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10 Episode 2-12 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
쿵. 쿵. 쿵.
“저기요! 저기요!”
문을 두드리는 한나의 얼굴에서 땀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아무리 두드려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렇다 그녀는 죄수가 된 것이다.
망연자실한 그녀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싸늘한 한기가 그녀의 엉덩이를 타고 올라갔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이제 20년간 나갈 수 없었다.
'이게 뭐야...'
불길함이 엄습해왔다. 꿀꺽. 그녀가 침을 삼키고는 힐끗 뒤를 돌아봤다. 쭈그려 앉아있는 이상한 여자. 워낙 산발인 탓에 그녀가 한나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안 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가 없었다. 또 한번 꿀꺽 침을 삼킨 한나가 그녀에게 인사를 할까 말까 하다가 입을 닫고는 방의 반대편에 조용히 앉았다.
차가웠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그들 사이에서 감돌았다.
한나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여갔다. 이 세계는 정상이 아니었다.
판사가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와
검사가 소리치던 말들이 얽혀서 그녀의 뇌를 복잡하게 했다.
정상이 아니야?
왜?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악질 적인 가해자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죄를 뇌우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일지라도 법정에 오게 되면 거짓말로라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시늉을 할 테인데, 이 자를 보십시오! 이런 자를 아무 벌 없이 다시 사회로 풀어 놓는다면 제2, 제3의 범죄가 탄생하게 될 것이고 모든 국민이 이 사실에 대해 비난하고, 규탄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
정상이 아니었다.
‘그거야.’
그녀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이상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한나였다.
그녀의 외모를 조롱했던 사람들의 말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검사와 판사가 심각하게 이야기하던 이야기들도 모두 이해가 갔다.
'외모로...'
‘정말로, 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세계.’
허탈함에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만약 외모가 모든 것의 위에 있는 사회가 존재한다면 어떨 것인가. 문득, 아무 생각 없이 보았던 커피숍의 차창 너머로 들려온 싸움소리가 기억났다. 차에서 내려봐. 얼마나 예쁜지 보자.
만약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면.
덜컹.
철문의 아래쪽이 열리며 플라스틱 식판 두 개가 밀려들어왔다.
(어서 받아.)
간수의 목소리에 한나가 상념에서 깨어났다. 반사적으로 식판을 받으려다가 힐끗 반대편을 쳐다봤다. 한나는 이곳에 혼자가 아니었다. 산발머리는 여자는 아무 미동도 없었다. 꺼림칙했다.
(20분 후에 다시 오겠네.)
간수가 끼릭끼릭 무언가를 밀고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문아래 떨어진 식판을 들고 자리에 가서 앉는 것.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그럼에도 뭔가 꺼림칙했다.
기묘한 대치는 한동안 이어졌다. 한나는 무언가 저 밥을 주우러 가는 것이 불안했다. 아무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있는 저 여자가 불길했다.
오면서 들었던 교도관들의 대화가 생각났다.
(그 여자, 무기수랑 같이 방을 쓰게 될 거라던데)
한나가 작게 숨을 골랐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걸어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식판 하나를 들어올렸다. 플라스틱으로 된 식판의 끝을 잡았을 때, 뒤에서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일까.
식판을 잡은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 일일까?
한나가 뒤를 돌아봤다.
“미안해.”
중얼 거리듯 죄수는 울먹이며 말했다. 오랫동안 이곳에 있다 보니 감정기복이 심해진 것일까? 한나가 식판 하나를 더 들어 올리며 물었다.
“...이거, 안 드세요?”
울먹이는 그녀는 아무대답이 없었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정신분열증환자를 보는 느낌이었다.
통. 통.
음식을 줬던 간수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 참, 음식 웬만하면 남기지 마세요.)
“아, 네.”
한나가 식판 하나를 그냥 자리에 내려놓고는 그를 쳐다보면 대답했다. 작은 문틈 사이로 간수가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미안해.”
등 뒤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일까? 한나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무언가가 그녀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그것은 한 순간이었다.
날카로운 물건이 한나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고,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어떤 일이 발생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리에 주저앉으며 한나가 목을 부여잡았다.
날카로운 물건을 든 죄수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텅.
한나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뿜어져 나온 피가 웅덩이가 되어 감옥의 바닥을 빠르게 채워갔다. 교도관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왜?
흉기를 들고 있던 산발머리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한나의 몸에서 피가 빠르게 빠져나갔다.
떠져있는 눈꺼풀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꺽. 꺽.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목이 움직임에 따라 말이 아닌 피가 쏟아져 나왔다.
지혈을 해야 했다.
세상이 점점 어두워져갔다.
'지혈을...'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
-빵빵.
한 순간이었다.
자동차 경적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거기 저 속도 주행하시는 무인 분, 아래쪽 라인 타고 다녀요! 여기 고속 라인이거든요!)
(미안합니다! 곧 내려갈게요!)
뭐지?
-삑삑.
무언가가 그녀 주변에서 울렸다.
“추가 메뉴를 고르시겠습니까?”
청소기처럼 생긴 허리높이의 자동화 로봇이 어느새 그녀에게 다가와 있었다. 허공의 홀로그램이 나타나 문자를 새겼다.
뭐지?
고층 커피숍에 앉아서 창밖을 보던 한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언가 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처음 온 곳일 텐데.
침을 한번 삼킨 그녀가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
당신 점수로 마시는 것이 가능한 메뉴.
1.아메리카노.
---
‘이 커피는 쓰겠지...’
"아메리카노 한잔.”
'뭐 공짜니까.'
-삑. 삑.
자동화 로봇의 머리가 열리며 흰색 잔에 담긴 따끈한 김을 내뿜는 아메리카노가 나타났다. 잔을 잡은 그녀의 손을 타고 따뜻함이 올라왔다.
처음일 터인데, 그녀는 뭔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띠링.
[이번 스테이지의 보상은...
[...회색방 스테이지 종료 후 ‘사라드’로 이동 할 수 있는 아이템 입니다.]
‘그렇겠지.’
그녀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회색방이라면 그 정도 보상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게임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녀였다. 한숨을 푹 쉬고는 그녀가 커피 잔을 내려놨다.
‘미소년 시뮬레이션이라도 나오려나.’
[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의 주인공이 되어...]
'......?'
[...남자 캐릭터를 공략하시면 됩니다.]
뭐야, 이거.
무언가 잊은 듯 한 느낌이 났다.
-빵빵!
그녀의 무릎 위에, 작은 광고지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의 여 주인공을 모집합니다! 외모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여성 분! 피부가 솜털처럼 부드러우신 분! 지금 바로 오디션을 보러 와 주세요!)
무언가 잊은 것이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여갔다.
[행운을 빕니다.]
-빵빵!
거친 경적 소리에 그녀가 상념에서 깨어났다.
빈 커피 잔만이 덩그러니 남아, 도심 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나는 고층 빌딩 승강장이 아닌 2층 승강장에서 무인 자동차를 불렀다.
이유는 그녀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21층 승강장이 커피숍과 더 가까웠지만 그녀의 발은 2층으로 이끌려왔던 것이었다.
공중을 날아가던 자동차 하나가 손을 흔드는 한나를 보고는 하강하며 다가왔다.
취익. 바람을 뿜어내며 그녀의 앞에 멈춰선 차가 바코드 찍듯 레이저를 쏘았다.
(어서 오십시오. 스캔하겠습니다.)
차에 탄 한나가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오래걸릴테니까.
“..어?”
한나가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뭐였지?’
자동차는 천천히 나아갔다.
고개를 잠시 갸우뚱한 그녀가 눈을 감았다.
차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오디션장의 앞으로 향했다.
그녀가 몸을 뒤척였다.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자동차는 오랜 기간 도로를 달렸다.
(또 이용해 주세요~)
한나의 운동화가 깔끔한 대리석을 밟았다.
(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오디션장.)
그녀는 한동안 빌딩의 입구를 바라봤다.
이상했다.
그녀가 전단지를 바라봤다.
'이곳이 맞는데......'
왠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곳이 아니야.
그녀가 머리를 긁적였다.
'뭐지...?'
왜인지 이곳은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는다.
'뭐?'
어둠속에 갇힌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손이 허벅지에 있는 대거를 찾아갔다.
"누구 있어요?!"
세상을 한 바퀴 빙 돌려보아도, 그녀를 노리고 있는 누군가를 찾을 수 없었다.
"......"
(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오디션장.)
대거를 다시 꼽아 넣은 그녀가 한숨을 쉬며 간판을 바라봤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침을 삼킨 그녀가 발걸음을 돌려 도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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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마니 놀래쬬?
오늘도 열심히 씁니다.
리코멘도 종종 답니다.
전 할 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