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마법사-25화 (25/247)

25장 칠인회의 출병

로노와르는 가만히 숨어 있는 것은 체질상 맞지 않아 수정궁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를 살펴보았다. 한데 생각보다 이곳의 경비가 두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까 그 꼬마가 이 궁의 주인인 것 같진 않고… 경비들의 숫자들로 미루어보면 상당히 중

요한 인물 같은데. 누굴까??

거침없는 행동이나 시녀들이 바쁘게 찾아다니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짐작한 로노와르였지만

물어보지 않은 이상 사이야가 크샤스의 여동생이란 것은 알지 못했다.

다만 막연히 짐작해 보건대 꼬마애가 크샤스와 꽤 친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유

추해 볼 수 있었다. 드래곤의 무지막지한 시력―물론 이것은 폴리모프했을 때의 시력이다―

좌우 100.0으로 살펴본 결과, 멀리 보이는 다른 궁들보다 이곳 경비의 숫자가 세 배 이상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금세 잊혀지고 말았는데, 현재 로노와르의 상황에선 정말 분에 넘치

는 생각들이었기 때문이다.

?아, 배고프다…….?

제대로 밥도 먹지 못하고 이곳으로 날려온 로노와르였기 때문에, 주인공이 위험한 곳에 갇

혔을 때 나오는 적절한 상황 판단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는 배를 움켜쥐며 소녀가 먹을 것을 가져다 주기를 기다렸다. 다른 때 같으면 그 유명한

해츨링 꼬장을 부려봤겠지만, 유명한 명산 금강산도 밥 안 먹고 가면 굶어 죽기 십상이다라

는 속담처럼 꼬장도 배가 불러야 부릴 만하기 때문에 이내 정원에 처박혀 자빠져 있었다.

수정궁의 주방에서 음식이라도 훔쳐 먹고 싶었지만, 전에 싸워본 결과 크샤스와 그의 부하

들의 실력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가련하고 여린 해츨링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사실 드래곤이란 놈들은 몇 달, 아니, 몇 년을 굶어도 ?아! 나 엄청 굶었다? 하는 소리를

할 정도로 둔감하고, 먹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놈들이었다. 이는 자연의 마나를 통해 생명

을 유지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리모프한 상태에서는 보통 인간과 다

를 바가 없기 때문에 로노와르는 이제 힘도 나지 않아 서서히 가장 비참한 죽음이라는 아사

의 직전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폴리모프라도 해제한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아귀가 되기 일보 직전의 모습으로 눈앞

에서 잘 요리된 오크가 걸어가는 환각에 빠져 쓰러져 있는데, /역시 이 이야기는 주인공을

굶길 만한 배짱은 없었는지/ 어디선가 로노와르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로노와르 아저씨, 로노와르 아저씨.?

흥! 날 아저씨라고 부르다니. 아저씨란 말에 대답을 안 해주려고 했지만, 자신을 부르는 사

람에게서 아귀 드래곤 신세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음식 냄새가 흘러나오자 참을 수 없

었다. 드래곤의 후각은 냄새 잘 맡는다고 소문난 개보다 10배 정도 뛰어난 후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요!!?

배고픔과 처절함이 섞여 있는 그의 목소리는 처량함과 불쌍함을 안겨주었기에 음식을 들고

그를 찾는 사이야의 귀에 정확히 쑤셔 들어갔다.

?아!?

보따리에 음식을 가지고 온 사이야는 로노와르의 목소리가 꽃밭에서 들려오자 누가 볼까 두

리번거리며 꽃밭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는 그녀가 찾고 있던 로노와르란 녀석이 파김치가 된 듯 자빠져 있었다. 손가락 하

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며, 낑낑거리는 강아지의 처량한 눈매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

그를 보며 사이야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뭐 해요??

비루먹은 강아지 흉내 내기 놀이라도 하는 듯한 그의 모습을 보며 사이야는 궁금한 듯 물었

다.

이 사태는 고대 프라스의 한 왕비가 배고프다고 떠드는 백성이 빵을 달라고 하니 영문을 몰

라 하던 것과 마찬가지의 현상으로, 부잣집 것들이 굶어 죽으려는 거지의 고통을 알 순 없

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배고파서 꿈틀거리는 로노와르가 이상하게만 보였다.

?혹시 변태??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로노와르의 처량한 목소리에 사이야는 안심할 수 있었다.

?배고파…….?

로노와르의 처참한, 아니, 비참한 모습에 잠시 묵념을 드린 사이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따리를 풀어 로노와르의 머리 위에 가져다 놓고는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굶어 죽을 것 같은 로노와르 곁에 있다가는 그가 자신도 먹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와!?

로노와르에겐 이제 희망이 생겼는지 표류 소설 로빈슨 꾸르소가 케이크를 먹는 것처럼 보따

리에 머리를 박고 음식을 입에 처넣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사이야는 인간이 음식을

먹는 게 저렇게 추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 정말! 사이야는 로노와르를 구차하게 사는 녀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떡하랴, 당당하게 사는 드래곤일지라도 루드웨어와 일주일만 생활하면 정말 구차

하게 변해가는 것을.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쑤셔 넣은 로노와르는 어느 정도 배가 부르자 꺼억― 하는 트림과 함

께 툭 튀어나온 배를 잡고 앉았다. 사이야는 그런 로노와르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는 한

발자국 더 물러서며 말했다.

?지저분한 아저씨.?

?음…….?

반박의 여지가 없는지라 로노와르는 그냥 참아주기로 했다. 뭐, 먹을 것도 줬는데 로노와르

주제에 어떡하겠는가?

?아무튼 힘들여 먹을 것도 가져다 주었으니 약속을 지켜야죠??

?약속? 아, 바깥 세상 이야기! 좋아. 이 몸이 그리 오래 여행을 한 것은 아니지만, 네가 듣

고 싶어하는 바깥 세상의 그 끔찍한 이야기를 해주도록 하지.?

?끔찍한 이야기요??

?정말 끔찍하지.?

로노와르는 루드웨어와 여행에서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을 생각하며 몸서리치고 있었고, 그

를 보며 사이야의 안색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자신이 나가고 싶어하던 바깥 세상이란

것이 그렇게도 끔찍한 곳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저… 얼마나 끔찍한데요……??

사이야의 말에 로노와르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먼저 바깥 세상에 나가면 인간들을 조심해야 돼. 인간들은 참 간악하지. 한때는 동료로 믿

었는데 어느새 귀찮다며 버리고(로노와르는 디멘전 패스로 버려졌다), 예쁜 여자들만 보면

강제로 끌고 다니고(로노와르는 루드웨어에게 결혼이란 명목으로 끌려 다니고 있다), 틈만

있으면 누구의 돈이라도 가리지 않고 훔치고(누가 루덴스의 성에서 2억 골드나 훔치겠는

가!), 아! 또, 하나의 생명을 앗아갔음에도 그것을 자랑이라고 죽은 녀석의 뼈를 자랑인 양

들고 다니지(파르가는 아크라시마를 죽인 후 그의 드래곤 본을 가공한 검을 들고 다닌다).

얼마나 끔찍하니. 너같이 정말 예쁘장한 여자애가 세상을 돌아다닌다면 아마 일주일, 아니,

하루도 되지 않아 노예로 잡혀가겠지. 그리고 돈은 다 뺏기고 ××당한 후 어디론가 팔려가

겠지. 그리고 아! 더 이상은 말해 줄 수 없어… 이 얼마나 처참한 세상이란 말인가!?

얘기하다 보니 격해졌는지 어느새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것을 보고 있던 사

이야는 로노와르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가 느껴졌기에 마음이 동정심으로 가득 찼다.

불쌍한 사이야는 정말 물어봐서는 안 되는 녀석에게 물어본 결과로 세상을 정말 끔찍한 곳

으로 인식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시스 일행은 전장을 벗어난 지 일주일 만에 야센시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보통의 여행자들이면 족히 한 달은 걸리는 시간이었지만, 워낙 특출난 전사들로 이루어진

그들인지라 여행의 시간이 사 분의 일로 단축된 것이다.

?엄청난데??

야센시티에는 마령의 배 백여 척이 항구 밖의 바다에 대기하고 있었고, 시의 외곽에서는 수

만 명의 병사들이 원정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안은 도시 안에도 넘쳐 나는 병사들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마령에서 드디어 북극령으로 본격적으로 진군하는가 보군.?

항구의 전함과 병사들을 보며 시스는 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될까??

시안은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의문을 가졌다.

?뭐가 부족한 거야??

크레이드가 묻자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북극령은 마물들의 천지라고 들었어. 마물 병사와 인간 병사의 비는 3:1 정도로 마물의 숫

자가 세 배가 넘는데, 왜 루덴스는 인간 병사만으로 북극령 침공을 준비하는 거지??

그 말에 파르가가 주위를 돌아보니 시안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들의 공포

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마령의 군대가 마물로 이루어졌다는 데 있었다.

이는 마계의 마족들이 이룩해 놓은 국가이므로 이곳의 인간들은 일종의 이방인들일 수도 있

기 때문이다. 뭐, 지금에 와서야 마령의 백성으로 굳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병사들의 비

율에서 인간의 병사의 수는 마물 병사의 십 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현재 야센시티에서 대기하고 있는 병사는 미루어본다면 마령에 있는 모든 인간 병사의 대부

분이 몰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루덴스가 이끄는 마물로 이루어진 병사는 보통 인간 병사에 비한다면 적어도 두세 배 정

도 전투 능력이 더 높다고 볼 수 있지. 무슨 이유일까? 루덴스가 그 정도도 모르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단 말이야.?

크레이드는 궁금하다는 듯이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말했고 다른 사람들 역시 이상하다고 생

각하고 있었다.

이때 일행의 이런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려는 듯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북극령에서의 마물의 죽음은 어둠의 기운을 마계로 환원시키지 못하고 봉인돼 있는 마신

에게 돌아가게 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출병시키는 거예요.?

친근한 목소리. 시스 일행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고, 그 순간 시안은 깜짝 놀라며 그

에게 뛰어들었다.

?라디안!!?

시안은 오랜만에 라디안을 봐서인지 그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더니 뺑뺑 돌기 시작했

다.

?으윽! 시안 누나, 이제 그만 해요. 어지러워 죽겠어요.?

라디안은 시안이 자신을 들고 도는 덕에 머리가 어지러운지 헤롱헤롱거렸고, 그제야 시안은

라디안을 내려놓고 가슴에 폭 안았다.

?헤어진 지도 얼마 안 됐는데 한 일 년 헤어진 것 같다.?

라디안이 시안의 가슴에 안기자 질투가 난 크레이드가 잽싸게 달려와 시안과 라디안 사이를

떼어놓자 시스는 큰 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크레이드, 라디안을 질투하는 거야? 아직 어린애라고, 어린애!?

?무슨 소리야! 남자 나이 열다섯이면 다 컸지!?

시스의 말에 말도 안 된다는 듯이 크레이드가 소리치자 시안의 발길질이 정확히 그의 뒤통

수를 가격해 왔다.

?까불지 마! 성기사 주제에 질투하기는.?

?질투라니…….?

크레이드는 억울하다는 듯이 시안을 쳐다보았지만 시안은 들을 건덕지도 없다는 듯이 라디

안에게 물었다.

?칠인회 물이 좋긴 좋은가 보다. 더 늠름해진 것 같네??

?누나도 참. 좋은 스승님을 만났으니까요.?

?좋은 스승님??

?예. 칠인회의 2회주이신 헤른드 라비에타님이 저의 스승님이거든요.?

라디안의 말에 시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라디안이 천재 마법사인 건 알고 있었지만 칠인

회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핵심 인물 중의 하나인, 그것도 2회주의 제자로 들어갔다

는 것은 놀라운 일이기 때문이다.

?잘됐구나. 그런데 말야, 마물들이 죽는다면 어둠의 기운이 마신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무슨

소리지??

시스는 먼저 라디안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자신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예. 북극령은 천신전쟁 때 궁극의 마신 크레이져가 봉인당한 곳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마령 다음으로 마물들의 힘이 강성한 곳이 된 거죠. 천신 레이뮤님에게 봉인당하긴 했지만

마신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죠. 다른 곳에서 마물들이 죽으면 어둠의 힘은 다시 마계로 환원

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마물들에게 이어지지만, 그곳만큼은 마신의 힘이 마계로 환원되지 않

고 마신의 봉인지로 흘러 들어갑니다. 마물들이 가지고 있는 어둠의 기운, 즉 공포, 절망, 복

수심 같은 것들은 마신에게로 모여, 그곳에서 죽는 마물의 숫자만큼 봉인을 깰 수 있는 힘

이 늘어난다는 거죠. 그러니 마령에서는 주력군인 마물의 군대를 북극령으로 보낼 수 없는

거예요.?

?음, 그래서 크샤스는 자신의 영토 안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묵과하는 것인가??

?그렇게 보는 것이 정확하죠.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루덴스님은 어쩔 수 없이 인간들로만

이루어진 군대를 /북극령/으로 보내는 것이고요.?

라디안의 설명에 다른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시안만은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어차피 인간들로만 이루어진 군대가 북극령으로 간다고 해도 마물이 죽는 것은 마찬가지

잖아? 차라리 북극의 마물을 이곳으로 끌어들여 싸우거나 하는 식으로 해서 인간으로만 이

루어진 군대를 보내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한 게 아닐까??

?예, 시안 누나의 말이 옳긴 해요. 하지만 시간이 없어요. 일단은 이미 봉인 해제 의식이

진행 중이니 그것을 막기 위해서 마령에선 반드시 군대를 보내야 하고요. 마령에서 마물 병

사들을 내세운다면 그쪽에선 세뇌당한 마물 전체를 전면에 내세울 것이 뻔한 거라서요. 그

렇기 때문에 이 전쟁은 몇 개의 전제가 붙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최선의 방책이라 생각해

서 시행한 것이 마령에서 인간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보내는 것이 된 거죠.?

?어쨌든 봉인 해제 의식을 막기 위해선 군대를 보내는 수밖에 없다는 거군.?

?예. 그래서 마령의 병사들로는 부족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총회주의 명령에 따라 칠인회

의 마법 병단도 마령의 병사들과 함께 북극령으로 가게 돼요. 전 이번 마법 병단의 단장이

신 6회주 로우나님의 부관으로 가게 됐고요.?

시스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도 /북극령/에 가야 하는데 너의 신세 좀 지고 싶구나.?

?그럼요. 로우나 단장님도 시스 형을 만나고 싶어하시더라고요.?

?나를??

?예. 제가 시스 형 얘기를 조금 했거든요.?

?음… 만나도 나쁠 것은 없겠지.?

시스는 단순히 비밀 마법 조직인 칠인회의 회주를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여

고개를 숙인 것인데, 라디안은 그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스에게 가까

이 가서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시스 형 스타일이에요.?

?응??

?금발의 삼십 대 초반, 얼굴도 미인이고요. 키는 167 정도? 거기다가 칠인회 간부이니 돈은

또 얼마나 많겠어요. 물론 과부라는 것도 잊지 않았어요.?

시스가 과거에 좋아했던 여자가 금발의 여인이었기에 라디안에게 금발의 여인, 거기다가 삼

십 대 초반에 과부 아니면 흥미가 안 생긴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라디안은 시스에게 로우나 단장을 소개하려는 것이다.

일종의 중매쟁이라고나 할까?

물론 라디안은 뺨 석 대 맞고 엉엉 울 수도 있다.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

지만, 시스의 생각으로는 라디안이 칠인회 출셋길을 위해 자신과 로우나 회주를 이용하려

하는 건 아닐까라는 한 발짝 앞의 생각을 잠시 해봤다.

?너, 혹시 출세에 나를 이용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싫으면 말고요.?

?싫기까지야.?

사실 라디안은 시스의 말에 조금 찔리긴 했다. 그가 말하는 생각이 전혀 없지는 않았기 때

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로우나 회주가 시스 형의 이상형인 것만은 틀림이 없기에 넘어가기

로 했다. 잘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죽어도 삼 년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아.?

라디안이 이렇게 중매에 매달리는 이유는 사실 칠인회 사무처 때문이었다. 칠인회에 가입한

마법사들은 반드시 3년 간을 거처야 한다는 공포의 사무처. 하지만 그것을 빠져나갈 방법은

있었으니, 칠인회의 일곱 회주 중 3명의 동의만 있으면, 이른바 면책 특권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디안의 스승인 헤른드 라비에타는 말만 잘하면 되고, 친구이신 웨더

리우스 역시 스승의 얼굴을 봐서 찬성해 줄 것이 뻔했기 때문에, 한 사람만 더 구하면 되는

라디안은 처음 자신을 보며 마음에 들어했던 로우나 회주를 찍어 드디어 공략전을 시작한

것이다.

세 명의 회주에게 면책권을 받는다면 칠인회에서 이른바 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꿈의 존재가 되니 시스는 라디안의 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미소 짓던 라디안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그런데 파르가 형이 안 보이네요??

라디안의 말에 크레이드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파르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곤 그 일을 하고 있지.?

?음… 섭섭하긴 하지만 다행이네요. 파르가 형이 자신의 일을 찾았다니 말이에요.?

?그렇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파르가 형이라면 잘 해내리라 믿어요.?

?그래, 나도 파르가를 믿는단다.?

크레이드는 파르가가 모든 일을 안전하게 끝내고 만족하게 웃는 것을 상상하며 그도 미소를

지었다.

한편 수정궁의 상황.

사이야는 자신의 꿈이 얼마나 허황되었던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물론 그것을 말해 준 당사

자가 로노와르라는 것이 조금 신빙성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얘기가 달라… 시녀들에게 들은 말로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시녀들에게서 들은 것은 멋진 백마 탄 왕자님과 멋진 기사들이 사악한 마족과 싸워 승리하

는 아름다운 세상의 이야기였다. 그런 것만을 들은 사이야는 정말로 사람 살기 힘들 것 같

은 로노와르의 세상 이야기와 비교하면서 조금씩 꿈이 깨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렇게 자신의 꿈이 깨지는 것은 너무나 억울했다.

어디서 굴러 들어온(?)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꿈을 이렇게 짓밟다니… 사이야는 로노

와르에 대한 증오심이 소록소록 솟아나고 있었다.

?그래, 처음 멍한 모습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저 녀석은 내가 밖으로 나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오빠가 보낸 스파이가 분명할 거야.?

단숨에 로노와르를 크샤스의 부하로 만들어 버린 사이야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

했다.

스파이에게 당할 수는 없다는 굳은 의지를 초롱초롱한 눈에 새기며 사이야는 그를 보며 소

리쳤다.

?솔직히 말해요, 로노와르 씨! 당신은 우리 오빠의 스파이죠!?

?엥??

갑자기 사이야가 벌떡 일어서며 자기에게 소리치자 로노와르는 영문을 모르고 그녀를 멍하

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흥! 그런 멍한 모습으로 위장을 해도 소용없어요! 비열한 녀석! 이렇게 어여쁘고 꿈 많은

소녀를 농락하고도 포커페이스를 잃지 않다니! 역시 오빠가 보낸 사람답게 프로시군요!?

멍한 얼굴이라도 계속 유지하면 포커페이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로노와르였

지만 어떡하랴. 멍멍함은 그 자체인 것을.

사이야의 오해? 사실 그 딴 것은 로노와르에게 별로 중요할 것은 없었다. 배고픔이 사라진

이상 이제 여기에 있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로노와르는 사이야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이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이미 생각을 굳힌 듯하니 더 이상 얘기해 봤자 소용없겠지. 하지만 정말 세상은 끔찍한

곳이야.?

?흥! 끝까지 날 능멸하려 하는군!?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사이야는 로노와르가 했던 말을 믿게 되었다.

어느 순간 로노와르의 머리 위에서 검은색 운무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사이야는 그것이

로노와르가 나타났을 때 생겼던 검은 구름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사이야가 손가락을 자신의 머리 위로 가리키자 로노와르는 멍한 얼굴로 위를 쳐다보았는데

그 순간 두 개의 물체가 로노와르의 머리를 향해 급강하하며 멋진 하강 어택을 먹여왔다.

?꾸엑!?

정체 모를 물체에 깔려 버린 로노와르는 맨 처음 이곳에 떨어질 때와 비슷한 의미 모를 비

명과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여기가 맞는데? 벌써 다른 데로 잡혀갔나??

루드웨어였다. 루드웨어는 길드에서 얻어낸 방법으로 대륙에 대충 연락을 한 후 아이샤와

함께 로노와르를 보낸 곳으로 온 것이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자신의 앞에 핑크 색의 드레스를 입은 귀여운 계집아이를 발견한 루드

웨어는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어리지만 조금 거만한 기운과 이 상황에서도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귀족 집안의

아이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여쁜 아가씨, 반갑습니다. 전 로아냐드의 궁정 마법사 루드웨어라고 합니다.?

?아! 전 사이야 드 페루나 에드리론… 하르베이드라고 합니다.?

루드웨어는 제국의 왕족 이후로 이렇게 긴 풀네임을 듣기는 오랜만이었기 때문에 흔들리는

골을 잠시 진정시킨 후 간신히 말을 이을 수 있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간단히 사이야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예, 루드웨어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이곳에서 초록색 머리를 가진, 조금은 어벙한 젊은이를 보지 못

했습니까??

?로노와르란 사람을 말씀하시나 보군요.?

사이야의 말에 루드웨어는 기뻐하는 얼굴로 말했다.

?예! 맞습니다. 조금 얼빠진 녀석이긴 해도 동료라서 찾으러 왔는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

는지… 녀석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루드웨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이야는 그의 발 밑으로 손가락을 가리켰고, 그 손가락 끝

을 따라 눈을 돌린 루드웨어는 자신의 밑에 처참하게 깔려 있는 로노와르를 발견할 수 있었

다.

이미 그것을 알고 있던 아이샤는 루드웨어의 발에 밟혀 있는 그를 보며 한숨을 쉬고는 뒤쪽

에 서 있었고, 루드웨어는 놀란 얼굴을 하며 소리쳤다.

?로노와르! 네가 아무리 밑바닥 인생이라고 해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깔리다니!!?

루드웨어는 로노와르를 인생 포기자로 만들어 버리고는 녀석을 들어 올려 흔들기 시작했고,

사이야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둘의 엽기적인 행동을 보고 있던 신관 아이샤는 신성 마법으로 로노와르에게 신성력을 주입

했고, 그제야 그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메… 메…….?

?메??

로노와르가 갑자기 메메거리자 루드웨어는 이상한 얼굴로 물었는데 얼마 안 있어 로노와르

는 정확한 대사를 읊을 수 있었다.

?메테오다!!?

메테오. 마법학회에서 50년 간의 조사 끝에 만들어냈다는 대륙 마법 길드 출판 대륙 마법사

전 3권 27페이지 셋째 줄에 나오는 마법으로, 9서클 궁극 주문 중의 하나인 그것은 우주의

운석을 소환하여 지상계로 떨어뜨리는 고도의 전체 마법이다.

아직까지 개인으로 이 마법을 실현했다는 사람은 없지만, 마법 종족인 드래곤들은 몇 번 메

테오를 통해 인간의 도시를 공격한 적이 있다는 것이 제국 역사서에 나와 있다.

비공식적으로 늙은 드래곤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건강 스포츠인 게이트볼을 즐기기 위해

한동안 줄기차게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의 상황을 보자면 로노와르의 눈에는 진짜 메테오가 떨어지는 것이 보였던 것일까? 물

론 아니었다.

?……??

갑자기 메테오란 말에 루드웨어와 사이야, 아이샤는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메테오는커녕 별

똥별도 보이지 않았기에 평상시처럼 헛소리하는 것으로 넘겨 버렸다.

하지만 왜 로노와르는 메테오라고 소리친 것일까? 전혀 상황에 맞지 않는 이 외침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는 사람이 있는, 고로 이 상황을 로노와르의 눈으로 소개하자면 이렇다.

사이야의 손짓에 위를 쳐다보던 로노와르는 갑자기 떨어지는 일단의 무리에 깔려 정신을 잃

고 만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환한 빛과 함께 정신이 차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대지가 흔들리며

(루드웨어가 로노와르의 몸을 잡고 뒤흔들던 장면) 간신히 뜬 눈에는 엄청난 숫자의 별이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머리의 충격으로 별이…).

지축을 흔드는 굉음(루드웨어가 로노와르를 부르는 소리), 난무하는 별들―머리 위를 돌던

별이 루드웨어가 흔드는 바람에 난무로 바뀌었다―이 모든 상황을 정리한 결과! 로노와르는

이것이 9서클 궁극 마법의 하나인 메테오라는 것을 짐작했고 소리쳤다.

?메… 메… 메테오다!!?

여전히 한심스러운 로노와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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