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의 마법사 2부 -12-
"재밌지 않습니까?"
"무엇이 말입니까?"
온통 어둠으로 깔려 있는 방, 그곳에서 누군가가 음침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면
조금 악당 분위기가 날 법도 하겠건만, 새로운 악당의 출현임에도 밝은 핑크빛으로 칠해져
있는 방에서 두 사람이 음침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백발의 노년의 상징을 머리에 이고 있는 노인은 현재 로아냐드제국의 재상직을 맡고 있는
레이아드공작이였고 그의 앞에 있는 은발의 청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외인이였다. 나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였지만 레이아드 공작은 은발의 청년에게 존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신분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청년은 재밌지 않냐는 말에 레이아드공작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며 물었다.
"필요할 때에 딱 좋은 분이 드미트리 황제를 잡아주지 않았습니까."
"아! 루드니아란 여자 말이군요."
"예. 그 정도의 여자라면 충분히 우리의 일을 추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맨피스님이 그렇게 생각하시다면 그렇게 되겠지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로노와르가 그들에게 이용될 것이라는 암묵적인 암
시를 하고 있는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느끼한 웃음을 내뱉고 있었다.
베르드남작,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대륙 제일의 겁쟁이라고 부른다. 그에 따른 일화
를 잠시 이야기하면, 하루는 베르드남작이 황제의 명을 받고 황궁으로 나선적이 있었는데,
황제는 그가 천하가 알아주는 겁쟁이라는 것을 듣고 장난을 쳤다.
바로 살쾡이 한 마리를 황궁의 정문에 매어 놓고 베르드남작이 과연 들어 올 수 있을까 없
을까를 시험해 본 것인데, 황제의 예측되로 베르드남작은 그 날 밤이 되도록 살쾡이가 무서
워 황궁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베르드남작에게 장난을 친 것을 후회했는데, 그 이유는 베르드남작이 꼬박
일주일간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황궁의 정문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살쾡이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 혼절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병사들을 시켜 물리쳐도 그만인 것을 일주일간이나 기다리고 있었던 이유를 황제가 물었을
때 베르드남작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폐하께서 저를 시험하시고자 살쾡이를 황궁의 정문에 놓아둔 것을 알고 있는데, 어찌 그것
을 물리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일로 황제는 베르드의 충성을 의심하지 않으며 그를 중앙의 요직에 임명하였다. 하지만
그를 겁쟁이라고 욕만 할 수는 없었다.
오년전 황제 드미트리가 황태자 신분이였을 때 제 2 황자 슈드라센이 열명의 자객을 시켜
황태자를 암살하려 한 적이 있었다. 황제의 명을 받아 드미트리의 측근으로 일하고 있었던
베르드는 갑작스럽게 난입한 자객들에게 놀라 바지에 오줌을 지릴 정도로 공포에 떨었지만
황태자에게 날아오는 검을 스스로의 몸으로 받아 황태자의 목숨을 구한적이 있었다. 얼마
후 황태자를 구하기 위해 들어온 기사들에 의해 목숨을 보전했던 드미트리는 자신의 목숨을
구한 베르드의 상처를 입고있던 옷을 찟어 직접 지혈해 주며 이런말을 했다고 한다.
"천하의 겁쟁이임은 틀림이 없지만 천하의 충신임도 틀림이 없다."
또 한 신하가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베르드를 시기하여 걸출한 무인과 문인들을 천거하였을
때 드미트리 황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짐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무인과 지혜가 뛰어난 문인이지만 그들 백명과 남작을 바꾸
자 한다면 거절할 것이다."
라고 할 정도로 그는 황제에게 깊은 총애를 받고 있는 자였다. 또 이런 총애를 받음에도 그
는 단 한번도 그를 이용해 권세를 부리지 않았기에 황제는 나라의 큰 일은 모두 베르드남작
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승승장구를 달리던 베르드가 한 여자에 의해 황궁안에서 시달리고 있었으니
그 주범은 바로 로드니아였다.
로드니아의 아름다움에 빠진 수많은 신하들을 보며 한소리 하는 것도 이젠 옛날, 이젠 드미
트리 황제와 로드니아 사이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소문들을 그냥 흘려듣고 있는 실정이다
보니 베르드남작의 가슴을 찟어질 듯 했다.
"아! 어찌 신성 로아냐드제국의 황제폐하가 세인의 구설수에 오르내려야 한단 말인가?"
궁정 복도의 벽에서 비련의 주인공인양 폼을 잡고 있는 그를 보며 시녀들은 이상한 사람 보
듯이 피해갔지만 그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폼을 잡고 있었다.
"어머 베르드남작님 아니세요?"
"음..."
루드니아였다. 하루에 세 번은 빠짐없이 궁중에 나서는 베르드로서는 이 건방지게 아름다운
여자를 하루에 한번은 볼 수 밖에 없는 불운한 운명을 소유하고 있었다.
"루드니아님이시군요. 폐하를 알현하시려 오신겁니까?"
"예. 오늘은 사냥을 하기로 했거든요."
"음..."
황제의 건강은 나라의 건강이란 표어를 외치는 베르드로서는 36살의 건강한 아저씨 황제가
사냥하러 나간다는 것을 막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요즘 들어와 술과 여자에 빠진 것은 아
니더라도 저 놀기 좋아하는 루드니아란 여자 때문에 국정에 소흘한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
제였다.
물론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는 자신에게야 권력이 늘어나는 문제이긴 하지만, 공작의 직위
를 내린다해도 권력에 눈이 어두울까 두려워 거부하는 자신이 권력이 생기는 것을 왜 좋아
하겠는가?
'지금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저 여자가 후궁의 자리에라도 오르는 날이면 큰일이겠군.'
베르드는 그녀를 후원하려는 많은 귀족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선수를 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빠졌다.
최근 정보에 따르면 제국 재상 레이아드공작이 상당양의 선물을 루드니아에게 안겨주고 있
다는 것을 들었기에 시간은 지체할 수는 없었다.
'암살....아니냐..'
루드니아를 암살하기에는 베르드의 가슴이 너무 여렸다. 순진한 60 청춘의 늙은이가 어찌
암살을 주도할 수 있겠는가....
"그럼 전.."
루드니아가 사라지자 베르드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한 숨을 쉬었다. 차마 저 여자를 어떻
게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 고민이였으니 신이 도와주는 듯 루드니아와 맞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남자 중 한명이 그의 뒤에 섰다.
"베르드남작님 뭐하십니까?"
"엉? 아! 레그르토님.."
수석 궁정마법사 레그르토를 본 베르드는 두터운 황궁의 벽을 뚫고 하나의 서광이 비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레그르토라면 추호에 권력욕이 없는 첨렴결백한 마법사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레그르토 역시 베르드가 자신과 같은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한편 루드웨어는 준호가 타고 있는 우주선의 성분을 조사하면서 어느 차원계에서 흘러들어
왔는지를 조사하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는 이 형상기억합금의 소재를 파악하려는 순수한 학구열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
이다.
"무슨 결과라도..."
무슨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가 준호군. 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루드웨어였지만 차마 그런
말은 못하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그 답지 않은 긴장감을 흐르게 하고 있었다.
"전혀 잔존마나가 미약하기 때문에 자네가 떨어져 나온 차원계를 추적하기가 어려워.."
"잔존마나요?"
"각 차원계에는 그 특유의 마나원소배열이 존재한다. 이 마나 원소배열로 차원계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지. 과거 메테오 마법으로 지상으로 떨어진 운석을 조사하던 중 칠인회에서 발
견한 사실이다. 그로서 이 세계만이 아닌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고, 난 그 비
밀을 파악하기 위해 차원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마법을 완성했다. 이 마차의 경우는 이상한
물질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마나의 원소배열이 흐트러져 있다. 흡사 정령계의 피닉스의
원소배열과 같이 말이야."
피닉스는 불사의 새로 알려져 있는 정령계에서도 희귀한 생물로, 절대로 죽지 않고 상처를
입어도 다시 복구되는 피부를 지니고 있다.
물론 이러한 설명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실레이드와 콜리드의 경우에는
헛고리로 치부하며 이 새로운 가설에 코웃음을 치고 있었으니, 그들은 과거의 잔존인물이였
기에 새로운 문물에 대한 반응이 빠르지 않기 때문인가? 아니면 루드웨어의 헛소리를 파악
할 수 있을 만큼의 연륜을 지닌 때문인가?
"어디로 향하는가?"
콜리드의 물음에 준호를 속이는 것이 조금 힘이 들었다는 듯이 입술에 침을 닦으며 말했다.
"일단은 레드드래곤 시크라가 가르쳐준 진리의 거울로 가 볼 생각입니다."
"진리의 거울?"
"예."
처음 듣는 마법아이템에 머리를 갸우뚱거리는 콜리드와 실레이드였다. 이 둘에 의해 시크라
의 가증스러운 음모는 백일하에 들어날 것이다.
"그런데 조금 비좁군요."
네사람이 탔을때도 비좁은 우주선에 이제 루드웨어까지 가세하여 다섯명이 탔으니 아무리
우주선의 에어컨이 좋다고는 하지만 뜨거운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점점 성능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준호는 몸 깊숙히 붙어 있는 리안나에 의해 더욱 더 높은 열을 발생시키고 있었
으니...
"준호씨 갑자기 몸이 뜨거워 졌어요."
"...."
리안나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는 준호였다.
[주인님 체온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슈퍼콤의 말에 준호는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우주선이 커지지 않는 한 몸에서 나는 발
열은 멈추지 않을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리안나는 이성의 열병으로 상승하는 체온을 줄이고자 준호에게 연신 신성마법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어찌 이 열을 막을 수 있겠는가? 실레이드와 콜리드, 루드웨어와 같이 그딴건 다
알고 있는 어른들만이 조금 짐작 할 수 있을 뿐이였다.
"...실레이드..."
"왜?"
"허허 자네 딸 다 컸군!!"
"응?"
"꺄악!!"
[짝!!]
괜히 한 소리했다가 한 대 맞은 콜리드였다. 과연 콜리드와 리안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
었길레 콜리드는 리안나가 다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일까? 의문이였다. 오로지 하나
의 단서라면 우주선은 좁다는 것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