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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탈출-294화 (294/373)

00294  대가(代價) 하(下)  =========================================================================

뜨거운 김이 피부를 데웠다.

수중기의 사이에서 노드와 나이아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불길은 사그라졌지만 학원 내의 물건들은 이미 터져나갔고 범인을 잡을 실마리는 없어 보였다.

"어디까지 버티나 볼까요?"

"뭐 얼마든지."

"더 버텨보시죠."

-띠링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두 명의 대치는 뜻밖의 불청객에 의해 깨어졌다.

[회색 방 시스템 작동]

시스템 음성이 울림에 따라 모두가 멈췄다.

“뭐야.”

나이아가 노드를 경계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블루문 디텍트 시스템 가동. 게임 플레이어가 고의적으로 스테이지에 머물러 있다는 판단 하에 패널티를 적용합니다.]

[차원관문이 개방됩니다. 30, 29, 28......]

노드의 실실거리던 표정이 지워졌다. 곧 굳은 얼굴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역시 너무 오래있었나..?’

[19, 18, 17......]

나이아의 입에서도 같은 느낌의 말이 새어나왔다.

“뭐야, 얼마나 있었기에 수호자가 튀어나와?”

그녀의 말처럼 구석에 구겨져 있던 헬사도 얼굴도 낭패스러운 표정이었다.

'불사 스킬만 멀쩡했어도...지금은..회복할 방법이.. 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은 그녀가 햄버거를 소환해 입에 우겨넣었다. 불사가 아니라도 장애인 오빠의 초능력이면 미량이나마 치료가 가능했다. 그 모습을 본 노드가 자신에게도 하나 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이아가 황당하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뭔 배짱입니까.”

“아니, 지금 우리끼리 싸우게 생겼냐? 일단 소환되는 몹 먼저 처리해야할 거 아녀.”

"하..."

감정적으로는 거부하고 싶지만, 말은 그의 말이 맞았던 것일까. 잠시 머뭇거린 헬사가 햄버거 몇 개를 노드에게 던졌다.

[10, 9, 8......]

“언니도 드세요.”

얼떨결에 같이 햄버거를 얻게 된 나이아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달짝지근한 햄버거 소스를 음미한 노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맛이지."

"...참 한가하시네요."

"어차피 우린 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인데, 뭐 어때서?"

두꺼운 패티를 씹으며 그가 복도 쪽을 바라봤다.

‘이 방을 떠나면 언제 또 이런 걸 먹어보려나.’

그의 귓가에 시스템 음성이 울렸다.

(유기농 매그도나르도 햄버거를 섭취하였습니다. 영혼력이 소폭 회복됩니다. 온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잔부상이 모두 치료되었습니다. 무엇이던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5, 4, 3......]

햄버거를 씹던 헬사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잊고 있던 것. 아니 사람. 그녀가 문 밖으로 허둥지둥 뛰어나갔다.

“장애인 오빠!?”

[3, 2, 1... CO132939 지역에 차원관문이 열립니다. 고대의 가고일 낙하 중. 높은 곳을 주의하십시오.]

그녀가 시현의 몸 위에 피와 함께 엉켜있는 유리조각들을 손으로 털어냈다. 그리고는 가슴에 손을 댔다. 다행스럽게도 심장 박동이 손을 타고 전해져왔다.

‘살아있어.’

쿵.

지진이라도 난 듯이 건물이 좌우로 흔들렸다.

[A- 몬스터인 고대의 가고일 등장. A급 미만의 생명체는 도망치시기 바랍니다.]

(꺄아아아아아악!)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옥상으로부터 들려왔다. 불길한 느낌이 사람들의 척추를 타고 흘러내렸다.

"비켜!"

노드가 어느새 계단 위로 뛰어올라가고 있었다.

“시팔 년, 위에 층은 언제 올라갔어!”

나연에 대한 욕지거리를 뱉으며 그가 옥상으로 향했다.

"같이 가요!"

그의 뒤를 따르려던 헬사가 계단을 오르려다 멈칫했다.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언니!”

그녀가 미동도 하지 않고 서있는 나이아를 쳐다봤다.

나이아에게 있어서는 지금이 모두를 죽일 기회였다. 빠르게 대응한 노드와 달리 그녀는 너부러져 있는 남자들을 응시한 채였다. 보석 단 한방. 그것이면 모두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었다.

“언니! 저랑도 싸우시려는 건가요!”

기괴한 포효 소리가 옥상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짐승도 사람의 것도 아닌 사람의 깊은 불안감을 자극하는 울음소리였다.

나이아가 이를 물고는 꺼냈던 보석들을 인벤토리에 넣고는 헬사 쪽으로 뛰어왔다.

“가자.”

"헉, 헉, 헉"

쾅.

노드가 옥상의 문을 걷어찼다. 강한 바람이 그의 온몸을 때렸다.

'안 늦었겠지?'

옥상의 풍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아직이군.'

뿔과 날개가 달려있는 악마의 석상이 옥상 바닥에 반쯤 박혀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의 난간에서 주저앉은 채 온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나연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얼굴을 구겼다.

“야, 내려가.”

“아...으..어..”

공포감에 말조차 제대로 못하는 그녀를 보며 노드가 주먹을 꽉 쥐었다.

“나 참...내가 어쩌다 플레이어를 구하는 신세가 된 거여.”

그가 석상을 주시하며 한발자국 한발자국 조심스럽게 나연에게 다가갔다. 곧 그의 손이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

“꺄아아악!”

"조용이해! 미친년아!"

멱살을 잡고 그녀의 몸을 들어 올린 그가 어깨에 둘러메고는 옥상의 문 쪽으로 걸었다. 노드는 계속해서 큰 소리로 우는 그녀를 옥상 난간 밖으로 던져버리려는 충동을 애써 참았다. 그녀는 문의 안쪽으로 패대기쳐졌다.

“시발, 시끄러 죽겠네! 도움이 안 될 거면 조용히 짜져있던가! 시발년아!”

(왜 소리치고 그래요!)

가까운 아래층에서 헬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원에 있던 헬사와 나이아가 어느새 옥상 가까이에 도달했던 것이다.

“참 빨리들 오십니다. 다음번에는 다 죽고 게임 끝난 다음 묘지 생겨서 풀 뽑기 할 때 쯤 오시겠네.”

헬사가 노드를 한번 째려보고는 계속해서 울고 있는 나연을 토닥였다.

“제가 부축해 줄 테니까 일단 한 층이라도 내려가요.”

커다란 울음소리가 또 한 번 들렸다. 석상의 머리 부분이 석화에서 풀려 계속해서 울부짖었다. 이윽고 우득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가 허리가 돌가루를 떨어뜨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다.

“비켜요!”

선빵 필승.

옥상의 문 앞으로 나선 나이아의 손에서 수십 개의 보석이 쏟아졌다. 가고일의 석화가 완전히 풀리기 전에 부셔버릴 작정이었던 것이다.

붉은색, 파란색, 보라색, 노란색......

여러 가지 불빛이 세상을 채워나갔다.

"디져!"

노드가 귀를 틀어막았다.

쾅!

나연을 부축하던 헬사의 귀에서 삐-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

옥상에 있던 안전 펜스들이 모두 건물 밖으로 부서져 내렸다.

'통했나?'

검은 연기의 사이로 육중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천천히 쿵. 쿵. 쿵.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쿵쿵쿵쿵쿵.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시팔!”

나이아가 몇 개단 아래로 내려가고 노드가 문의 앞을 막아섰다. 두 개의 방패가 그의 앞에 교차되었다.

포효소리가 잡힐 듯이 다가왔다.

뿔을 단 거대한 근육질의 악마가 연기를 뚫고 그에게 부딪혀 왔다.

쿵!

가드하는 모습 그대로 괴물에 밀려나간 노드가 벽에 처박혔다. 쾅. 부서진 돌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나이아의 눈에 괴물의 흉측한 옆모습이 보였다.

“인벤토리 오픈!”

그녀의 손에 커다란 장검이 쥐어졌다.

“디져!!”

크게 휘둘러지는 장검.

깡.

금속이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휘두르는 모션 그대로

가고일의 피부에 닿은 검 날이 부서져 허공에 흩날렸다. 나이아의 손이 찢어져 피를 뿌렸다.

“미친!”

칼날이 조금도 박히지 않았다.

“비켜! [천공의 손톱]!”

노드의 손톱이 10갈래로 뿜어져 나오며 가고일을 계단의 위쪽으로 밀어냈다.

“시팔 왜 안 뚫려!”

그의 의도와 달리 날카로운 손톱은 가고일을 뚫지 못하고 그저 밀어냈을 뿐이었다.

"버텨요!"

"시발! 니가 버텨봐!!"

문밖으로 밀려난 가고일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퍼져 나왔다. 세상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저 새끼 입 막아!”

노드의 길어진 손톱이 힘이 부치는지 부들부들 떨렸다.

-띠링.

[시간경과에 따라 감옥 투표가 시작됩니다. 죄수 분들은 감옥에 넣을 유저를 투표해 주십시오.]

갑작스러운 시스템 음성까지 겹치며 노드의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가고일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옥상의 빛을 계속해서 잡아먹었다.

“야 저 새끼 입 막으라고!”

노드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나이아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야! 뭐해!”

***

-띠링.

[시간경과에 따라 감옥 투표가 시작됩니다. 죄수들은 감옥에 넣을 유저를 투표해 주십시오.]

[텔레파시 링크 연결]

차가운 물방울이 계속해서 얼굴을 때리는 것을 느끼며 시현이 눈을 떴다.

(들립니까.)

나이아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고유능력인 텔레파시를 또 한 번 사용한 것이었다.

'......'

시현은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들립니까??)

(...들립니다.)

(후.. 잘 들으세요, 죄수 두 명을 설득해서 노드와 원장을 바꾸세요.)

(무슨 소리입니까...지금... 어딘가요.)

(짧게 말하겠습니다. 노드로는 위의 괴물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다른 전력이 필요합니다.)

그녀의 말은 그것이 끝이었다. 시현이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은 채 목을 들어올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대치중인 여선생과 원장이 보였다.

‘기억을 얻은 태극권 고수가 필요한 뭔가가 나타난 것인가?’

원장의 말이 시현의 귀를 때렸다.

“나연이를 노드와 바꿔야 해! 그녀가 옥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어!”

“무슨 소리에요! 원장님이 노드와 바뀌어야죠!”

계획을 세우면 틀어지고, 계획을 세우면 또 틀어졌다.

'변수가 너무 많아......이 스테이지는......'

그는 또 다시 시야가 흐려진다고 느꼈다.

"나연이가 죽게 내버려둘 수 없어!"

"다 함께 여기서 죽겠다는 건가요?!"

스프링클러의 물이 너무 차갑다고 느끼며

시현이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두 명을 향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연이를... 나이아와 바꾸세요. 그게 가장 가능성이......”

그 말을 끝으로, 시현은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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