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마법사-21화 (21/247)
  • 20장 대전쟁의 서곡

    /디멘전 패스/와 텔레포트의 차이를 설명하자면, 디멘전 패스는 차원을 거쳐서 움직이는 데

    반해 텔레포트는 마나의 이동, 즉 임의의 공간에 마나를 재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또 디멘전

    패스가 마왕의 힘을 비는 흑마법인 데 반해 텔레포트는 백마법에 속하는데, 디멘전 패스의

    경우에는 마왕의 힘으로 좌표를 정하기 때문에 모르는 곳에 간다 해도 별문제가 없지만 텔

    레포트의 경우에는 마나 재배치 중 이동하고자 하는 곳에 다른 물체가 있다면 마나 재배치

    에 파장이 생겨 불완전한 배치가 이루어진다. 즉, 두 개의 다른 생명체가 서로 간의 반작용

    을 함으로써 텔레포트를 하는 존재는 마나 배열이 흐트러지며 죽게 되는 것이다. 두 마법

    중 디멘전 패스를 이용하려면 엄청난 마력이 소모되어 보통은 마계의 마족들이나 마신의 힘

    을 빌릴 수 있는 암흑 신관만이 사용한다.

    ?마령이 생긴 이유를 알고 있나??

    루드웨어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마령이 루덴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은 알고 있

    지만, 왜 마족이 지상계에서 나라를 세웠는지는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마령 건국을 두고 마법학계에서는 몇 개의 가설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는 있지만, 어디 하

    나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이샤 역시 마령 건국에 관한 가설을 몇 개 알고는 있지만, 그것은 가설일 뿐이었기에 모

    른다고 대답한 것이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곤 루덴스가 마신 라스타의 대리자로 임명되면서 마령이란 존재가 생

    겼다는 것이지만 두 사람 다 루드웨어가 원하는 답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이다.

    ?현재 마계는 멸망의 기로에 접해 있다.?

    ?멸망??

    처음 듣는 말이었는지라 로노와르가 되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성스러운 빛. 그것은 지상계나 천계에서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것이지만, 마계에서는

    그 상황이 다르다. 마계라는 곳은 지상계의 마에 관련된 기운을 어둠의 힘으로 정화하여 세

    계를 이루는 곳인데, 신마전쟁에서 천신 레이뮤님께서 쓴 성스러운 빛으로 오염당해 있기

    때문에 마계의 가장 큰 구성 요인인 마의 기운을 처리하는 어둠의 힘이 많이 약해져 있다.

    천신 레이뮤님이 살아 계셨다면 이 성스러운 빛을 흡수했겠지만, 궁극의 마신 크레이져를

    봉인하면서 소멸되셨기 때문에 그 성스러운 빛은 계속 남아 있게 된 거지. 지금 마계의 상

    태는 마신 라스타가 쳐놓은 어둠의 결계에서만 마족들이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야. 마령의

    건국 이유는 이것과 많이 관련되어 있어. 마계의 성스러운 빛은 점점 강해지고 있지. 마의

    기운을 정화하는 땅이 성스러운 빛으로 인하여 선에 관련된 기운을 끌어오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그 때문에 멸망해 가는 마족들은 새로운 땅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바로

    마령이야. 마령은 마족들을 살리기 위한 땅이라는 거지.?

    ?그럼??

    ?응. 현재 마족의 많은 숫자들이 마령으로 터전을 옮기고 있지. 마계에는 라스타와 그의 측

    근인 고위 마족들, 그리고 마계 제1군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아이샤는 그 말에 놀란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럼 거의 대부분의 마계의 군대가 지상계에 나와 있다는 거 아냐!?

    마계의 군대가 지상에 있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족들이 인간들을 공격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전쟁보다 더한 불상사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그런 위험은 없다. 하지만 대륙의 신교가 이 사실을 안다면 엄청난 사태가 벌

    어지지. 생각해 봐. 마족들은 단순히 살기 위해서 지상계로 이주해 온 것에 불과해. 마계를

    망가뜨린 것은 신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얼마간의 책임은 있지. 방금 아이샤, 네가 생각하

    는 것처럼 선입견을 가지고 그들을 대한다면 마족과 지상계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치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 봐. 살고 있던 땅은 천신들의 실수로 뺏기고 간신히 지상으로 나와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 마족들이 그 땅마저 인간들에게 공격당한다면 가만히 있겠어??

    ?…….?

    루드웨어의 말에 아이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자신도 마족들에 대

    해 선입견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덴스가 전쟁을 원하지 않는 평화주의를 걷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이샤는 언젠가는

    그가 인간들에게 검을 들이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대신관이 북극의 먼

    땅에서 어둠의 기운이 강해지고 있다는 계시를 받았음에도 아이샤는 마령을 의심하여 그쪽

    에서 탐색을 하고 있었겠는가.

    ?루덴스는 단지 마족들을 살리기 위해 마령을 건국한 것뿐이야. 필요없는 피를 흘리고 싶

    은 마음은 없다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마계 1개 군단을 제외한 4개의 군단을 마령에 체

    재시키고 있을 뿐, 북극령과 제국이 도발하는 와중에서도 4개 군단을 움직이지 않는 거야.

    아마 마계 4개 군단은 마령이 멸망하는 한이 있어도 동원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하지만

    그가 전쟁을 일으키려는 생각은 없다고 해도 궁국의 마신 크레이져가 깨어난다면 상황은 달

    라진다.?

    ?크레이져…….?

    ?아직까지는 마신 라스타가 마계의 세력권을 잡고 있기 때문에 그의 대리자는 마계의 군단

    을 컨트롤할 수 있지만, 얼음성의 성주 크샤스가 궁극의 마신을 깨운다면 그 세력권은 바뀌

    게 되는 거야. 마신 라스타에서 궁극의 마신 크레이져로 말이야. 절대악의 존재인 크레이져

    가 마계 군단의 지휘권을 갖게 되면 마계는 다시 되살아날지도 모르지만 천계와 지상계는

    말 그대로 멸망하게 되는 거지.?

    ?말도 안 돼.?

    아이샤는 좀처럼 루드웨어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하는 말은 사실이다. 현재 각 신전에서는 자세한 내막도 모른 채 마계의 지배자인

    마신 라스타가 권속들을 모든 세계에서 몰아내야 할 적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상 마신

    라스타가 존재함으로서 지상계와 마계, 심지어는 천계가 비교적 조용하게 그 관계를 유지하

    고 있다는 거야. 만약 충돌이 일어나면 그건 마계의 도발이 아닌 인간들의 도발일 가능성이

    더욱 크지. 아이샤, 드래곤들이 왜 신마전쟁에서 신족의 편을 들었음에도 현재에 와서는 마

    족에게 관대한지 이유를 알겠어??

    아이샤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루드웨어의 말은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사실에 입각하고 있었

    기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로노와르는 루드웨어의 말을 듣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

    는지 루드웨어에게 말했다.

    ?마계에선 /크레이져/를 그냥 봉인에서 깨워도 상관없잖아. 어차피 신족과 인간들에 의해

    멸망해 가는 판이니 뒤집어 버리는 게 그들에게 낫지 않을까??

    로노와르의 말에 루드웨어는 고개를 저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아까 마령이 멸망해 가는 이유를 말해 줬지.?

    ?응??

    ?사람들은 마족들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마족은 지극히 실리주의자들일 뿐이야.

    모든 존재에는 천적이라는 것이 있듯이 궁극의 마신 크레이져가 깨어난다면 천신 레이뮤 역

    시 존재해야 하는데, 천신 레이뮤는 다시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상태지. 그렇기 때문에 크

    레이져를 그냥 깨우게 내버려 둔다면 마계는 되살아날지 모르지만 천계는 현재의 마계와 같

    이 멸망의 기로에 놓이게 돼. 마신 라스타는 그러한 것을 몸소 체험한 사람이기 때문에 천

    계나 마계 어느 한쪽이 멸망한다면 세계가 혼란스러워질 것을 알고 크레이져의 봉인이 풀리

    지 않도록 막고 있는 거지. 마족은 결코 선한 자들은 아니지만 세계를 멸망하도록 내버려

    둘 바보들도 아니란 거야.?

    루드웨어의 말에 로노와르는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질문했다.

    ?응… 그럼 라스타는 단순히 사라지는 마계 대신 지상계에서 마족들이 살 수 있는 새로운

    땅을 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야??

    그 말은 이미 몇 번이나 설명하긴 했지만, 열 번도 말해 주지 않았는데 이해한 로노와르를

    보며 루드웨어는 기특하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 주었다.

    ?루덴스가 마신의 대리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상 그의 본질은 인간이다.

    인간인 그가 지상을 피의 바다로 만들 생각은 없다고 보는 게 맞겠지. 또 라스타 역시 그런

    루덴스의 생각을 옹호해 주고 있다. 얼음성에 출현한 마계의 군대는 그런 라스타의 입장을

    대변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지.?

    ?라스타의 생각대로 얼음성을 쓸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어차피 인간이 하나 마계의

    군대가 하나 똑같은 거잖아.?

    로노와르의 말에 아이샤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마계의 군대가 북극의 대지를 피로 만드는 것을 보고 있으란 말이야!?

    아이샤가 소리치자 로노와르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궁극의 마신을 깨우는 것보다는 나은 결정이 아닐까? 인간계와 마계의 군대가 격돌한다면

    그 피해는 북극의 대지가 사라지는 것보다 더 피해가 클 텐데??

    아이샤는 로노와르의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실 로노와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북극의 대지에 살고 있는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과 백만 인의 죽음. 단순한 숫자로 판별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모두가 숭

    고한 생명체이니까요.?

    아이샤의 말은 드래곤의 생각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기에 로노와르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다. 철저한 개인주의로 살아가는 드래곤에게 아이샤의 논리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루드웨어는 아이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이샤의 말은 전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로서는 최선의 방책을 찾을 수밖

    에 없겠지. 설사 그것이 북극의 대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게 하는 처사라고 해도

    말이야.?

    루드웨어는 아이샤의 말에 수긍은 하지만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한다고 더 큰 위험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루드웨어는 품에서 한 장의 지도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렵게 구한 북극의 지도니까 잘 보라고.?

    그렇게 말한 루드웨어는 지도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아이샤는 그곳이 어디인

    지 알고 있었다.

    ?얼음성??

    /?응. 얼음성 주변은 온통 화구로 둘러싸여 있어. 그 때문에 강력한 마나 폭풍을 일으키는

    봉인 해제 의식은 치를 수 없는 장소지. 자! 로노와르, 자 그렇다면 지도에서 봉인이 있다고

    예상되는 부분을 한번 짚어봐.?/

    루드웨어의 말에 손가락으로 머리를 두들기며 한참을 생각한 로노와르는 루드웨어처럼 지도

    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나 폭풍을 견딜 만한 장소와 이목을 가릴 수 있는 장소를 살펴본다면 레허드 분지가 가

    장 적당하지 않을까??

    루드웨어는 로노와르의 말을 듣고 갑자기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오호, 해츨링치고는 똑똑한데. 맞아. 익명의 제보자(칠인회 첩자)에 의하면 현재 레허드 분

    지 내에서 30명 이상의 고위 마법사들이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더라. 대충 주둔하고 있는 적

    의 숫자를 살펴보면 고위 마법사 30명, 상위급 기사가 100여 명 정도에 병사는 약 3천 정도,

    거기에다 세뇌당한 마물들의 숫자는 분지 밖으로 풀어져 있는 숫자만 거의 수만에 달하고

    내부에는 상급 마물이 약 3,000 정도 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숫자라고 할 수 있지.?

    아이샤는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지에 있는 적의 숫자는 한 나

    라를 침공해도 가능할 정도의 엄청난 병력이기 때문이다.

    ?아이샤, 애석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네요. 이 거대한 분지 전체에는 8서클 절대 마법 봉

    쇄가 걸려 있기 때문에 8서클 이하급의 마법은 절대 통하지 않지. 마법 봉쇄 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봉쇄가 이루어지지 않은 분지 중앙의 마신전까지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 한

    다는 거야.?

    ?뭐야, 루드웨어는 10서클 마스턴데 뭐가 문제야??

    로노와르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시동어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7서클 정도 메모라이즈한다고 해도 9서클 공격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해. 한데 아까도 말했지만 수만의 마물들

    을 막으며 주문을 외운다는 것은 거의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고.?

    ?언령은??

    ?언령의 경우에는 마나의 소비가 너무 크다고. 만약 의식이 시작되었다면 그것을 멈추기

    위해선 내 마나의 반 이상을 사용해야 하는데, 언령을 쓰다간 가장 중요한 임무를 놓치게

    되는 거지.?

    루드웨어는 지도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아이샤를 보며 말했다.

    ?어쨌든 우리만으로는 조금 힘들 것 같은데… 어때, 몇 명의 조력자들을 불러야겠지??

    ?조력자??

    ?응. 일단 마법사들은 별문제가 없다고 쳐도 가장 중요한 검사가 우리 파티에 없다는 게

    문제라고. 칠칠맞은 해츨링 녀석에게 검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 말에 아이샤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지만 로노와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채 부르르 떨

    고 있었다. 하지만 어떡하랴, 그 자신도 느끼는 것을. 사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현재까지 로노와르가 해온 일이라곤 딱 브레스 몇 방 쏜 것밖에 없다.

    얼음성에서는 경비대에게 밀리고, 마계의 군대에게는 다크 엘프의 파이어 볼에 맞고 추락하

    는 등, 전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로노와르는 이를 갈며 왜 4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자신이 놀고만 있었는지 후회하기 시작했

    다. 일단은 해츨링 중에서는 뛰어난 힘을 자랑하고 있는 로노와르는 브레스는 성년급에 버

    금간다 해도 마법은 폴리모프와 루드웨어에게 훔쳐 배운 디멘전 패스가 전부였고, 검술에

    있어서는 신관인 아이샤보다 못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지는 생각해 봤어??

    로노와르는 터져 나오는 화를 참으며 물었고, 그런 물음에 루드웨어는 당연하다는 듯이 가

    슴을 펴고는 말했다.

    ?내가 누구냐. 일단은 칠인회에서 상당한 도움을 주기로 약속했고.?

    ?칠인회??

    칠인회란 소리에 아이샤가 솔깃하며 되묻자 루드웨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응. 내가 칠인회랑 조금 안면이 있거든. 또 강제로 끌어들인 사람만 해도 마계 쪽에 두 명

    정도가 있지.?

    ?누군데??

    로노와르가 궁금한 듯이 묻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의 영원한 자금원인 루덴스와 마신 라스타의 똘마니 암흑 신관 유리마.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되고도 남지 않을까??

    ?도와줄까??

    ?그럼. 어차피 실패하면 피해는 마계로 돌아가는데 안 도와주고 배기겠어??

    ?뻔뻔하구나.?

    ?후후.?

    그 시간 루덴스는 루드웨어가 자신을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줄도 모른 채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모든 일은 크샤스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국과 마령의 사이를 갈라놓던 화이트 드래곤 아크라시마라는 방어 벽이 사라졌

    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로아냐드 제국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작업에 들어가게 되

    었다.

    바로 마령 침공전. 제국은 자칭 성전이란 이름을 내걸고 귀족들이 소유하고 있던 3개 기사

    단, 8만의 병력을 마령의 국경으로 돌려 침공한 것이다.

    이는 태양신을 모시는 아리시아 성교회의 영향도 있었지만 몇 가지의 정치적 상황이 꼬인

    탓도 있었다.

    그것을 잠시 설명하면, 현재 로아냐드 제국은 신구의 세력이 서로 제국의 정권을 얻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도시 간의 무역 다툼으로 인해 고용된 용병들 간

    의 작은 싸움 정도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전 양상은 더욱 심해져 지금에 와서는 중앙 귀

    족과 지방 호족들의 전면전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두 세력은 각기 자신들만의 기사단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제국의 군사 방침은 이 귀족들의

    기사단과 유사시 제국의 군대로 돌려지며, 그 기사단을 거느리는 귀족은 사령관으로서 전쟁

    에 임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 이유로 제국의 내전이란 것은 제국을 방어할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황제로서는 하루빨리 그들을 화해시켜야 했다. 하지만 이미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

    진 두 세력의 화합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국의 황제는 이 일로 고심하다 아크라시마

    라는 골칫거리 방벽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이들의 시야를 밖으로 돌리기 위해 마령의 침

    공을 명한 것이다.

    이러한 내전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국가 정책 탓도 있었다. 제국이 현재 벌이고 있는 정책

    중의 하나에는 영토 확장 정책이었다.

    로아냐드 제국은 계속적인 동방 확장 정책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 동방 확장 정책이란 것이

    로아냐드 제국의 국교인 아리시아 성교회의 종교적인 면도 상당히 들어 있었다. 즉, 아리시

    아 성교회를 비롯한 4개의 신 외에는 어떠한 신도 용납할 수 없다는 성교회 우선 정책이 그

    것이다.

    이 성교회 우선 정책의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마족의 온상지인 서방의 마령이라는 거대한

    사교 집단이었지만, 그들을 정벌하기에는 아크라시마라는 방벽이 너무 높았기에 열성 신도

    들의 눈을 제국은 동방으로만 돌리게 된 것이다.

    태양신 아리시아의 계시라며 제국과 성교회 측은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120개 중소 국가와

    유목 민족인 유온 족들의 국가를 침공, 이교도들을 정벌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난적인 서

    방 마령을 공격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이것은 단순히 겉치장에 지나지 않았기에, 13차까지

    이르는 성전은 단순히 성전이란 명목을 가지고 있는 중앙 귀족들의 영지 넓히기라는 우스운

    결과를 낳게 되고, 새롭게 늘어난 영토가 중앙 귀족의 손에 들어가자 지방 호족들의 불만은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중앙과 지방의 정치 투쟁이 조금 심해진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일은 그

    후에 생겨났다.

    내전의 처음 시작은 성전이란 미명 하에 이루어지는 이교도들의 무차별한 학살을 반대하고

    일어난 일단의 기사들이었다.

    그 주축은 기사도를 우상하고 있는 젊은 기사들. 초창기에 그들은 신앙심있는 성기사와 힘

    을 합쳐 탄원서를 올리는 것에 그쳤지만, 이미 동방 확장 정책으로 달콤함을 맛본 중앙 귀

    족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리는 없었고, 기사도 중심의 젊은 기사들은 강한 불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중앙 귀족들은 여기서 큰 실수를 하고 만 것인데, 그 당시에야 어린아이들의 불만이

    라 치부하며 무시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권력의 중심부에 오를 자들이

    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기사도에 위배되는 학살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당시의 젊은 귀족들은 중앙으로 정치판에 뛰어들게 되었다. 제국의 정책으로

    이제 중앙 귀족의 영지는 상당히 넒어졌고, 그에 로비로 사용되는 돈이 많아짐에 따라 정치

    에 대한 발언권은 상당히 높아졌다.

    그에 비해 과거의 영지에서 변한 것이 없는 지방 호족들은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는데, 동방

    의 이교도가 모두 정벌돼 가고 있는 시점에서 남은 것이 바로 자신들의 영지밖에 없기에 언

    제 중앙 귀족에 의해 영지가 침범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생긴 것이다. 이런 고민은 지방

    호족들로 하여금 중앙에 진출한 당시의 기사도 중심의 기사들에게 합류하게 만들었고, 지방

    호족들에 의해 자금이 확보된 기사도 중심의 기사들은 중앙의 귀족들과 본격적으로 대치하

    게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진전되자 제국의 영토 내에서는 각 영지들 간의 내전이 끊이지 않고 있

    었는데, 때 마침 아크라시마라는 방벽이 사라지자 황제는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마령의

    대대적인 침공을 명한 것이다.

    황제가 직접 명하여 선발된 1차 정벌군은 중앙 귀족에 속하는 로베르토 백작과 안토니오 백

    작, 지방 호족의 중심에 속하는 리미트 백작과 렌피드 남작이었다. 이들은 각자가 거느리고

    있는 기사단 8만의 병력으로 서방 마령 정벌에 나섰다.

    이 8만의 숫자 외에도 제국 내에서 마령 정벌을 위해 정비되고 있는 타 귀족들의 군대만 해

    도 이미 30만을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에 1차 정벌군인 8만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

    다.

    1차 정벌군의 기세를 꺾지 못한다면 제국의 공세는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창 내전 중이던 제국의 서방 정벌군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기에, 그에

    대항해야 하는 서방 마령은 생각보다 큰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루덴스는 전령에게서 제국이 군대를 보내왔다는 소식을 들은 후 급하게 동방 국경의 영주

    인 웨어울프 이르카시오 백작과 마령 5대 장군의 한 명인 시드니안 공작이 이끄는 5군단 10

    만의 병력을 동방 국경 쪽으로 급파했지만,/ 아직 5군단 10만의 병력은 전선에 도착하지 않

    은 상태였기에 그곳을 지키고 있던 이르카시오 백작의 사병 3만은 8만의 제국 대병력에 의

    해 패주하여 전선에서 밀려 나고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8만의 병력이 움직이는데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단 말인가!?

    마령의 모든 정치가 이루어지는 순백색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마성의 방이라 이름 지

    어진 내당 안에서는 중앙의 상부 쪽에 위치한 왕좌에 앉아 있는 루덴스 밑으로 이십여 명의

    신료와 장군들이 양쪽으로 기립하고 있었다.

    루덴스의 옆에서 보좌하고 있는 오른팔 사라덴은 현재 상황을 루덴스와 각 신료들과 장군들

    에게 보고했는데, 그 보고가 끝나자 루덴스는 왕좌의 손잡이를 치며 노기를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런 루덴스의 분노의 이유를 잘 알고 있는 내당에 있는 4명의 장군과 각 신료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제국은 영주들의 내전 상태에서 국경 부근에서 대치하고 있는 병력을 돌렸는데, 그 속도

    가 워낙 빨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설마 내전의 쌍방이 그토록 빠른 시간에 힘을 합쳐 마

    령을 침공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좌측의 세 번째에 기립해 있는 붉은 머리의 70세 정도로 보이는 신료가 말했다. 그는 /마령

    의 병무장관의 직위에 있는 자로,/ 그의 말을 들은 루덴스는 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아무리 내전이라고는 하지만 제국은 아리시아 성교회의 성제국이

    란 이름을 지니고 있다. 성교회 녀석들은 마령이라면 이를 갈고 있는데 그 정도도 예측하지

    못했단 말인가! 그러고도 서방 마령의 병무장관의 직위에 올랐단 말인가!!?

    병무장관의 변명은 루덴스의 노기를 더욱 치솟게 했지만, 이런 식으로 노기를 터뜨려 봤자

    아무 일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루덴스는 간신히 화를 누그러뜨리며 오른쪽에 서

    있는 사라덴을 보며 물었다.

    ?현재 5군단의 위치로 보아 전선까지 투입될 예정 시간은??

    ?시드니안 공이 이끄는 10만의 병력은 앞으로 3일 정도가 걸려야 전선에 투입될 수 있으리

    라 봅니다.?

    ?3일? 한시가 급한 지금에 3일이란 시간이 짧다고 생각되는가? 이르카시오의 방어군이 무

    너진다면 안트라드 평야까지 제국의 병력이 밀어닥칠 텐데, 안트라드 평야가 제국의 손에

    들어간다면, 제국 측이 머리가 있다면 분명 장기전으로 방향을 돌릴 것이다. 자칫 장기전으

    로 돌아선 전쟁이 5년 이상 지속된다면 곡물 생산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평야를 잃은

    상황에서 심각한 식량난이 초래될 것은 뻔한 이치라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루덴스의 지적은 정확한 것이다. 제국이 내전 상황의 병력, 즉 서로 간의 앙금이 남아 협조

    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이 쌍방의 병령을 빠른 속도로 합쳐 서

    방 마령을 급습한 것은 서방 마령의 주 식량 생산지인 안트라드 평야를 겨냥한 것이다. 평

    야를 점령하여 파이드 강 서부에서 병력을 정비할 수 있다면 일단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는

    다고 하여도 전쟁에 가장 큰 이점, 즉 군량 문제에서 서방 마령을 압도하므로 승률은 반 이

    상 높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령 곡물 생산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안트라드 평야는 그만큼 마령이나 제국에 있어서 전

    쟁의 승리를 이끌어내는 열쇠로 인식되는 것이다.

    ?제국의 /군대는 내전의 상대방인 두 개의 집단이 앙숙인 상태에서 모여 있는지라/ 저희

    측에서 강공을 취한다면 분열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에게 비병(하늘을 날을 수 있는 마

    물로 이루어진 병사) 1만을 주신다면 최대한 적의 움직임을 늦춰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족 고유의 색깔인 보라색 머리칼을 지닌 20대 미청년 장군이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으

    며 루덴스에게 말했다.

    그는 마령 5대 장군 중 한 명으로 불꽃의 용장이라고 불리는 상위 마족 케이드 공작이다.

    그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의견을 밝히자 불꽃의 용장의 명성을 잘 알고 있는 루덴스는 그

    가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와이번 기사대 3천과 비병 7천을 주겠다. 케이드 공작, 제국은 마령과의 싸움에 대비하여

    대공 능력에 대비해 왔을 것이다. 과거라면 모를까, 이 정도의 병력으로는 제국의 군대를 분

    열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텐데 할 수 있겠는가??

    ?맡겨만 주십시오.?

    ?좋다. 케이드 공작은 지금 당장 군대를 이끌고 전선으로 향하라.?

    ?예.?

    루덴스의 지시가 이어지자마자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내당을 빠져나갔다. 케이드의

    모습을 보며 다른 신료들은 거침없는 그의 태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국의 2차 정벌군의 숫자는 어느 정도로 생각되는가??

    루덴스가 묻자 사라덴은 첩자를 통해서 들어온 정보 문서를 두 손으로 건네며 낮은 목소리

    로 말했다.

    ?현재 중앙군과 제국 동부의 영주들의 군대를 정비하는 속도를 미루어보아 적어도 이 주일

    안에 약 20만 정도의 군대가 제국의 1차 정벌군에 지원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라덴의 말에 내당에 있는 이들은 20만이라는 숫자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마령

    침공을 제1과제로 선정하고 있는 제국이라고는 하지만 20만이나 되는 숫자를 내전의 와중에

    서도 이 주일 만에 돌린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속도였기 때문이다.

    마령은 치국에 정신을 쏟은 관계로 거의 모든 군대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 주

    일 후에 올 20만의 제국 군대와 맞설 만한 군대를 모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비되어야 했

    다.

    한참을 마령으로 침범해 올 제국의 군대에 대해서 생각에 잠긴 루덴스는 얼굴을 찌푸리며

    이윽고 결정을 내렸다.

    ?사라덴.?

    ?예.?

    ?당장 코베트에게 사람을 보내어 사방오크 왕을 움직여 달라 하라.?

    /루덴스의 말에 기립해 있던 신료들은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그건 말도 안됩니다!!"

    "오크라니!! 어찌 마족이 오크에게 도움을…!!"/

    루덴스가 말한 코베트는 대륙의 모든 오크들을 지배하는 오크 왕국을 꿈꾸는 몽상가로 알려

    져 있는 인물이다.

    호시탐탐 오크들의 영토가 만들어져 하나의 국가가 만들어지기를 꿈꾸는 그는 마족들의 세

    계인 마령의 땅 역시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오크들로 마령을 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에 계속 사람을 보내어 자신들의 왕국을 인정해 주고 동맹하길 요청하고 있었는데, 마족들

    은 저급한 오크들과의 동맹을 꺼려하고 있었다.

    루덴스가 코베트에 부탁하여 사방오크 왕을 움직인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오크들의 왕국을

    마령에서 인정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저급한 종족의 왕국을 인정하기 싫은 다른 장군과 신료

    들이 놀라 만류하려 하는 것이다.

    또 호전적인 생물인 오크들이 왕국을 이룬다는 것, 또 그것이 마령과 인접할 경우에는 어쩌

    면 제국보다 더 큰 위험을 마령에 몰고 오는 것이 될 수 있었다.

    지능이 낮은 오크들이 농사를 지어 작물을 키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곳은 다

    른 왕국에서 잡혀온 인간들이 노예로 살거나 도적들의 국가가 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이런

    나라를 인정한다는 것은 마족들의 자존심으로써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말도 안 됩니다!!?

    ?하등 생물인 오크에게 지원을 바란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하지만 루덴스는 그런 신하들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어차피 이 전쟁은 크샤스의 조작에 일어난 것이다. 제국과의 전쟁에서 마령의 피해가 커

    진다면 북극의 군대가 제국에 호응할 것은 뻔한 이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피해

    없이 전쟁을 끝내는 것이 목적이다. 경들은 제대로 된 의견도 내지 않으면서 사사건건 짐의

    의견을 반대만 하려 하는가. /사라덴!?

    ?예, 폐하.?

    ?코베트에게 이 전쟁에 오크들의 군대를 지원해 준다면 제국 서부 이란드 지방과 마령 안

    트라드의 동쪽 땅을 준다고 하게. 어차피 아크라시마의 영토였던 곳이니, 이렇게 된 바에야

    오크들의 왕국을 그곳에 만들어놓고 국경의 방패막이로 세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루덴스의 설명이 이어지자 반발했던 신료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제국과 마령이라

    는 두 강대국에 끼어 있는 오크들의 왕국이라면 전에 있던 아크라시마의 위치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계의 고귀한 민족인 마족이 오크같은 저급한 종족에게 도움을 받

    는 다는 것은 수치스러웠지만 그것이 루덴스의 명령이였기에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닌 이용한

    다는 생각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차후에 있을 오크들의 횡포가 생각나는지 그들은 루덴스의 의견을

    모두 수긍하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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