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탈출-315화 (315/373)

00315  Episode 2-12  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

나비가 차가운 독방 안을 이리저리 날았다.

“가지 마.”

한나가 처음으로 독방의 바닥을 딛고 일어섰다. 붙잡아야 했다. 그녀가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두려운 눈들보다 나비의 존재가 중요했다.

“제발 가지 마!”

철컹. 간수가 감시유리를 열고 그녀를 쳐다봤다. 간수의 눈에 산발머리의 여자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무언가를 쫒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나씨. 면회입니다.”

그 말에, 그녀가 우뚝 멈춰 섰다.

“...면회?”

"네. 한나씨하고 면회를 하고 싶다는 사람이..."

한나가 고개가 좌우로 저었다. 그녀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싫어요.”

사람들과 마주친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사람들이 언제 검은 눈동자로 변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간수가 안타깝다는 듯이 한숨을 내 쉬었다. 10년 만에 누군가가 처음으로 면회를 요청한 것이었는데 그녀는 거부하고 있었다.

“이름이라도 알려주라던데.”

“...싫어요..”

한나가 필사적으로 날아가는 나비를 잡기위해 움직였다. 시린 바닥이 그녀의 발을 얼려갔다. 나비가 날갯짓 하며 천장으로 올라갔다. 표정이 굳은 그녀가 필사적으로 뛰어올랐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다리가 아파왔다.

면회를 왔다는 사람은 뻔할 것이었다.

10년 전에 한나가 어두운 가게 앞에서 찔렀던 남자.

또는 그 당시 미소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오디션장에 있던 누군가였을 것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너무나도 오랜 일이었고

과거 그녀의 모습을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렇기에 만날 수 없었다.

‘...저는 그때와 다른걸요.’

산발이 되어 빛을 잃어버린 머리카락. 거식증 때문에 심하게 말라버린 외모.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이런 외모로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두려웠다.

여전히 사람들은 두려운 존재였다.

사람들이 검은 눈동자로 변해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한나씨. 진짜 안 만나세요?”

한나가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 앞에 나설 자신이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알았어요.”

탁. 유리가 닫혔다.

정말 아쉽다는 투로, 철문 너머의 간수가 지나가듯 이야기 했다.

(나비의 주인이라는 사람이었는데...)

한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의 고개가 문 쪽으로 돌아갔다. 두발이 반사적으로 뜀박질 했다. 쾅. 쾅. 두 손으로 그녀가 철문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저기요!! 저기요!!”

돌아와. 돌아와. 돌아오라고.

처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였다.

이 모든 두려움과 잘못을 없애고,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쾅. 쾅. 쾅.

“저기요!!!! 저기요!!!”

두 팔로. 두 다리로 한나가 끊임없이 문을 두들겼다.

가지마. 가지 말라고.

돌아와. 제발 돌아와.

쾅. 쾅.

끼익

간수가 유리창을 열며 눈앞에 열쇠를 들어올렸다.

(진정해요! 금방 열어 줄테니까. 그만 두드려요.)

“면회, 면회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면회요! 제발 면회!!”

작은 유리에 붙어서 그녀가 계속해서 소리쳤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진정해요!!)

"빨리! 빨리!"

달깍.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혔던 철 문이 열렸다.

감옥에 온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한나의 요청에 의해 철문이 열린 것이다. 그녀의 온몸이 떨렸다.

돌아 갈 수 있어.

돌아 갈 수 있어.

"면회..면회.."

"진정해요. 따라오세요. 제발 진정해요."

간수가 그녀를 독방의 밖으로 꺼냈다. 차가운 입김이 계속해서 나왔지만 그녀의 눈은 감옥 밖으로 나가는 문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이었다.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

동료들과 회색방을 종횡무진 하던 그 시절을.

“돌아 갈 수 있어.”

“예?”

“돌아 갈 수 있어.”

발을 타고 올라오는 시린 얼음에도.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간수가 영문을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 하고 걸었다.

‘돌아간다.’

잊었던 희망의 불씨가 다시 살아난다.

간수가 그녀를 이끌고 복도를 걸었다. 죄수들이 감옥의 창살에 붙어 그녀를 바라봤다.

(와, 저 무기수 여자. 10년 만에 처음 면회래)

(대박이다.)

(저 여자가 반 죽여 놨다던 10년 전 사람이 찾아 온 거 아니야?)

‘돌아간다.’

숨이 계속해서 가빠졌다. 철컹. 또 하나의 철문이 열렸다. 간수가 마음이 놓인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나. 매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처럼 자해와 자살시도를 반복하던 죄수.

10년 만에 처음으로. 그녀가 자신의 발로 감옥 밖으로 나왔다.

간수가 면회실 문을 열었다. 딸깍. 긴장감이 한나의 등골을 타고 흘렀다.

문이 열리고 책상에 앉아 있는 여자가 보였다.

나비의 주인.

하아. 하아. 하아. 한나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고 느꼈다.

나비의 주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또 보네요.”

한나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간수가 그런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는 의자를 빼어 앉혀주었다.

“면회 끝나면 벨 눌러주세요.”

철컹. 간수가 문 밖으로 나갔다.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비의 주인이 손을 들어올렸다. 나비들이 나타나 방의 곳곳을 막아갔다. 바깥의 소리가 차단되어갔다.

한나의 숨이 계속해서 가빠졌다.

꿀꺽.

말라버린 식도를 타고 미세한 침이 삼켜졌다.

“아...아직도.”

“네?”

제발.

“아직도 소원을 들어주시나요..?”

"그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

나비의 주인이 입술을 여는 순간. 한나는 그녀의 말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천천히, 천천히. 마치 속삭이는 것처럼.

테이프를 느리게 감는 것처럼.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럼요.”

한나의 입에서 호흡이 터져 나왔다.

“저를!!”

한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를!.. 예전으로..!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게 해 주세요!"

훔. 잠시 한나의 몸을 훑어본 그녀가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이제 당신에게 받아낼 대가는 거의 없는걸요?”

세상이 무너졌다.

의자가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한나가 자리에 주저 않았다.

나비의 주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는 오늘도 당신을 면회하러 온 것이 아니에요. 도망간 나비를 찾으러 온 거지. 겸사겸사 얼굴이나 보러 오긴 했지만 서도......”

주저 않아있던 한나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엉금엉금 그녀를 향해 기어갔다. 한나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한나가 그녀의 다리를 붙잡으며 말했다.

“제발... 제발 한 번만... 제발.. 돌아가게 해 주세요.. 제발. 제가 저일 수 있었던 그 때로. 제발.. 동료들과 회색방을 여행했던 그 때로...제발....”

말라버린 눈동자에서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온 몸은 앙상하게 말랐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다리를 붙잡았다.

“제발...제발...”

나비의 주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본 한나의 마음이 지옥의 끝으로 끝임 없이 추락했다. 안타깝다는 듯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마음은 이미 너무 많은 조각을 빼내었어요. 이대로라면 형체도 유지 할 수 없을 지도 몰라요.”

고개를 떨어뜨리며, 한나가 바닥을 바라봤다. 한동안 격하게 숨을 쉬던 그녀가 가슴을 부여잡고는 물어봤다.

“10년 전 그날... 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저에게...”

“으음.”

한숨을 푹 쉬고는 나비의 주인이 대답했다.

"당신은 저와의 계약을 원했고, 저는 대가를 받았을 뿐이에요."

"무슨... 어떤..."

"알기를 원하시나요?"

"어떤..어떤 대가를.."

나비의 주인이 미소 지었다.

“그냥. 당신의 마음에서 ‘자존감’ 이라는 작은 한 부분을 대가로 받았을 뿐이랍니다.”

세상이 빙빙 돌았다.

독방을 가운데에 두고 끊임없이 회전했다.

“당신의 마음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었거든요.”

하아. 하아. 하아.

한나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돌려줘.”

“어머, 안된답니다.”

돌려줘.

순간.

한나의 몸이 수십 개로 나뉘어졌다.

“어머?”

“돌려줘!”

수십 개의 한나가 나비의 주인을 둘러쌓았다. 나비의 주인이 어림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런다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은 예전의 한나가 아니에요. 이미 나이프를 휘두를 힘조차 없을 걸요?”

“돌려줘...”

수 십 명의 한나가 힘겹게 나이프를 뽑아들었다.

“돌려줘...내...내..”

나비의 주인이 피식 웃었다.

“진정해요. 당신의 소원은 그것 뿐 만이 아니잖아요.”

그녀는 한나의 마음을 찔러 들어왔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여행을 끝내고 싶지 않나요? 당신의 솔직한 소원이 또 있잖아요.”

죽고 싶어.

죽고 싶어.

한나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그녀를 노려봤다. 나비의 주인이 물었다.

“죽고 싶다는 마음. 가지고 있지 않나요?”

“닥쳐!!”

수십 개의 나이프가 나비의 주인을 찔러갔다. 느렸다. 예전의 한나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느린 공격들이었다.

목표는 단 한명이었다. 10년이 지났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움직일지 머릿속에 시뮬레이션 되었다.

선두의 분신이 모두 사망하면 그 뒤로 검을 꼽아 넣는다.

그녀가 피하면 모든 방향으로 칼을 휘두른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소원. 들어드릴까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모든 한나가 우뚝 멈춰 섰다.

금색 나비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왔다.

"뭐, 대가가 조금 부족하지만 그걸 제하고 들어드리면 되니까요."

"..제..제 소원을?"

“대가가 부족하니, 당신에게 선택지만을 드리겠어요.”

“...선..택지?”

나비의 주인 어깨 위에 금빛 나비가 앉았다.

“오늘 저녁이 되면, 제 말을 이해하게 될 거예요.”

멈춰져 있는 한나 여러 명을 밀치며, 그녀가 면회실 밖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또 봐요.”

덜컹. 쇠문이 열리며 면회실 안에 퍼져있던 나비들이 사라져갔다.

나비의 주인과 함께.

수십 명의 한나가 무기를 집어넣고는 점점 옅어져갔다. 차가운 면회실 바닥이 냉기를 전해왔다.

간수가 열쇠를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나씨. 면회 끝났습니다.”

간수에 손에 이끌린 한나가 복도를 걸었다.

(오늘 저녁이 되면 제 말을 이해하게 될 거예요.)

'오늘...저녁.'

복도의 끝.

쿵. 독방의 문이 닫혔다. 벽에 기대어 앉고 나서도 한나의 머릿속에서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늘 저녁이 되면...)

감옥에서의 긴 세월이 스쳐지나갔다.

10년. 누군가가 반 쯤 미쳐버리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무기수.

앞으로 더 길고 긴 시간들을

평생 이 작고 차가운 독방에서.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야 했었다.

그녀의 호흡이 가빠지며 어깨가 계속해서 들썩였다.

‘선택..’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계속 그녀는 말을 곱씹었다.

'선택..'

시간이 흘렀다.

어둠이 점점 해를 가려갔다.

간수가 여자와 실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

간수의 목소리.

(어서 들어가.)

철컹.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억지로 방 안에 밀어 넣어졌다.

불길한 마음이 온몸을 훑었다.

밀어 넣어진 여자가 쓰러지며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잠시 만요!”

철컹.

문이 닫히며 열쇠가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두 손으로 문을 쾅쾅 두드렸다.

"저기요!!!"

한나는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바라봤다.

너무나도 익숙한.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다시 되돌아가고 싶었던.

쿵. 쿵. 쿵.

“저기요! 저기요!”

과거의 나.

“저기요!!”

과거의 한나가 독방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대가가 부족하니, 당신에게 선택지만을 드리겠어요.)

(오늘 저녁이 되면 제 말을 이해하게 될 거예요.)

덜컹.

철문의 아래쪽이 열리며 플라스틱 식판 두 개가 밀려들어왔다.

(20분 후에 다시 오겠네.)

간수가 끼릭끼릭 무언가를 밀고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독방의 반대편에 앉은 과거의 한나가 식판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선택.

한나의 발끝이 계속해서 떨렸다.

그녀는 나였다.

나의 과거였고.

미래의 내가 될 존재였다.

식은땀이 그녀의 계속해서 손을 적셨다.

과거의 한나가 머뭇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한나를 의식 한 것이었다. 얼마간 눈치를 보던 그녀가 일어나서 식판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를 죽이면......’

‘그녀를 죽이면.....’

그럴 수 없었다.

한나가 손으로 옷을 쥐어짰다.

그녀는 자신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바랐던 과거의 모습이였다.

이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미안해.”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과였다.

과거의 한나가 식판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이거, 안 드세요?”

미안해.

한나는 자신도 모르게 울먹였다.

미안해. 한나야.

통. 통.

음식을 줬던 간수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 참, 음식 웬만하면 남기지 마세요.)

“아, 네.”

손에 나이프가 잡혔다. 과거의 한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철문을 보며 대답하고 있었다.

경동맥.

단 한 번의 칼질이면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한나는 울먹이며 사과했다.

“미안해.”

상대방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한나의 나이프가 그녀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상대방은 무슨 일이 일어난 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선혈이 한나의 옷을 적셔갔다.

과거의 자신이 목을 붙잡고 쓰러지는 모습을,

한나가 일그러진 표정을 한 채 바라봤다.

과거의 한나가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녀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뿜어져 나온 피가 웅덩이가 되어 감옥의 바닥을 빠르게 채워갔다. 교도관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칼날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흉기를 든 산발머리 여자가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쓰러진 몸통에서 피가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꺽. 꺽.

과거의 한나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목이 움직임에 따라 말이 아닌 피가 쏟아져 나왔다

한나는 뻐끔거리는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고 있을 수 없었다.

곧,

과거의 한나,

그녀의 몸이 피 웅덩이 속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 작품 후기 ============================

[독방]

한나가 한나를 죽인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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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0위권 안에서 계속 왔다 갔다 거리네요.

2단 부스터를 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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