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마법사-28화 (28/247)

28장 용사들의 출발

루드웨어는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마령의 장수인 크렌 장군을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크렌 장군은 루드웨어가 칠인회의 공식적인 총회주이자 자신의 주군이기도 한 루덴스와 동

급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정중하게 경어를 사용하여 물었다.

?로아냐드 제국과의 싸움에서 마령의 비병들이 흑조기사단의 신무기에 대패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 말을 듣자 크렌 장군은 얼굴이 시뻘게졌다. 아무리 주군과 동급의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국가가 전투에서 패배한 소식을 그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 예… 연금술사들이 만든 폭발 성질을 가진 시약과 마법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쇠뇌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한참을 생각하던 루드웨어는 크렌 장군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궁병들의 화살을 한곳에 모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크렌 장군은 루드웨어의 부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의 이야기를 듣고 재밌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쨌든 높으신 양반의 부탁인지라 크렌은 부관을 시켜 궁병들의 활을 한곳에 모으도록 지시

했다.

아직 원정군이 모두 모이지 않아 궁병의 숫자는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반 이상의

군수 물자가 도착한지라 화살의 수는 엄청났다.

루드웨어는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화살의 밭을 잠시 응시하더니 눈을 감고 무엇인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10서클에 달하는 클래스를 지닌 루드웨어가 주문을 20분 정도 외울 정도

였기에 그의 주위에 일어나는 마나 폭풍은 엄청났다.

크렌 장군은 폭풍으로 인하여 날아드는 모래 먼지 덕에 제대로 눈을 뜰 수조차 없었는데,

그 순간 루드웨어는 양손을 앞으로 내밀어 시동어를 내뱉었다.

/?인첸터/ 파이어 브래스트!?

루드웨어의 시동어가 끝남과 동시에 엄청난 마법 기운이 화살의 산을 둘러싸더니 빛을 내뿜

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루드웨어는 한꺼번에 많은 마나를 소비했는지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 되었다. 그때 언제 나

타났는지 모르게 6회주 로우나가 달려와서 그에게 풀마나 포션을 건네주었고, 루드웨어는

다섯 병에 이르는 마나 포션을 마셔 버리고는 어느 정도의 힘을 찾는 듯했다.

?…총회주의 마나량은 도대체 측정이 불가능하군요.?

보통의 마법사, 아니, 로우나라도 지나치게 마법을 과다하게 사용하여 마나 고갈 현상이 왔

을 때는 풀마나 포션 하나면 마나 고갈 현상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풀마나 포

션이라고 마나를 다 채워주는 것은 아니다. 체내의 마나를 어느 정도 이상 유지시켜 줄 뿐,

완전히 마나를 채워주지는 않는데, 그래도 보통 마법사들이 마신다면 대략 30% 정도의 마

나를 채워주어 마나 고갈 현상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루드웨어는 다섯 병이나 마

시고 간신히 마나 고갈 현상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하하, 저도 모르는 마나량을 누가 알겠습니까.?

?…….?

루드웨어가 허리에 손을 얹고 껄껄 웃으면 잘난 척을 하자, 괜히 칭찬했다고 생각하는 로우

나였다. 하지만 루드웨어가 방금 한 것은 충분히 자랑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본래 마법의 무

기라는 것은 질 좋은 금속에 특수 시약 처리를 한 후에야 인첸터 마법을 실행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질적 마나의 반발 작용에 의해 금속에 투입되는 마나는 거의 대부분이 흩

어지게 되는데, 루드웨어는 시약 처리도 하지 않은 수많은 화살에 화염계 속성, 그것도 파이

어 브래스트를 인첸터한 것이다. 로우나가 보는 루드웨어의 실력은 거의 3급 신에 버금갈

정도의 마력이었다.

?방금 그것은……??

크렌 장군이 다가와서 묻자 루드웨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화살에 마법력을 부여했습니다. 이제 궁병이 적을 향해 활을 쏘면 로아냐드 제국군이 비

병에게 사용한 신무기 같은 효험을 볼 것입니다. 다만 화살촉 같은 것이 별로 좋지 않은 질

을 가진 쇠인지라 제가 부여한 총마력의 30% 정도 위력에 그치겠지요. 흑조기사단이 사용

한 신무기에 비하면 상당히 약한 기운일 겁니다만, 어느 정도 도움은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

번 시험해 보도록 할까요??

루드웨어는 병사에게 활을 하나 건네받은 뒤 벌판을 향해 화살을 채우고 당겼다.

?명심해야 할 것은 주문을 외우고 쏴야 된다는 것입니다. 파이어 브래스트!?

루드웨어가 시동어와 함께 활을 쏘자 화살에서 강한 불꽃이 피어 올랐다.

불꽃이 일어남과 동시에 화살이 날아올라 벌판에 떨어지자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피

어 올랐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큰 기운은 아니었다. 파이어 볼트와 파이어

볼의 중간 정도의 폭발로 보이지만 생각 외로 폭발성은 강해서 직경 1미터 정도의 얕은 구

덩이를 만들어낼 정도의 화력이었다.

활을 다시 병사에게 건넨 루드웨어는 크렌 장군을 보며 말을 이었다.

?보통 화살에 비한다면 명중시 상당한 대인 살상력을 지녔기 때문에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

는 데는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마법력은 아마 한 달 정도까지 지속될 테니, 보통 화살과

병행해서 사용하십시오.?

?아, 예.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크렌 장군은 생각지도 못한 힘을 얻게 되자 루드웨어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병사들에게

지시해서 마법이 부여된 화살을 표시하도록 했다.

다음날 소모한 마나의 반 정도를 회복한 루드웨어는 로노와르, 아이샤, 루덴스, 시스 일행들

과 함께 최후의 결전지라고 생각되는 마신의 봉인 지역인 레허드 분지로 향했다.

크샤스가 거느린 오호사의 마법사들이 모두 그곳에 있기 때문에 레허드 분지로 향하는 길에

서 마법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간다는 것을 알리는 것과 같아 일행들은 말을 타고

이동해야 했다.

떠나는 루드웨어 일행을 보고 있던 로우나는 크렌 장군을 보면서 말했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북극의 군대를 교란시켜야겠군요.?

?예. 루덴스님의 일행을 북극의 군대가 방해하게 해서는 안 되니까요.?

크샤스의 음모를 막기 위해 선출된 정예 멤버들. 루드웨어를 포함한 정예 멤버 8인은 크레

이져의 봉인지가 있는 레허드 분지를 향해 말을 몰아갔다.

마을 주변을 제외하고는 각지에 상당수의 마물들이 살고 있는 북극령의 땅이었지만, 당연히

그들의 앞을 막아서며 습격하는 마물들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빠른 시간 안에 분지에 도착해야 하는 일행들로서는 다행한 일이기는 했지만, 또 한편으로

크샤스가 북극령 전역에 있는 마물들을 세뇌하여 자신의 병사로 만들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해 루드웨어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령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수의 마물들이 사는 곳이 바로 북극령이기 때문이다.

?크렌 장군과 로우나 회주가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군.?

루드웨어의 걱정 어린 말을 들으며 루덴스 역시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북극령 원

정에 총사령관을 맡게 된 크렌 장군은 마령이 자랑하는 다섯 명의 명장 중 한 명이라고는

하지만, 2만의 병사들을 가지고 북극령의 모든 마물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조금 무리였다. 아

마 역사상 대륙 최고의 명장이라 불리던 하니발이 온다고 해도 이 상태에선 혀를 내두르며

후퇴를 명령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는 크렌을 믿을 수밖에 없는 루덴스는 생전 처음으로 마신 라스타의

이름을 부르며 간청하는 불유쾌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리자라곤 해도 그 역시 유리마

와 같은 무신론자였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말을 몰아가는 일행들이 삼 일 만에 도착한 곳은 멜라드 시였다.

멜라드 시의 위치를 잠시 설명하자면, 동서로 길게 늘어져 있는 북극령의 대지에는 두 개의

산맥이 존재한다. 서부 쪽에 위치한 로빈 산맥으로, 그 산맥의 긴 계곡으로 이루어진 대로를

넘으면 북극령의 수도인 얼음의 성으로 가는 대로가 나오게 된다. 멜라드 시는 바로 동쪽에

있는 나머지 하나의 산맥인 프리아드 산맥의 입구에 존재하는 도시로 산맥 너머의 벌판을

가로 질러가면 궁극의 마신 크레이져가 봉인되어 있는 레허드 분지가 나온다.

북극령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은 바로 프리아드 산맥의 서부에서 로빈 산맥 너머 수도

인 얼음의 성 사이의 광활한 대지로, 그 외의 땅은 불모지로 존재하고 있다.

일행들이 프리아드 산맥을 넘어 레허드 분지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곳이 바

로 이곳 멜라드 시라고 할 수 있었다.

일행들은 마지막 사람 구경도 할 겸 시내로 들어섰다. 척박한 북극령의 도시인만큼 멜라드

시도 별로 볼 것은 없었다. 하지만 활기 넘치는 도시가 아니라고 해도 이상할 정도로 조용

한 도시였다.

장사를 하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거적을 깔아놓고 동냥하는 사람 등 사람들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도시 자체에는 알 수 없는 기운이 깔려 있어 일행들은 마치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뭔가 이상하군요.?

아이샤는 이 적막함이 불안했다. 도대체 이 도시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뭐, 원래부터 적막함이나 불안감 같은 것에 익숙하지 않은 로노와르는 도시의 사람들이 모

두 벙어리는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가 근처에 있는 사람을 불러봤다.

?여보세요…….?

로노와르가 자신을 부르자 그는 멍하니 고개를 돌리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그는 자신을 부른 로노와르를 멍하게 쳐다만 볼 뿐 아무 말도 하

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세이렌의 노래로 인한 세뇌가 극한에 달해 있는 것 같군. 빨리 막지 않으면 마

령의 군대는 이들과 싸워야 할 것 같아.?

루드웨어가 로노와르가 붙잡고 있는 남자의 머리에 손을 대고는 가볍게 마나를 주입하자,

푸른색의 빛에 휩싸인 남자는 경련을 일으키다 거품을 물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죽었나??

로노와르가 발로 쓰러진 남자를 찔러보자 루드웨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마법으로 세뇌 상태를 해소시켰을 뿐이다. 세이렌의 노래로 인한 마나가 나의 마나

와 충돌했기 때문에 그 충격으로 기절한 것이지.?

?음…….?

일단은 한 사람을 세뇌에서 구하기는 했지만 모든 이들을 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한지라 일

행은 후에 올 칠인회의 마법사들에게 뒷일을 맡기고 길을 재촉하기로 했다.

산맥을 넘을 수 있는 관문은 멜리드 서쪽에 있었다. 프리아드 산맥을 넘는 길은 마물의 길

이라 하여 일반 백성들의 통행을 금지시키고 있었지만, 칠인회에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근

이십 년 사이에 크샤스의 명에 의해 불모의 대지로 향하는 대로가 만들어졌다고 해 일행들

은 대로를 이용하여 불모의 대지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대로로 들어서는 관문엔 북극령의 병사 백여 명이 철통같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

들은 도시에 있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세뇌의 마법에 걸려 있지 않은 듯 평범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짐작컨대 병사들까지 세뇌를 통해 수동적으로 부린다는 것은 크샤스로서

도 조금 무리가 있는 일이기에 세뇌의 마법을 걸지 않은 듯했다.

불모의 대지로 가는 관문을 지키는 병사들치고는 꽤 많은 수가 지키고 있어 일행들은 크샤

스가 자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지시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산맥의 대로로 들어설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군요. 꽤 실력있는

기사들도 십여 명 있는 것 같습니다.?

대로의 관문을 살펴보고 온 시스의 말에 루드웨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테지요. 하지만 십여 명의 기사들로 우리를 막지 못한다는 것은 크샤스로서도 알고

있을 터, 아마 우리가 이곳으로 들어서려 할 때 대로를 봉쇄하라는 지시가 있었을 겁니다.?

?그렇겠군요. 산맥을 넘는 대로에 들어서기 위해선 관문을 지나야 하는데, 산을 뚫어 만든

터널이 관문인만큼 입구만 파괴한다면 대로로 진입할 길은 사라지니까요.?

만약 병사들에 의해 입구가 막힌다면 루드웨어 일행으로선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병사들이 입구를 파괴하는 것은 막아야 했다.

?무슨 수가 없나??

루드웨어는 이들 사이를 조용히 빠져나갈 방법을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음… 아름다운 여신관의 미인계는 어때??

아이샤였다. 루드웨어와 같이 다니면서 아이샤의 정신 상태는 이제 붕괴되어 가고 있는 것

이다. 괜히 사람들을 오염시키는 것 같아 눈물이 나오는 루드웨어였지만 말은 바로해야 한

다고, 조금은 아프겠지만 진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서라, 병사들 구역질 나겠다.?

?…….?

이상하지 않은가? 초반에 나온 아이샤 소개에 미루어 보면 십대 후반의 미녀 신관이라고 나

와 있는데 말이다. 구역질 난다는 그의 말에 어느 사이엔가 그의 눈이 터무니없이 높아져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는 로노와르였다.

?아하!?

루드웨어, 그는 한참을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하나의 계략을 드디어 만들어내고 만 것이다.

멜라드 시의 대로 관문을 지키고 있는 젊은 기사 란테드는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들리는 소

문에 의하면, 과거 자신의 민족을 풍요로운 땅에서 몰아낸 마령의 군대가 북극령에 쳐들어

온다는 소문이 있는데, 자신은 이런 한적한 도시의 관문이나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싸우고 싶다.?

젊은 혈기의 란테드는 마령의 병사들을 하나라도 베어 조상의 원수를 갚고 싶었다. 그렇게

못하는 것이 분할 따름이었지만, 이 관문을 지키는 것은 크샤스 폐하의 어명인지라 빠져나

가지도 못했다.

?누구냐!?

한참을 따분하게 앉아 있던 란테드는 관문의 대기소에 앉아 있다가 관문의 경비병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놀라 밖으로 뛰어나왔다.

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본 란테드는 그 순간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자신의 영원한

주군인 크샤스 폐하가 심한 부상을 입고 몇 명의 사람들에게 부축되어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단 병사들은 크샤스 폐하의 얼굴을 알지 못하지만, 그는 친위 기사단의 한 명이었기에 크

샤스 왕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폐하!!?

란테드는 휘하의 기사들과 함께 놀란 얼굴을 하며 부상을 당한 크샤스 폐하를 향해 뛰어갔

다.

한 명의 여신관과 전사에게 부축받으며 간신히 걸어오고 있는 크샤스는 자신의 앞으로 달려

오는 기사를 보며 간신히 말했다.

?자, 자네는 누군가…….?

?친위 기사단 소속의 기사 란테드라 하옵니다.?

?짐의 친위 기사단이라고… 윽…….?

?폐하!?

크샤스는 아픔 몸을 간신히 버티며 란테드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라, 란테드 경… 짐이… 이곳을 향하던 중 기습을 받아… 경에게 못 볼 것을 보여주는

군…….?

?폐하!!?

크게 부상당한 몸으로도 그런 말을 하는 왕의 모습을 보며 란테드는 눈물이 앞을 가리고 있

었다.

크샤스는 란테드를 보며 다시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기절하

고 말았다. 그것을 보며 옆에 서 있던 여신관이 다급하게 말했다.

?란테드 경이라 하셨습니까??

?예. 신관께서는……??

란테드는 크샤스의 옆에 신관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는지라 이름을 물어보려고 하는데 그

녀는 란테드의 말을 끊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현재 폐하께서는 적 마법사의 기습을 받아 끔찍한 저주를 받은 상태입니다. 해서 빨리 레

허드 분지로 향해야 하니 란테드 경께서는 빨리 관문의 길을 열어주시길 바랍니다.?

?저주!?

저주란 말이 놀란 란테드는 무릎을 꿇고 있던 자세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뒤에 있는 병사들

을 향해 소리쳤다.

?제1경비대는 관문을 열고, 제2경비대는 빨리 시내로 들어가 빠른 마차를 구해오도록 하

라!?

?예!?

란테드는 마법사들이 레허드 분지에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병사들을 독촉하여 일을 진행시

켰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육두마차가 준비되었다.

크샤스와 함께 온 일단의 전사들은 급히 크샤스는 마차에 태웠고, 여신관은 란테드를 보며

말했다.

?폐하를 습격한 마법사의 일행이 나타날 수 있으니 경께서는 관문을 철저하게 방어하도록

하십시오. 위급할 시에는 전에 했던 폐하의 명대로 일을 진행시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세

요.?

?예.?

서슴없이 하대를 하는 여신관을 보며 상당히 높은 직위에 있는 신관일 것이라 짐작한 란테

드는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마차가 관문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란테드는 이제야 공적을 세울 기회가 왔음을 감

사하고 있었다. 폐하의 몸을 상하게 한 악독한 마법사의 일당, 그들만 처리한다면 순탄한 길

이 열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란테드였다.

관문을 지나 대로를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마차 안에서는 통쾌한 웃음이 멈추지 않고 있

었는데, 그들은 바로 루드웨어의 일행이었다.

크샤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 루드웨어는 그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하여 멋지게 관문을 빠져

나온 것이다.

?하하하하하! 란테드? 그 멍청이! 지금쯤 눈을 부라리며 있지도 않은 마법사를 기다리고

있겠지? 하하하!?

?이런 식으로 간다면 빠른 시간 안에 레허드 분지에 도착할 수 있겠군.?

루덴스의 말에 유리마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관문을 안전하게 빠져나온 일행은 크샤스 변장 마법을 사용하면서 이틀이 지난 후 레허드

분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레허드 분지에서부터는 크샤스의 얼굴이 통하지 않는 하급 마물들이 막아서고 있었기에 사

람들은 루드웨어의 지시에 따라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어떡할까??

?…….?

물론 이 순간 모두가 믿었던 루드웨어는 역시나 아무 생각이 없었다. 주연으로서의 능력이

라고는 마법밖에 없는 루드웨어를 밀쳐 내며 다크호스 루덴스가 입을 열었다.

?정면 공격.?

?…….?

생각이 없는 놈이었다.

마물까지 합하면 수만이 넘는 적들을 7서클 마법 봉쇄 지역에서 상대한다는 것은 정말 미친

짓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중에 좀 낫다 싶은 암흑 신관 유리마는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냥 잘 숨어 들어가지 뭐.?

역시나 생각없는 녀석이었다. 뭐 하나하나 훑어봐도 제대로 된 인물이 없다는 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조금 나은 편에 속하는 유리마의 의견에 동의한 일행들은 말 그대로 잘 숨

어 들어가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시 들켰다. 넓은 분지라고는 하지만 크샤스가 이곳으로 데리고 온 마물의 숫자는

수만을 헤아리고 있어 들키지 않고 들어간다는 게 오히려 신기한 일이었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분지 안으로 잠입한 지 십 분도 되지 않아 일행은 큰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으

니, 정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수의 마물들에게 공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크아악!?

정말 엄청난 수였다. 슬라임, 오크, 고블린, 코볼트, 리저드맨 등등…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중하위급 마물들은 분지 안으로 들어선 루드웨어 일행을 덮쳐 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 근처에 있는 마물들만이 공격하고 있기에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었지만, 시간을

지체한다면 더 많은 마물들이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일행들은 빠른 시간 안에 그들을 처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힘을 써 마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헬 파이어(루드웨어)!!?

?플라잉 피스트(아이샤)!!?

?다크 브레이브(루덴스)!!?

?헬 게이트(암흑 신관 유리마)!!?

?엘레스트라(물 최상급 정령)!! 실레스틴(바람 최상급)!! 샐래아나(불 최상급)!! 노에아넨(땅

최상급)!! 히에로스!! 앗!! 내가 미쳤나 봐! 이건 취소(헉! 정신의 정령왕… 어느 누구도 소환

해 보지 못한 정령왕을 부르다니… 히에로스를 부른 소환사는 거의 대부분이 미치거나 광전

사가 되어버렸다고 한다(시안))!!?

?그린 해츨링 브레스((?)로노와르 ㅠㅠ;)!!?

아무튼 자신만의 기술 이름을 외친 녀석들은 로노와르를 제외하고는 엄청난 파워를 자랑하

는 기술로 공격해 들어오는 마물들을 무찔러 갔고, 조금씩 전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철저한 인해 전술을 구사하며 몰려드는 마물을 계속 상대하다가는 마법력 고갈로 쓰

러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기에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마물들을 마법으로 퇴치하던 루드웨어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옆에 있

던 유리마를 보며 말했다.

?유리마! 프로텍션 프롬 파이어(불의 저항 주문)를 8서클 급까지 올려 사람들에게 걸 수

있겠냐??

?지속 시간 10분.?

?좋아. 시스, 크레이드, 나를 보호해라!?

루드웨어는 무슨 생각인지 유리마를 보며 프로텍션 프롬 파이어에 주문을 예약했고, 시스와

크레이드에게 자신의 곁으로 밀려오는 마물들로부터 보호를 부탁하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

다.

언령까지 사용이 가능한 루드웨어가 5분 동안이나 주문을 읊조리며 마법력을 모으는 동안

다른 이들은 쉴 새 없이 밀려오는 마물들에게 조금씩 지쳐 가고 있었는데…….

?파이어 웰×2!!?

주문을 마친 루드웨어가 시동어를 소리치자 두 개의 불의 장벽이 일직선으로 분지 가운데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파이어 웰의 경우 고위 마법사라도 보통은 10미터 정도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

만, 루드웨어가 쓴 파이어 웰은 쉴 새 없이 뻗어 나가는 듯했고, 그것을 보고 있던 유리마는

루드웨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문을 외웠다.

?프로텍션 프롬 파이어!?

유리마의 불 계열 마법 보호 주문이 일행에게 펼쳐지자 루드웨어는 후드를 뒤집어쓰며 소리

쳤다.

?시간없다!?

두 개의 불 장벽 사이로 뛰어가는 루드웨어를 보며 일행들은 망토로 온몸을 감싸거나 후드

를 눌러쓴 채 루드웨어의 뒤를 쫓아 들어갔다.

프로텍션 프롬 파이어가 불 계열의 마법에 내성을 주기 때문에 파이어 웰의 뜨거운 기운을

어느 정도 막아주고는 있었지만 완벽한 보호는 불가능하기에 일행들은 뜨거운 고열을 견디

어내야 했다.

하지만 수많은 마물들을 상대하며 마나와 체력의 고갈로 죽는 것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루드

웨어의 기지에 탐복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루드웨어의 일행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령의 1차 정벌군은 사이온 항구의 북쪽

평원에서 북극령의 10만의 병력과 충돌했다.

하지만 2만을 약간 넘는 마령의 정벌군에 비해 5배나 되는 북극령의 군대와 대치하고 있음

에도 로우나나 크렌 등은 별로 두려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첫 번째의 접전을

치렀기 때문이다.

북극령의 군대는 마령의 군대의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기습 공격을 감행했지만, 그 전투에서

마령군은 루드웨어가 인첸트한 마법 화살들과 마법사들의 공격 마법을 사용하여 북극령군에

게 1만 정도의 피해을 입히고 퇴각시킬 수 있었다. 처음의 기습이 실패하자 북극령군은 섣

불리 공격을 하지 못하고 마령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엄청난 숫자군요.?

?예. 저들은 세뇌당한 마물들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아마 프레드 백작이 이끄는 사병 5

만을 제외하곤 모두 세뇌당한 마물들로 이루어진 군대일 겁니다.?

?숫자로 밀고 들어오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루드웨어 공

께서 인첸트한 마법 화살이 있다고 해도 순식간에 밀릴 것입니다.?

?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요. 다만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무기에 의해서 잠시 당황한

정도일 겁니다. 얼마 안 있어 총공격을 감행하리라 생각됩니다.?

로우나의 말에 크렌 장군은 총공격의 시간을 기다리는 듯한 인상을 보이며 말했다. 마치 전

쟁이 즐겁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로우나는 미소를 지었다.

?장군께선 전쟁을 즐기시는 것 같군요.?

?설마요. 전쟁을 즐기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다만 저의 경우는 이곳의 전투에서 새로

운 기분을 느낀다 뿐이지요. 극도로 불리한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것이 저의 투쟁심을 끌어

올려주니 말입니다.?

?장군의 용맹을 기대해야겠군요.?

?아직 초반인데 제가 나설 자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로우나님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마법

병단에서 준비한 안개 작전을 멋지게 성공시키는 모습을 말입니다.?

?열심히 할 따름이지요.?

평원의 한쪽 면을 뒤덮은 북극령의 군대를 보고 있는 로우나와 크렌의 눈에 조금씩 저녁 안

개가 대지를 감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안개 작전. 북극령 측이 숫자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분명히 많은 수의 병사들을

믿고 공격해 올 것을 예상하고, 초반에 어느 정도의 기를 꺾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 칠인회

의 회주 로우나가 제안한 작전으로 신무기에 후퇴한 북극령군이 총공격 시간을 놓쳐 버린

탓에 차후에 있을 공격은 밤을 틈타 해올 것을 예상한 작전이다.

현재 평원에 짙게 깔려져 있는 안개는 사실 마법사들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마법

병단은 이것을 이용하여 북극령군을 함정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이다.

?회주님, 명령하신 대로 디그를 사용하여 안개 사이로 오백 개 정도의 함정을 만들었습니

다.?

로우나는 마법사들의 보고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이제부터 움직이도록 하지. 우리 편이 함정에 빠지는 일이 없게 표시는 해

두었겠지??

?예, 마법사들만이 볼 수 있게 약간의 마나장을 쳐두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잘했다. 가자.?

로우나가 이끄는 일련의 마법 병단은 북극령의 군대가 위치한 곳에 이르렀다.

?인트라비젼.?

인트라비젼을 사용하여 로우나는 적이 진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군대의 진열이 어느 정도 정비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면 적어도 2시간 안에는 마령군에 대한

총공격이 가능하게 보였다.

?다행이군. 녀석들의 진군 시간 전에 도착했으니 말이야.?

로우나는 때맞춰 도착한 것에 가슴을 쓸어 내리며 준비한 작전을 시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전 마법사들은 마령에서 빌려온 활을 북극령의 군대를 향해 겨누도록 하라.?

로우나 회주의 지시에 따라 마법사들은 등에 차고 있던 활을 꺼내어 안개 속에서 진군을 하

고 있는 북극령군을 향해 겨누었다. 하지만 활을 쏴본 이는 극히 드물었기에 한눈에 봐도

엉성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들의 엉성한 자세를 보며 우왕좌왕하고 있는 마법사들을 보며 로우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잘 쏠 필요는 없다. 북극령군에게 적들이 기습해 왔다는 것 정도만 보여주기 위함이니

까.?

?예.?

전문적으로 활을 쏘는 궁병들이 아닌 관계로 마법사들이 쏘는 화살의 사정 거리는 궁병들의

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로우나는 숨죽이며 적이 눈앞에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

데, 그 긴장감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입에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어느 정도의 거리가 되자 로우나의 지시가 떨어졌고, 수십 명의 마법사들은 활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화살은 루드웨어가 인첸트한 마법 화살인지라 화염 폭발

을 일으키며 북극령의 군대를 교란시키기 시작했다.

애석한 것은 화살을 쏘는 이들이 마법사인지라 정확도는 형편없었고, 간간이 근처에 떨어뜨

리는 마법사들도 있었기에 로우나로서는 골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마령의 기습이다!?

?폭발 화살이다!?

처음의 전투에서 폭발 화살의 위력을 실감했던 북극령의 군대는 엉성하기는 하지만 마법사

들의 폭발 화살의 공격을 받으면서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북극령군에도 뛰어난 장수들이 있었는지 소란이 크게 일어나기 전에 병사들은 진정

되었다.

?난 프레드 백작의 부관인 크로드다. 전군은 진열을 가다듬고 기병들을 정비하여 적이 공

격한 방향으로 돌진하게 하라.?

크로드 부관의 말에 따라 만여 명 정도의 기병들이 마법사 쪽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으니, 크로드가 지휘하는 북극령의 기마군은 활

이 날아오고 있는 방향을 유추하여 대각선을 그리며 옆으로 돌아 궁병의 옆구리를 치려고

했지만, 한 가지 예상 못한 일이 있었기에 기습 장소가 완전히 달라지고 만 것이다.

바로 활의 사정 거리. 크로드 백작은 폭발 화살이 떨어지는 장소를 보통 궁병의 사정 거리

로 생각하여 마법사들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기마군을 몰아가는 실수를 한 것

이다.

안개로 인해 시야가 트이지 않음으로 해서 발생한 실수인 것이다.

?그만 1차 텔레포트 지역으로 자리를 옮겨라.?

?예.?

로우나 회주의 명령에 따라 마법사들은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1차 텔레포트 지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1차/ 텔레포트 지역은 화살 공격을 한 곳에서 약 오백 미터 정도 떨어진 지역이었다.

인트라비젼을 사용하여 기병들을 살펴보자, 자신들이 있었던 장소에서 말을 몰고 있는 기마

군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마 활을 쏜 자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안개 속을 헤매고 있으리라 생각한 로우나는 두 번

째 공격을 시도했다.

?파이어 볼을 사용한다.?

마법 화살과 파이어 볼은 위력 면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정

교함의 차이였다. 미숙한 마법 화살에서 파이어 볼로 바뀌자 마법사들의 공격은 정확히 기

병들의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상당한 피해를 준 것이다.

순식간에 반수 이하의 기병들이 당하자 당황한 기병대장은 후퇴를 지시했는데, 다행히 그런

기병들을 원조하기 위해 다시 일만 정도의 기병들이 원군으로 나서 북극령 총기병의 수는

만 육천 정도의 대군으로 변했다.

?2차 텔레포트 지역으로 가자!?

대군이 자신들을 향하여 빠른 속도로 진군하는 것을 본 로우나는 마법사들에게 지시하여 2

차 텔레포트 지역으로 피했다.

2차 텔레포트 지역은 디그를 사용하여 만든 함정의 뒷부분으로 1차 텔레포트 지역과는 1킬

로미터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파이어 애로우 발사!?

장거리의 공격이 가능하고 서클에 따라 많은 수가 가능한 파이어 애로우는 또다시 기병들에

게 쏘아졌다. 안개 때문에 마법 화살로밖에 보이지 않는 기병들은 점점 궁병들의 수가 많아

지는 것을 느끼며 적에게도 원군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안개 속에서는 정확한 조준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기마군은

화살이 날아오는 곳을 향하여 전속 전진을 지시했다.

하지만 인트라비젼을 사용하여 파이어 애로우를 쏘는 마법사들의 마법은 하나하나가 정확하

기 그지없었기에 기마군은 안개 속에서 아군이 파이어 애로우에 맞아 땅에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전진하고 있었고, 또 얼마 안 있어 그런 파이어 애로우보다 더한 문제에 봉착하며

북극령의 기병들은 아비규환에 빠지기 시작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진군을 명령한 기병들은 언젠지 모르게 사

라지는 것처럼 마법사들이 만들어놓은 함정에 빠지며 사라져 간 것이다.

주위에 있는 함정에 빠져 동료들이 꺼지듯이 사라지자 당황한 기병들은 말을 몰지 못하고

일대를 헤매이다가 역시 다른 함정에 빠져 죽어갔고, 이어 밀려오는 다른 기병들은 현 상황

을 파악하지 못한 채 도미노처럼 함정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다!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 마법을 사용해서 공격하라!?

함정 때문에 우왕좌왕하며 진군의 기세를 놓친 기병들은 있을지 모르는 함정을 생각하며 자

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이용하여 마법사들이 마법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수많은 마법들이 난사되는 곳에서 북극령의 기병들은 후퇴하다 다시 함정에 빠져 죽는 자들

이 속출했기에 많은 수를 잃고서야 간신히 아군의 진지로 물러갈 수 있었다.

이 안개가 자욱한 날의 전투는 북극령의 군대의 약 일만 오천 정도의 기병을 어이없이 잃게

만들었고, 사기가 극도로 저하된 북극령군은 밤을 이용한 기습을 포기하며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 로우나는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있었다. 이번 북극령의 싸움에서는

자신들이 지켜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살펴보면 첫째, 피해를 최소한 줄여야 한다. 이곳에서 죽은 마물들의 어둠의 기운은

모두 크레이져의 힘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크레이져로 인한 윤회의 법칙 붕괴에서

일어난 일로, 악의 기운이 가득 찬 이곳 마령에서의 죽음은 윤회의 사슬로 그들을 다시 마

계에서 태어나게 하는데, 북극령에선 마계의 신 크레이져가 봉인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가

멀고 힘이 약해지고 있는 마계보다 힘의 주축인 크레이져가 있는 봉인 지역으로 흘러 들어

가는 것이다.

둘째,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 분지로 가는 루드웨어 일행에게 북극령군의 시선이 돌아

가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마령의 주력군인 마물 병사를 사용하지 못한다. 이는 첫 번째와 같은 경우로, 마물들

간의 싸움에서 벌어지는 어둠의 기운도 크레이져의 힘으로 돌아간다. 같은 종족들 간의 싸

움은 신의 법칙에서 어긋나기 때문이다. 보통의 인간들끼리의 전쟁 역시 그만큼 많은 어둠

의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전쟁터에서 시체의 조종자인 네크로멘서가 판을

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틀 동안의 전투로 4만의 피해를 주었다고는 하지만 적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아직도 다가

올 적의 숫자는 마령의 열 배 이상을 휠씬 넘어서는 숫자가 남아 있는 것이다. 물론 북극령

의 70만 대군이 모두 전쟁터에 나오지는 않을 테지만, 상당수의 군대는 마령의 침략군을 응

징하기 위해 출전할 것이다.

?현재 북극령 프레드 백작의 군대의 피해는 어제와 오늘 새벽의 전투까지 전사 3만, 부상

2만 정도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크렌 장군은 정찰병의 보고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3만이 안 되는 병력으로 이 정도

의 성과를 올렸다는 것은 상당한 전과라고 할 수 있지만, 이번 전쟁의 목표는 전투에서의

완전한 승리가 아닌 시간과 주목 끌기였다.

?아마 3일 내에 후방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안트워 공작의 본군이 밀어닥치겠군요.?

로우나의 말에 크렌 장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프레드 백작의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요. 그나저나 큰일이군요. 안트워 공작

의 본군의 수는 24만 명. 거의 대부분이 하급 마물들이라고는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숫자

이니까요.?

?이번 승리가 더 큰 위험을 끌어들인 꼴이 된 것 같군요.?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본군의 진입이 이틀 정도 빨라진 것뿐이지 않습니까. 어차

피 예상했던 일, 조금 더 견뎌보도록 하지요.?

크렌 장군은 안 좋은 상황 보고에 찌푸린 얼굴을 한 로우나 회주를 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

다. 전쟁을 통해 서로 간에 유대감이 생긴 것이다.

둘이 함께 힘을 합치면 북극령의 군대도 어렵사리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크렌 장군이

었는데,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는 북극령의 공격이 갑작스럽게 벌어지고 말았다.

?각하!!?

?무슨 일이냐.?

갑자기 작전 회의실 안으로 한 명의 전령이 급하게 뛰어 들어오자 크렌은 미소를 멈춘 채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비, 비병입니다!!?

?비병?!?

대륙의 국가 중 비병을 가지고 있는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대륙의 역사에 초창기의 비병

은 와이번 기사대뿐이었다. 야생 와이번을 길들여 기사들이 타고 다니던 것으로 기마대보다

월등한 이동 속도와 공격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야생 와이번은 길들이기가 어려웠

고, 그에 따른 돈도 상당히 많이 투자되었기에 현재에 와서 길들여진 와이번으로 기사대를

조직하고 있는 것은 남방의 마법 대국 알렌하비스트 왕국뿐이었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이러한 와이번 기사대는 특수 기사대의 이름으로 존재하였지, 일개 병사

로서 활약되는 것은 아니었다.

비병이란 개념이 본격적으로 출현한 것은 마령의 건국 전쟁 때부터로 루덴스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마물들을 병사로 삼아 현재의 마령 땅을 획득한 것이다.

이것은 마물들을 다스릴 수 있는 고위 마족들이 존재하는 마령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마령의 와이번들은 야생 와이번들로, 강한 힘을 통해 와이번에게 복종을 얻어낸 마족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마령에서는 그들을 마룡기사단이라 부르고 있는데, 마령의 마룡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상당히 까다롭다 할 수 있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알렌하비스

트의 와이번 기사대와 마령의 와이번 기사대는 질적으로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와이번 기사대를 제외한 비병들은 현재까지 마령만의 독특한 병과로 남아 있었는데, 마물을

병사로 쓰고 있는 북극령에서 드디어 비병을 출현시킨 것이다.

?세뇌를 통한다면 충분히 비병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은 했습니다만… 당혹스럽군

요.?

크렌 장군과 로우나 회주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한창 전투가 중반에 이르고 있을 때였

다. 시커멓게 하늘을 뒤덮고 있는 수많은 마물들과 와이번 기사대들은 급하강식의 공격을

통해 마령군을 공격하고 있었고, 이에 맞서 마령군은 궁병들의 화살과 경장갑 기병들이 한

면씩 호위를 맡는 이 인 일 조의 마법 화살 공격과 칠인회의 마법 병단이 대공 공격을 맡고

있었지만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마령의 궁병들이 지니고 있는 화살이 마법 화살이기는 하지만 흑조기사단처럼 공중에서 비

병들을 날려 버릴 만한 화염 폭풍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법 화살의 공격은 맞지

않는 한 비병들에게 그리 큰 효과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크렌 장군은 어느 정도 비병의 출현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북극 비병들의 공격은 적의 최후

의 한 수라고 생각해 왔기에 예상외로 그들이 초반부터 강력한 힘으로 밀어붙이자 당황했

다.

?아마 크샤스가 저희의 의도를 알아챈 것 같군요.?

로우나의 말에 크렌 장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대륙의 모든 국가가 마령을 두려워

하고 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비병이라는 것을 아는 크샤스가 대륙 정복의 회심의 수

로 가지고 있던 비병을 초반에 투입한 것이다. 그것은 다분히 루드웨어가 꾸미고 있는 계획

의 의도를 알아챘다고 보는 것이 정확했다.

?그나저나 루드웨어님의 인첸터 마법으로 이번 공격은 대충 넘어가긴 하겠지만 피해는 상

당하겠군요.?

북극령에서 이번 전투에 투입한 비병의 숫자는 대략 2만 기. 마령의 현재 병사 수와 비슷한

병력을 투입했기 때문에 3,000 정도에 지나지 않는 궁병들로는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

다.

두 시간 정도의 치열한 공방전이 끝난 후 북극령의 비병은 어느 정도 피해를 입고 후퇴했지

만 마령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칠인회 마법 병단 500명 중 123명 사망, 212명 중경상, 마령의 군대 2만 명 중 사망 3,500여

명, 중경상 7,800여 명으로 숫자가 적은 마령으로서는 참담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북극령의 비병들의 피해는 그보다 배나 더 많았지만 그 정도의 피해가 적에게 줄 수 있는

효과는 매우 적다고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적들은 마물들로 이루어진 병사로 마령의 군대에

상당한 피해를 준 것에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북극령에서는 세뇌를 통해 마물들을 자국의 병사로 사용하고 있지만 마령에게 자국을 빼앗

기고 이주해 온 사람들이 세운 나라인지라 마물에 대한 인식은 상당이 안 좋은 편에 속했

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마물 병사들이 죽었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마령 특유의 빠른 공격이 불가능한 지금 남아 있는 병사로는 안트워 공작의 본군은 고사

하고 프레드 백작의 군대조차 상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크렌 장군의 부관 안티아노는 전황이 안 좋아지자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보고했다. 사실이

었다. 비병들의 공격으로 사기는 극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자군에 있을 때는 승리의 보증

수표로 보이던 비병의 강력한 공격력은 직접 당하고 난 병사들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

던 것이다.

?사라덴 경의 지원군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소관이 생각하기엔 현재로써는 그것이 최선의 방책이라 생각됩니다.?

?음…….?

안티아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크렌 장군은 결정을 내렸는지 지휘봉을

들고는 자리에 일어났다.

?안티아노.?

?예.?

?더 이상의 방어전은 없다. 전군에 진군 대기 명령을 내려라!?

?장군님!?

안티아노가 놀라 외치자 크렌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방어전만을 고집하며 더 이상의 피해를 늘릴 순 없다. 일관된 방어전으로는 2차 정벌군이

오기 전에 패배는 자명한 것. 루덴스 폐하께서도 이해하실 것이다.?

?알겠습니다.?

크렌 장군의 단호한 의지를 확인했는지 안티아노도 명령을 받들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마법 병단으로 하여금 평원에 마법 안개를 깔아주시면 감사하겠습

니다.?

?예. 크렌 장군께서 결전을 생각하신다면 저희 칠인회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도와드리도록

하지요.?

크렌 장군. 그는 비병들의 공격 이후로 시종일관 유지해 오던 방어적인 전략을 변경, 드디어

공격적인 작전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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