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탈출-283화 (283/373)

00283  Episode 2-11 돈의 왕좌.  =========================================================================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층호텔의 집무실에서

의자에 앉은 도플겡어가 산처럼 쌓여있는 문서를 뒤적였다.

'제 정신인가. 이 사람들.'

문서의 맨 앞장에 적혀있는 이름.

비수 프로젝트.

암살정도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문서의 내용은 그녀의 상상을 벗어나는 범위였다.

적국에 수장의 단독 암살.

"......"

수장이 죽음에 따라 일어난 내부분열의 틈을 노려 전 군이 적국으로 진격한다.

도플겡어는 자신이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흘러왔음을 인지했다.

그녀가 문서를 읽으며 말했다.

“이거 15억으로도 밑지는 장사였던 거 같네요.”

“......”

도플겡어의 옆에 딱 붙어있는 두 명의 경호원. 지금은 경호원이라고 하지만 언제든 그녀에게 칼을 들이밀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도플겡어가 문서 여러 장을 드르륵 넘겼다.

"이건 약속해 주셔야 해요."

"어떤 것 말입니까?"

“제가 암살에 성공하면, 그 다음에는 저를 찾지 마세요.”

“그때가 되면 우리도 바빠서, 찾으려야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도플겡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 시작되면 모든 요원이 그쪽에 온 힘을 다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6개월 이면 충분합니다. 실패든 성공이든 말이에요.”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죠.”

문서를 덮은 도플겡어가 작게 미소 지었다.

'미안하지만, 6개월이 아니라 일주일이면 절 볼 수 없을 겁니다.'

그들이 모르는 사실은 그녀가 6일 후에는 이 방에서 떠난다는 것이었다.

회색방 시스템에 의해서 말이다.

‘국가의 세금은 제가 잘 쓰겠어요.’

투명한 와인 잔에 들어있는 액체가 도플겡어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즐거운 상상이 이어졌다.

오늘 금액 발표를 보고 헬라의 얼굴이 우거지상이 되어있는 장면

‘이거 헬라 씨. 아무래도 제가 1위 확정이군요. 허탈한 당신의 표정을 구경하러 가고 싶지만, 아쉽게도 저는 일거리가 많은 사람이라..'

지명수배도 되어있는 그녀가 발버둥 쳐 봤자 일주일에 20억이라는 돈을 벌 수 없을 것이었다. 헬라에게 남은 방법이 있다면 아마.

'뭐 직접 쳐들어오시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국정원과 맞짱 뜨시던지요. 브라보.’

혼자서 작은 축배를 드는 도플겡어였다.

'제가 이겼네요, 헬라 씨. 당신은 저한테 안 됩니다.'

***

쌓여있는 접시를 뒤로한 채 헬라가 말문을 열었다.

"칸나씨 너무 많은 돈을 쓰시면 안 돼요. 그러니까 왜 그러냐면"

그녀가 탕수육을 잠시 내려놓았다.

“저랑 칸나 씨 그리고 아론 씨가 한 배를 탄 처지입니다. 자금은 아론 씨가 자금이 가장 많고요. 일주일도 남지 않았어요. 살고 싶으면 한 푼이라도 더 아껴야해요. 이대로라면 식비도 압박일 예정인데.. 후.”

자신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탕수육 한 접시를 입에 털어 넣고 있는 칸나였다.

"......"

우걱우걱.

“칸나 씨? 듣고 있는 거죠?”

“응."

"그러니까 말이죠. 우리가..."

탕수육 씹기를 마친 칸나가 헬라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근데 나 24억 있어.”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부터 모아야.. 네?

너무나 대단한 사실이 너무나 사소하게 튀어나온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잘 못 들었다는 듯 헬라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칸나 씨 뭐라고요?"

“나 24억 있어.”

“...?”

한동안 사태를 파악하던 헬라가 입을 벌렸다.

"음? 에...에에에에에?!!'

"2..4?!"

아론과 헬라가 정지화면속의 인물처럼 멈췄다.

그리고 잠시 후.

“2...24억요?!”

"응, 이거 오늘 아침에 본 건데."

칸나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통장을 내밀었다. 귀신에 홀린 듯 헬라의 손이 그것을 움켜쥐었다.

--------------

2416030000

-------------

‘일, 십, 백, 천, 만, 십만.. 24억?’

왜.

어째서인가.

한동안 혼란에 잠겨있던 헬라.

그녀의 입에 미소가 생겨났다.

“이..! 이거 어떻게 된 건가요?!”

탕수육 한 접시를 더 뜯고 있던 칸나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아는 사람이 먹을 거 사먹으라고 줬어.”

“.........”

“.........”

아는 친구가 세계 최고의 부자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 애초에 이곳에 온지 3주밖에 안 지났는데 그런 친구를 사귀는 것이 가능한가?

'어째서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이죠?!'

헬라가 칸나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온힘을 다해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해가 안 돼!’

“아 맞다 또 할말 있는데.”

뭔가 또 좋은 소식이 있을까 헬라가 눈을 반짝였다. 찬물을 꿀꺽꿀꺽 삼키고는 칸나가 말을 이었다.

“나 다른 플레이어 도와 줄 수 있어.”

“네?”

도와준다니 무슨 소리인가, 헬라와 아론의 머리위에 물음표가 가득해졌다.

“생각해보니까, 난 수명 -2000 받아도 안 죽을 수 있어.”

“네???”

“내 능력.”

"잠깐. 그러니까 이 게임에서 져도 안 죽는다고요?"

"많이 먹어 놓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헬라를 바라보는 칸나의 모습과

다함께 모여서 즐겁게 이야기 하는 지금의 상황이 오버랩되었다.

헬라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가...

내 선택이.. 맞았던거야?'

그녀의 머릿속에 칸나의 병실에 서서 이 여자가 믿을만한가, 과연 살려줘야 하는 가 심각한 마음의 갈등을 겪었던 과거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신이시여.’

혼자서 했던 수많은 마음고생들.

왜인지 모르게 헬라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녀가 웃으며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칸나를 바라봤다.

수명 패널티를 이길 수 있다.

그 말은

‘신이시여, 제가 몇 명의 플레이어들을 살린 것인가요.’

헬라의 눈앞에, 칸나로 인해 구원받을 미래의 플레이어들이 웃음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방울방울 진 눈물들이 헬라의 눈동자에서 흘러내렸다.

“헬라 씨 울어요?”

아론이 놀란 목소리로 헬라에게 물었다.

헬라가 손을 들어 눈가를 훔쳤다.

스스로에게 멍청이라고 되뇌며 혼자서 모든 전투를 견뎌온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어,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손가락의 사이로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플레이어들의 귀에 시스템 음성이 들렸다.

-띠링

[D-6일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

플레이어의 이름과 자금, 그리고 위치가 같이 표시됩니다.

-----------------------------------------------

1위. 28억 1603만원. -칸나          동구

2위. 26억 3420만원. -도플겡어     미란시.

3위. 1억 2229만원.  -마이크       미란시.

4위. 6031만원.      -아론         동구

5위. 0원            -헬라         동구

6위. 0원.           -남호         동구

7위. -9350만원.     -인섭         미란시

-------------------------------------------------

자금 리스트를 본 칸나가 웃으며 외쳤다.

“오! 그 사이에 돈 더 늘었어! 이제, 내가 최강이다!”

D-6일.

결과.

1위. 칸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