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라디안의 칠인회 이야기(1)
레드론의 스카웃으로 칠인회에 가입하게 된 라디안은 시스 일행과 잠시 이별하고 레드론의
텔레포트에 이끌려 어디엔가 도착하게 되었다.
사방에 막혀 있는 어두운 방, 인트라비젼(어두운 곳을 볼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하여 주위를
둘러본 라디안은 창문조차 없는지라 조금 답답한 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레드론은 그런 라
디안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가볍게 손가락을 마주쳐 소리를 냈고, 그 순간 방은 환한 빛과
함께 사방의 벽에 네모난 창이 생겨났다.
그것을 본 라디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레드론이 손가락으로 낸 소리와 함께 마나가 순간적으로 움직이며 라이트(마법 전등) 마법
이 발동되어 사방에 창문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사방이 막혀 있는 방의 창밖에는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사막의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한참을 주시하던 라디안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자신이 있는 곳은 작은 방이었는데 그곳에서 사방으로 뚫려 있는 창문으론 사막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생각해 보면 자신이 있는 이 작은 방은 사막 한가운데 존재하는 것이 되지
않는가?
그것에 대해 라디안은 의문을 버리지 못하고 레드론에게 질문하려는데 레드론은 방 한구석
에 있는 양피지 조각 중 하나를 라디안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네게 건네준 것은 텔레포트 좌표 계산치다. 바로 칠인회의 각 장소가 있는 공간이지. 칠인
회의 전 건물은 비밀을 위해 각 지역에 방 하나만이 존재한다. 즉, 이 사막 지역엔 이 방 하
나만이 존재한다는 것이지. 이 방처럼 다른 모든 칠인회의 건물들은 설정되어진 좌표로 텔
레포트를 해야만이 갈 수 있다. 단, 주의해야 할 점은 각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출
발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
?출발지를요??
?그래. 이곳에서 텔레포트할 수 있는 건물은 칠인회 사무처와 칠인회 대외 섭외부 이 두
곳뿐이다. 나머지 칠인회의 다른 건물은 다른 곳에 있는 출발지를 거처야만 갈 수 있는 곳
이다. 또 다른 곳의 출발지로 가기 위해선 이곳 제1차 출발지를 거쳐야만 가능하다. 즉, 이
곳에서 칠인회 사무처로 가게 되는데, 칠인회 사무처에선 마법사들의 사무처 공간과 함께
제2출발지와 제3출발지로 갈 수 있는 텔레포트 출발 공간이 있지. 어떠냐? 왜 사람들이 칠
인회를 비밀의 마법 기구라고 하는지 조금 알겠니??
레드론의 말에 라디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론의 말을 비추어본다면 칠인회의 본부 건물
이라는 것은 단 한 개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륙 곳곳에 방이 하나씩 있다는 것을 의
미한다. 그 대륙의 모든 건물을 다 합쳐야만이 진정한 칠인회 본부가 탄생하는 것이다. 또
칠인회 본부 건물을 샅샅이 돌아다니기 위해선 매번 하나의 관을 거처야 하고 그곳에서 칠
인회 회원이란 것을 검사받고 다음 출발지로 가는 것을 허가받아야만 다음 단계의 건물로
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동 방법은 상당히 복잡할 수도 있지만, 있을지 모르는 첩자나 적의 공격에서 한
개의 건물이 파괴당한다 해도 그것은 칠인회의 한 부분일 뿐일 테니 전체의 모습이 드러나
는 일은 없는 것이다.
?해서 이런 이유로 각 출발지에는 이렇게 통하게 되는 건물의 좌표 계산이 적힌 양피지를
상비해 두고 있는 것이지. 물론 이건 초보 회원을 위한 거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주
다니는 곳의 좌표 계산치는 필수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질문이 있는데요, 만약 중간에 있는 출발지가 적에게 들켜 파괴당한다면, 그 출발
지에서 갈 수 있는 다른 방은 고립되는 거잖아요??
?오호, 벌써 거기까지 생각한 거냐? 과연 수재로군.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단다. 어차피
이렇게 복잡한 방식을 지녔다고 해도 만든 것은 인간일 뿐이야. 일곱 명의 회주님은 그러한
사태를 대비해서 방의이동 경로를 바꿀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놓으셨지. 즉, 2번 출발지가
파괴당했다면 회주의 권한으로 1번에서 3번 출발지로 연결되는 경로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지.?
?아.?
어느 정도 이해하기는 했지만 라디안으로선 이런 이동 방법은 상당히 혼란스러운 방법이었
다. 라디안의 표정을 보고 미소를 지은 레드론은 자신이 겪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사실 오랫동안 지내왔던 나도 아직까지 이러한 방법이 익숙하지 않지. 처음 칠인회에 가
입했을 땐 마법 기구실에서 출발지 좌표를 두고 나와서 거의 일주일 동안을 텔레포트 진 사
이사이에 갇혀야 했지. 다행히 내가 나타나지 않자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칠인회의 미아 찾
기 본부에 신고하여 수색원들이 텔레포트 진에 갇힌 나를 찾아줘서 아사는 면했던 적이 있
었단다. 보통 나같이 텔레포트 진에 갇히는 경우는 일 년에 거의 30회 이상은 있는 일이라
회에선 그 같은 수색원들을 따로 배치하고 있단다. 또 네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친구들
을 많이 사귀어둬야 한다는 거야. 만약 칠인회에서 왕따라도 당하다 미아가 되면 심할 경우
는 몇백 년 동안 어딘지 모르는 공간에서 썩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니 말이다.?
레드론의 말을 들으며 라디안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텔레포트의
공간에서 몇백 년을 썩어야 한다는 것은 소름이 끼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에 가야
할 곳의 좌표 계산치를 손으로 가리키고선 라디안에게 텔레포트하라고 지시했고, 라디안은
좌표 계산치의 장소로 텔레포트했다.
텔레포트의 빛을 지나 라디안이 도착한 곳은 이십여 명의 마법사들이 바쁘게 서류 작업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라디안이 텔레포트 마법진에 나타났음에도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서류
작업에만 열중하고 있었기에, 무엇을 저렇게 바쁘게 처리하나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
마 지나지 않아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레드론이 텔레포트진에 나타나 라디안에
게 걸어오며 말했다.
?이곳이 칠인회 사무처다. 일단 칠인회의 모든 사무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곳이니 만큼 다
른 곳과는 다르게 상당히 바쁜 곳이야. 만약 이곳에 와서 학문이나 마법 연구를 하는 마법
사가 일이 너무 많아 힘들다는 투로 이야기했다가는 아마 백 년 동안 여기서 일하는 사람에
게 이지메를 당하며 살아야 할거야. 그 정도로 바쁜 곳이니 칠인회 마법사들은 거의 사무처
쪽으로 오는 것을 경기 일으키며 싫어하지. 사무처의 평생 복무하라면 아마 목매고 자살하
는 마법사가 수도 없이 생겼을 거야. 이것을 생각해서 회주님들이 칠인회 소속 마법사들에
게 3년 간 사무처 의무 근무제를 도입하셨단다. 물론 나도 이 사무처에서 3년 간 일하고 대
외 섭외부로 자리를 옮겼었지. 칠인회는 모든 환경이 좋긴 하지만, 단 한 곳 3년 간 사무처
의무 근무제만은 젊었을 때의 중요한 시간을 덧없이 보내는 것이 되는 거지. 칠인회의 총회
주이신 루드웨어님은 이러한 사태를 애석해하며 한 구의 시조를 지었단다. 그것을 읊어보면
[대의대심래소년(大義大心來少年)이건만, 허송삼년사무처(虛送三年事務處)라.] 해석해 보면
큰 뜻과 큰마음으로 어린 나이에 이곳에 왔건만, 사무처에서 3년 간을 허무하게 보내는구나
란 것이지. 이 시조를 읊으신 후, 창시자로서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3년 간 칠인회 사무처
에서 자진해서 일을 하셨는데, 그 후로 사무처를 반드시 거처야 통과할 수 있는 총회주실의
출발지가 바뀌어져 버렸단다. 총회주께서 임의로 고쳐 버리신 거지. 들리는 소문에는 아직도
총회주님은 사무처를 지나치실 때면 병명을 알 수 없는 경기로 혼절하신다니, 사무처 3년이
얼마나 인간의 피를 말리는가는 알 수 있겠지? 하지만 그 탓에 칠인회에선 사무처에 3년만
보내면 어떤 힘든 일도 못 견딜 게 없다라며 어린 마법사들의 고행 수업에 많이 이용하곤
하지. 유명한 말로는 ?사무처 일주일만 있으면 메테오도 쏜다?라는 것이 생겼는데, 그것이
속담이 되어서 칠인회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
레드론에게 사무처의 이야기를 들은 라디안은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
으로 보는 사무처 안의 마법사들은 모두 빼빼 말라 있었고, 눈에는 탁기가 서려 있는 것이
상당한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 어찌 보면 한 달도 남지 않은 병자를 보는 듯했다. 그런 것을
유추해 살펴보면 칠인회는 전 대륙을 상대하는 마법 단체인만큼 처리해야 할 서류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어이, 앞에 좀 비키라고.?
누군가 뒤에서 비키라는 소리에 레드론과 라디안은 옆으로 비켜섰는데, 마법진에서 거의 사
람 두 배만한 서류 뭉치를 든 한 마법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서류를 들고 오느라 힘들었는지 사무처 한가운데다 서류들을 내팽개쳤는데, 그 순간
사무처 안은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메아리쳐지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혼절하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조금 심장이 강한 마법사들은 꿋꿋하게 버티어 서고 있었지만, 대부분 한숨을 쉬며
어깨가 축 처지고 있었고, 의지가 약한 한 마법사는 태양 신 아리시아님에게 기도를 하며
천장에 목을 맬 동아줄을 걸고 있었다.
?이 사람들아, 걱정 말라고. 이건 정보부에 들어갈 서류라고, 정보부에.?
누가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서류처 마법사의 마음은 갈대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서류를 내팽개친 사람의 입에서 정보부로 갈 서류라는 말이 나오자마
자 마치 자신들이 언제 한숨이나 쉬었냐는 듯이 그들은 다행이다라는 표정으로 숨을 내뱉었
고, 기절해 있던 사람들은 영약이라도 마신 양 힘차게 튕겨 일어서서는 다시 자신의 업무로
돌어갔다.
동아줄로 목을 매려고 했던 마법사는 정보부로 갈 서류로 자신을 현혹한 마법사의 목을 매
달아 버리려고 발광을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다른 마법사가 그를 간신히 말리고 있었
다.
이 모든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라디안은 자신도 언젠가 사무처에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할 지경이었다.
라디안의 굳어진 표정을 보게 된 레드론은 껄껄 웃으며 라디안에게 말했다.
?너의 심정 이해한다. 보통 칠인회에 가입한 사람은 추천자와 함께 제1출발지에서 출발 전
모두 이곳을 지나치게 되는데, 이곳 사무처의 전모를 전해 들은 마법사들은 사색이 되어 곧
바로 칠인회를 탈퇴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지. 하지만 우리 총회주의 명언 ?한 번 칠인회는
영원한 칠인회다?라는 모토에 어느 누구도 사무처에서 3년 근무를 마치지 않는 한 임의 탈
퇴를 못하게 법규를 정했지. 물론 악마의 코스라는 사무처 3년 근무만 빼면 연구비가 공짜
에 높은 서클의 마법도 익힐 수 있는 칠인회는 대륙에 어떤 마법 단체보다 대우가 괜찮은
곳이기 때문에 사무처 3년 근무를 마치고 칠인회를 탈퇴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
?쉽게 말하면 칠인회의 회원이 된 사람의 가장 큰 고비는 사무처 3년 의무 근무제라는 것
이군요.?
?그렇지.?
라디안은 이 3년의 근무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3년 후
에 마법도 마음대로 배우고 연구비도 무료라는데 해볼 만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
기 때문에 넘어가기로 했다.
사무처 구석의 방에 있는 출발지의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걸음을 옮긴 라디안은 레드론의 가
르쳐 준 제2출발지로 텔레포트했다.
제2출발지는 제1출발지와 마찬가지로 어둡기 그지없었다. 라디안은 자신도 될까 하는 마음
에 손가락을 튕겼는데, 그 순간 라이트 마법이 실행되면서 사방에 창문이 드러났다. 사방의
창문에는 열대 우림 기후에서나 볼 수 있는 정글이 우거져 있었다.
마법진에서 나타난 레드론은 라이트 마법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는 라디안의 머리를 쓰다듬
어 주며 말했다.
?금방 배우는군. 제2출발지에서 갈 수 있는 장소는 모두 열다섯 군데. 모두 다 말해 주는
것은 조금 귀찮으니 우리가 가야 할 곳만 가르쳐 주지.?
레드론의 말에 라디안은 손을 들고는 궁금증을 물어보았다.
?잠깐만요. 열다섯 군데나 되는데 그곳에 모두 제3출발지로 가는 마법진이 있나요??
그 말에 레드론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길을 잊어먹었겠냐. 열다섯 군데의 방은 모두 300개의 출발지 중 하
나에 해당하는 출발지로 가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지. 그렇기 때문에 칠인회 가입시 가장
먼저 암기해야 할 사항은 각 방에서 통하게 되는 출발지의 좌표를 외워 가장 단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루트를 직접 찾아야 한다는 거야.?
?그렇군요.?
어느 세상에 이렇게 복잡한 체계의 건물이 있겠는가. 라디안으로선 황당하기만 할 뿐이었다.
?처음이니까 내가 자세하게 가르쳐 주는 것뿐이야. 나중엔 네가 알아서 찾아가야 하니 네
가 가지고 있는 좌표 계산치와 나중에 받게 될 각 장소의 마법진 루트를 외우도록 하라고.
미아가 되어 몇백 년을 썩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하지만 뭐, 꽤 실력있는 후배가 될 것 같
으니 한 가지 비밀을 가르쳐 주지. 칠인회 본부의 루트가 복잡하긴 하지만 최단시간 루트는
존재하지. 이것을 어떤 녀석이 책으로 만들어 팔고 있으니까 시간이 나면 각 방을 뒤지며
로린톤이란 녀석을 찾아봐. 비싸기는 하지만 300골드면 녀석이 집대성한 ?한 달만 보면 칠
인회 다 갈 수 있다?란 책을 살 수 있을 테니까.?
?예.?
반드시 사야겠다고 생각한 라디안은 다시 레드론이 가르쳐 준 좌표로 텔레포트했다.
제2출발지를 거쳐 온 곳에는 검정색 선글라스를 낀 일련의 마법사들이 책상 앞에서 서류를
한창 검토하고 있었다.
?여긴 어디죠??
라디안으로서는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낀 그들이 상당히 이상해 보였기에 레드론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바로 사무처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서류가 도착할 곳이지.?
?아! 이곳이 칠인회 정보부군요.?
?그래. 칠인회는 비밀 조직인만큼 외부에서 칠인회의 비밀을 파해치려는 적들이 많이 있단
다. 정보부는 바로 그들을 감시하고 정보를 모으는 곳이지. 대륙 전역에 있는 칠인회의 정보
부 소속 마법사는 50명도 되지 않지만, 마법사가 아닌 일반 정보원의 수는 10만 명의 종족
을 넘어서 적어도 30만 명을 넘는다고 하니 칠인회 정보부의 능력을 알 수 있겠지.?
?와…….?
대륙 전역에 30만 명의 정보원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넓은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
다. 또 그 30만 명의 정보원들을 50명도 안 되는 마법사들이 관리한다는 것은 조직이 안정
돼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기에 새삼 칠인회의 굉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상당히 바쁘겠네요.?
?뭐 요즘 들어와서 좀 바빠지긴 했지. 큰일이 아닌 자질구레한 것은 이곳으로 넘어오지 않
고 바로 해결되지만, 요즘과 같을 때는 모든 정보가 중앙으로 집중되기 때문에 정보부도 사
무처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업무량이 올라가지.?
?그렇군요.?
라디안이 다음 차례에 도착한 출발지는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사방으로 뚫려진 창문 밖에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와…….?
인적이 드문 곳에만 만들어질 것 같은 출발지가 대도시의 한가운데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
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여긴 마령 서부의 나라 중 하나인 프라든의 수도란다. 대륙 안의 바다라고 알려져 있는
지중해를 사이로 열두 개의 국가들이 인접해 있기 때문에 내륙에서의 무역이 활발한 곳이
지. 프라든은 이 열두 개의 나라 중에서 가장 번성한 국가로 이곳의 특산물인 무화과가 바
로 칠인회 문장의 모토가 되었단다.?
?그렇군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곳을 볼 수 없나 봐요??
?이 창문은 실제가 아니라 사물을 투영시키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거란다. 밖에서 창문 쪽
을 보며 벽처럼 보일 뿐이지. 이게 궁금해서 눈앞에 보이는 프라든의 거리로 나가본 적이
있었는데, 이 출발지가 어떤 건물인지 알고는 웃겨서 자지러질 뻔했단다.?
?이 건물이요??
?그래. 실제로는 출발지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지.?
레드론의 말에 라디안은 조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레드론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
까?
?이 출발지가 외부에선 무슨 용도로 쓰이는 건데요??
?후후, 놀라지 마라. 이 출발지는 바로 프라든의 공중 화장실이란다.?
?예??
공중 화장실이란 말에 라디안은 할 말을 잃었다.
?프라든의 공중 화장실은 2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 1층은 모아 치울 수 있는 통이 만들
어져 있고, 2층은 말 그대로 일을 보는 곳이지. 이 출발지는 1층에 만들어져 있는 거야.?
?그럼… 변이…….?
?하하하, 그건 걱정 마라. 위에서 사람들이 보는 변은 차원 왜곡을 통해 다른 곳의 공중 화
장실로 떨어지게 되어 있지.?
?그렇군요.?
설마 칠인회의 출발지가 변을 모으는 곳일 줄은 정말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레드
론은 그런 라디안을 보며 한 가지 충고를 더 해주었다.
?뭐 한 가지 충고를 더하자면 넌 절대 이곳에 혼자 와서는 안 된단다.?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음… 어린이는 잘 모르는 이야기란다. 뭐랄까… 칠인회도 사람 사는 곳이니만큼, 착한 사
람이 있다면 나쁜 사람도 있고, 건전한 놈이 있다면, 변태 같은 녀석도 있다는 거지. 음…
에구, 설명하기 힘들다.?
라디안은 왜 레드론이 말을 못하고 버벅거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레드론은 과감
하게 그 사실을 밝혔는데…
보고 놀라지 마라. 레드론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튕기며 다시 소리를 냈는데, 그 소리는
약간의 리듬을 가지고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천장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더니 정말
말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헉!?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위의 천장에서 보이고 있는 것은 몇 명의 사람들이 화장
실에서 변을 누고 있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라디안은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도대체 이게 뭐죠??
?사실 이곳 출발지는 변비 해결을 위한 마법 마사지를 연구하시던 노마법사 한 분이 연구
를 하기 위해 조금 개조한 곳인데, 그것이 후에 출발지로 바뀌게 된 거지. 어디서 주워 들었
는지 모르겠다만, 이 사실을 안 변태 녀석들이 천장의 개방 암호를 알아내곤 가끔씩 드나드
니 변태에게 걸리지 말고 조심하라는 거다.?
?예. 그건 그렇고, 저것 좀 안 보이게 할 수 없나요??
?음, 그러지.?
레드론이 다시 손가락을 일정하게 튕기자 천장의 구멍은 완전히 사라졌다.
?휴…….?
보기 흉한 장면이 사라지자 라디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이 칠인회 사람들의 생각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변비 해결을 위한 마법 마사지라니… 실용적이며 잘하면 떼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긴 했지만 할 말이 나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라디안은 그 후로도 14개의 출발지로 거쳐서야 가고자 하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동안 거친 곳을 대충 열거하면 사무 처장실, 신분 확인실, 마법 도구실, 368호 침실, 34호
휴게실, 마법 서적실, 59호 화장실, 여자 목욕탕(여긴 레드론이 알고 있는 최단 코스 중 하
나였는데 들어갔다가 맞아 죽을 뻔했다) 등등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방이 있었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의문은 레드론이 풀어주
었다.
?보통 출발지의 경우는 대륙의 한적한 곳에 지어져 있지만, 중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각 대
륙의 도시에 위치해 있지. 물론 방에서 바로 위치해 있는 도시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명심해 두도록 해. 괜히 시간 단축시킨다고 구멍 내지 말고 말이야. 그 위치에 대해
서 몇 개 말하자면 마법 도구실 같은 경우는 로빈턴 산의 드워프 마을에 위치해 있지. 드워
프들의 세공을 바로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걸로 그곳에는 서류 몇 장 정도는 통과시킬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여자 목욕탕의 경우는 로아냐드 제국 황성의 목욕탕 옆에서 황실 목욕
물을 빌려 쓰고 있지.?
라디안으로선 할 말이 없었다. 여자 목욕탕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레드론. 그가 다른
면에서 조금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뭐 일종의 취미라고 생각하기로 한 라디안이었다. 나중에
라디안은 레드론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곳으로 오는 도중 지나친 여자 목욕탕에서 변태로 오인 받으며, 무지막지하게 날아오는
물건들에게 맞을 뻔하면서, 겨우 도망쳐 왔던지라. 정작 나체는 구경도 못했다.
하지만 외부에선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구멍이 있어 몰래 구경한다고 한다. 그
구멍을 발견한 사람은 황궁의 늙은 시종장이라고 전해지는데, 황성에는 이 구멍을 선녀 목
욕혈(仙女沐浴穴)이라 하며 늘씬한 미녀들의 목욕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한 마
법사에 의해 타락의 구멍이란 이름으로 지어지기 전까지는 많은 총각들이 이 구멍을 통해
욕망을 불태웠다고 하며, 개중의 한 황궁 기사는 이 선녀 목욕혈에서 본 미녀를 만나 신체
의 비밀을 말해 줌으로써 노총각 신세를 면했다고 한다.
또 생각나는 김에 한 가지 말하자면, 루드웨어의 전 직업은 로아냐드 제국의 궁정 마법사.
이 정도까지 말했는데 모른다면 당신은 바보. 뭔가 알게 된 사람은 모두 오호라는 단어가
입에서 터져 나오리라 생각된다.
아무튼 여러 군데를 거쳐 라디안이 도착한 곳은 2회주 헤른드 라비에타의 비서실로, 라디안
이 들어섰을 때는 아리따운 여자 마법사 세 명이 접대용 소파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
누고 있었다.
그들은 라디안과 레드론이 나타나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근무 평가반이 아니라
레드론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휴~ 하고 숨을 내쉬며 레드론을 보며 말했다.
?어머, 응큼 남! 오늘은 무슨 일이래.?
?…내가 무슨 응큼 남이야…….?
?왜 이러셔. 소문 다 났어. 로아냐드 제국의 황실 목욕탕에 갔다가 총회주님께 엄청 맞았다
며? 389호 화장실에 한번 가보라고. 총회주님께서 일 보시면서 거기다 너의 만행을 낙서해
놓으셨다고.?
?헉!?
그녀들의 말에 레드론은 김빠지는 신음 소리를 내더니 다급한 얼굴이 되어 라디안을 보며
말했다.
?잠시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게나. 빨리 다녀올 테니 말이야. 페리나, 이 친구는 헤른드님께
서 저번에 구하시던 제자 후보 중 한 명이니까 잘 데리고 있으라고.?
?물론이지. 응큼남과 이렇게 귀여운 미소년을 같이 취급할 줄 알아??
?…….?
할 말을 잃은 레드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비서실의 마법진으로 가 389호 화장실의 낙
서를 지우기 위해 텔레포트하여 사라졌다.
여기까지 간단히 줄이면 라디안 칠인회에 도착해서 칠인회 2회주 헤른드 라비에타님의 비서
실에 도착하다였는데… 정말 여기까지 오는 이야기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다니……. 그
나저나 레드론이 사라지자 라디안은 정말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보통 칠인회에 실력을 인정받고 가입하게 된 제대로 된 마법사라면 40대 중반의 나이가 보
통이고 그 자질을 인정받아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꼬마들은 지정된 마법 교육원에서 적게는
10년, 많게는 20년 정도의 기본 과정을 교육받아 나오게 되기 때문에 어린 시절은 사라지고
실제로 칠인회에서 정식 회원이 되는 것은 빨라야 이십 대 초반이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다 보니 미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라디안 같은 소년 마법사는 정말 칠인회 내에선 구
경하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칠인회 서비스 개선 본부에서는 일부의 요구 사항 중에 뜻밖의 취미를 가진 여자 마법사들
이 꽤 많아 소년 마법사의 한정 영입이란 황당한 서비스 개선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세 명의 여자 마법사들은 모두 마법 교육원에서 교육받고 나온 여자 마법사였
는데 이들은 뜻밖의 취미를 가진 여자 마법사의 일원들로, 가끔씩 찾아오는 총회주의 집무
실 밖에서 미소년 마법사 영입이란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열성 회원들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친다면 그것은 참새가 아니다?라는 고대의 속담도 있듯이 그
런 마법사들이 어찌 미소년 라디안을 가만히 둘 수가 있겠는가.
여기서 잠시 이벤트 타임을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예상하고 있는가. 드래곤 마법사 쇼타콘
버전!! 세 명의 여자 마법사에게 둘러싸인 라디안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에 등에서 굵
직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앞에 있는 세 명의 여자 마법사들은 마치 토끼를 노려보는 승냥이의 눈빛처럼 라디안
을 바라보며 다가오기 시작했고, 라디안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뒷걸음질치다가 몸을 가누
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라디안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기어갔지만 사방에 막혀 버린 공간 안
에 라디안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것을 본 세 명의 여자 마법사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머금어졌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라디안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라디안은 그들에게서 느끼는 공포로 떨리는 몸을 가눌 수 없었기에 눈에서 한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금씩 조금씩 라디안의 몸으로 다가오는 여섯 개의 손. 그것은 어떤 악마의 손
길로 드리워지는 어둠보다 더 어두운 그림자였기에 꿈이라, 생각하고 싶은 라디안은 극한의
두려움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머, 이 볼 좀 만져 봐!?
?부드럽기도 해라. 무슨 남자애가 피부가 이렇게 곱니??
?음… 잔잔히 풍기는 이 젖내. 아직 아기의 향기가 가시지 않은 것 같아. 베이비 로션이라
도 바르나??
여자들의 손길에 벗어나고자 라디안은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었지만, 그녀들의 완력은
생긴 것과는 달리 장정에 못지 않았기에 좀처럼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라디안의 볼은 물
론이요, 머리카락, 손… 정말 손대면 울 것 같은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세 명의 여자 마법사
들의 손이 스쳐 지나갔고, 반항이 소용없다는 것을 안 라디안은 천천히 지쳐 갔다.
그리고 지쳐 가는 라디안을 노렸는지 이때다 싶은 여자 마법사의 손들은 조금씩 조금씩 신
체의 각 부분을 지나 건들면 울 것 같은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는데…….
?대충해라, 이것들아!?
언제 나타났는지 레드론은 라디안을 쓰다듬고 있던 세 명의 여자 마법사들의 머리에 알밤을
먹이고는 라디안의 손을 잡아끌었다.
?나참, 내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겼으니. 그건 그렇고, 이것들이 나한테 뻥을 쳐!?
?무슨 소리! 화장실에 낙서만 없다뿐이지 사실이잖아!?
아쉬움이 남았는지 레드론의 말에 세 여자들은 버럭버럭 달려들었고 레드론은 손을 내저으
며 다그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칠인회 여자들은 다 저렇게 드센 여자밖에 없는 거야! 이러니 내가 아직도 총각으
로 살지.?
진실인지 의심스러운 말을 내뱉는 레드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