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탈출-314화 (314/373)

00314  Episode 2-12  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깊은 어둠속이었지만 한나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비가 날았다.

화려한 날개를 지닌 아름다운 나비가 날았다.

어둠 속에서, 나비가 날았다.

한나는 멍하니 그 나비를 바라봤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나비의 날갯짓이 파노라마가 되어 스쳐가며 흔들렸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봤다.

나비의 주인을 찾아야 했다.

모든 것을 돌려놓아 달라고, 그렇게 말해야 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야 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소리 쳐봐도, 비명질러도

어디에도 나비의 주인은 없었다.

다만 한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가 날고 있을 뿐이었다.

한나의 눈동자가 나비의 날갯짓을 쫒았다.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눈이 계속해서 나비를 쫒았다.

어둠속 유일한 친구.

나비를 잡고 싶었다.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그녀가 엉금엉금 기었다.

나비가 움직였다. 힘차게 날개를 움직이며 하늘을 날았다.

다가온다. 나비가 다가온다.

유일한 친구인 나비가 다가온다.

한나가 웃었다. 나비가 그녀의 콧잔등에 앉았다.

너무나도 가까이서 보였다.

아름다운.

아니.

추악한 나비가.

긴 더듬이와 징그러운 겹눈이.

몸통에 돋아있는 소름 돋는 털이.

추악한 곤충의 입이,

금방이라도 그녀를 파먹을 듯 다가왔다.

“꺄아아악!”

그녀가 뒤로 넘어지며 나비가 날았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나비가 하늘을 날았다.

나비가 자신의 모습을 보라는 듯이. 날갯짓 했다.

그제야 한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나비였다.

멀리서 보면 한없이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면 누구보다 징그럽고 추악한.

그런 한 마리 나비였다.

아무도 없었다.

그녀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있을 수 없었다.

한나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나왔다.

그런 것이었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수록, 그녀의 실체를 알게 될 것이었다.

왠지 눈물이 났다.

그냥 왠지 눈물이 났다.

그녀가 하염없이 울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날들에, 하염없이 울었다.

‘미안해 한나야.’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미안해 한나야....미안해.’

더 이상 이곳에서 버티기 힘들었다.

어둠속까지 쫒아오는 검은 눈동자들이 보였다.

눈동자들이 그녀에게 계속해서 다가왔다. 너무나도 두려웠다.

‘미안해 한나야...’

그들을 죽여.

두려움을 없애.

누군가가 계속해서 속삭였다. 저항할 수 없었다. 저항하고 싶었지만 저항할 수 없었다.

그 말에 저항할 수 있던 예전의 한나는

나비의 날갯짓과 함께 사라져 버렸으니까.

‘미안해... 한나야...’

추악한 나비를 죽여.

눈동자들이 그녀의 지척에 있었다.

입술 전체가 계속해서 떨렸다.

“제발... 다가오지 마!!!”

두려움이 그녀의 마음을 잠식해갔다. 한나의 손에 대거가 들려있었다.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녀의 손이 움직이며 반사적으로 그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비명소리가 들렸다.

한나가 놀라서 눈을 떴다.

차가운 웅덩이의 한 가운데에 한 남자가 쓰러져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 지르며 도망갔다.

나비의 추악한 모습을 본 것처럼. 그들은 달아났다.

날 두고 가지 마세요.

제발.

한나가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에 피가 뿌려졌다.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그는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일까. 한나의 손을 타고 익숙한 감각이 전해져왔다.

손에 잡혀있는 대거.

묻어있는 피.

너무나도 익숙한 이 느낌.

내가...?

남자가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다. 피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정신을 차린 한나가 자신의 옷을 뜯어내려 했다. 손을 더듬어 허겁지겁 그의 가슴을 지혈해갔다.

“안 돼!”

출혈이 너무 심했다.

옷을 뜯어내는 그녀의 이빨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죽지 말아요! 제발 죽지 말아요!”

한나의 손이 빨라졌다. 그럼에도,

남자의 입에서 피가 거품이 되어 계속 올라왔다.

이제야 얼굴이 기억이 났다.

자신의 집에서 옷을 말리고 가라던 그 남자였다.

한나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제발 죽지 말아요.

빗물과 눈물이 섞여 바닥으로 끊임없이 흘렀다. 한나는 정신없이 그의 몸을 지혈했다. 수십 번 자신의 옷을 찢어서 남자의 피가 흐르는 곳을 묶고 또 묶었다.

제발 죽지 말아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의 끝을 알리는 그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움직이지 마!)

차 문이 열렸다.

수많은 경찰이 그녀에게 총구를 들이댔다.

“아니에요...이건..이건..제가..”

“두 손 머리 위로 올려!!”

남자의 가슴을 누르고 있는 한나의 손이 계속해서 떨렸다.

“손 머리 위로 올려! 발포하겠다!”

한나는 손을 땔 수 없었다. 남자의 출혈을 막아야 했다. 그를 살려야 했다. 구급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나는 손을 때지 않았다.

결국, 파국은 찾아왔다.

방아쇠가 당겨지는 모습이 보였다.

-탕!

탄환 한발이 한나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무슨 일이 일어 난지 알 수 없었다. 한나는 세상이 기운다고 느꼈다.

'손을.. 때지 마... 한나야..'

'손을..'

머리가 웅덩이에 처박혔다.

구급차의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뛰어왔다.

한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차가운 물웅덩이에 그녀의 금은빛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웃음이 나왔다.

마음속 깊은 곳부터 편안해졌다.

이제야, 두려움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홀가분했다.

나비가 한나의 팔에 앉았다.

나비가 날개를 접었다.

누구보다 추악한 나비가

날개를 접었다.

***

족쇄 끝에 걸린 쇠구슬이 바닥을 쓸었다.

(저 여자, 예전에 간신히 의사들이 살려냈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새하얀 발이 움직여갔다.

(저 여자에게 끌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던데?)

(교도관님이 특별히 조심하라고 한 여자 맞지?)

(남자 죄수들과 분리하라던데.)

(몇 년 째, 병원을 왔다갔다 하는 거야.. 질리지도 않나.)

금빛과 은빛이 혼합된 머리카락이 죄수복을 입은 여자의 허리를 쓸어갔다.

간수 한명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그녀를 방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최대한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가 말했다.

"미안해. 이곳에 넣어야 될 것 같아. 이제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힘들잖아. 또 한번 자살하려고 하면 너를 묶어두라는 지시가 있었어. 한 번 더 그러면 그때는 나도 어쩔 수가 없을 것 같아...미안해."

"...괜찮아요."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간수는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괜찮아요."

"...힘내라."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독방의 한기가 한나의 발을 타고 올라왔다. 눈물은 나오지 않은 지 오래였다.

(...힘내라.)

그 소리가 한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려갔다.

이미, 최선을 다해 힘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죽지 않기 위해 최대한 힘내고 있는 그녀에게 '힘내라'라는 말은 그저, 빨리 너 같은 것은 빨리 죽기를 바란다는 말로 들렸다.

그녀가 독방의 끝에 앉았다.

어두운 눈동자들은 그를 놔 주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야 그녀는 깨달았다.

아무도 자신을 구원해줄 수 없다는 것을.

눈동자들이 그녀를 계속해서 비웃었다.

그녀가 작은 몸을 움츠렸다.

아무도 없었다.

어둠 속 작은 독방에서

영원이라는 감옥에서

그 누구도 없었다.

'하느님...이제 그만 벗어나게 해주세요.'

작은 소원이었다.

이제 그만 저에 대한 희망을 버리시라고.

지옥이라도 좋으니 나를 떨어뜨려달라고.

그렇게 매일 빌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어갔다.

아름답던 머리는 헝클어지고 하얗던 피부는 지저분해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웅크린 자세를 풀지 않았다.

자신이란 감옥에 영원히 갇힌 그녀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어디선가 거짓말처럼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

금색의 날개를 지닌 나비 한 마리가. 그녀의 어깨에 앉았다.

어두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금색의 나비가 그녀의 어깨에 앉았다.

"...나비야."

어두운 눈동자들을

금빛의 나비가 막아주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들을 나비는 끝까지 들어주었다.

"나, 사실은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었어."

나비가 날개를 흔들었다.

"아주 오래전에는 동료들과 함께 불가능한 일들을 해냈었어."

나비가 끄덕이는 듯이 느껴졌다.

"예쁘지 않아도 행복했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

"디펜더스라고, 그런 친구들이 있었어."

나비의 움직이는 입이 두려웠다.

다리에 붙어있는 털들이 징그러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비에게 말을 걸었다.

오직 나비만이 그녀를 아무 조건 없이 이해해 줬기에.

"다시 한 번 여행을 떠나고 싶어."

나비는 떠나지 않았다.

"나비야... 나는..."

나비의 날갯짓이 그녀를 위로했다.

"다시 한 번... 여행을 떠나고 싶어..."

금색 나비가 날아올라 그녀의 볼에 앉았다.

아름답고도

아름답지 않은, 나비가 그녀 눈에 비춰졌다.

나비가 울었다.

나비가 그녀와 함께 눈물지었다.

"나비야..."

그제야 나비가 다르게 보였다.

예쁜 부분도

예쁘지 않은 부분도.

모두 나비의 한 부분이었다.

한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안해...한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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