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28 바다가 부르는 소리 =========================================================================
벌써 며칠 째. 풀리와 시현은 배의 갑판만을 청소하고 있었다. 다른 오징어들은 모두 검술수련에 매진이었지만 그 둘만은 예외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도 종종 했고 같은 처지였던 터라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약간은 대화가 통화는 그였다.
그간 알아낸 그의 버릇이 있다면.
시도 때도 없는 검술 연습.
빗자루를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풀리를 보며 시현이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매번 검술 연습 일변도였다.
“......”
지치지도 않는 녀석이었다. 어떻게 보면 안쓰럽기도 했다. 누구보다 뛰어난 검술을 지니고 있지만 단지 을오징어라는 이유 때문에 수련을 하지 못하고 비질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시현은 문득 그에게 물었다.
"매일 허드렛일 하는게 억울 하지도 않습니까."
"너도 하고 있잖아."
"...저는 검술이 약하잖아요."
"나는 이 일이 좋다."
슥.슥. 바닥을 쓰는 그가 안쓰러웠다.
“아버지 때문에 그러십니까.”
빗자루를 휘두르던 그가 우뚝 멈춰 섰다. 피해갈 수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자기 자신을 매일 고통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그가 미련해 보이는 시현이었다.
“벌써 너도 들었나.”
“상병님이 아버지를 뛰어넘고자 수련한다는 이야기. 대부분 다 알고 있던데요 뭐.”
“......”
빗자루를 좌우로 몇 번 휘두른 그가 한숨을 쉬었다.
“너희 부모님은 잘 계시냐.”
“뭐...못 본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를 떠볼 생각이었지만, 되돌아 오는 질문에 오히려 시현의 마음이 쓸쓸해졌다. 장애가 있던 동생과 할머니를 집에 두고 평소대로 인사를 하고 학교를 갔던 그 날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었다.
“...그렇군. 너도 고아 비슷한 거였군.”
“그런 셈입니다만. 그래도 큰 원망이나 그런 건 없습니다.”
“...나도 그렇다.”
“오징어들은 조만간 상병님이 함장님한테 칼 들고 뛰어 갈 거라고 했습니다만...”
고개를 좌우로 저은 그가 빗자루를 바닥에 놓고 차분하게 쓸어갔다.
“그냥, 한번이라도 아버님에게 인정받고 싶을 뿐이다.”
“......”
그런 것이었나.
매일 연무장에서 칼춤 추던 것도. 을오징어인데 자원 입대한 것도 모두......
“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나?”
“음...”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던가......"
그의 역 질문에 시현이 과거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 후 자주 볼 수 없었다. 가끔 최저한의 생활비를 부쳐줄 뿐이었고 아주 가끔은 원망을 했지만 또 때로는 그가 자신을 잊지 않고 있음에 감사했다. 시간이 지나며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계속해서 바뀌어 갔던 것이다.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만약 어떠한 아버지가 계속해서 긍정적인 모습을 자식들에게 더 많이 보여준다면,
그건 아마도 아버지가 위대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식들에게만은 위대하게 보이고 싶어서 많은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리라.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되셨나봐요.”
“...그래.”
그런 것이었다.
아버지란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마음이 더 강한 것도 아니었고. 인내력이 더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을 것이다. 주변의 친구들처럼. 어떨 때는 푼수 같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평범한 남자 중 하나였을 것이다.
“잘 해보려고 하셨던 건 같아요.”
그저. 아이가 생겼음에 기뻐하고. 가족을 위해 강철의 갑옷을 두르고, 자식을 위해 인내하고 또 인내하고. 아버지라는 존재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 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변해갔던 것이다.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때로는 잘 안 되서 포장마차에서 홀로 눈물짓기도 하고.
잘 될 때면 아버지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어린 시절 그의 마음을 이해 못했음에 미안해 하기도 했을 것이었다.
시현은 왠지 마음이 짠해짐을 느꼈다.
이제야 조금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태산 같은 거인.
홀로 모든 것을 막아섰던. 그런 존재였다.
“아버지는 항상 제 눈치를 보셨었어요.”
“......”
그의 눈동자 속에는 항상 ‘내가 아버지로써 잘 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흔들림이 존재했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현은 아버지의 웃음 속에 감춰진 애환들이 더 많이 보였다.
그렇기에 용서하게 되었다.
“잘 안되셨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항상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렇군.”
자식에게 좋은 옷, 좋은 먹을 것을 사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은 모두 똑같겠지만.
그 중에서 잘 안된 아버지도 있을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너희 아버지는 좋은 분이셨던 것 같군.”
“잘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신 걸. 어쩌겠어요.”
“...그래.”
그가 빗자루를 내려놓고 바닥에 걸터앉았다. 한숨을 쉰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자라는 동안 아버지가 누군지도 몰랐지.”
오히려 그 시절에 풀리는 행복을 느꼈다. 평범한 을오징어들처럼 전투도 하지 않고 연애도 하면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줄 알고 살았다.
그의 어머니는 죽기 전에서야 아버지가 오징어 일족의 대 영웅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자신이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것도 그때야 알았다.
“......”
아버지는 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것일까.
여기에 자신의 자식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난 그저, 그게 궁금했지.”
아버지인 함장을 만나러 온 날. 그는 면회를 거부했다.
그렇게도 부끄러운 것이었을까.
풀리는 그저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냥. 여기 있다고 알리고 싶었을 뿐.
풀리의 검에 대한 연습은.
아버지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라는 외침소리였다.
“......”
시현은 이 이상한 오징어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무언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굴러다니는 전단지라도 읽으려고 하는 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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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 호. 공연.
등장인물 : 인어공주.
일시 :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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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공연하네요. 인기 많던데.”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였다.
“검술 연습이나 해라.”
자리에서 일어난 풀리가 다시 비질을 시작했다.
한숨을 쉰 시현이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