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탈출-305화 (305/373)

00305  Episode 2-12  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

Episode 2-12

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하늘을 왕복하는 수 십 대의 무인 자동차. 그 문짝에 붙은 광고판에서 여자 아이돌 포스터가 끊임없이 번쩍였다.

(아름다움은 당신의 것입니다! 큐티! 러브! 섹시! 가장 앞줄이 되길 원하는 멤버에게 투표해주세요!)

수 없이 공중에서 교차되는 차들의 사이를 뚫고 계속해서 내려다보면 하하호호 웃으며 며 도심 속을 걷는 빼곡한 여자들이 보였다. 덥지도 않고 습하지도 않았기 때문일까, 여러 가지 개성적인 패션의 옷들이 그녀들과 나들이 일색이었다.

직사광 반사 코팅이 되어있는 고층건물의 커피가게 안에서 아이보리색 해군 상의를 곱게 차려입은 한나가 도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중에 헌터가 있는 건 아니겠지.'

얼핏 보면 평범한 여자 중 한명, 아무렇지도 않은 여 해군 복장이었지만 그녀가 자세를 바꿀 때마다 검정 스커트 안 허벅지에 매달려있는 군용 대거가 얼핏얼핏 모습을 드러냈다.

인벤토리에서 망원경을 꺼낸 그녀가 눈을 대고는 도심의 이곳저곳을 훑어봤다.

'음...'

수 없이 반짝이는 간판. 쉴새없이 들려오는 아이돌 광고 소리. 드레스와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들.

대상을 좁히기에는 인구가 너무 많았다.

어차피 목표는 같아.

다른 능력자보다 그녀가 우위에 있는 것은 분신 더미를 던져주고 상대방의 치명적인 방심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먼저 상대방을 포착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점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고 갈 수 있었다.

그녀가 망원경을 탁자 위에 내려놨다.

'뭐, 조금 있으면 알게 되겠지.'

커피 잔을 들어 올린 그녀가 여러 가지 작전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장탄 수 OK. 나이프도 있을 만큼 있고. 초능력도 충전 완료.'

커피의 마지막 모금이 그녀의 입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어떤 헌터를 만나든 상관없어.’

-빵빵.

창밖을 날아가는 자동차의 확성기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차량을 향해 말했다.

(지금 타고 있는 자동차는 미소녀가 타고 있는 차량이오니 거북이들은 비켜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예쁘거든요!)

(거북이 주제에 무슨 소리야! 비켜! 낮은 고도로 날아다니라고!)

(내려서 얼굴빵 한번 뜰까요?!)

(이뇬이 미쳤나?! 야 그래, F 34층 승강장에서 보자. 얼마나 이쁜지 한번 보자 이뇬아!)

(그러면 누가 무서워 할 줄 알아요!)

"......"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그녀가 힐끗 매장 안을 바라봤다. 매달려있는 꽃 장식 시계가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후. 하고 한숨이 나왔다.

‘편안했던 생활도 끝인가.’

그녀는 어제 이곳에 도착했지만 게임은 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내일 이 시간까지는 도시에서 대기 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말만이 귓가에 맴돌았을 뿐이었다.

돈 한 푼 안주고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숙소를 잡았고 놀랍게도 이곳의 숙박시설은 일체 무료였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시설, 드럽게 안 좋아.'

하늘에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시대에 고무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퍼 올려야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찌뿌둥한 목을 비틀어 풀자 어느새 어깨까지 자란 머리가 흔들렸다. 약간 산발머리가 되었지만 외모는 그다지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하나였다.

"이기자."

곧 시작될 전투.

스테이지가 시작되면 언제나 척추를 타고 전기가 찌릿하게 올라왔고, 매번 긴장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디펜더스와 함께 많은 고난을 해쳐왔고 사라드에서 무기 보급도 충분히 받았다. 정확히는...

‘시현의 동료라는 말을 했을 뿐인데.’

엄청 받았다. 사라드가 애초에 헌터들의 세력에 대항하고 플레이어들의 아이를 안전하게 키우기 위해 재건된 곳이기에 어느 곳 보다 많은 전쟁물품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양이었다.

"동료가 좋네."

그런 까닭에 그녀는 이제 시작될 스테이지가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당분간은 총알 걱정 없이 마구 쏴도.....’

회색방에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물자의 보급이었다. 지구에서였다면 총알을 쓰면 그냥 사서 다시 채워서 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총알을 언제 다시 입수 할 수 있을지 모르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무기 난사빨로 한참 명성을 날리던 플레이어가 대형 스테이지에 들어가서 탄창 고갈로 사망했다는 카더라도 있었다. 복잡한 기술을 사용하는 기술의 무기일수록 보급이 어렵고 고장시 수리가 힘들다. 오히려 원시시대 쪽으로 가까히 가는 무기일수록 고장이 적고 수리가 간단했다.

그녀의 손이 허벅지에 고정되어있는 칼집을 향했다. 꽂혀있는 나이프를 만지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마틸제 군용대거.

숫돌만 있으면 틈날 때마다 갈아주기만 하면 오랜 사용이 가능.

물론 그 여자의 물건 설명은 언제나 맨 뒤에

(그런데 여자에게 파는 물건은 가끔 불량품이 있을 수도 있답니다~)

라는 불안한 끝머리가 달려왔지만....

‘성별 차별 주의자...남는 건 가슴 밖에 없는 여자.’

그 말을 속으로 삼킨 채, 그녀는 창밖을 바라봤다.

-빵빵.

(거기 저속도 주행하시는 무인 분, 아래쪽 라인 타고 다녀요! 여기 고속 라인이거든요!)

(미안합니다! 곧 내려갈게요!)

-삑. 삑.

무언가가 그녀의 주변에서 울렸다.

“추가 메뉴를 고르시겠습니까?”

청소기처럼 생긴 허리높이의 자동화 로봇이 어느새 그녀에게 다가와 있었다. 허공의 홀로그램이 나타나 문자를 새겨갔다.

------

당신 점수로 마시는 것이 가능한 메뉴.

1. 아메리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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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려...'

어제 아침도 아메리카노.

어제 점심도 아메리카노.

오늘도 아메리카노.

“아니.. 애초에 메뉴 하나밖에 안 보여주면서 뭘 고르래....'

어느 카페를 가던 그녀는 아메리카노 밖에 고를 수 없었다.

"아메리카노 한잔.”

'뭐 공짜니까.'

공짜 좋아하는 건 남자나 여자나 일반인이나 군인이나 똑같았다.

-삑. 삑.

자동화 로봇의 머리가 열리며 흰색 잔에 담긴 따끈한 김을 내뿜는 아메리카노가 나타났다. 잔을 잡은 그녀의 손을 타고 따뜻함이 올라왔다.

한 모금 커피를 마시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써.

설탕 추가 메뉴가 없었다.

어제도 마찬가지였고

오늘도 역시.

'뭐 이래 여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는지, 그녀는 그 커피를 홀짝홀짝 잘도 마셨다.

운동화를 신은 그녀의 발이 반복적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딱, 딱, 딱, 딱.

머릿속은 계속해서 가지고 있는 무기들을 새겨 넣었다. 언제든지 무기를 스위칭 할 수 있게 여차하면 30개의 분신을 모두 풀어서 한 번에 장비 할 수 있도록.

'분신 한 개로 처리 할 수 있지만 B급 이상의 능력자가 나타나면 최소한 절반은 풀어야 할 거야.'

자신감은 있었지만, 불안했다.

‘내일도 살아있을 수 있겠지?’

여자를 태운 공중무인 택시가 창문 밖을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흡사 한 기의 전투기라도 된 마냥 공중을 날아다니던 시현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렇게 까지 할 줄은 몰랐다. 신데렐라 폼을 한 채. 우주전함을 통째로 격침시켜버리다니.

“살아 있겠지...”

그가 아니었으면, 아마 그 날 사라드의 많은 플레이어들이 몰살당했을 것이라고 들었다.

"살아 있어야 하는데..."

두 손을 들어 올린 그녀가 뺨을 찰싹 때렸다.

‘일단 내가 사는 것에 집중해.’

-띠링.

올 것이 왔나.

한나가 커피 잔을 내려놨다.

호흡이 빨라졌다. 느슨하게 풀려있던 몸에 힘이 들어갔다.

전투가 바로 시작되어도 반응 할 수 있게.

'총탄OK, 대거OK, 또... 사라드에서 얻어온 위장크림도 있고...여차하면 축구 우승 트로피라도 집어던지고.....’

살아서 다시 동료들을 만난다. 그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아버님,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이번 스테이지의 보상은...

[...회색방 스테이지 종료 후 ‘사라드’로 이동 할 수 있는 아이템 입니다.]

그녀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커졌다.

'그럴 수가.'

저 아이템만 있으면 랜덤 이동이 아닌 직접 이동으로 사라드에서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장 힘든 일인 스테이지 종료 후 다시 스테이지로 가는 강행군을 막는 것도 가능했다.

이긴다. 반드시.

그녀가 대거의 손잡이를 움켜줬다.

[이번 게임은.]

빠르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전직 군인이었던 그녀의 장점이었다.

‘어떤 초능력자건 상관없어, 나는 임무를 완료하고 사라드로 간다.’

유성우 능력자도 무찔렀고, 공간이동 능력자도 싸워봤다. 무서울 건 없었다.

전의가 불타올랐다.

시스템 음성이 들렸다.

'올 테면 와라.'

[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의 주인공이 되어...]

'......?'

[...남자 캐릭터를 공략하시면 됩니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예?”

[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의 주인공이 되어, 남자 캐릭터를 공략하시면 됩니다.]

무언가,

힘 빠진 그녀의 손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공...략?"

[행운을 빕니다.]

매정하게도. 시스템 음성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허공에 나타난 광고지 하나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스커트 위로 떨어졌다.

토끼귀 머리띠를 하고 있는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윙크를 하는 모습 위에 아기자기한 글씨가 프린팅되어 있었다.

(미소년 연애 시뮬레이션의 여 주인공을 모집합니다! 외모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여성 분! 피부가 솜털처럼 부드러우신 분! 지금 바로 오디션을 보러 와 주세요!)

“......”

허벅지에 매달린 군용 대검이 처량하게 흔들렸다.

29년 인생

연애 경험 전무.

이 한나 대위의 서바이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허공 무인자동차.]

도시 루인의 이동수단이다. 무인으로 움직이며 차 문에는 광고판, 차 위에는 확성기가 달려있어 탑승자가 언제든지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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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을 쓰면서, 대탈출은 무슨 장르인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PS.

4일간 대탈출의 노블 순위

순위권 밖 -> 67위 -> 43위 ->27위.

하지만 미소년이 출동한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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