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95 대가(代價) 하(下) =========================================================================
끊임없이 뿜어져 나온 검은 구름은 옥상 층을 어둠 속으로 빠뜨렸다. 시야는 이미 의미가 없어지고 그르렁 거리는 괴물의 소리와 노드의 괴성이 그들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할 뿐이었다.
나이아가 연속적으로 보석들을 손가락 사이로 끼워 넣으며 귀를 세웠다.
‘뭐하는 거야..!’
분명 그녀는 의사를 전달했을 터였다. 노드에게는 미안하지만 다른 패가 필요했다.
쿵. 쿵.
쇠가 찌그러지는 소리와 노드의 비명소리가 어둠을 뚫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나이아!!!! 크악!!)
노드의 비명소리가 옥상을 가득 메웠다.
움직여야 하나? 공격해야 하나? 소리에 의지해서 광역 공격을?
...아니면 도망?
여러가지 생각이 그녀의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녀의 다리가 얇게 떨렸다.
공격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원장. 그가 기억을 찾는다면...
‘아니, 태극권으로...이길 수 있을까?’
(나이아!!!!!)
시멘트벽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보석을 잡은 손이 불안한듯 계속 움직였다.
괴물의 포효소리가 마치 승리를 예감하는 것처럼 그녀의 고막을 때렸다.
손을 떨던 나이아가 결단을 내렸다.
'아군 적군 가려서 공격할 상황이 아니야. 그리고...'
그녀의 눈썹이 v자로 치켜졌다.
‘노드는 어차피 치워야 될 패야.’
나이아가 손가락 사이에 낀 돌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울려 퍼져라. 화염의 돌이여..그..]
보석들의 표면에 불꽃이 이글거려갔다.
노드와 괴물을 포함해서 옥상 전체를 날려버린다.
그녀가 초능력의 영창을 끝내기 직전.
불쑥. 하고
검은 연기의 속에서 괴물의 팔이 뻗어 나왔다.
"컥."
거대한 손아귀가 나이아의 얼굴 전체를 감싸쥐었다. 나이아가 저항 할 수 있는 수준의 힘이 아니었다.
자지러지는 여성의 비명소리와 함께 괴물의 포효 소리가 장내를 장악했다. 얼굴을 잡힌 나이아가 벽에 처박혔다. 벽의 겉면이 부서져 내렸다. 흉칙한 괴물의 입김이 나이아의 볼에 전해져 왔다.
냉혹한 눈동자가 그녀의 온 몸을 훑었다.
괴물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죽는다.
죽는다.
안면이 압박되며 목과 이마가 동시에 조여졌다.
그녀의 몸이 산소가 부족하다고 소리쳤다. 벽에 처박히는 충격으로 온 세상이 울렁거렸지만 어떻게든 살 방법을 찾으라고 온몸이 소리쳤다.
보석을 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툭. 미끄러져 내린 보석들이 바닥을 때리면 소리를 냈다.
'난..난 아직..'
온 몸의 움직임이 정지 된 채.
그녀는 작은 생각만을 간신히 떠올렸다.
‘우리로는 안 돼... 빨..리..원장을...’
띠링.
시스템 소리가 저항력을 상실한 그녀를 심판의 시간으로 끌고갔다.
-투표가 시작됩니다.
***
원장과 여 선생은 서로를 힘으로 밀치고 있었다. 그 둘은 투표권을 가졌다. 시현은 쓰러졌고 건물의 지속적인 흔들림은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전투가 가능한 인원들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연이를 바꿔야 하네! 다른 선택지가 없어, 그의 말을 믿어야 해!”
질세라 여 선생이 받아쳤다.
“정신 차리세요. 원장님! 우리는 위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몰라요! 한명이라도 싸울 수 있는 사람을 보내야 해요!”
“그녀의 말을 믿는가?! 그녀는 당장만 해도 우리를 죽이려고 했어!”
원장이 얽혀있는 여 선생을 밀어냈다.
“그게 뭐가 중요하죠! 우리는 지금 모두 다 죽게 생겼다고요!”
쿵. 또 한 번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
그들의 눈동자도 불안감으로 흔들려갔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전투 능력이 있는 나이아를 바꾸는 건 자살 행위에요!”
“나이아가 괴물을 물리 친 다고해도 우리를 살려 둘 것 같나!? 방금 봤지 않은가. 그녀가 우리를 죽이려던 모습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네!”
차가운 물방울들도 그들의 분열을 막을 수 없었다.
여 선생의 두 팔이 원장의 멱살을 잡아챘다.
“제 정신이에요?! 나연이 미쳐서 혼자 옥상으로 기어 올라가는 거 못 봤어요?! 왜 그녀를 바꿔야 된다는 거에요! 지금 당장 싸울 사람도...!”
굉음과 함께 건물이 지진 난 듯 흔들렸다. 원장과 여선생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여선생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우리 싸울 사람은 당신 뿐이라고요! 다 죽게 생겼다니까요!”
간신히 중심을 잡은 원장이 멱살을 풀어내며 씩씩 거렸다.
"멍청한 소리!"
"당신이야 말로!"
원장의 손가락이 쓰러져있는 시현을 가리켰다.
“우리가 기억을 잃었다고 누가 알려줬나?! 아무것도 안 숨기고 우리를 감옥에서 꺼내 준 게 누구냔 말이야?! 나이아가 우릴 구했나?! 노드가 우릴 보호해줬어?! 정신 차려 이 여자야! 저 자식! 시현이라는 녀석. 저 녀석이 하는 말이 우리를 항상 도왔다고! 우리를 죽이려고 했던 여자 말을 믿을건가?! 아니면 우리를 여태까지 도와줬던 청년 말을 들을 건가!"
"그가 우리를 위했다는걸 어떻게 알 수 있죠! 그가 진심이었다는걸 어떻게 알 수 있냐구요!!"
원장이 여 선생의 멱살을 잡아쥐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말은 누구도 할 수 있지만 그 진심을 담아내는 것은 행동뿐이야!!! 저 녀석이 아니었다면 아직까지도 우리는 창살에 갇혀서 서로를 어떻게 죽여야 하나 그 생각만 하고 있을거라는 말일세!!”
스프링클러의 소리가 그들의 사이를 메웠다.
격한 호흡소리와 함께 멱살을 잡은 두 손을 따라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띠링.
-투표가 시작됩니다.
원장이 화난 얼굴로 여선생을 바라봤다.
굳은 여선생의 얼굴이 그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
나이아의 귀에 흐릿하게 시스템 음성이 들렸다.
-투표가 종료 되었습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원장이 기억을 되찾고 태극권을 사용하려 뛰어온다면 윗층까지 30초는 걸릴 것이었다.
'못 버텨...'
원장이 이동 초능력을 지니고 있을까?
이동 아이템을 지니고 있을까?
이런곳에서 허무하게 죽는 걸까?
여러 생각이 그녀의 머리속을 스쳐갔다.
그리고
시스템이 음성이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나이아)와 (나연)을 바뀐다. 가 선택 되었습니다.
노드의 제안도 아니었다.
나이아가 주장했던 제안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시...발...’
-띠링.
-헌터 나이아. 당신은 모든 기억을 잃어버립니다.
도대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
헬라는 멘붕 상태인 나연을 부축한 채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울며불며 짜고 있는 나연이라는 존재는 굉장한 짜증을 일으켰다.
‘걸리적거려!!!’
-투표가 종료되었습니다.
멀지 않은 괴물의 포효소리가 등골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이미 전부 당했나?'
노드와 나이아의 움직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헉.헉.헉.
그녀의 몸에서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머릿속에 당장이라도 나연이라를 존재를 버리고 가고 싶은 생각이 가득 찼다.
-띠링.
시스템 음성이 그녀의 고막을 파고 들었다.
"또 뭐야."
이어지는 말에 헬사의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 나갔다.
-(나이아)와 (나연)이...
‘제 정신이야?!!!’
쿵.
무언가가 헬라를 밀어냈다.
그녀의 몸이 벽에 강하게 부딪혔다. 나연의 팔이 그녀를 밀어낸 것이다.
“뭐...하는..”
“쫑알쫑알 시끄럽네 진짜.”
나연의 눈동자가 허공을 훑었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시스템 음성이 계속 들려왔다.
-(헌터 나연. 죄수들의 선택에 따라 그대의 모든 기억이 돌아옵니다.
잊었던 모든 초능력을 각성합니다.)
나연이 목을 우드득우드득 하고 좌우로 풀었다.
괴물의 포효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헌터라는 새끼들이 이정도도 못해먹을 거면 뒈져야지.”
180도 바뀐 나연의 말투에 헬라가 침을 삼켰다.
기억이 뒤바뀌는 동시에 소녀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시발. 보이는 것도 없네.”
나연의 눈동자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중력제어 1식, 처박혀라.]”
헬라가 그녀의 말에 의문을 느끼는 찰나. 온몸이 쇳덩이를 두른 것처럼 무언가가 몸을 짓눌렀다. 손을 땅에 짚지 않고는 자세를 지탱하기 힘들어졌다. 풀썩. 결국 헬라가 바닥에 주져 앉았다.
어두운 연기가 바닥으로 깔리며
헬라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온몸을 이리저리 뚜득 거리고 있는 나연을 쳐다봤다.
“중력. 능력자...?”
나연이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중력제어 2식, 부분강화.]”
동시에,
고통에 가득 찬 괴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지진이 난듯 건물이 계속해서 울렁 거렸다.
쿵. 쿵. 쿵.
무언가가 옥상층에서 부터 건물의 바닥을 연속적으로 무너뜨리며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쿵. 쿵.
소리가 점점 커져왔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끌어내려지는 것이었다.
나연의 옆쪽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거대한 가고일이 흙 무더기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당장이라도 나연을 죽여버릴 듯이 가고일이 괴성을 질렀다.
헬라의 온 몸이 두려움에 떨렸다. 그녀가 침을 삼키며 벽 쪽으로 붙어섰다.
코끼리만한 가고일은 오직 소리만 질러냈다. 그물에 갇힌 듯.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계단에 걸터앉은 나연이 손톱을 다듬으며 작게 말했다.
“[중력제어 3식]”
그녀가 턱을 괴고는 갈라진 손톱 끝을 쳐다봤다.
가고일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그녀가 말을 이었다.
“[찌그러져라.]”
고통에 찬 비명 소리와 함께.
가고일의 몸체가 한 점을 향해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나연]
범인에 방에서 만난 헌터. 여학생의 기억으로 죄수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사건의 흐름과 함께 기억을 되찾는다.
그 후, 원래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각성.
중력제어 관한 초능력을 사용.
[중력제어 1.2.3.4식 등을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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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아라 1위 한번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