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6 균열(龜裂) =========================================================================
물과 땅. 시야에 보이는 것은 두 가지 밖에 없었다. 칸나가 바위 위에 걸터앉은 채 망망대해를 바라봤다.
심심해.
그 단어가 그녀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
아~ 하고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던 그녀가 이곳으로 이동시킨 능력자의 말을 떠올렸다.
"음...뭐랬더라."
입을 벌린 채 그녀가 기억을 더듬어갔다.
(칸나 씨. 당신을 제 세계 속으로 옮길 것입니다. 사라드와의 시간차가 1:10으로 나게 해 놓았으니 그곳에서 마음껏 먹고 2일 뒤에 열릴 흰색 문을 타고 돌아오십시오.)
(...뭔 소리야?)
(...그냥 흰색 문 열리면 돌아오라는 소리입니다.)
(응! 알았어!)
(흰색 문이 열렸을 때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 세계는, 갇혀 있는 것만으로 당신의 랭크를 쭉쭉 떨어뜨릴 것입니다.)
칸나는 고개를 갸웃했었다.
(...뭔 소리야?)
(...오래 있으면 근력은 시체처럼. 머리는 바보가 되어버린 다는 뜻입니다.)
바보가 된다니 정말 무서운 이야기였다.
(흰색 문 꼭 타고 나올게!)
(네, 아무쪼록 부탁드립니다.)
“아~..”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멍하니 있었다. 모든 것이 귀찮아져 왔다.
“할일이 없을 땐 먹는 게 최고지!”
그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애초에 생각이 없기에 발생하는 엄청난 행동력.
“[인벤토리 오픈!]”
인벤토리가 열리며 수많은 컨테이너 박스가 그녀의 뒤쪽으로 쏟아져 내렸다. 쿵. 쿵. 쿵. 컨테이너 박스가 흙바닥에 박히며 굉음과 함께 흙먼지를 일으켰다. 콧노래를 부르며 그녀가 컨테이너 박스 하나의 문을 열었다.
우르르르르. 포장된 각종 초콜릿과 과자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내렸다. 저칼로리 식단은 개나 줘버릴 초 고칼로리의 모임.
“마음에 들어!”
포장지를 뜯은 그녀가 초콜릿으로 둘러진 부드러운 쿠키를 집어먹었다. 심심할때는 두가지만 하면 됐다. 하나는 먹는 거. 남은 하나는......
그녀가 다른 손으로 품속에 넣어두었던 책을 펼쳤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유일하게 처음 읽은 책이었다.
존스의 무술 강의서.
남은 하나는...강해지기.
“그러니까 상체 페인팅이라는 게...”
남은 쿠키를 입속에 통째로 털어넣은 그녀가 일어나서 목을 좌우로 꺾었다.
"해보자!"
킥복싱 자세를 잡은 그녀가 왼손 잽을 하려는 척을 하다가 로우킥을 뻗거나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뻗는 척을 하려다가 하단태클을 거는 등의 동작을 반복했다. 여러 동작들의 움직임에 따라 긴 흰 머리카락이 허공에 이리저리 흩날렸다.
“재밌어!”
왼손 잽에서 오른손 어퍼로. 오른손 인척 하면서 왼손 더블. 오른손 스트레이트인 척 하면서 목잡고 무에타이 니킥.
각종 기술들이 쏟아져 나왔다.
“역시 존스는 대단해!”
한동안 땀을 흘린 그녀가 자신의 얼굴크기만한 초코칩을 4등분해서 통째로 집어삼켰다. 우걱우걱. 다이어트 하는 여성의 하루치 칼로리가 순식간에 그녀의 입 안으로 사라졌다.
"맛있네!"
혀로 분홍 입술에 묻어 있는 쿠키 조각들을 핥은 그녀가 책을 한 장 더 넘겼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상대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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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상대하는 방법.
1. 될 수 있으면 도망친다.
2. 도망치는 게 안 되면 최대한 싸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3. 그래도 안 되면 몇 대 맞아줘도 되는지 생각한다.
4. 그런 노력들이 하나도 통하지 않을 시에만 전투를 준비한다.
5. 어떤 인물을 만나면 관찰을 해야 한다. 어느 손이 주 손인지,
어느 쪽 발이 주 발인지. 원거리 공격 타입인지 근거리 공격 타입인지.
어떤 무술을 사용하는지 어떤 성격인지. 그것에서부터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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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칸나가 책을 덮고는 푸른 하늘을 쳐다봤다.
존스의 격투술 총람. 그 진수를 읽은 그녀의 감상은 이랬다.
“...뭔 소리야?”
추방자의 마을.
밀짚으로 엮어진 집들의 사이로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그들을 헤치고 나아가면 나무로 된 가판 위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건어물 팝니다~ F급 코인부터 거래해요.)
(단단한 몬스터들의 외피 뚫을 수 있는 검팝니다. 수명코인으로 거래 원합니다.)
(드레스 팝니다. 결혼하실 분들을 위해 여러 벌 준비했습니다. 가격은 흥정이에요~)
흙 냄새. 음식 냄새.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틈에서 케이나는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어른. 어른. 어른들 뿐이었다. 그다지 살 물건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식량이었지만 에스퍼씨가 담당하기에 그다지 걱정 할 건 없었다.
'어른들 뿐이네...'
그녀의 또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나가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는 그녀였다. 코인이 많은 편이 아니었기에 상의하고 사고 싶었다.
몇 번이고 마을의 어귀를 바라보았지만 한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누군가의 애정이 너무나도 받고 싶은 그녀였기에 마음이 초초했다.
'한나 언니..언제 오지...'
터벅 터벅. 그녀가 시장을 걸었다. 부딪혀 오는 사람들을 헤치며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한동안 시장을 헤매던 그녀의 눈이 한 곳에 멈춰 섰다. 너무나도 튀는 붉은 머리의 소년.
'...어?'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진한 머리카락, 거대한 검을 등받이 삼아 앉아있는 소년이 보였다.
비슷해 보이는 나이대.
케이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 소년도 고개를 돌리고는 케이나를 바라봤다.
'앗.'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미소 지은 소년이 손을 흔들었다. 당황한 케이나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고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소년의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빨갛게 변한 케이나가 소년을 바라보며 작게 손을 흔들었다. 부끄러웠지만 반가웠다. 비슷한 또래를 회색방에서 만나기는 힘들었으니까.
소년이 먼저 인사했다.
“안녕?”
‘어..어쩌지.’
나쁜 플레이어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머뭇거리던 케이나가 소년의 곁으로 다가갔다.
'먼저 인사도 해줬고...'
전투지역도 아니니 여차하면 도망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소년의 미소가 너무나도 포근했다.
'나쁜 애..아닐거야..'
그녀는 따뜻한 사람이 너무나도 좋았다.
“아..안녕.”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시한 채. 그가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쳤다. 앉으라는 표시.
그가 물었다.
“너도 누군가 기다리고 있어?”
“어...어.”
회색방에서는 보기 힘든 비슷한 나이또래의 소년. 케이나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옆에 앉았다.
‘뭐..뭐하는 거지 나.’
케이나의 눈이 소년을 훑었다. 존스처럼 울퉁불퉁 튀어나온 것이 아닌 매끈하게 갈라진 근육들이 옷가지 사이로 얼핏얼핏 보였다.
'멋있다...‘
“나도 분명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 듣고 와 있는데. 도저히 올 생각을 안 하네. 속은 느낌이야.”
'아... 뭐하는 거야 케이나.’
속마음을 숨긴 채 케이나가 대답했다.
"어.. 곧 오지 않을까?”
소년이 웃었다. 시끄러운 시장 사이에서도 그의 모습은 밟게 빛났다. 웃음을 멈춘 그가 물었다.
“이름이 뭐야?”
“어..나 케이시..아니 케이나.”
“케이나? 신기한 이름이네.”
“...그래?”
케이나의 심장이 계속해서 두근거렸다. 김철수와 하늘을 날 때만큼이나 두근두근 거렸다.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네..이름은?”
“요한.”
“..외우기 쉬운 이름이네.”
“그래? 하긴 우리 행성에서도 유명한 이름이었으니까.”
케이나가 그가 기대고 있는 거대한 대검을 바라봤다. 천으로 꽁꽁 쌓여있었지만 엄청나게 무거워 보였다. 사람이 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거 네 꺼야?”
“응.”
네 꺼라고?
“설마 이거 들고 싸워?”
“물론이지.”
헐. 케이나의 입이 벌어졌다.
이런걸 들고 싸울수 있는 존재란. 그녀가 알기로는 칸나밖에 없었다.
“진짜 이런 걸 휘두른다고? 너 아케넨이라던가 그런데서 왔어?”
“아케넨? 아니. 하하. 보통 우리 행성 사람들도 이런 거 못 휘둘러.”
“그럼 어떻게 이거 들고 싸워?”
자신을 놀리는 것인지 진실인지 알 수가 없어진 케이나가 입술을 삐죽였다.
"나 놀리는거지?"
"아니야.. 나는 보통 사람들이랑 좀 다르거든."
"뭐가 달라?"
케이나가 그의 행색을 이리저리 훑었다. 근육이 예쁘긴 한데 그래도 이 검을 휘두르는 것은 무리로 보였다.
“나는...”
검에 더욱 깊게 기댄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전설속의 용사니까.”
“...응?”
과대망상증이라는 단어가 케이나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긴 회색방을 지나다니며 제정신인 사람이 몇 명인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한숨이 그녀의 입을 통해 새어나왔다.
“...허세 하나는 전설 급인 거 같아.”
“어? 진짜인데.. 뭐 안 믿어도 별 수 없고. 하하.”
요한이 슬쩍 케이나의 팔을 바라봤다. 은색 팔찌. 플레이어들의 증표가 보였다. 그의 마음속에 호기심이 올라왔다.
“너도 플레이어지?”
“...응.”
“넌 뭘로 싸워?”
케이나가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고는 말했다.
“나? 내가 보는 모든 대지의 끝까지 얼리거나 불태울 수 있어. 얼리는 거라면 드래곤 정도도 얼릴 수 있고...얼리는 건 내가 아는 다른 애한테 민폐 끼치는 거라서 안 쓰지만.”
"용이 얼어?"
하아? 이번에는 요한이 입을 벌렸다.
“너도 어딘가의 대단한 인물이야?”
“아니..그냥 여자애인데...뭐야, 안 믿는 거야?”
“아니... 뭐...”
“됐네요. 전설의 허세님.”
케이나가 고개를 돌려 시장을 바라봤다.
허세는 심한 소년이었지만 딱히 싫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전투가 아닌 마음 편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좋았다. 매일 오늘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그녀였다.
오빠 언니. 어른들하고 이야기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같은 또래 애 하고 이야기 하니까 무언가 위안을 얻는 기분이 드는 그녀였다.
“그래서 허세님은 누구 기다려?”
“...뭐 안 믿어도 상관없으니까.. 리자 씨라고 성격 엄청 강한 누나 기다려.”
“...누나?”
왜인지 기분 상하는 케이나였다. 누나.
“뭐 하는 누나인데?”
“어? 어... 그러니까 뭐하는 사람이냐고 하면.. 입은 걸걸 하고 복장도 좀... 그런데 실제 마음은 따뜻한 사람.”
“...그래?”
왠지 시샘이 났다. 나도 그런 사람 많이 아는데. 자랑하고 싶어지는 케이나였다.
“만나서 뭐 하려고?”
“어, 사람을 하고 어떤 팀을 찾고 있어. 그 팀에 들어가기로 했거든.”
“사람? 팀? 누군데?”
생각만 해도 마음이 떨리는 듯 그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시현 씨라고. 대단한 사람이야. 사라드 오면 디펜더스라는 팀 만나라고 했었거든.”
“...시현 오빠?”
당황한 케이나가 시선을 피했다.
대단한 사람. 디펜더스. 두 단어가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혹시 알아? 디펜더스라는 팀.”
“아...아니.”
거짓말을 하는 케이나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마음이 아파왔다. 그곳에 자신의 자리는 없다고 되뇌는 그녀였다.
그 자리는 케이시의 것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시현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시현 씨라는 사람 이야기 좀 해줄래?”
“어? 관심 있어? 음 그 사람은.. 그래. 처음 본 건 내가 엉망이 되어서 빗속을 헤매던 때였어. 죽고 싶은 마음에 가서는 안 되는 괴물들의 숲을 갔었거든. 부모님이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고 세상이 미워졌었어.”
“...응.”
“그는 빗속을 뚫고 나에게 왔었어. 눈물을 흘리고 있던 내가 물었거든, 누구시냐고. 그러니까 그가 뭐라고 했는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
마치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재생하고 싶다는 듯 그가 눈을 감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숨을 헉헉 대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어. 너를 전설의 용사로 만들어 줄 사람이라고.”
그가 피식 웃었다.
“웃으면 안 되는데... 그런데 그는 정말로 그 말을 지켰어. 아직도 그가 했던 말이 생생하게 기억 나. 당신이 정말로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한다면..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는 말이었는데 그 한마디 말이 내 인생을 바꾸었거든.”
케이나의 마음이 울적해져갔다.
그녀가 되찾을 수 없는 행복이 그곳에 있었다.
“그러니까.. 어? 너 울어?”
“..아..아니야.”
애써 눈물을 훔치는 케이나를 힐끗 보며 요한이 말을 이어갔다.
“내가 아무리 강해져도 그를 따라 갈 수 있을 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 그는 너무나도...어 그러니까... 말로는 잘 설명이 안되네 하하. 너도 만나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케이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상황이건 포기 하지 않는 사람.
대단한 사람이라는 말에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이! 요한!)
누군가가 요한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말을 하던 요한이 고개를 돌려 시장쪽을 바라봤다.
“어? 리자 누나! 여기요!”
케이나의 시선이 요한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가 말했던 대로 엄청난 복장을 한 붉은 단발의 여자가 요한을 보며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첫 인상은 간단했다.
‘보..복장 너무 야해.’
온 몸의 몸매가 드러나는 검은 라텍스 재질의 옷은 케이나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보고있는 케이나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리자가 사람들의 사이를 헤치고 오며 찡그린 채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 사람 드럽게 많네 진짜. 뭐야 요한. 그 사이에 여자애 꼬셨어?”
“아..아니에요 이건 그냥...”
“어이구~ 전설의 난봉꾼 되시게?”
“아...진짜 리자 누나.”
킥킥 웃으며 요한의 머리를 두드리는 리자를 보며 케이나가 급격하게 우울해져 갔다. 뛰어난 몸매와 나이와 야함과 적극성.
‘나..난 상대도 안 되겠다...’
케이나가 슬쩍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너무나도 가녀린 몸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흠.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그녀가 다시 한번 리자의 몸을 바라봤다.
들어갈때는 들어가고 나올때는 나온것을 완벽하게 시선적으로 어필하는 몸과 복장.
'아...'
괜히 몸을 움츠리는 그녀였다.
"케이나. 그럼.."
요한이 뭐라고 말하려는데, 멀리서 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이나~? 케이나~?)
“어? 너도 기다리던 사람 왔나 봐.”
“...어. 그런 거 같아.”
“아쉽지만. 여기까지인가 보네. 또 보자. 케이나.”
“..그..그래.”
요한이 일어서서 거대한 대검을 등에 짊어 맸다. 케이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지..진짜 들고 다니네?’
어쩌면 그가 한 이야기가 거짓이 아닐꺼라는 생각이 아주 조금 생겨난 케이나였다.
“안녕! 대화 즐거웠어!”
그가 손을 흔들었고 케이나도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같은 또래와 이야기 하고.
시현 오빠에 대해서 듣고.
멀리서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오는 한나의 모습이 보였다.
케이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요한이 시현에게 들었다는 말을 떠올렸다.
당신이 정말로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한다면..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현 오빠...’
그 말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다가왔다.
복잡했던 그녀의 마음이 따듯하게 안정되어갔다.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면...’
가장 행복했던 시절.
그때의 기억이 잡힐 듯이 다가왔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케이나. 오래 기다렸어? 어? 무슨 좋은 일 있었어?”
어느새 다가온 한나가 케이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평온해 보이는 케이나의 표정에 한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나의 물음에 그녀가 대답했다.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대답과는 달리
케이나의 얼굴은 한없이 예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