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성기사들의 회군
로아냐드 정벌군이 머무르고 있는 주둔 기지의 가운데에는 하얀색의 천막들이 자리 잡고 있
었다. 이곳은 제국의 1차 정벌군을 따라온 사제들과 그들을 호위하는 패러딘들이 머무르는
천막이었다.
치료술을 행할 수 있는 사제들은 전쟁 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교단에서는
황제의 명을 받고 급히 100명의 사제단과 2,000명의 성기사단을 파견한 것이다.
아리시아 성교회의 상징인 황금 태양의 문장이 그려져 있는 천막은 교황의 명을 받고 이곳
으로 파견된 성기사단의 단장이 머무는 숙소였다.
간단한 간이 침대와 의자 등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천막 안에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성기사 한 명이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붉은 머리에 백색의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는 그의 왼쪽 뺨에는 길다란 검상 자국이 그려
져 있어 한눈에 봐도 강해 보일 것 같은 인상이었다.
험악한 인상과는 달리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는 이 사람은 로아냐드 제국의 제1의 성기사라
고 일컬어지는 하덴 폰 세피리드 남작으로, 현재 1차 정벌군의 사제단과 패러딘을 통솔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천막을 헤치고 갈색 머리의 젊은 패러딘 한 명이 들어왔다. 그는 남작의 조카인 라디에스
폰 그리드로 현재 삼촌인 그를 도와 부관의 직위를 가지고 있는 자였다.
라디에스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많은 지식과 노련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또 차대 패러딘
들의 단장으로 내정되어 하덴 남작이 데리고 다니며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그래, 간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남작의 물음에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정중한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저희가 갔을 땐 이미 마을 사람들의 화장을 끝내고 사라진 후였습니다. 발자국 등을 살펴
본 결과 저희 측의 병사를 전멸시킨 자들의 수는 4사람으로, 그중 한 명은 여자인 것 같습
니다.?
?고위 사제를 넘어서는 신성력이 느껴졌다. 현재 제국에서는 파문 사제들을 제외하고는 아
무도 발휘할 수 없는 신성력을 말이야.?
어이없는 일이었다. 신성 제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제국에서 교황은 물론 추기경이나 고위 사
제들의 신성력은 견습 사제 수준에 머물거나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국의 모든 신전에 퍼지고 있는 전염병과 같은 이 사태는 성교회의 타락으로 인한 것이었
다. 아직 타락에 물들지 않은 중급 사제까지는 수양에 따라 신성력이 놓아졌지만, 타락에 눈
을 뜨기 시작하는 고위 사제급에 오르면 조금씩 신성력이 사라지고 만다.
이 때문에 많은 중급 사제들은 신전의 틀을 벗어나 대륙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들의 신성력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높아져 현재에 와서는 몇몇의 떠돌이 사제들의 신
성력 수준은 과거의 고위 사제 수준에 버금갈 정도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신전에서는 떠돌이 사제들을 신전으로 끌어들이거나 그 명령을 받아들이
지 않는 경우에는 교단에서 파문시키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신전의 타락을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떠돌이 사제들은 신전으로 가지 않았다. 현재의
신전은 신전이 아닌 욕망의 집합소와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을 본 교황은 신전으로 돌아오지 않는 사제들을 보는 즉시 패러
딘들로 하여금 이단의 죄로 주살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떠돌이 사제들의 대부분이 사제의 복장을 벗어버리고 여행자들의 모습을 하며 사
라져 버린 정통 사제들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대륙에서 파문 사제라 불리며 핍박받고 있는
그들을 백성들은 신전에 있는 사제들보다 더 칭송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패러딘들에게 지시를 내리겠습니까? 교황 성하께서는 파문 사제들의 척살을 제일 강령으
로 내리셨는데 말입니다.?
남작은 라디에스의 말을 듣더니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라디에스, 너라면 어떡하겠느냐? 그 파문 사제를 찾아 죽이겠느냐??
남작의 말에 라디에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 교황께서 명령하신 파문 사제들의 추살령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파문 사제
들이 교단의 명령을 어기고 대륙을 떠돌아다닌다고는 하나 민중들에게는 타락한 고위사제보
다는 로아냐드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파문 사제들이 더 귀중한 존재들이니까요./ 차라리
제게 힘이 있다면 먼저 썩어 빠진 신전의 고위 사제들을 베겠습니다.?
?옳은 말이다. 또한 현재 이곳에서 자행되는 학살 역시 잘못된 일. 휴, 언제까지 거짓된 신
관들의 명령에 따라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나타난 파문 사제는 놓아주는 것이 나을 것
같구나. 이 일이 파견 사제들의 귀에 들리지 않도록 해라.?
?예.?
하지만 남작의 지시는 헛되게 변해 버리는 듯 천막을 헤치며 티끌 하나 묻지 않은 흰 사제
복을 입은 뚱뚱한 체구의 사제 한 명이 노한 얼굴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남작은 그가 무슨 이유로 노한 얼굴로 들어오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한숨
을 쉴 수밖에 없었다.
/천막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교황에게 총애를 받고 있는 사제로, 현재 정벌군 사제단의 단
장 직위를 지니고 있는 페드로 사제였다./
교황의 옆에서 갖은 아부를 떨며 성교회 내에서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는 그는 총책임자인
남작을 보며 인사조차 하지 않고 다짜고짜 그의 앞으로 다가가 책상을 치며 소리쳤다.
?파문 사제가 이곳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남작! 교황 성하께서 내리신 명령을 잊지
는 않으셨겠죠??
전형적인 부패한 성직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페드로 사제의 말에 남작은 역겨움에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작은 그를 보며 귀찮다는 표정을 역력히 들어내고는 말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전쟁터.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적군이 있는 곳입니다. 그렇
기 때문에 파문 사제 하나를 잡기 위해 병사들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파문 사제들의 이단 처형은 교황 성하의 제일 강령으로, 어느 것보다
우선시되어야 함을 잊었습니까!!?
사제는 남작의 말에 분노한 목소리를 터뜨렸지만 솔직히 남작은 파문 사제를 추살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부패한 성직자를 보며 입맛을 다시다가 곧바로 자신의 마음을 결정
할 수 있었다.
?소식을 듣고 바로 온 모양이시군요??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교단에 반하는 무리들을 빨리 처벌……!?
페드로 사제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 순간 그의 가슴을 뚫고 나오는 검이 있었
기 때문이다.
그 검의 주인은 뒤에서 사제를 지켜보고 있던 남작의 부관 라디에스로, 남작의 무언의 명령
에 따라 단숨에 페드로 사제의 등을 꿰뚫어 버린 것이다.
남작은 검에 맞고 쓰러진 사제를 보며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라디에스에게 말했
다.
?아! 아깝게 됐군. 고위 사제 분께서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으시다니 말이야.?
그의 탄성 비슷한 소리를 들으며 라디에스는 검에 묻은 피를 쓰러져 버린 사제의 옷에 닦고
는 말했다.
?아무래도 회군을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페드로 사제가 죽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본
전에서 조사단이 파견될 테니까요.?
?그래야겠지. 거참, 이 전쟁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얽힌 것 같아. /한 달의 시간만 있었어
도 저희 측에서 계획하고 있던 교단의 개혁이 이루어 졌을텐데 말이야.?/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재 교단은 외부의 일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단 내
부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니까요.?
라디에스의 말에 남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위 전쟁에 우리의 피를 흘리고 싶진 않다. 내일 전 사제단과 패러딘들에게 본국으로
회군하라 지시해라.?
?예.?
?또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한 칠인회에게 앞으로 10일 정도 후에 아티드 성에서 만나겠다고
전해라. 아리시아 성교회의 진정한 성전을 시작하고 싶다고 말이야.?
?네.?
라디에스가 나가자 남작은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이 일이 진정으로 교단을 위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말이다. 하지만 남작은 후회하지는 않았다. 썩어 빠진 교단, 그것을 도
려내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태양신 아리시아님을 믿는 더 많은 신도들이 피해를 입어야만 하
기 때문이다.
마령을 정벌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신성기사단은 한 달 후 아리시아 성교회의 본단을 공격함
으로써 훗날 진정한 성전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타락한 교황은 성교회의 지하 감옥에 갇혀 20년 후 생을 마감하게 되며, 수많은 사제들은
타락 타제의 인장이 찍혀 성교회 내에서 영원히 추방당한다.
이 일로 제국 내의 교권은 크게 약화되어 황권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게 했지만, 성교회의
역사에서는 오히려 이 사건을 성기사단의 가장 올바른 행동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결과는 후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었다.
다음날 사제단과 성기사단의 회군 소식을 들은 제1차 정벌군의 사령관인 로베르토 백작은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막 전쟁이 시작되는 시기에 사제단과 성기사단이 회군한다는 것은 그만큼 전 장병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사제단이라는 것은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것도 있지만, 더 주된 이유는 신을 모
시는 사제단이 곁에 있음으로써 거의 대부분 아리시아 성교회의 신도인 병사들에게 전쟁터
에서 죽는다고 해도 신의 은총을 받아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마음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기사단의 회군을 두고 사람들의 반응은 두 부류로 나뉘어지고 있었는데, 중앙 귀
족군인 로베르토 백작과 안토니오 백작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한 반면, 지방 호족군의 수
장인 리미트 백작과 렌피트 남작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중앙 귀족군 귀족들의 당황
스러운 표정에 즐거워하는 듯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리미트 백작은 어쩔 줄 모르는 두 사람을 보며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군요. 사제단과 성기사단이 회군한다면 더 이상 성전은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리미트 백작의 말에 아픈 곳을 찔린 듯 로베르토 백작은 죽일 듯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악마의 땅을 정벌하라는 황제 폐하의 명을 거부하겠단 말씀이십니
까??
?어허, 말이 지나치십니다. 어찌 폐하의 말씀을 신하인 제가 어길 수 있단 말씀입니까? 하
지만 사제단의 도움 없이 더 이상의 마령 정벌은 불가능할 뿐더러, 사제들이 빠진다면 황제
폐하께서 말씀하신 어둠의 땅에 빛을 내리기 위한 성전의 의미는 퇴색되어 버립니다. 성직
자들의 교리를 전파하지 않는 전쟁은 단순히 인간들의 아귀다툼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지방 호족 파의 일원인 리미트 백작은 로베르토 백작의 협박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있었
다. 사실 이 전쟁은 지방 호족들에게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전쟁이었다.
아직 실권을 중앙 귀족에게서 뺏지 못한 이상 마령과의 전쟁에서 점령된 영토는 거의 대부
분이 정벌군의 수뇌를 자처하는 중앙 귀족의 손으로 들어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호족들의 입장으로선 전쟁에 승리한다고 해도 아까운 병사들만을 잃을 뿐, 아무런 이득이
없기 때문에 피할 수 있는 싸움이라면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리미트 백작의 반대
편, 즉 중앙 귀족군인 로베르토 백작의 경우에는 상황이 달랐다.
그는 1차 정벌군의 수장으로서 이곳에서의 승리는 곧 황제에게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상황은 정벌군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기에 중앙에서 굳혀질 자신의 입지를
생각하며 기뻐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교단의 회군은 다 들어온 떡을 놓치는 격이었다.
로베르토 백작은 리미트 백작의 말이 전혀 틀리지 않는지라 뭐라고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
고 있었는데, 갑자기 회의장으로 한 명의 전령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로베르토 백작은 가뜩이나 리미트 백작이 성질을 긁어놓았기 때문에 화를 전령에서 쏟으려
고 생각했는지 노한 얼굴로 소리쳤지만, 전령을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급한 목소리
로 말했다.
?마, 마령의 비병들입니다!!?
?비병?!?
비병이란 말에 회의실에 있는 모든 지휘관들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병. 마령이 자랑하고 있는 군대 중 하나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마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
군대는 100년 전 루덴스가 마령을 세울 때 로아냐드 제국의 군대 반 이상을 전멸시킨 군대
였다.
회의실에 있는 거의 모든 지휘관들이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는데, 이상하게도 한 사람만
은 자신의 자리에서 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 로베르토 백작과 설전을 펼친 리미트 백작이었는데, 그는 차분한 목소리
로 전령을 보며 물었다.
?비병들의 숫자는 어느 정도인가??
?예. 정탐을 나간 레인저들의 말을 들어보면 약 1만 정도의 숫자가 주둔지로 몰려오고 있
다고 합니다.?
?재밌군.?
리미트 백작의 말에 다른 지휘관들은 놀란 얼굴을 하며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마령의
최강 부대 중 하나인 비병이 왔음에도 리미트 백작은 너무나 태연했기 때문이다.
?카이저!?
그때 리미트 백작이 소리치자 회의장 안으로 검은색의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한 명의 기사
가 들어왔다. 그는 리미트 백작이 이끄는 흑조기사단의 부단장의 신분을 가진 이로 이번 정
벌전에서 상당한 공을 세운 베란 카이저라는 맹장이었다.
?부르셨습니까.?
?흑조 제3기사대가 활약할 때가 온 것 같군. 비병 1만 정도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지??
리미트의 말에 기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맡겨만 주신다면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좋다. 제3기사대의 전권을 너에게 맡기겠다. 마령의 비병들에게 흑조기사단의 무서움을 보
여주도록.?
?예.?
흑조기사단. 후에 있을 일이지만 리미트 백작의 기사단인 흑조기사단은 이 전투 후 로아냐
드 3대 기사단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며 리미트를 공작의 직위까지 올려놓게 되지만, 부패한
황제에 의해 20년 후 역적으로 몰리며 리미트 공작 일가는 모두 죽임을 당하고 해체된다.
?휴우…….?
루드웨어 일행은 크샤스의 기사단의 추적을 간신히 따돌리고는 항구 주변의 뒷골목에 몸을
숨기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겨우 빠져나오긴 했는데 어떻게 대륙으로 건너간다지…….?
루드웨어는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백 년도 넘는 삶
에서 북극의 땅은 처음 와보는 곳이기도 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곳은 세이렌의 노래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샤스 우상주의에 세뇌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돈으로 해결해 볼 수
도 없는 형편이었다. 한 사람을 우상시하는 그들에게 뇌물이란 것은 헛된 것에 불과하기 때
문이다.
?북극의 마법사 길드로 가보는 게 어때? 마법사 길드 정도 되면 세이렌의 세뇌에서 벗어났
을 수도 있잖아??
아이샤는 문뜩 생각이 났는지 루드웨어에게 마법사 길드로 가기를 권했는데, 그것 역시 한
참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루드웨어는 이름만 길드에 올려져 있을 뿐 거의 몇십 년 동안을
길드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칠인회의 아그들이 길드에 이름을 약간 바꿔서 가입시켜 놓는다고는 했지만,
제대로 돼 있는지도 모르고 …에이, 일단 가보자.?
아이샤가 말한 방법 외에는 도저히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마법사 길드로 가기로 결심
한 루드웨어는 로노와르를 보며 말했다.
?명심할 것. 첫째, 마나 숨기고, 둘째, 아무거나 만지지 말고, 셋째, 뭐라고 해도 꾹 참고 있
어. 안 그러면 드래곤이란 게 들통나서 실험 재료 되기 십상이니까.?
대륙의 마법사 길드는 요즘 실험 재료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엄청난 마나를
가진 드래곤이 무턱대고 들어갔다가는 한순간에 재료 되기 십상이었다. 해서 루드웨어는 로
노와르에게 몇 가지 지침 사항을 세뇌시켜 놓은 후 북극의 땅에 있는 마법사 길드로 향했
다.
대륙 마법 길드는 초국가적 집단으로 국가에 상관하지 않고 거의 모든 도시에 길드 사무소
를 가지고 있다.
이 북극의 땅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이곳에 주민들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마법 길드는 존재
했다(북극의 땅에 있는 마법 길드는 일종의 연구 기관으로 북극령에 살고 있는 마족들의 생
태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법이란 자체가 일종의 고부가 가치 사업이었기 때문에 북극의 땅에서도 마법 길드의 영향
은 적지 않았다.
길드 사무소는 항구 도시 광장 근처에 10층짜리 사각형의 탑 모양을 띠고 있었는데 도시 어
디에서 보아도 마법 길드의 건물이 한눈에 드러나게 만들어졌다.
길드 건물 안으로 들어선 루드웨어는 한쪽에서 접수를 받고 있는 아가씨에게 갔다.
?네, 대륙 마법 길드 사이온 지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접수처 안에서 유창하게 말하는 금발 머리의 아가씨에게 루드웨어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머
리카락 하나를 그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루드웨어 헤긴드라고 합니다. 신원 확인을 해보십시오.?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발의 접수처 아가씨는 자리를 옮겨 네모난 상자로 다가가 무엇인가를 치기 시작했는데 그
것은 콤퓨러라는 기계로 대륙 마법 길드에서 만들어낸 전산 처리 기구였다.
수많은 마법사들의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콤퓨러라는 기구로 신원을 확인하
는 것이다. 루드웨어가 준 머리카락은 일종의 지문 확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신원과
함께 기억된 마법사들의 DNA를 검색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나온 콤퓨러는 페리엄4라는 기종까지 있는데 너무 발전한 하드웨어 탓에 소프트웨
어가 따라가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아! 회원님, 7서클 익스퍼트의 마도사셨군요. 아직 골드 카드를 만드시지 않으셨는데 만드
시겠습니까??
?골드 카드요??
?예. 골드 카드를 만드시면 포션이나 마법 재료가 10% D.C는 물론 대륙 마법 길드의 제휴
표시가 있는 모든 여관이나 휴양 시설 역시 10% 절감된 가격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또 회원 점수가 10,000점을 넘으시면 미쓰릴 카드를, 50,000점이 넘으시면 오리하르콘 카드
를 만드실 수 있으며, 각각 부가되는 서비스는 골드 카드와 마찬가지이지만 카드 종류에 따
라 20, 30% 절감된 가격에 서비스를 즐기실 수 있으십니다.?
새삼 루드웨어는 세월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세상이 마법 온라인
시대를 열었다고는 하지만 이건 판타지 세계로는 조금 심하지 않는가.
?저, 이곳 길드 지부장을 만나뵐 수 있을까요??
?아, 물론입니다. 대륙 마법 길드에서는 6서클 마스터의 마도사 이상급에게는 각 길드 지부
의 지부장을 직접 만나 접수할 수 있는 특례가 있으니까요. 손님께서 접수하시는 문건은 마
도사 우대 조항에 의해 /제일 우선으로/ 처리하실 수 있으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골드 카드 만들려면 얼마나 걸리죠??
?전산 처리 작업과 카드 작업만 하면 되니 지부장님을 만나고 오시면 바로 건네드릴 수 있
습니다.?
그 말에 우물쭈물하던 루드웨어는 큰마음 먹고 다음 대사를 읊었다.
?카드 만드는 데 얼마입니까??
?아! 마법 길드에서는 골드 카드 이상의 회원 분들에게는 카드를 공짜로 만들어드리고 있
으니 손님께선 신청만 하시면 됩니다.?
?부탁합니다.?
?예.?
루드웨어는 접수처 아가씨의 물 흐르는 듯한 설명에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구석진 곳의
길드 지부라고 하지만 역시 신용 으뜸의 대륙 마법 길드는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공짜로 골드 카드를 만들게 된 루드웨어의 입은 찢어질 듯이 벌어져 있었다.
일행은 루드웨어 덕에 마도사라는 높은 분의 일행이 되어 마법 길드 사이온 지부의 지부장
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23 마령과 제국의 전투
?쇠뇌 준비!!?
마령과 로아냐드 제국의 전쟁터. 마령은 불꽃의 용장이라 불리는 케이드 공작이 이끄는 비
병 1만이, 로아냐드 측에서는 흑조기사단의 부단장인 베란 카이저 장군이 이끄는 3기사대 1
만5천의 병력이었다.
병력 면에서는 흑조기사단이 앞선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마령이 자랑하는 비병. 일반 병력의
수배의 기동성을 가지고 있는 마령이 자랑하는 초엘리트 부대였다. 하지만 베란 장군을 비
롯한 흑조기사단 전원은 한 치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베란 장군이 명령을 내리자 후방에 위치한 3천의 쇠뇌병이 비병들을 향하여 쇠뇌를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보통의 쇠뇌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병들의 비늘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
는 케이드 공작은 하늘을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으며 흑조기사단을 향해 전군 공격을 지시했
다.
?전 비병은 하강 공격하라!!?
공기를 찢을 듯한 소리가 대지를 뒤덮으며 드디어 마령이 자랑하는 비병의 하강 공격이 시
작되었다.
?발사!?
어느 정도 비병이 사정 거리에 이르자 베란 장군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쇠뇌병에게 일제
히 발사 명령을 내렸고, 명령과 함께 수천 발의 쇠뇌가 하늘로 치솟아올랐다.
공중에서 와이번에 타고 있던 케이드 공작은 적들이 쇠뇌를 쏘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
다.
?하하하! 어리석은 것들, 와이번이나 각종 비행 마물로 이루어진 우리 비병들의 단단한 비
늘에 쇠뇌 정도가 통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하지만 그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쿵! 쿠궁! 쿵!
하늘로 치솟아오른 쇠뇌들은 갑자기 엄청난 폭음과 함께 터져 나갔고, 폭발의 여파에 휩쓸
린 수백의 비병들이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일이!!?
쇠뇌. 로아냐드 군이 쏘아 올린 쇠뇌들은 마법적 장치가 되어 있는지 공중에서 폭발을 일으
키기 시작한 것이다.
한두 발 정도야 단단한 비늘로 폭발을 견디어내고는 있었지만, 공중에서 휘몰아치는 불꽃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비병들은 견디지 못하고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것이다.
?제1, 2, 3기병은 출격하라!!?
베란 장군의 명령이 터지자마자 진의 선두에서 대기하고 있던 3,000여 명의 기병들은 쇠뇌
의 폭발로 떨어진 비병들이 있는 전쟁터로 랜스를 들고 밀려갔고, 그 뒤를 이어 5,000여 명
의 중갑 보병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비병들은 하늘에서는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지만 땅에서는 중급의 마물보다 약한 면을 가
지고 있었다.
폭발에 휩쓸려 땅에 떨어진 비병들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기병들
의 밥에 되어야 했고, 기병들에게 다행히 살아남은 비병들도 이어서 진격해 오는 중장갑 보
병들에 의해 고혼이 되어야 했다.
지상의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을 때에도 쇠뇌병들의 활은 쉬지 않고 공중에서 우왕좌왕
하는 비병들에게 쏘아졌다.
?우군은 쇠뇌를 쏘는 쇠뇌병만을 공격하고, 좌군과 중군은 적의 본진을 공격한다. 후군은
지상으로 강하 공격하라.?
케이드 공작은 폭발 쇠뇌로 전군이 어지러워지자 텔레파시를 사용하여 각 군에 명령을 전달
했다. 케이드 공작의 지시를 받은 비병들은 각자가 맡은 임무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
령이 자랑하는 비병인만큼 처음 시작에서 진열이 어지러워지기는 했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
리고 흑조기사단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무기는 너무 강력했다.
공작의 지시로 쇠뇌병을 공격하기 위해 들어간 우군 1,500의 비병은 쇠뇌병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폭발에 휩쓸려 많은 수가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큰 상처를 입은 와중에도 힘을
내어 쇠뇌병에게 도달했을 때에는 언제 기다렸는지 모르게 튀어나오는 경갑 보병의 창에 막
혀 제대로 된 공격조차 못하고 있었다.
?후방 쇠뇌병은 본군으로 진격하는 적의 비병을 공격하라!?
베란 장군은 적이 나뉘어서 본군을 공격하려고 하자, 쇠뇌병을 두 개로 나누어 본군을 습격
하기 위해 날아오는 비병의 군대에게 폭발 쇠뇌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적의 본군을 공격하기 위해 진격하던 좌군과 중군은 갑자기 쇠뇌병에 의해 후방에서 폭발
쇠뇌 공격을 받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고 진형이 무너져 가기 시작했다.
땅으로 추락하는 비병들이 많아지자 케이드 공작은 더 이상의 전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
며 전군에 후퇴를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
?전군 후퇴하라!?
케이드 공작에 명령에 정신을 차린 비병들은 쇠뇌들의 폭발을 헤치며 후방으로 후퇴하기 시
작했다.
마령의 비병 1만과 흑조기사단 1만 5천의 병력이 벌인 첫 전투에선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
고 로아냐드 제국의 흑조기사단은 전투 시작 1시간여 만에 엄청난 전과를 거두었다. 마령의
비병들은 총 1만의 군사 중 3천여 명이 전사하고 수많은 비병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진 데
반해, 흑조기사단은 기병 100여 명과 중장갑 병 70명이 중경상을 입은 데 그치는 엄청난 대
승을 거둔 것이다.
이 전투에서 가장 큰 승리의 조건이 된 것은 흑조기사단의 쇠뇌병이 쏘아 올린 쇠뇌로, 이
것은 연금술사 조합에서 만든 폭발성 물질과 간단한 플레임 주문을 각인시킨 은 활촉을 사
용한 것이다. 이것은 일정한 시간에 공중에서 폭발해 화염 폭풍을 일으키게 제작된 화살이
었다.
이제까지 공중으로 공격하는 마물들에 대항할 때 활이나 마법사들의 마법에만 의존한 제국
측으로서는 리미트 백작 측의 연구에 의해 굉장한 신무기를 얻게 되었지만, 모든 전술의 기
본을 지상이 아닌 공중 공격에 중점을 두었던 마령 측으로서는 전술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
올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 엄청난 신무기로 인해 제국 측의 사기는 엄청나게 상승됐지만, 모든 사람을 만족시
킨 것은 아니었다. 지방 호족과 대치하고 있던 일련의 무리들, 바로 중앙 귀족들의 안색은
시퍼렇게 변해간 것이다.
실질적인 1차 정벌군의 수장은 중앙 귀족군의 로베르토 백작으로 그가 이번 침공에 의해 상
당한 공을 세운 것은 분명하지만, 마령 침공의 가장 문제점으로 작용한 비병들을 패주시킨
리미트 백작의 공은 그의 것을 덮어버리고도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알지 못하는 엄청난 사실이 있었다.
이후 리미트 백작가에 관하여 베란 장군이 쓴 비사에 실리는 이 이야기는 베란 장군이 얼마
나 힘들게 싸워왔는가를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
전투가 끝난 후 리미트 백작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베란을 데리고 가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몇 발 쐈냐…….?
리미트의 백작의 말에 베란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쉽게 말했다.
?3,000명의 쇠뇌병이 10발 이상은 쐈을 테니 한 30,000발이 넘지 않을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통 쇠뇌는 다시 뽑아서 쓸 수도 있지만 /리미트가/의 특제 폭발 쇠뇌
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일회용. 거기다가 한 발당 1골드 이상의 고가품임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3만 골드 이상의 지
출이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1골드는 보통 평민 가정의 한 달 생활비임을 강조합니다. 1
골드는 백 실버, 1실버는 백 브론즈로 밀 빵 한 개의 가격은 10브론즈임).
베란의 말이 끝나자마자 리미트는 떨리는 몸을 참지 못하고 분노의 어퍼컷을 베란에게 날렸
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내가 1만 발 이상은 쓰지 말라고 했잖아!!?
분노의 어퍼컷에 다운되어 버린 베란은 쓰러진 와중에서도 변명은 빼놓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대승 아닙니까!?
?대승이 밥 먹여주냐! 어차피 화살 값도 안 나올 전쟁인데, 여기서 나가는 돈은 어떻게 할
거냐! 가문이 돈 때문에 망하면 네 녀석이 책임질 거냐!! 가신이란 자식이 집안을 말아먹으
려고 작정을 한 것도 아니고!!?
더 이상 참지 못한 리미트 백작은 쓰러진 베란을 밟아대기 시작했고, 얼마 후 회의실에 나
온 베란의 얼굴에는 정말 보기 힘들 만큼 시퍼렇게 퉁퉁 부은 얼굴이 되어 나타났다.
회의장에 있던 여러 지휘관들은 전투 중에 거의 상처가 없던 그가 회의장에 시퍼렇게 부어
서 나타나자 이상할 뿐이었다.
한편 예상외로 로아냐드 제국군은 비병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진군하지 않았
다. 아니, 진군하지 못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로베르토 백작과 리미트 백작의 엇갈린 의견은 진군이냐 회군이냐의 갈림길에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다시 설명하면 로베르토 백작으로선 마령 깊숙이 군을 전진시
켜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육상 병력으로 적의 방어군을 쳐야만 리미트 백작의 전공을
앞지를 수 있었다. 어차피 이 전쟁에 이겨도 이득이 없는 리미트로서는 성기사단의 회군으
로 명분이 사라진 전쟁을 여기서 끝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개의 집단의 싸움으로 인해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전투에서 패한 마
령이었다. 예상대로의 진로라면 파이드 강 서쪽에서 방어전을 펼쳐야 할 제국의 정벌군이
멈춰 있었기 때문에, 제시간에 전선에 투입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시드니안 공이
이끄는 마령 제5군단 10만의 병력이 파이드 강을 건너 진영을 정비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두 집단 간의 의견 차이는 있을 것이라 예상되긴 했었지만, 가장 중요한 시점에
서 대립해 지체됨으로써 지금까지 로아냐드 정벌군이 이룩해 놓은 모든 이점은 한순간에 사
라지게 되었다.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국 또한 2차 정벌군의 파견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제국의 남
쪽 레이드 산맥이 거점인 남방 오크들이 10만이라는 거대한 숫자로 로아냐드 국경을 압박하
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국에서는 마령으로 출진할 2차 정벌군을 남방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고, 지원군
이 오지 않는 1차 정벌군은 파이드 강 서부의 10만 병력과 계속 이어질 마령의 군대를 생각
하며 리미트 백작의 의견에 따라 본국으로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시드니안 공은 로아냐드 제국군이 회군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총공격을 감행했고, 하
글 산맥을 넘어 제국의 서부 영토를 점령하는 쾌거를 이룩하게 된다.
아무튼 이 일은 전쟁 시작 네 달 후의 이야기고 현재의 상황은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마령의 지배자 루덴스는 케이드 공작의 패배 소식을 듣자 분노를 참지 못했다. 마령은 건국
전쟁 이후로 이 정도의 패배를 당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 첫 번째 전투에서 비병이 3,000이나 몰살당하고, 거기다가 4,000이 전투 불능 상태
?!?
사라덴의 보고를 들은 루덴스는 반실성의 경지까지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루덴스로서는 승리는 못한다고 쳐도 기껏해야 비병 500 정도의 손실만을 예상하고 있
었는데, 피해는 그의 예상을 엎고도 한참을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패배한다 해도 500 정도 손실만을 예상할 정도로 그만큼 비병의 능력은 루덴스조차 인정하
고 있는 것이었는데, 순식간에 3,000이나 당했다는 말을 듣게 되자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
다.
?리미트 백작이 이끄는 흑조기사단의 신무기에 의한 것으로 첩자에 의하면 로아냐드의 연
금술사 연합에서 만든 폭발성 시약과 마법이 새겨진 은 쇠뇌에 의한 작용으로 공중에서 폭
발을 일으키는 신무기라고 합니다.?
?…신무기… 신무기… 아무리 신무기라고 해도 비병의 삼 분의 일이 몰살당하고 반이 넘는
숫자가 전투 불능이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루덴스의 말에 시립해 있던 장군들은 고개를 숙이며 아무 말도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 승전한 로아냐드 제국군은 현재 분열 상태에 있어 진군을 하지 못하고 있
다고 합니다.?
?진군을 못해? 그나마 다행이군 그래. 원인이 뭔가??
?비병 전투 이전에 사제단과 패러딘들이 본국으로 회군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
때문에 명분이 사라지자 내전으로 대립해 가고 있던 중앙 귀족 로베르토 백작과 지방 호족
리미트 백작 사이에 진군을 둘러싸고 엇갈린 의견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사라덴의 두 번째 보고에 루덴스의 안색이 조금 편해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노기가 풀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당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오크 로드가 로아냐드 제국의 남부 국경을 압박한다면 제국의 2차 정벌군은 오크들을 상
대하기 위해 남쪽으로 향할 것이 분명할 터, 보급을 받지 못하는 1차 정벌군은 회군할 것이
분명하겠군, 사라덴.?
?예.?
?시드니안에게 연락해서 제국군이 회군하면 전군을 몰아 총공격을 하라고 지시해라.?
?예.?
루덴스는 전장이 마령에 유리하게 돌아가자 조금 마음이 놓이기는 했지만 문제는 그것에 있
지 않았다. 제국과 전쟁을 야기시켰던 북극령의 크샤스 왕을 생각하자 열이 받아 참을 수
없었고, 마계에 있는 암흑 신관 유리마에게 온 연락으로는 궁극의 마신 크레이져의 부활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이야 밀려봤자 영토를 조금 잃는 것에 그치겠지만, 봉인된 마신 크레이져가 부활한다면
세계 자체가 붕괴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다.
?빌어먹을! 올해는 뭐가 일이 이렇게 꼬이는 거야! 그래, 루드웨어에게 들어온 소식은 없는
가??
?아직까지는 연락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칠인회 쪽에서는 이미 예정돼 있
었는지 이쪽으로 일단의 마법 병단을 보내왔습니다.?
?본격적으로 북극의 영지를 압박해야 할 시기라는 건가? 그래, 마법 병단의 위치는??
?마법 병단의 본군은 전에 폐하께서 지시하신 대로 통과시켜 마령의 영토를 지나 북방 항
구 도시인 야센시티로 이미 향했고, 내일 정도쯤엔 마성에 칠인회 측의 사신이 도착하리라
예상됩니다.?
루덴스는 사라덴의 보고를 듣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정을 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신하들
에게 말했다.
?마령의 전 함대는 물론 이용할 수 있는 배를 모두 야센시티의 항구로 집결시켜라! 또한
크렌 장군은 인간으로만 이루어진 군대 5만 기를 준비시켜 본격적인 북극령과의 전쟁을 준
비하라!?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