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탈출-337화 (337/373)

00337  Episode 2-14 추락(墜落)  =========================================================================

마을에 진입하려던 좀비들이 거짓말처럼 쓰러져갔다. 주저앉은 두 명의 여자는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좀비들을 옮기던 기계다리들이 파괴되며 마을의 잔해 사이에 처박혔다. 총성이 한번 울릴 때마다 그녀들에게 다가오던 좀비들이 연속적으로 쓰러져갔다.

총성이 잠시 멈췄다고 생각한 순간. 거대한 폭음이 그녀들의 귀를 때렸다. 폭발과 함께 좀비 뭉텅이들이 연속적으로 통째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게 무슨...”

탕.

탕.

탕.

벽을 넘지 못하고 수많은 좀비들이 쓰러졌다.

피리아는 총성의 의미를 깨달았다.

“...기계 다리 위주로 저격하고 있어.”

그녀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좀비들만으로는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진짜로.. 도움을 받고 있다고?”

탕!

초록머리여자가 검을 집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뭔지 모르겠지만 살았네!”

하하. 피리아가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내뱉었다.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그녀의 온몸에서 힘이 돌았다.

‘할 수 있어.’

그녀도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섰다.

희망의 불씨가 그녀들의 가슴에 심어졌다.

“...어, 저기.”

초록머리 여자가 서쪽 언덕을 가리켰다.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거대한 발칸포가 불을 뿜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드르르르르르르. 이길 수 없었을 것 같았던 좀비들이 순식간에 쓰러져가고 있었다.

피리아와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서로를 바라봤다.

시현의 팔 움직임을 따라 7개의 총신이 이어져 달려있는 발칸포가 불을 뿜었다.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륵. 탄피가 끊임없이 허공으로 비산하며 연속적으로 포물선을 만들어냈다.

좀비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분당 수천발을 발사하는 괴물같은 위력의 무기가 포효했다. 시현이 이를 악 물었다. 그의 팔이 사격의 반동에 따라 계속해서 떨렸다.

그는 그녀들을 도와주어서는 안 되었다.

머리로는 얼마든지 이해하고 있었다.

좀비들이 쓸려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이성이 그를 말렸다.

시현, 살아남아야 해.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륵.

처음으로 그는 그 목소리에 대답했다.

“...웃기지 마.”

눈앞에서 동료들의 그림자를 봤다.

그렇기에

그들을 절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끊임없이 탄을 토해낸 발칸포의 총신이 과열되어 뜨거운 김을 뿜어냈다. 손이 얼얼하고 근육이 아파왔지만 시현은 이정도에서 공격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인벤토리 오픈]”

주변 허공에서 수백 개의 수류탄이 나타났다.

“[햄버거 소환]”

-띠링.

-유기농 매그도나르도 햄버거를 섭취하셨습니다. 몸의 모든 피로가 사라집니다. 온 몸에 활력이 돕니다.

“으아아아아!”

그가 안전핀을 뽑아 수류탄을 연속적으로 던졌다.

헌터 시현. 그녀들을 돕지 마. 네가 죽게 될 거야.

“난 헌터 시현이 아니야.”

날아간 수류탄이 폭팔하며 수백개의 쇳조각이 좀비들을 꿰뚫고 지나갔다.

-경고, 헌터 진영의 몬스터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스테이지에 남아있는 좀비 숫자 684.

시현을 향해 기어 올라오던 좀비들의 머리위에서 수류탄이 연속으로 폭발해 나갔다. 지상을 향해 쇠 파편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갔다.

-경고, 헌터 진형에 있는 몬스터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스테이지에 남아 있는 좀비 숫자 410.

“[인벤토리 오픈]”

시한신관을 가진 수십 개의 다이너마이트가 그의 앞에 놓여졌다. 머릿속을 울리는 말들을 거부한 채 그가 타이머를 작동시켰다.

이건 네가 살 수 있는 길이 아니야.

“아니, 이게 내가 나로써 살 수 있는 길이야.”

수백 마리의 좀비가 그가 있는 언덕을 다닥다닥 기어 올라왔다.

시현이 뒤 돌아 달렸다.

헌터 시현. 그들을 죽여.

달리던 시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누구냐고?

좀비들이 언덕을 기어 올라와 재깍거리는 다이너마이트 앞에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헌터 시현. 그들을...

내가 바로...

“내가 바로 디펜더스의 시현이다!!”

그의 외침소리와 함께 신관의 타이머가 0을 가리켰다. 스테이지 전체를 때리는 거대한 폭음이 터져나왔다. 언덕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지진이 난 듯 땅이 흔들렸다. 거대한 산의 해일이 좀비들을 덮쳐갔다. 모든것을 쓸어버리는 자연의 분노가 좀비무리를 집어삼켰다.

-스테이지에 남아있는 좀비숫자 312, 182, 87, 21......

내가 바로 디펜더스의 시현이다!

울려 퍼진 시현의 외침이 언덕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들의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산의 한 부분이 무너지며 굉음과 함께 거대한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대지를 통해서 전해지는 진동이 그녀들의 온몸을 울렸다.

-띠링.

-스테이지에 남아있는 좀비숫자 312, 182, 87, 21......13...

좀비들의 숫자가 순식간에 줄어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추풍낙엽.

석상이 된 것처럼 그녀들은 좀비들이 쓸려가는 광경을 그저 바라봤다.

피리아가 자신의 볼을 잡아당겼다.

“...꿈 아니죠?”

먼 언덕에서

탕. 하는

경쾌한 총성이 울려왔다.

권총이 불을 뿜으며 탄피가 튀어나갔다.

-스테이지에 남아있는 좀비 12.

-헌터 시현. 아군 진영 병력이 전멸 직전입니다.

낙엽을 해치며 어기적거리는 좀비를 향해 시현이 총구를 겨누었다.

탕!

웃음이 나왔다.

그의 총구가 연속적으로 불을 뿜었다.

-스테이지에 남아있는 좀비 11, 10, 9, 8...

-4,3...

탕. 탕.

-남아있는 좀비. 1

마지막 남은 좀비가 시현을 노리고 손을 휘둘러 왔다.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가 허리를 숙이며 좀비의 하체를 잡아갔다.

너무나도 익숙한 동작이었다.

오랜 기억이 떠올랐다.

설원에서 무기도 없이 끝도 없이 밀려오는 좀비들을 물리쳤던 기억.

존스와 함께하며 수없이 단련한 기술이었다.

싱글 렉 테이크 다운.

"으아아아아!!"

좀비의 중심이 무너지는 것을 놓치지 않고 좀비의 다리를 들어올렸다. 동시에, 그의 어깨가 좀비의 몸을 거칠게 밀어냈다.

싱글 렉의 정석이었다.

존경하는 동료가 알려준 기술이었다.

좀비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며 박 터지는 소리가 났다.

-띠링.

-헌터 시현. 스테이지의 모든 아군 좀비가 전멸 했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아군 병력이 리스폰 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들을 피해 도망치시기 바랍니다.

“...듣던 중 고마운 말이네.”

손을 턴 그가 시체들과 떨어진 낙엽의 위에 누웠다. 플레이어들을 피하라는 음성이 무색했다.

“[인벤토리 오픈]”

전투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그는 무기가 아닌 다른 것을 꺼냈다.

시현의 표정이 편안하게 풀려갔다. 칸나로부터 받은 사진이 그의 손에 있었다.

상어를 타고 흰 머리를 휘날리며 바다를 달리는 칸나의 모습.

시현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감정들이 그에게 밀려들어왔다.

오랜 꿈을 꾼 느낌이었다.

칸나와 동료들을 만났다.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던 스테이지를 돌파해왔다.

시현 혼자였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룻밤의 꿈처럼 여러 가지 장면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들은 언제나 시현을 믿어주었다.

“아, 그거 있었지.”

사진을 집어넣은 그가 인벤토리를 뒤졌다.

언젠가 백화점에서 그렸던 디펜더스의 모습이 담긴 그림.

아련한 표정으로 그가 그림을 바라봤다.

흰색머리를 지닌 아름다운 여자와 챔피언 벨트를 메고 있는 거구의 남성.

함장의 복장을 하고 있는 중년인과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여인... 각자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10명의 인물들.

-띠링

[‘위대한 영웅들' 작품을 감상하셨습니다. 알 수 없는 존경심이 가슴 속 깊이 밀려들어 옵니다.]

그림의 위쪽에 쓰여 있는 < Defenders > 라는 제목을 바라보던 시현의 눈가가 촉촉해 졌다.

인생이 여행이라면

그는 최고의 여행을 끝마쳤다고 느꼈다.

위대한 영웅들과 함께했던, 위대한 여행을.

'고마웠습니다. 다들.'

그림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그가 눈을 감았다. 포근한 낙엽이 기분 좋았다. 수많은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빠져나가고 다시 밀려오길 반복했다.

한없이 편안한 기분이 그를 어루만졌다.

낙엽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그녀들의 말에 미동도 하지 않고 시현은 낙엽 위에 누워있었다. 피리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침을 삼킨 그녀가 시현의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봤다.

“...이봐요.”

피리아는 이 남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음에 처한 그녀들을 구하고, 엄청난 실력으로 좀비들을 쓸어버리고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행동도 말도 하지 않았다.

“...이봐요.”

그녀의 금발 머리카락이 시현의 얼굴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제서야 시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피리아가 흠칫 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가 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죽지 말아요.”

시현의 기습적인 한마디에 그녀가 뺨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당황하면서도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아... 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짜, 우리를 구해준...'

피리아의 뒤에있던 초록머리 여자가 검을 집어넣었다.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우릴 도와준 거죠?”

“위험에 처한 사람이 보이면, 도와야죠.”

시현의 말에 그녀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아니, 그게 맞긴 한데... 당신 헌터잖아요...”

“오래 살아남으세요.”

머리를 손가락으로 베베 꼬던 피리아가 시현의 시선을 애써 피하고는 물었다.

“디펜더스의 시현이라고요?”

산을 울렸던 외침.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다.

“네, 당신은요?”

“아, 저는 피리아고 이쪽은......”

“네라에요.”

"시현입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시현이 그녀들을 뒤로한 채 낙엽을 밟으며 걸었다.

“이봐요, 어디가요?”

무슨생각을 하는 남자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시현이 햄버거를 소환해서 그녀들에게 던져주며 대답했다.

“마을 지키러 가야죠.”

“...하?”

왜 그가 그녀들의 미션을 신경쓴단 말인가? 그의 뒤를 따라 붙으며 네라가 계속해서 물었다.

“당신 헌터 아니죠?”

“맞는데요.”

“무슨 헌터가 이래요?”

“가끔 착한 헌터도 있다고 생각해 주세요.”

“회색 방에 착한 헌터가 어딨어요!”

“당신 앞에 있잖아요.”

네라는 뭔가 이 남자랑 대화하면 할수록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할말을 잃은 피리아와 네라가 시현의 뒤를 쫒아 계속해서 걸어갔다.

삽이 집의 부서진 잔해를 부수며 바닥의 흙을 뚫고 들어갔다. 삽질을 하고 있는 시현이 머리에 맺힌 땀방울을 닦았다.

마을에 도착한 시현은 땅을 파고 주요지점에 지뢰를 묻고 있었다. 옆에서 같이 땅을 파던 네라가 물었다.

“왜 우리를 이렇게 까지 도와주는 거예요?”

아무 말 없이 웃는 시현을 보던 네라가 포기한 듯 한숨을 쉬었다. 알 수 없는 남자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동안 시현을 도와 땅을 파던 그녀가 아. 하면서 인벤토리를 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였다.

“저기, 헌터 씨. 혹시 이 여자 본적 있나요?”

탄력 있어 보이는 큰 가슴과 잘록한 허리를 가진 초록 눈동자의 미녀 사진이 시현의 앞에 놓여있었다.

"...뭐, 알아요. 본적 없겠죠."

몇번이나 반복된 일이었다. 헛된 희망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항상 이 행동을 반복했다.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시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 라는 신음성을 냈다.

“당연히 모르겠지만..에?...알아요?”

시현이 너덜터덜 웃었다.

하.하. 하고 그가 허탈한 음성을 내 뱉었다.

“뭐에요? 진짜 아는 거예요?”

"..하..하.."

"웃지만 말고 말좀 해봐요!"

혹시 모르는 희망이 네라의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설마, 설마, 설마...'

시현의 입이 열리자

“압니다.”

네라가 들고있던 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시현은 자신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감사했다.

네라가 시현의 양 어께를 잡고는 손에 힘을 주었다.

“정말요? 이곳에 있어요?”

“네.”

“거짓말 아니죠? 정말이죠?”

네라가 그의 어깨를 흔들며 허겁지겁 물었다.

“농담 아니죠? 정말이죠? 진짜로 알아요?”

“네, 그녀에게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정말요? 안다고요? 이름 뭔데요? 거짓말 치는 거 아니에요? 비슷한 사람하고 착각한 거 아니에요? 이름도 알아요?”

시현이 삽을 바닥에 내려놓으면 대답했다.

"압니다."

"이름을.. 알아요?"

“네스.”

네라의 눈동자가 한없이 커져갔다.

사진을 든 그녀의 손이 한없이 떨렸다.

시현이 그녀의 사진을 보며 다시 한 번 대답했다.

“대신관 이그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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