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91 대가(代價), 그리고 =========================================================================
누군가가 나무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네~ 갑니다~.”
간만의 손님에 빗자루를 들고 먼지 청소를 하고 있던 가게 여주인이 문으로 달려 나갔다. 하늘하늘한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분홍색 머리에 아름다운 눈동자가 빛났다.
“곧 가요~"
그녀가 달리자 커다란 가슴이 흔들리며 메이드복의 앞단추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흔들렸다.
계산대의 위에 쓰여 있는 아기자기한 글씨가 반짝였다.
(마틸의 현대 무기 상점.)
벌컥.
“왔어요~...뭐여?”
손으로 문을 밀어 연 그녀의 눈앞에는 손님이 아닌 텅 빈 들판만이 보였다.
"귀신? 바람?"
문은 누가 두들긴 것이란 말인가.
“저... 음.. 실례합니다.”
“......꺅!”
목소리는 그녀의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문 앞에 쓰러져서 올려다보고 있는 초라한 청년이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그녀의 눈에 익은 남자였다. 매번 올 때마다 특이한 조합이었기에.
“어? 아직도 살아남았어?”
“하하하... 그렇게 되었네요.”
신기하다는 듯이 콕콕 시현을 찔러보는 마틸.
“와,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클리어 하고 왔데, 용하네.”
“하하하..”
한손씩 기어서 움직이려는 시현을 마틸이 한 손으로 들어 일으켰다.
"우와, 이렇게 클리어 하고 나타난 사람은 처음이네, 마지막에 무슨 전설의 용사랑 한판 뜨고 허리 나가고 다리나가고 그런건가?"
"하하....."
시현을 들쳐 업은 마틸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3일 밖에 못 쉬는데 괜찮아? 나랑 뜨거운 밤 3일을 지내다보면 회복할 시간은 없을 텐데.”
그녀의 손가락이 가게의 벽에 붙어있는 문구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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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과의 뜨거운 하룻밤☆
S코인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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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그래~? 별일이네~. 허접해 보이는데 계속 살아남는 걸 보니 괜찮은 남자 같아서 흥미가 가는데, 아깝다.”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하며 그녀가 발걸음을 내딛었다.
"웃차."
상점바닥에 얌전히 시현은 눕혀진 천장의 인테리어를 살펴보며 이곳이 예전에 왔던 가게와는 다른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면 인테리어만 바뀌었던가.’
주둥이만 살아있는 시현이 말을 허공에 뱉었다.
“분점이 엄청 많으신가 봐요. 마틸 씨.”
“말도 말아~ 요즘 장사 안 되서 죽겠어~”
찬장을 뒤적뒤적 거린 마틸이 사과주스가 담긴 유리병을 꺼냈다. 빨대를 꼽고 한 모금 쭉 들이키며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였다.
“요즘에도 무기 매입하시나요?”
“물론이지, 어디 한번 내놔봐~”
“좀 많은데......”
“많아 봤자, 뭐...”
사과주스를 시현에게도 한 잔 주려고 뒤적거리던 그녀는
잠시 후, 가게 천장까지 가득 차버린 무기의 산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총, 도검, 탄환, 폭탄......
전쟁 무기가 천장에 닿아있었다.
잠시 띵한 머리를 다잡은 마틸이 시현을 바라봤다.
“하긴 니랑 니네 동료들은 매번 이런 식이었어.”
“......”
마틸은 코인을 쏟아내던 여자아이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시현은 ‘아직 반도 안 꺼냈는데...’ 라고 말하려다가 마음을 접었다.
'후.'
그의 머릿속에 열심히 싸우고 있을 동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들 살아있겠지.'
자신을 도와줬던 수많은 사람들도 떠올랐다.
그들과 함께 간단한 차를 마시며, 언제쯤 편하게 웃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문득, 시현이 물었다.
“마틸 씨. 혹시, 회색방에 끝은 존재할까요?”
무기를 열심히 창고로 나르고 있던 마틸이 대답했다.
“아 드럽게 무겁네, 응? 왜? 이제 포기하려고?”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수류탄 수십 개를 대충 창고로 던져 넣는 마틸.
“끝이 없다면 여행을 그만 둘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조금 힘드네요.”
“걱정 돼?”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 거라는 생각이 가끔 떠올라요.”
그녀가 다가와 시현의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조언 하나 해줘?”
웬일로 마틸은 진지한 이야기를 했다.
박격포를 어께에 짊어 매고 창고를 향해 던져 넣는 마틸.
“미래에 대한 걱정은 당연한 것이지만, 기나긴 걱정을 하는 동안 현재가 도망가 버릴 수도 있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창고 바닥이 약간 가라앉는 소리가 들렸다.
"대부분 원하는 것에 도달할 수 있는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그래.
똑똑하기에 많은 미래를 예상하게 되고, 그만큼 많은 힘을 써버리게 되거든.”
“......”
그녀가 두 손을 시현의 등 뒤에 넣고 몸을 들어올렸다.
“좀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야,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들처럼.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거야.”
시현이 무언가 대답하려는 순간.
무기 상점의 천장은 사라졌다.
푸른 하늘이 보였다. 바람이 풀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넓은 녹초지에 덩그러니 빌딩건물이 하나 놓여 있었다.
(마틸 종합 병원) 이라는 이름이 유리창에 새겨져 시현을 내려다봤다.
불어오는 바람에 마틸의 분홍색 머리가 하늘하늘 흔들리며 시현의 볼을 간질였다.
“많이 팔아준 손님을 위한 운송서비스~ 우와~ 마틸 참 착하다~”
스스로에게 칭찬을 건네고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
딸랑~
병원의 문이 열리며 풍경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메이드 복장을 한 미녀가 밖으로 나와 그들을 바라봤다.
“손님이신가요?”
하품을 하며 나오던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틸 님?!”
“야, 얘 좀 잘 해줘.”
“네, 네!”
황급히 다가오는 메이드.
문득, 마틸이 시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
쪽. 하고 그녀의 입술이 시현의 이마에 닿았다.
"많이 팔아주는 손님을 위한 서비스~...상점에서 매번 무기만 사지 말고 언젠가는 다른 서비스도 받으러 오라고.”
벽에 붙어있던 전단지가 생각나는 마틸의 표정이었다.
멍한 표정으로 얼어있는 시현이 메이드에게 건네졌다.
“오래 살아남으라고~”
“아, 네...감사합니다.”
메이드가 시현을 받아들으며 물었다.
“마틸 님, 이 환자.. 팔 두 개 정도 더 달고, 날개 같은 거 달면 되나요?”
시현의 기겁하는 표정에 마틸이 즐겁다는 듯 웃었다.
“아 미안, 내 병원이 좀 야매라서 말이야. 심심하다고 맘대로 바꾸지 말고, 환자님이 원하는 대로 해줘~”
“네, 알겠습니다. 마틸 님.”
“다음에 보자고~”
마지막 말을 남긴 마틸의 모습은 이미 온데 간데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시현이 눈을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또 한 번의 여행이, 시작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