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탈출-326화 (326/373)

00326  바다가 부르는 소리  =========================================================================

원형 연무장의 여러 곳에서 검광이 번뜩였다.

두 명씩 짝을 지은 오징어들이 검을 휘두르며 대련에 한참이었다. 간헐 적으로 이곳저곳에서 폭음 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이 비었잖아! 멍청아!)

(죄송합니다!)

쿵. 지면이 파이며 바닥에 깔려있는 미역 줄기들이 튀어 올랐다.

"어...그러니까."

줄무늬 오징어의 손에 이끌려 온 시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자네는.. 그래. 일단 소속은 이곳이네."

"저기..그."

"테스트를 해보겠네.”

오징어 놈들은 말 자르는게 특기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시현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저.. 저는 전투가 아니라 지원병과로 들어왔습니다만.”

“지원병과도 기본적으로 칼질은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온몸의 힘이 쭉 빠지며 다리들이 늘어지는 시현이었다.

(편한 보직으로 해주겠네.)

또 속냐 시현아.

애꾸 오징어도 사기꾼이었다. 분명 업무처리 한다고 했지 칼질 한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미끄러운 미역바닥을 발로 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이 풀리. 이 녀석 좀 봐줘라.”

“예, 소대장님.”

몇 번이나 봤던 을 오징어.

공터에서 홀로 검을 휘두르던 풀리가 검을 거두고는 시현에게 다가왔다.

“음?”

“......”

서로를 바라보며 멈칫하는 두 사람을 보며 소대장이 다리를 갸웃거렸다.

“아는 사이인가보군.”

“아. 예전에 면식이 있었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그가 시현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그럼 자네에게 맡기고 가겠네.”

“예. 알겠습니다.”

소대장이 사라지고 나자. 시현은 자기는 검술이 아니라 지원병과로 왔다고 그에게 말을 건넸다.

고개를 끄덕인 풀리가 아무 말 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뽑아라.”

"......"

‘뭘 뽑아......’

이 인간. 아니 이 오징어는 건너뛰어서 생각하는 것이 특성이라고 생각하며 시현이 한숨을 푹 내 쉬었다. 검술 대련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시현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검 어떻게 만드는 겁니까?”

“......”

마치. ‘물속에서 숨은 어떻게 쉽니까?’ 라는 질문을 받은 물고기처럼 그가 허탈한 표정을 했다.

"바보냐?"

"......"

“먹물을 뽑아서 바다의 기운을 응축시켜라.”

바다의 기운.

풀리가 했다면 시현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바다의 기운. 바다의 기운.'

시현은 눈을 감고 크나큰 바다의 기운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상상을 했다.

'간다!'

시현이 먹물을 퉤엑 하고 뱉어냈다.

'먹물 검!'

뿜어져 나온 먹물은 그저 연무장 바닥을 검게 적셨다.

“......”

“......”

"...안됩니다만."

"......"

잠시 눈싸움을 하듯 서로를 노려보는 둘이었다. 풀리가 검을 입속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바닥에 앉아라.”

듣다보니 익숙해지는 그의 화법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말하지 않는다. 그저 지시사항만 말한다.

시현이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다리를 꼬아 앉고 촉수 두개를 그 위에 올려라.”

“......”

8개의 다리로 가부좌를 틀고 앉는 시현. 그가 자세가 맞는지 물었다. 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의 미끌미끌한 미역들이 시현의 빨판에 달라붙어왔다.

“이제 호흡을 크게 들이쉬고, 크게 내쉬면서 8개의 다리를 통해 들어오는 기운을 느껴라.”

그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시현의 입장에서는 이런 이야기였다.

‘뭔 멍멍이소리입니까....’

사기꾼 멍게. 사기꾼 새우. 사기꾼 애꾸 오징어.

하란다고 하기는 하는데, 이미 오징어들에게 몇 번이나 속았던 터라 신뢰가 생기지 않는 시현이었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차분하게 호흡을 하자 마음이 안정되며 세상이 멀어져갔다.

바다의 기운.

편안했다. 시현은 차가운 기운을 떠올렸다.

케이시를 처음 만났던 설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정말 힘들게 싸웠었지.'

눈을 굴리고 이글루를 짓고.

마음이 편해지자 온 몸에서 힘이 빠지며 자연스럽게 호흡이 안정되어갔다.

바다의 기운.

무언가 감전된 듯한 찌릿한 느낌이 시현의 다리를 통해 전해져 올라왔다.

‘이건..?’

꿈틀거리는 시현의 눈.

“기운이 느껴졌으면, 그것을 촉수에 모아 넣고 검의 형상을 이룬다고 생각해라."

시현이 허공을 바라봤다.

‘검의 형상.. 검의 형상..’

“먹물을 사용해.”

그의 지시에 따라 시현이 검의 형상을 생각하며 먹물을 토해냈다.

'검은 광선검.'

시현이 생각해야 할 것.

전장에서 보았던 수많은 광선 검들이 그의 머리속에 스쳐지나갔다.

시현이 촉수를 허공에 뻗었다.

지-잉.

어느새 하늘색 광선 검이 시현의 손에 들려있었다.

‘진짜 되잖아?’

"음? 하늘색?"

"...잘못 된 것입니까?"

"하늘색 검을 쓰는 오징어는 들어 본 적이 없지만. 대전에 들어가 보면 알게 되겠지.”

‘예?’

"일어나."

몸을 일으킨 시현을 향해 폴라가 다짜고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위로 아래로 옆으로. 화들짝 놀란 시현이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아내었다.

“잠시 만요!”

“하아아아!”

죽는다.

'검술은 무슨!!'

시현은 대항을 포기하고 연무장을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이런 비겁한..! 소용없다!”

풀리가 빙그르르 돌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실성한 듯이 뛰고 있던 시현의 앞으로 그가 가볍게 착지했다.

‘이 미친 인간.. 아니 오징어가!’

“잠시! 잠시 만요!”

연속적으로 휘둘러지는 폴리의 검. 한번, 두 번 까지 막아선 시현은 강력한 공격들에 촉수가 얼얼함을 느꼈다.

“하아아아!”

우측에서부터 들어오는 휘두르기에 시현이 황급히 광선검의 방향을 바꾸었다.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폴리의 검이 시현의 촉수를 자르고 들어왔다.

“악!!”

반듯하게. 잘려나가는 시현의 촉수. 동시에 시현이 비명을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내 손! 내 손!’

어머니 자식은 이렇게 손을 잃었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콩콩 뛰는 시현을 바라보며 검을 집어넣는 풀리.

“촉수 잘린 거 정도로 엄살이 심하군. 실전이었으면 다리를  사용해서라도 막았어야 했다. 따라와라. 의무대로 대려다 줄 테니.”

그가 휘적휘적 걸었다.

‘이 미친...!’

달랑 검 만드는 법만 알려주고 대련을 저런 식으로 하는 인간..아니 오징어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시현은 그가 홀로 제정신이 아닌 건가 아니면 오징어들은 다 제정신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야!)

의무실로 향하고 있는 폴리를 멀리 있던 줄무늬 오징어 하나가 불러 세웠다.

(폴리!)

“상병. 폴리!”

(그거 네 친구냐? 배에는 왜 태웠어?)

“소대장님이 대리고 왔습니다!”

(뭐? 나 참. 돌겠네. 우리가 무슨 보모도 아니고. 알았다. 가봐라.)

“예!”

시현은 당장이라도 검을 들어 오징어들의 뒤통수를 베어 버리고 싶었다. 아파 죽겠는데 태연하게 이야기 하고 있던 그들에 화가 났던 것이다.

(아참. 검술 연습 그만 하고 청소나 시켜! 을오징어들이 무슨 전투야!)

“예! 알겠습니다!”

의무실의 문을 열자 독한 냄새가 퍼져 나왔다.

“의무대장님. 환자 한명 데리고 왔습니다.”

굴러다니는 치료킷. 대충 개어 놓은 침대이불. 이리저리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의무실의 내부에 여성형 줄무늬 오징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엉~? 귀찮게.. 이번엔 또 뭐야~ 오! 귀여운 신입 오징어구나?”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그녀의 다리가 시현을 통째로 낚아채갔다.

"오우. 을오징어 애들이 빨판도 맨들맨들하고 좋더라 난.”

“으어어억.”

잘린 촉수도 마구 건드리는 그녀의 스킨쉽에 시현이 신음성을 내질렀다.

“전투형 오징어가 아닌데 왜 여기 탔데. 풀리야 너처럼 얘도 무슨 영웅 아들이거나 그런 거니?”

“아닙니다. 그냥 을 오징어입니다.”

“흐음...”

고통이 시현의 온몸을 타고 돌아다녔다.

의무대장이 시현을 통째로 들고 구석에 있는 의료 킷을 뒤적였다. 거꾸로 공중에 들려있는 시현입장에서는 속이 울렁거려서 당장이라도 먹물을 토해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보자. 여기 있구나! 빨간 미역약!”

빨간 미역의 즙을 짜서 만든 약. 속칭 빨간약. 다리를 다쳤을 때 머리에 발라도 낫게 해 준다는 전설적인 군대 약이었다.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한 건 기분 탓일까.'

그녀가 작은 붓을 꺼내 빨간약을 잔뜩 묻히고는 시현의 머리에 칠하기 시작했다.

“...저기..저는 촉수 다쳤는데요.”

“괜찮아 대충 바르면 낫겠지 뭐.”

“......”

빨갛게 변한 시현의 머리를 흰색 물풀줄기로 몇 번 감아주고는 그녀가 시현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짜잔! 치료 끝.”

“......”

잘린 촉수 두 개가 아무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시현의 눈앞에서 왔다갔다 거리고 있었다.

“저기.. 촉수는..?”

“에이. 그런 건 기합으로 이겨 내.”

무슨 드래x볼의 초록 외계인도 아니고 기합을 지르면 재생된 촉수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이 말하는 그녀였다.

"저기.. 제 촉수도 좀.."

"남자가 쩨쩨하면 안돼요~"

당신 팔 날아가도 이럴 겁니까. 라는 생각이 시현의 머리속에 맴돌았다.

“폴리야. 얘는 놓고 가.”

“알겠습니다. 마라 중사님.”

그 말을 끝으로 풀리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멀리 사라져갔다. 마라가 촉수 하나를 들어 침대를 가리켰다.

“어서 누우렴!”

“......”

뭔가 꺼림칙했다. 굉장히 눕기 싫었다. 그녀가 꺼내들고 있는 도구들이 굉장히 수상해 보였다.

“귀여운 꼬마야~ 어서 누우렴~"

"...저기."

"마저 치료를 해야지 BOY~↗”

“......”

시현의 생각이 방법을 찾아 이리저리 움직였다. 가정1. 가정2. 가정3. 마치 전투를 할 때처럼 많은 대처법을 떠올리며 최적의 수를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저 이제 괜찮은 것 같습니다.”

“어머~? 빨간약이 역시 효능이 좋긴 좋네. 그래도 주사 몇 방 놔야 하니까 저기 누워있으렴.”

이상한 구속도구들을 잔뜩 꺼내고 있는 그녀의 행동은 뭔가 설득력이 없었다.

“왜 그래~ 어서 누워~”

“...저..그...그러니까.”

쿵. 쿵.

(이보게 마라 중사.)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쳇...”

입을 막는 재갈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마라가 혀를 찼다.

“네~ 마라 중사 있습니다~ 들어오세요~♡”

덜컥. 문이 열리며 거대한 집게발을 지닌 새우가 들어왔다. 시현이 몇 번이나 봤던 그 사기꾼새우였다.

“어~? 권총 소장님 여기는 웬일이세요?”

“음. 신병 잘 하고 있나 보러왔네.”

붕대를 감은 채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시현을 보고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하고 있군.”

...어딜 봐서? 라고 반문하고 싶은 시현이었지만 커다란 집게발을 바라보니 그 말이 쏙 들어갔다.

“그럼 난 가겠네.”

“저..저기.”

마음 같아서는 이 사기꾼 새우 새끼야 네가 감히 뭔데 날 납치해서 이 고생을! 이라고 말하고 싶은 시현이었으나 현실에서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저, 저 좀 데리고 가시죠. 물어볼게 있어서요.”

“음, 여기서 물어보면 되지 않나?”

그의 집게발보다

여러 가지 도구들을 뒤에 감춘 채 눈을 빛내고 있는 마라가 더 무서웠다.

“아니요. 잠시면 됩니다.”

"입대에 대해서 불만이 있는 거라면 들어주지 않겠네."

이상한 망치 같은 걸 꺼내드는 마라의 모습이 보였다. 긴장감에 시현의 몸이 파랗게 질려갔다.

"불만 없습니다. 그냥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뭐, 알겠네. 입대 문제는 나도 잘못이 있긴 하니. 따라오게.”

생명이 아닌 다른 위협을 느끼던 시현이 재빠르게 침대에서 내려와 권총 소장의 뒤를 따랐다. 뒤에서 큽. 이라고 혀를 차는 마라의 시선이 느껴졌다.

위험해.

다시는 다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시현이 새우를 따라 방을 나섰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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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차는 빨간 불에도 멈추지 않아요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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