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래곤의 마법사-6화 (6/247)
  • 5장 의문의 적

    [보이지 않던 길이 이젠 내 앞으로 다가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생각해 본다. 무엇이 길이고 무엇이 길이 아닌가?

    존재하는 모든 허상이 실상이 되어 있을 때

    길은 길로써 나타날 수 있으며

    마음은 그 길로 걸어갈 수 있으리라.]

    ?도대체 보이지 않는 길이 뭐야??

    사방이 온통 얼음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 군데군데 보이는 가구들까지 얼음으로 만들어진

    방이었지만 그 안의 온도는 그리 낮지 않았다. 아니, 얼음으로 뒤덮인 방은 인간이 살아가기

    에는 가장 알맞은 온도를 내고 있어, 봄날의 햇살같이 따뜻하기만 한 곳이었다.

    한 장의 양피지에 은백색의 머리칼이 아름다운 이십 대 초반의 남자가 쓴 글을 지켜보던 보

    라색 머리의 열 살 정도쯤의 작은 소녀는 글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

    개를 좌우로 연신 흔들고 있었다.

    고개를 흔들며 고심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귀엽기 그지없었기에 글귀를 읽고 있는 소녀의

    얼굴을 보던 은발의 남자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카오스.?

    ?카오스??

    선문답 같은 남자의 말에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묻자,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두 손으

    로 그녀를 가볍게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아직 너는 잘 모를 게다. 이 담에 시집갈 정도의 나이가 되면 이 오빠가 설명해 주마.?

    ?에이, 사이야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는걸??

    사이야란 소녀는 어른이 되면 가르쳐 주겠다는 그의 말에 실망했다는 듯이 뾰로통한 표정으

    로 입을 내밀었고, 청년는 그런 그녀가 귀여웠는지 볼에 살짝 키스를 해주며 말했다.

    ?하지만 오빠가 지금 말해 줘도 잘 모르잖아??

    ?사이야는 알 수 있어.?

    이야기만 해준다면 알 수 있다는 듯 자신있게 말하자, 그는 소녀를 잠시 내려주고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사이야는 오빠보다 힘이 세니 약하니??

    ?그야 북극령의 왕이자 얼음 성의 주인인 오빠가 더 세잖아??

    ?그래. 그럼 오빠가 사이야보다 힘이 세다고 조그마한 사이야에게 맨날 일만 하라고 하고

    음… 청소하고 빨래도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할래??

    그 말에 사이야는 정말 그런 일을 시키기라도 한 듯이 울상이 되더니 말했다.

    ?오빠가 그러면 사이야는 울어버릴 거야.?

    당장 울듯한 표정을 짓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빠가 왜 사이야에게 그런 것을 시키겠니? 그래, 아까 오빠가 말했던 게 뭐지??

    ?카오스??

    소녀의 말에 그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맞았어. 카오스는 혼돈이지. 세상은 이런 혼돈이라고 할 수 있지. 사람들은 혼돈 속에서

    살아가지만, 단순히 혼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그 속에서 하나의 질서을 찾는다고 할 수

    있어. 오빠의 글귀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길은 카오스, 즉 혼돈이고, 보이는 길은 카오스

    속에 나타나는 하나의 질서, 즉 코스모스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오빠가 어린아이가 할

    수 없는 일을 사이야에게 시킨다는 것은 하나의 질서를 무시하는 행동이니 이것은 혼돈의

    상태로 빠져든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알고 힘든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은 무질서 속에서

    하나의 코스모스 즉 질서를 만들어냈다는 거야."

    ?사이야는 그런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그렇지. 하지만 나중에 사이야가 크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테지. 그럼 그 코스모스는 다

    시 카오스로 변하는 거야.?

    그의 말에 아직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팔에 매달리고는 말

    했다.

    ?사이야는 그런 거 잘 모르겠어. 오빠, 나 썰매 태워줘. 사이야는 오빠가 태워주는 썰매가

    가장 재밌더라.?

    소녀의 말에 그는 소녀를 들어 무등을 태우더니 말했다.

    ?그럴까? 오빠도 사이야랑 노는 것이 가장 재밌더라.?

    ?뭐야, 이거??

    여행에 필요한 짐들을 먼저 보내고 아크라시마의 레어로 텔레포트한 루드웨어와 로노와르는

    그의 레어 안이 온통 피투성이로 변해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도 없잖아??

    루드웨어는 찾고 있던 화이트 드래곤 아크라시마는 없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레어를 돌아

    보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얼어버린 피를 손가락으로 녹이고는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뭐야!!?

    로노와르가 피를 찍어먹는 엽기적인 그의 모습에 놀라서 묻자 루드웨어는 잠시 입맛을 다시

    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드래곤의 피 맛인데? 아마 아크라시마의 피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그의 말을 들으며 로노와르는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맛만 보고 아크라시마인 줄 아는 거야. 또 드래곤의 피는 언제 먹어본

    거야??

    ?한 오십 년 정도 전인가? 한참 드래곤 슬레이어 놀이를 하고 있을 때 조금 맛을 봤어.?

    ?이 짐승!!?

    로노와르가 역겨운 놈을 봤다는 듯이 말하자 루드웨어는 웃으며 말했다.

    새삼 생각해 보건대 도대체 루드웨어의 나이는 몇 살이란 말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

    십 대 초반의 얼굴인데 오십 년 전이라니… 리치가 아닐까 의심이 된다.

    ?나랑 논 사람이 누군지 알면 그런 말도 못할 텐데??

    ?누군데!!?

    ?레드 드래곤 시크라.?

    그 말에 로노와르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드래곤 일족 중 가장 괴이한 성격을 가진 괴짜 드래곤인 레드 드래곤 시크라는 에이션트 드

    래곤인 프로란스보다 오백 살이 적은 드래곤 일족의 원로 중 한 명이다.

    드래곤 중 유일하게 루드웨어와 마찰이 없는 사이로, 오히려 가끔씩 그를 레어 안에 불러놓

    고 놀기까지 한다. 그 탓에 드래곤 로드는 루드웨어의 장난을 막을 때마다 시크라에게 부탁

    을 하곤 했지만 시크라 역시 루드웨어에 못지 않은 괴짜였기 때문에 결과는 비슷하곤 했다.

    ?도대체 시크라의 피는 언제 먹어본 거야??

    ?먹다니? 무슨 소리야. 슬레이어 놀이 하면서 피 터지게 싸우다가 피 좀 맛봤을 뿐인데. 아

    마 시크라도 내 피를 조금 맛보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새삼 생각해 보면 가끔씩 시크라가

    나를 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건 그때 먹은 피를 잊지 못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로노와르는 멍하게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아크라시마는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포장 이사당한 것 같은데… 어디, 놈들이 쓸

    만한 것이라도 남겨놨나 찾아봐야겠다.?

    ?잔인한 녀석.?

    로노와르는 가뜩이나 동족이 죽임을 당한 것 같아 슬퍼 죽겠는데 그것을 아무런 거리낌 없

    이 말하는 루드웨어가 새삼 무섭게 생각됐다.

    ?잔인하다니! 난 지극히 현실적일 뿐이야. 생각해 봐라. 오크를 잡아먹는 네가 오크가 죽었

    다고 불쌍하게 생각되니??

    그 말에 로노와르는 고개를 저었는데 그것을 보며 그는 다시 말했다.

    ?똑같은 거야. 나에겐 아직 드래곤의 죽음을 슬퍼할 명분이 없어.?

    ?드래곤하고 친하잖아.?

    ?나랑 친한 드래곤은 음… 프로란스나 시크라가 죽으면 나 역시 슬프겠지. 아마 원수도 갚

    아주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나는??

    새삼 희한한 것을 물어보는 로노와르였다.

    ?마누라가 죽었는데 복수 안 하겠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로노와르. 바보 로노와르는 루드웨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마 성

    체가 되면 루드웨어에게 시집가지 않을까 생각되어지는 상황이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로노와르는 자신의 물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이미 엎질

    러진 물이다.

    ?나 정말 루드웨어에게 시집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민에 빠져 있는 로노와르에겐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루드웨어

    는 레어 안의 여기저기를 뒤지더니 결국 찾고자 했던 걸 찾아내고야 말았다.

    ?빙고!!?

    ?뭐야??

    로노와르가 궁금하다는 듯이 다가가자 그는 레어 한쪽 벽에 박아놓은 바위를 마법으로 꺼내

    더니 그곳에서 몇 가지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옛날에 아크라시마의 레어에 들렀을 때 쓸 만한 물건을 녀석 모르게 숨겨놓았는데 그게

    아직도 있어서 말이야.?

    로노와르는 루드웨어가 몰래 숨겨놓았다길래 무슨 굉장한 물건인 줄 알고 살펴보았는데, 애

    석하게도 루드웨어가 꺼내놓은 물건 한 주머니의 금화와 몇 가지 무기, 보석들이었기에 실

    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그런 건 내 레어에도 있잖아??

    ?무슨 소리.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도 몰라? 이렇게 조금씩 모아서 나중에 내 레어를 가득

    채워야지.?

    ?니 레어??

    ?응! 마누라의 집이 곧 내 집이 아니겠냐? 너도 빨리 챙겨. 이게 다 우리 신혼품 장만할

    돈이니까.?

    ?…….?

    울고 싶은 로노와르였다. 루드웨어는 이미 둘의 결혼은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었

    고, 루드웨어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연약한 로노와르는 포악한 영주에게 사로잡힌 평민의 여

    자처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근데 뭐 하나 빠진 것 같아.?

    ?뭔데??

    한참을 생각하던 루드웨어는 생각이 날 듯하다 안 나는지 머리를 잡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물론 이것은 로노와르가 보기엔 발광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잠시 후 생각이 났다는 듯

    이 손바닥을 치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보았다.

    ?옛날에 아크라시마가 좋은 아이템을 하나 얻었다고 자랑하길래 열받아서 천장에 던져 박

    아 넣고 모른 체하고 도망쳤는데 그게 생각나서 말이야.?

    ?좋은 아이템??

    로노와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레비테이션(부유 마법)을 써 천장으로 올라가더니 그곳에

    서 무엇인가를 뽑아서 내려왔다.

    ?뭐야??

    ?러브즈 대거.?

    ?러브즈 대거??

    ?응. 아크라시마가 유희를 즐길 때 인간 여자들 중에 정말 절세미인인 공주가 있었다는데

    워낙 드세서 안 넘어오더란 거야. 그래서 한참을 어떻게 하면 꼬실 수 있을까 고민하다 드

    워프하고 요정을 협박해서 만들어놓은 대거지. 5서클의 기브 미 러브 마법이 걸려 있어서

    웬만한 여자들은 다 꼬실 수 있어.?

    너무 좋은 아이템에 로노와르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하던 루드웨어는 러브즈 대거를 들고 잔인한 미소를 띠며 로노와르에게

    다가갔다.

    ?무슨 짓이야!?

    ?날 사랑하게 될걸! 헤츨링이 무슨 마력이 있어 이 마법을 견딘단말인가. 푸하하하!!?

    ?안 돼!!?

    ?받아라! 파워 오브 러브!!?

    그리고 십 년 후.

    ?여보, 우리 애기 뭐 하고 있어??

    루드웨어는 밭을 갈다가 새참을 가져오는 그린 드래곤 로노와르를 보며 물었다.

    ?잘 자고 있어용~?

    일단 엉뚱한 생각은 넘어가기로 한다. 진짜 좋은 아이템의 탄생. 그것만 있으면 루드웨어는

    신나게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삶의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 거야.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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