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탈출-301화 (301/373)

00301  대가(代價) 하(下)  =========================================================================

[범인의 기억을 재생합니다.]

나연은 학원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녀는 유일하게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었기에.

후우. 후우.

끓어오르는 분노를 내리누른 채, 그녀는 호흡을 가다음으려고 애썼다.

웃어.

즐겁게.

즐겁게.

원장실의 한쪽에 놓인 수면제 통을 집어든 나연이 알약 몇 개를 커피의 안에 집어 놓고는 독기 어린 눈을 감추고었다. 그녀가 방을 나섰다.

권군을 만난 그녀는 선한 눈을 하고 커피를 내밀었다.

“뭐야? 어제까지만 해도 죽을 것 같이 굴더니만.”

“헤헤...”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 채.

그는 커피잔을 받아들고 천천히 죽음을 마셨다.

“어...?”

커피향과 함께 사건은 시작되었다.

이상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의 시야는 이미 90도 기울었고, 머리는 땅에 닿아 있었다.

'...뭐?'

식칼을 들고 차분하게 걸어오는 나연의 모습이 90도 비틀려서 보였다.

“잘 가. 내 사랑 피노키오야.”

범행에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이 자신보다 강하다고 생각되면 직접 공격이 아닌 수면제나 기습의 형태를 취한다. 그렇기에 권 군보다 체격이 좋은 원장이나 남학생과 달리 나연은 수면제라는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잠깐...잠..'

식칼이 정확히 급소를 긋는다.

그는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몰랐다.

아니, 애초에 나연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추측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과거의 사건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해프닝에 불과했기에.

'왜...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타고 움직였다.

나연이 작게 웃었다.

그녀는 학원 문을 나가 엘리베이터를 열고 틈 사이로 범행도구를 떨어뜨렸다. 엘리베터 점검은 한 달에 한번 있는 터라. 적어도 당분간은 발견될 일이 없을 것이었다.

금속이 건물의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즐거워야 할텐데.

지금은 즐거운 순간이었을텐데

즐겁지가 않았다.

엘레베이터 문을 닫고는 그녀가 쪼그려있던 자세를 풀었다.

슬플때는. 그림을 그리자.

미술실로 돌아온 그녀가 권군의 시체를 힘겹게 끌어온 후 그 위에 물감 통을 엎었다.

'어머니. 저는 이제 새로운 그림을 그립니다.'

그제야 마음이 좀 안정되었다.

권 군의 시체를 도구로 사용한,

복수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새로운 게임이 시작됩니다. 5..4..3..2..]

[방해자는 사람들이 범인을 찾을 수 없게 만들 경우 승리하며, 진범이 잡히거나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를 죽이게 되면 패배하게 됩니다.]

-띠링.

[00년 48일 00시 30분]

시계는 48일째를 가리켰다.

차가운 복도의 한기를 느끼며 시현이 눈을 떴다.

‘으으으...’

온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지럽다. 토할 것 같다.

세상이 빙빙 돈다. 마음이 옥죄여온다.

‘아직..살아있나?’

-띠링.

[이 곳은 범인의 방입니다.]

새로운 스테이지였지만, 그의 머릿속은 아직도 대악마에서의 혈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은 살인범을 잡아야 합니다. 용의자는.....]

시현은 시스템 음성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이제 눈을 뜨셨네요?”

숨이 가빴다. 프린세스 디펜더, 헌터들의 사라드 침공. 케이시와의 만남. 김철수의 경고. 여러 가지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살아남은건가.'

“무슨 생각을 해요?”

그녀는 갑작스럽게 얼굴을 들이 밀었다. 숨결이 시현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누구...?'

시현의 그녀 얼굴이 너무 가깝다고 생각했다.

“누구...?”

가녀린 손이 시현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녀가 작게 귀에 속삭였다.

걱정말아요. 제가 다 처리 할 테니까.

무엇을 처리한다는 걸까.

여긴 어디인 걸까.

물어볼 것이 너무 많았다.

무언가가 시현의 입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일어나면, 모든 것이 해결 되어 있을 거예요. 내 사랑.”

저항해야 한다. 시현은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타고 흘렀지만. 그의 몸은 이미 망가져 있었기에

어떠한 저항도 할 수가 없었다.

'안 돼...'

시현의 정신이 아득히 멀어져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진한 피 냄새와 함께였다.

시현은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니 목에 묶인 밧줄이 억지로 시현과 의자의 목 받침대를 연결시켜 강제로 앉혀 있었다. 쓰라렸다. 죄수를 묶어놓은 듯한 모양세였다.

그가 닫히는 눈꺼플을 억지로 뜨게 하며 주변을 살폈다.

방의 안에는 작은 밥상 하나가 있고 일회용 찌개 용기가 굴러다녔다. 그가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는 고개를 움직였다.

시현의 숨이 점점 가빠졌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힘들었다.

벽에는 수많은 그림이 붙어있었다.

'......'

첫번째 그림은 작은 단칸방 안에 남편과 부인, 딸이 있는 화목한 집.

두번째 그림은 4명의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그로테스크한 그림.

마지막 그림은 웃는 얼굴의 여자와 남자가 가정을 꾸리는 그림.

문제는 마지막 그림이었다.

여자의 얼굴은 그 소녀였고

웃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시현 자신이었다.

소름이 등골을 타고 찌르르 올라왔다.

침을 삼킨 시현은 지금 상황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침착해.’

자신은 사라드에서 전함 대악마를 박살낸 뒤 추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리고 또 다시 기절.

눈을 떠보니 불길한 느낌이 드는 곳 한가운데에 묶여있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침착해 시현. 할 수 있어. 추리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는 끊어지는 의식을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칸나를.. 다시 만나러 가야 해, 케이시를... 구해야 해...'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은 정상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는 정확한 단어를 추리려고 노력했다.

미술용품들.

무슨 이유에선지 자신은 속박 당하고 있다.

저 그림이 맞다면 날 이곳에 가둔 사람은 저 그림을 그린 사람과 관계가 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사랑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드르륵.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불길함이 시현의 온몸을 감아쥐었다.

그 소녀였다.

“어 눈 떴네요?”

옷을 붉게 물들인 나연이 즐겁게 웃고 있었다. 역겨운 피 냄새를 풍기며 그녀는 시현에게 다가와서는 탁자 위에 놓인 숟가락을 집어들었다.

위험해.

저 여자는 위험해.

시현의 본능이 계속해서 소리쳤다.

"배 고프죠? 오늘도 열심히 일하셨네요."

그녀가 일회용 찌개에서 국물을 떠서 호호 불고는 시현의 입가에 내밀었다.

“아~ 입 벌리세요.”

시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생각들이 엃히고 설켜서 무슨 상황인지 추리가 되지 않았다.

"아...~?"

그가 입을 벌리지 않자. 나연이 금새 무표정으로 변했다. 숟가락은 닫힌 시현의 입가에 머물러 있었다. 금세 살기가 공기를 타고 차갑게 출렁였다. 그녀의 어투는 급변했다.

“입 벌려.”

그녀가 시현의 목 부근에 있는 밧줄을 잡아 끌어올렸다. 시현의 목이 죄여지며 산소가 뇌로 가지 못했다. 곧 그의 폐가 공기를 달라고 아우성쳤다.

컥. 컥

거리며 살기위에 시현은 입을 벌렸다.

그 입 속으로 그녀는 숟가락을 쑤셔 넣었다.

“옳지 옳지. 앞으로도 편식하면 안돼요~”

살려줘.

몇 번이고 나연은 숟가락질을 반복했다. 그에따라 시현의 저항도 점차 약해졌다.

얼마가 지난 후에는 거부하지 않고 억지로 그녀가 주는대로 받아먹었다.

“말 잘 듣네요.”

슥슥 작은 속이 시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추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시현은 몇 분뒤에도 자신이 살아있을지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나연이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휘파람을 불며 일회용 용기들을 검은 비닐봉투에 넣었다. 땀에 흠뻑젖은 시현이 그녀의 행동을 힘겹게 관찰했다.

“그럼 먹을 것도 먹었으니, 햄버거 몇 개 만들어 줄래요?”

시현의 동공이 커졌다.

어째서 그녀는 나의 능력을 알고 있는가. 머릿속이 점점 더 꼬여갔다.

‘생각 읽기? 세뇌? 기억조작? 타임리프?’

불현 듯.

시현은 뜨거운 쇠꼬챙이가 자신의 손을 꿰뚫었다고 생각했다. 방안 가득히 비명소리가 퍼졌다.

"햄버거? 만들어 주지 않을래요~?"

그의 손바닥 위로 식칼이 거꾸로 꽂혀있었다.

이 여자는 제 정신이 아니라고, 시현은 본능적으로 알게되었다.

“팔 다리 하나쯤은 없어도... 뭐, 우리 사랑이 달라지진 않겠죠?”

제정신이 아니야.

그녀가 식칼을 뽑아 들었다. 시현의 손에서 피가 분수처럼 흘러나왔다.  다시한번 칼을 가슴팍으로 들어올인 그녀는 곧바로 시현의 손 위를 내려 찍었다.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했다.

“[해...햄버거... 소...환]..”

“진작 그러지 그랬어요.”

슥슥. 머리를 쓰다듬은 그녀가 시현의 손을 바라봤다.

"아아. 많이 아프죠? 미안해요. 미안해요."

그녀가 어쩔줄 몰라하며 자신의 옷을 찢어 시현의 손을 지혈했다.

(어이.)

문이 열렸다.

체크무늬 난방을 입은 남자가 피가 낭자한 방안을 보고 살짝 찡그렸다.

도와줘. 라고 시현은 그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어이, 이봐. 약속한 햄버거는 회수했어?”

그의 말에, 시현은 바로 이해해 버렸다. 저 녀석도 한 패다.

나연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햄버거들을 집어 들고는 돌아보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그래서, 그쪽은요?"

"내가 못했을 거라고 봐?"

시현의 손을 지혈한 천을 정성스럽게 싸매고는 그녀가 대답했다.

"여자들은 다 처리했어요?”

“나이아가 좀 어렵기는 했지만, 뭐 네가 능력을 다 알려준 덕택에... 이제 이곳에 너 빼고 없어.”

나연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노드에게 햄버거와 x라고 쓰여 있는 코인을 몇 개 건넸다.

"좋아요. 고마워요."

피가 얼룩져 있는 코인을 인벤토리에 넣은 노드가 햄버거 포장지를 벗겨내고는 한 입 깨물었다. 그의 무표정한 눈이 신음을 흘리고 있는 시현을 바라봤다.

[유기농 매그도나르도 버거를 섭취하였습니다. 모든 능력이 미묘하게.....]

“어때요. 제 말대로죠?”

“흠.....”

노드가 시현을 다시한번 힐끗 보고는 자신에게 스믈스믈 기어오는 핏물에서 발을 뺐다.

"뭐 좋을대로 하라고."

그가 몸을 돌려 방 밖으로 나갔다.

(재미있게 놀아.)

“고마워요.”

드르륵. 문이 닫혔다.

도망쳐야 해.

시현은 고통에 찬 와중에도 그것만을 생각했다.

즐거운 얼굴을 한 나연이 성큼 성큼 다가와 시현의 무릎위에 걸터앉았다.

"어때요 제 모습?"

그녀의 턱을 타고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시현의 옷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가 손을 뻗어 시현의 눈두덩이를 메만졌다.

“지금 제 모습을 잘 봐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시현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린다.

“조금 있으면 아무것도 못 볼 수도 있는데 말이죠.”

동시에,

그녀가 시현의 멀쩡한 손을 식칼로 찍었다. 비명소리가 또 한 번 방안을 채웠다. 그녀가 시현을 살포시 껴앉았다.

"이제 다른 여자를 만질 손도 없어요."

핏물이 시현의 얼굴을 붉게 칠했다.

“아쉽네요. 참 매력적인 사람인데, 이제 바람도 못 피게 되어서. 손도 손이지만 이제 이곳에 여자는 이제 나 밖에 없거든요.”

그녀의 숨결이 시현의 귀에 닿았다.

“우리 이곳에서 영원히 살아요.”

시현의 손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흥건히 적셔갔다.

피가 빠져나감에 따라 그의 정신이 점점 흐릿해졌다.

'대책을...'

'대책을 찾아야 해..'

[00년 48일 오후 6시 45분]

미치지 않고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오직 시계 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헌터 나연]

강한 능력자이지만 소녀 나연의 기억에 잠식당한 후, 맹목적인 사랑을 쫒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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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연참을 하고 슥 노블레스 랭킹을 보니

순위권 밖 -> 63위로 진입했네요.

나이스!

그러나 아직 배가 고픕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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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폰 주신 분들 감사드리고.. 그 쿠폰은 작가의 박카스 값으로 변환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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