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마법사-27화 (27/247)

27장 북극령 상륙 작전 (2)

이름하여 북극령 상륙 작전. 그것은 일대의 장관이라고 말하기에도 부족한 느낌이 있을 정

도의 장면이었다.

천신전쟁 이후 단 한 차례도, 신계나 마계는 물론 인간들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드래곤

일족들. 그들이 마령의 북극령 전쟁에 공식적으로 67마리에 이르는 수의 드래곤을 파병한

것이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드래곤이 인간으로 폴리모프하여 전쟁에 참여한 적은 있었지만.

마령의 함선이 상륙하게 될 레이트 해안은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일 년이 열 마리 가량만

다니면 많이 다닌다고 할 수 있을 물에서 사는 북극의 마물들이 대거 레이트 해안으로 모여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마물들과 함께 서부 무역로를 따라 올라온 남방 해적들의 함선의 수는 300여 척. 이

정도면 마령 측의 200척이 간신히 넘는 함선으로는 도저히 상륙에 불가능했고, 거기다가 마

령 측의 병사들은 해군이 아니었기에 더욱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루드웨어의 협박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 때문에 이들의 적은 마령의 군대에서, 지상

에서 가장 강한 종족으로 변하게 되었다.

마령 측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온 드래곤들은 67마리. 북극령의 수중 마물들의 수는 몇만에

이른다고는 하지만 지상 최강의 종족인 드래곤에게는 상대도 되지 않는 전력이었다.

비행 중대장 프로란스는 자신을 합쳐 모두 67마리의 드래곤을 모두 8개의 편대로 나눈 후,

제트 기류를 타며 서서히 레이트 해안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구름으로 가려진 해안의 상황을 마법으로 확인한 그녀는 자신의 편대를 제외한 7개의 편대

장에게 작전을 지시했다.

[프로란스 비행 중대장이 각 편대장에게 말한다. 작전 시행 시간은 지금부터 10분 후, 각자

의 배꼽시계를 맞추기 바란다.]

[라져.]

드래곤의 배꼽시계는 정확하기로 소문이 난 세계 표준 시간을 일족의 장인 로드의 배꼽시계

로 맞춘다는 말도 있었다.

[레이트 해안의 적의 포메이션은 북극령의 함선만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반원진 형태를 하

고 있다. 골드 편대는 하강 후 브레스를 사용하여 적 함선의 진행 방향을 변화시켜 진열을

흐트러뜨리기 바란다. 블루 편대는 지금부터 수중으로 잠시 정해진 시간에 상승 공격하라.

레드 편대는 공중 공격을 할 수 있는 마물들을 집중 공격, 빠른 시간 안에 적의 대공 능력

을 파괴하도록 하라. 중얼중얼중얼.]

프로란스는 골드, 실버, 레드, 블루, 화이트, 그린, 블랙 편대에게 지시를 전달한 후 자신이

거느린 그린 편대와 함께 하강, 수면의 가까이에서 북극령의 마물들을 향해 날아갔다.

?우오옥!?

?드래곤이다!!?

남방 해적들과 마물들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마령의 함선을 기다리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는데, 엉뚱하게 마령의 함선이 아닌 초록색의 그린 드래곤 9마리가 빠른 속도로 접근하

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 하는가!! 해상 마물들에게 드래곤들을 막게 하라!!?

크샤스의 명을 받고 남방 해적과 해상 마물의 통솔권을 맡은 슐피드 남작은 난데없이 날아

오는 드래곤들을 보며 환장할 지경이었다.

급히 부하들을 시켜 마물들을 전면으로 내세우게 했지만, 과연 이런 마물들이 최강의 종족

인 드래곤을 제대로 막을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전 그린 편대는 브레스를 발사한 후 상승하라!]

프로란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해안으로 빠르게 저공 비행을 하고 있던 그린 드래곤 편대들은

액시드 브레스를 전면으로 덤벼들고 있는 일단의 수중 마물을 향해 발사하고는 빠르게 몸을

상승시켰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의해 전면에 횡진을 구성하며 드래곤들을 막아서던 마물들이 전멸하자

슐피드 남작으로서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래곤 같은 개인주의적인 종족이 자신의 부하들을 상대하기 위해 집단 공격 방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상당한 포메이션을 짠 공격이었기에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였

다.

마물들의 시선은 하늘로 상승한 드래곤들에게 향했다. 슐피드는 계속적인 저공 브레스 공격

에 대비하기 위해 바다에서 서식하며 하늘을 날 수 있는 마물들로 하여금 대공 능력을 강화

시킬 수밖에 없었는데, 느닷없이 본진의 한편에서 엄청난 물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제길, 이번엔 또 뭐야!?

?사령관 큰일 났습니다! 물속에서 블루 드래곤들이……!!?

?헉!?

일단의 그린 드래곤들에 이어 물속에서 기습 공격을 감행하는 블루 드래곤들의 공격. 하지

만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블루 드래곤의 공격으로 바다로 온 신경이 쏟아지고 있을

때 엄청난 불길과 함께 대공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상공에 배치시켰던 비행 마물들이 시껌

둥이가 되어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헉……!?

슐피드로서는 미칠 지경이었다. 잠시 눈을 돌린 사이에 레드 드래곤들이 나타나 브레스로

상공의 공중 병력을 사그리 추락시켜 버린 것이다.

슐피드는 드래곤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명체라고 말하던 로망스 소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

릴 수밖에 없었다. 완전한 패배. 이제 대공 병력이 없는 이상 드래곤들의 공격을 방어할 수

단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각 속성의 드래곤들이 뿜어대는 브레스와 마법으로 북극령 일대의 바다는 천차만별의 표정

으로 변해갔고, 그때마다 수많은 마물들은 흔적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소멸돼야 했다.

어느 사이에 드래곤들의 대공세가 끝났을 때 남은 것은 몇 척의 해적선과 수십 마리의 바다

마물뿐이었다. 유령선이 다 되어버린 해적선 위에서 슐피드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마지막

을 장식할 수백 척의 마령의 함선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오! 신이시여!?

슐피드는 멀리 사라지는 드래곤들의 꽁지를 보며 신을 부르짖다가 격분에 피를 토하고 죽었

다고 한다.

상륙 작전은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함선 위로 날아오르는

북극령의 수만 기의 비병은 백야로 6개월 간 밤이 없을 시간의 북극령에 밤을 선사할 정도

였다. 이것은 정말 말로 하기 벅찰 정도의 모습이었기에, 후에 북극령의 주민으로 있었던 사

가들은 대륙의 역사상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전투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약 1시간에 이르는 레이트 해안 전투는 엄청난 폭음과 화염 등, 수많은 마물들의 포효를 동

반했고, 이곳에 가장 근접한 사이온 항구의 북극령 주민들은 이때의 시간이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는 시간인 줄 알았다고 말한다.

해안에 상륙하여 사이온 항구에 제일 먼저 도착한 칠인회의 마법 병단은 도시 전체에 슬립

마법을 걸어 한순간에 침묵의 도시로 변화시켰고, 그 뒤를 이어 2만 명에 이르는 제1차 북

극령 원정 군대가 사이온 항구로 하선, 도시 밖의 벌판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이온 항구의 주민들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았는데, 이는 루덴

스의 명령에 의한 것으로 북극령의 마물이나 크샤스의 군대를 제외한 어떠한 종족들에게도

피해를 주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다.

제1차 원정군과 함께 도착한 주요 인물들은 암흑의 황태자 루덴스와 정벌군의 사령관 크렌

장군, 라스타의 부관인 암흑 신관 유리마와 칠인회의 6회주 로우나 회주, 그리고 시스 일행

이다.

루덴스의 부관인 사라덴은 제2차 원정군인 나머지 3만 명의 군대와 함께 일주일 후에 도착

할 예정이었다.

?할머니!?

/로노와르는 자신의 할머니인 프로란스가 드래곤 편대의 작전을 마치고 돌아와 루덴스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자/ 큰 소리로 부르며 뛰어가 프로란스에게 안겼다. 프로란스는 그런

로노와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그래, 우리 귀여운 로노와르. 쯧쯧, 볼이 쑥 들어간 게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구나.?

프로란스는 그 말과 함께 뒤에 서 있던 루드웨어를 노려보았다. 생각 같아선 브레스라도 뿜

어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루드웨어는 비굴한 미소

를 멈추지 않으며 프로란스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왔네. 한 해에 네 차례나 드래곤들을 소집하게 만드는 네놈에게 당장에 브레스라도 뿜고

싶지만, 이 녀석의 얼굴을 봐서 잠시 참도록 하지.?

?헤헤헤!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쩔 텐가. 이 녀석을 계속 데리고 있을 텐가??

?그럴 수밖에요. 프로란스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루드웨어의 말에 프로란스는 잠시 침묵을 지킨 뒤 뒤에 서 있던 루덴스를 보며 말했다.

?이 정도 도움을 줬으니 별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되네. 우리들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

지.?

?드래곤 일족의 도움에 라스타님께서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마령 측

에 무슨 일이라도 요청만 하신다면 최대한의 도움을 약속드립니다.?

?흥. 마계의 도움 따위는 바라지 않네.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지.?

루덴스의 호의 어린 말에 차갑게 대답한 프로란스는 로노와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

다.

?이 일이 어느 정도의 중요성이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널 데려가지는 못하겠구나. 몸조

심하고 잘 갔다 오도록 해라.?

?예, 할머니.?

?그럼 할머니는 이만 가보겠다. 루드웨어!?

?예.?

?우리 일족 해츨링의 안전이 최우선되어야 함을 잊지 말게나.?

?예,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맘에도 없는 소리다. 루드웨어 같은 놈이 해츨링의 안전 같은 거 신경이나 쓰겠는가.

아무튼 루드웨어의 대답을 반쯤 믿은 프로란스는 수많은 드래곤들과 함께 레비테이션으로

하늘로 올라가며 수직 착륙기 헤리어 흉내를 잠시 내더니 폴리모프를 풀고는 바다로 날아가

기 시작했다.

8개의 편대로 나뉘어지며 멋진 곡예 비행으로 사라져 가는 드래곤들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

고 있던 루드웨어는 루덴스의 옆에서 검은색 로브의 후드를 꼭 눌러쓰고 모른 척하고 있는

새침데기 유리마를 보고는 소리치며 뛰어갔다.

?유리마!?

갑자기 날아온 루드웨어에게 안겨 버린 유리마의 후드 뒤로는 큼지막한 땀방울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갑자기 웬 아양이냐!?

?로노와르가 프로란스 할멈에게 안기는 게 부러워서 흉내 한번 내보려고.?

?…….?

잠시 유리마가 침묵을 지키자 루드웨어는 로노와르와 아이샤를 보며 소리쳤다.

?로노와르, 아이샤! 이리 와보라고! 내가 좋은 사람 소개시켜 줄 테니까!?

두 사람이 오자 루드웨어는 유리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암흑 신관 유리마라고 한다. 세상에서 나랑 가장 친한 친구야. 바보 스승 때문에 마계로

떨어졌다가 만난 친구지. 잠시 소개를 하면 마계에서 자란 인간으로 현재 암흑계 신성 마법

은 전 인간 중 최고를 자랑하지. 가장 중요한 건 이놈이 마계의 위대하고 위대하신 마신 라

스타님이 총애하는 신하라는 거야. 어때, 내 친구 거물이지??

루드웨어의 소개에 로노와르는 그렇구나 하는 정도로 넘겼지만 아이샤는 그렇지 못했다. 아

이샤는 천신계의 신을 모시는 신관인데 비해 유리마는 마계의 신을 모시는 신관이기 때문이

다. 즉, 둘의 존재는 서로 완전히 상반된 존재라는 것이다.

또 단순한 하급 신관이라면 모를까, 마신 옆에서 보좌한다니 아이샤로서는 절대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였고, 그만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걱정 말라고. 이 녀석, 마신을 모시는 암흑 신관이긴 하지만 사실은 무신론자야.?

?…….?

이놈의 대륙은 좀처럼 종교에 대해서 이해가 안 가는 곳이었다. 제국의 아리시아 성교는 돈

만 밝히는 타락한 종교이고, 아이네스 신전의 신관은 사람 패고 돈을 뺏지 않나, 암흑 신교

의 최고위에 속하는 신관은 알고 보니 무신론자.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대지 모신 안트라네

의 사제는 사제복을 입고 농사를 짓는 집단으로 거의 대부분이 농부 출신이다. 전쟁의 여신

히루안의 신전은 몽크들의 격투 시합을 통해 내기 도박으로 신전 운영 자금을 버는 곳이며,

계절의 여신 프라이도스의 신전은 4계절 휴양지를 조성하여 계절마다 휴양지에서 관광객을

받아 그 돈으로 신전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무튼 루드웨어의 한마디에 할 말이 없어진 아이샤는 대답해 주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 그

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생각하며 조용히 있는데, 옆에 서 있는 로노와르가

일단의 사람들을 보며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루드웨어, 저 자식은 왜 온 거지?!?

로노와르의 말에 사람들이 돌아본 곳에는 시스 일행이 서 있었다. 루드웨어는 그런 로노와

르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바보 로노와르, 우린 지금 한 사람의 실력자라도 필요한 때라고. 그런데 드래곤을 잡을 정

도의 실력자를 내가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았어??

?하지만 저 녀석들은 크샤스의 부하잖아!?

?어허! 엄밀히 말하면 아니지. 왜냐구? 저 녀석들은 용병이잖아.?

루드웨어는 시스 일행에게 다가가더니 한 사람씩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자, 여기 할버드를 들고 있는 중년의 멋진 전사 분. 본명은 시스리온 드 알리카드로. 전

로아냐드 제국 황실 기사단의 멤버로 십칠 세의 나이에 입단하여 차기 기사단장 후보까지

지명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기사였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잃고

마령의 용병 길드에 가입한 남자지. 다음은 멋있는 파라딘 양반. 본명 크레이드 아르한. 전

로아냐드 제국의 고위 사제. 그 역시 18세의 나이에 고위 사제에 오른 천재로 교단에서 상

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제지만, 로아냐드 제4차 유온 족 토벌에서 무의미하게 학살

을 자행하는 교단에 회의를 느끼고 파문 사제가 됐지. 후에 모험가 페블 하이드가 아리시온

던젼에서 상처를 입고 죽어가는 것을 신성 마법으로 고쳐 준 보답으로 검술을 배워 파라딘

으로 용병 길드에 가입했지. 다음 이 멋진 엘프 아가씨. 본명 시아나 헤르안디아. 서엘프의

족장 프로인 헤르안디아의 외동딸이지만, 피의 역류로 다크 엘프의 모습을 가지게 된 비운

의 엘프지. 엘프 마을에서의 박해를 참다못해 인간 세상으로 나온 이 아가씨의 연세는 자그

만치 123세. 이젠 세상 살 만큼 다 산지라 노련하기 짝이 없는, 즉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엘프지. 다음은 파르가… 어? 이 양반이 어디로 갔나? 아무튼 이 정도면 뛰어난 실력가들이

라고 할 수 있겠지??

루드웨어는 이들의 자세한 소개를 로노와르에게 해주었지만, 정작 놀란 것은 시스 일행이었

다. 그가 칠인회의 창시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동료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신들

의 과거를 속속들이 말하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도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아! 하지만……!?

로노와르가 말끝을 못 맺으며 억울한 얼굴을 하고 있자 아이샤가 다가와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노와르, 저도 당신의 마음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저희가 하려는

일은 세상을 살리는 일인걸요. 이건 로노와르 씨의 일족인 드래곤들의 생사와도 관련되어

있잖아요.?

사실 아이샤도 암흑 신관인 유리마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다. 빛의 계통의 신관이 암흑 계

통의 신관과 같이 일한다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자신은 교황의 명을 받고 왔기 때

문에 꾹 참고 있는 것이다.

로노와르의 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을 하는지 시스가 와서 말했다.

?로노와르님께서 저희를 싫어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공적인 일.

이 일이 끝난 후 로노와르님과 처음 만났을 때 약속했던 대로 결투를 해서 저희를 죽이셔도

저희로선 할 말이 없습니다.?

?흥!?

콧방귀를 뀌기는 했지만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인간들에게 높은 칭호를 가지고 있는 시스가

자신을 낮추어 말하자 어느 정도 화가 풀렸다.

이때 눈이 먼 로우나의 반응은 다른 이들과 조금 달랐다. 죽음마저 세계의 평화를 위해 벗

어던지려 하는 그를 보며 더욱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시스 씨, 너무 멋있어요.?

?로우나, 미안하오. 당신에게 나의 과거를 이야기해 주지 않았구려.?

루드웨어에 의해 밝혀진 자신의 과거를 로우나가 들었다고 생각한 시스는 미안한 얼굴로 말

했다. 사실 로우나는 시스에게 자신의 나이와 함께 사랑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는 다시 그 미망인을 생각하면 로우나에 대한 사랑이 식을까 봐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로우나는 시스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저이기만 하다면 그깟 과거는 상관없답니다.?

?로우나…….?

얼빠지게 웃는 시스였다. 로우나와 시스의 모습을 본 루드웨어는 좀 황당하다는 얼굴로 보

다가 라디안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저들 무슨 썸씽이라도 있는 거냐??

?예, 한마디로 푹 빠졌죠.?

?음…….?

칠인회의 미망인 한 명이 사라지는 광경을 본 루드웨어는 조금 시원섭섭했다. 들리는 소문

에 의하면 로우나가 비교적 다른 사람에 비해 어린 나이로 회주 직에 오른 것은 바람둥이

루드웨어와 썸씽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기는 했다.

?자자, 그럼 작전을 짜야 되겠지. 안 그런가, 루덴스??

루드웨어의 말에 루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한시가 급한데 지금 일행들의 잡다한

사정으로 시간을 끄는 것은 이득이 없는 행위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작전실로 드십시오.?

크렌 장군은 이곳에 모인 인물들에게 정중하게 말하며 안내를 했고, 사람들은 그의 안내로

급하게 지어진 주둔 기지의 회의실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평원에 주둔하고 있는 1차 정벌군의 회의실은 일반 병사들이 쓰는 천막과 같았다. 이는 청

렴한 생활을 하고 있는 루덴스의 지시로 이루어진 것으로 한 나라의 황제가 사용하기에는

매우 초라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회의장 안에 있는 이들은 이런 것에 신경 쓸

사람들이 아니었다.

대륙 전체에 내로라하는 인물들… 어디 하나 한 나라를 이끌어가도 부족함이 없는 인물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크렌 장군은 회의장에 있는 사람들을 한번 둘러본 후, 마령과 칠인회에서 북극에 밀파한 수

많은 첩자들이 보내온 정보를 모아온 보고서를 읽었다.

?북극령은 생각보다 거대한 군사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의 마물들을 제외한다고 해

도 5개 기사단 3만 명의 군사와 각 영주들의 사병 7만으로 정규병으로 부를 수 있는 군대는

총 10만 명. 그 외에 세이렌의 노래에 세뇌당한 용병과 싸울 수 있는 주민들을 합치면 대략

40만을 넘어서며, 앞서 제외한 마물들을 합치면 백만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에 숫자적으로

마령의 5만의 병사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정도까지 차이가 났던가… 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북극령의 군대의 숫자에 루덴스는 탄식하고 말았다. 하지만 칠인

회의 로우나는 이미 그런 것 따위는 예상하고 있었는지 바로 대책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큰 차이가 나긴 하지만 그 숫자는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저희 칠인회에서는 그간

북극령의 세뇌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세이렌의 노래에 대해서 연구한 결과 하나의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대책이라면??

?예, 대마법 봉쇄라는 거죠. 세이렌의 노래가 강력한 세뇌 방법이기는 하지만 마법 서클로

분류하면 그 위력은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서클 정도의 마법 봉쇄면 충분히 지역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도시들에서 행해지는 세이렌의 노래의 현혹 마법을 잠시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맹목적인 주민이나 용병들의 참전을 어느 정도 막을 수가 있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핵심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마법 병단의 수는 반으로 줄어들겠군요.?

크렌 장군의 말에 로우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만에 이르는 적을 상대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일단 세이렌의 노래를 막을 수 있다면 40만의 병력을 묶어둘 수 있겠군.?

?예. 로우나 회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뇌된 용병과 주민을 제외하면 10만의 정규병과 60

만 가량의 마물 병사들을 합쳐 약 70만 정도의 병력이 남게 됩니다.?

?아직도 턱없이 많은 숫자이긴 하지만 북극령의 마법사 조직인 오호사가 봉인 해제 의식에

투입되어 있는 지금, 저희 측에는 강력한 힘이 될 마법 병단이 아직 반 정도의 숫자가 남아

있을 테니 싸워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대전에서 마법사들의 위치는 전술상 상당한

도움이 되니까요. 잘만 한다면 봉인 해제 의식을 막을 수 있는 시간까지는 견딜 수 있으리

라 생각합니다.?

이 전쟁의 목표는 크레이져의 봉인 해제 의식을 막는다는 것을 그 주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전쟁의 승패 따위는 상관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죽

어가리라.

이제부터 본격적인 두 싸움이 벌어지려 하는 것이다. 마령의 크렌과 칠인회의 로우나, 라디

안 등이 활약하는 북극령 70만 대군과의 싸움이 첫 번째가 될 것이며, 루드웨어와 루덴스의

결사대와 크샤스가 싸우는 봉인지에서의 전투가 두 번째가 될 것이다.

어디 하나 만만히 볼 수 없는 전투. 과연 이 전투의 승리는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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