.

    사랑에 빠져있는 청년 그리드의 노래는 또 다시 성내를 잔잔히 울려갔다. 하지만 이 두사람

    의 사랑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사랑하는 두 연인의 뒤로 한 어두운 그림자가 도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라 웬 요정?"

    "꺄악!!"

    누군가의 큼지막한 손이 그리드가 켜고 있는 류트위에서 고개를 흔들며 음악을 감상하고 있

    는 아르키아네스를 잡아 챈 것이다.

    "아르키아네스!!"

    그녀의 비명에 놀란 그리드가 류트를 켜는 것을 멈추고는 그녀의 이름을 외치며 고개를 돌

    렸다.

    그리드의 앞에 있는 자는 로브를 입고 있는 뻔뻔스럽게 생긴 젊은 마법사였다. 그는 아르키

    아네스를 요리조리 살펴보며 건드려보다 살짝 치마를 들려올리려 하는 파렴치한짓을 벌이려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까지다!! 이 변태!!"

    "윽! 변태!!"

    마법사는 변태란 말에 충격을 받았느지, 얼굴을 일그러 뜨리며 그리드를 처다 보며 말했다.

    "내가 왜 변태라는 거야!!"

    "당연히 변태지 않은가!! 싫다고 반항하는 남의 아내의 치마를 들추는 것이 변태말고 또 누

    가 있단 말이냐!!"

    "아내의 치마? 도데체 여기에 당신의 아내가 어디 있다는 거야?"

    "네 이놈 아내의 갸냘픈 몸을 더러운 손으로 붙잡고 있지 않느냐!!"

    "응? 설마 당신의 아내가?"

    "그래 네 더러운 손에 있는 가련하고 연약한 요정이 바로 내 아내 아르키아네스다!!"

    마법사는 그의 말에 황당한 듯 잠시 얼어 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붙어

    있는 얼음을 부르르 떨며 깨뜨리고는 껄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내 살다보니 요정을 마누라로 삼는 녀석을 다보게 되는군 하하하하!!"

    하지만 자신도 그렇게 웃을 처지가 아니다. 뻔뻔스럽다는 단어에서 나왔듯이 그리드 앞에

    나타난 마법사는 바로 루드웨어, 그 역시 인간이 아닌 드래곤에게 장가든 주제에 어찌 그리

    드를 보고 웃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하면 결혼할 수 있지 도데체 종족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루드웨어의 조롱에 화가 난 그리드는 얼굴이 시뻘개지며 소리치기 시작했는데, 고개를 숙이

    며 웃는 와중에 살짝 그의 얼굴을 처다보고는 웃는 것을 멈추고는 정중히 그의 아내 아르키

    아네스를 돌려 주었다.

    루드웨어의 손에서 벗어난 아르키아네스는 무서웠던지 그리드의 품에 안기고는 한 없이 울

    음을 떠뜨렸고, 그리드는 그녀를 달래주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응시하고 있던 루드웨어는 아내 로노와르의 생각이 났다.

    '젠장 나도 저 녀석처럼만 대해 주었으면 로노와르가 바람피러 나가는 일도 없었을텐데.'

    로노와르의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은 루드웨어는 잠시 하늘을 처다보고 있다가, 기분이 좀

    나아지자 그리드를 보며 말했다.

    "미안하게 됐네. 워낙 오래만에 요정을 보느지라. 조금 학구열이 지나쳤던 것 같네."

    아르키아네스가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아무런 상처도 없이 돌려주는 것을 본 그리드는 고

    개를 저으며 말했다.

    "마법사라면 자연의 진리를 탐구하는 이, 저의 아내인지 모르고 한 행동이니 이쯤에서 용서

    해 드리도록 하지요."

    "고맙네. 음...잣나무의 요정인가?"

    "예."

    "그렇다면 이 잣나무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겠군."

    루드웨어의 말에 그리드는 안타까운듯한 얼굴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잣나무가 그녀의 몸이나 다름이 없으니까요. 안타까운 것은 제가 죽은 후 미관상의 문

    제점으로 잣나무가 잘릴텐데..."

    그리드는 인간과 그 생의 시간이 다른 요정 아르키아네스가 자신이 죽은 후 잘려질 잣나무

    와함께 그 목숨을 다할 것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르

    키아네스는 그런 그리드를 그윽한 눈으로 봐라보며 말했다.

    "바보 그리드. 당신이 없는 세상, 제가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당신의 뒤를 따를 수 있게

    된다면, 저 그것을 더욱 바랄꺼에요."

    "말도 안돼 아르키아네스."

    서로의 생이 다르기에 한 사람은 혼자 남은 이가 자신이 따라 오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한 사람은 먼저 가는 이를 따르려 하는 그 모습을 보며 루드웨어는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

    산신령인 것 처럼 허허허 하며 너털 웃음을 지은 루드웨어는 이 두사람을 보며 말했다.

    "네 너희들의 서로간의 사랑을 어여삐여겨 세가지 선물을 내리도록 하겠느니라."

    그렇게 말한 루드웨어는 자신의 앞에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 있는 잣나무에 오른 손을

    갖다대고는 조용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모든 세상의 기초를 이루는 마나여 그 힘으로~~~나불나불나불..... 폴리모프 아더"

    주문이 끝나자 그 순간 루드웨어의 몇십배의 크기를 자랑하는 잣나무가 찬란한 빛을 뿌리기

    시작했고, 그리드와 아르키아네스는 그 광경을 놀란 얼굴을 하며 지켜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찬란했던 그 빛은 사라졌는데 놀랍게도 엄청난 크기의 잣나무는 그 모습

    이 사라져 버렸다.

    "아!!"

    잣나무가 사라진 것을 본 그리드는 놀라 자신의 손에 있는 아르키아네스의 모습을 찾았다.

    잣나무와 연결되어 있는 요정인 아르키아네스가 잣나무와 함께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걱

    정 때문이였는데, 역시나 아르키아네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드는 사라진 아르키아네스의 모습을 더 이상 찾지 않았는데, 손바닥 만한 크기

    의 아르키아네스는 이제 없고, 자신의 앞에는 인간의 모습을 한 연녹색의 머리칼 소녀가 서

    있었다.

    연녹색 머리칼의 소녀, 그녀의 얼굴은 영락없이 요정이였던 아르키아네스의 모습이였다.

    "아르키아네스!!"

    "그리드!!"

    아르키아네스는 자신의 모습이 변한 것에 놀라 잠시 멍하니 있다. 앞에 서 있는 그리드가

    놀라며 기뻐하는 얼굴을 하는 것을 보며 뛰어 들어가 그의 품에 안겼다.

    요정의 신을 생각하며 하루에 한번씩은 꼭 빌었던 소원, 그리드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모습

    을 지니게 해 달라는 그 소원이 이루어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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