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1 Episode 2-11 돈의 왕좌. =========================================================================
쇠사슬이 잘려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옥상을 메웠다. 수많은 복면 쓴 괴한들이 옥상을 향해 돌격하기 위해 서로에게 수신호를 했다. 괴한이 군화발로 문을 걷어찼다.
문이 열리자 멀리 옥상의 끝에 서 있는 흐린 달빛을 받은 헬라의 모습이 보였다. 어둠속에 숨어있던 그녀의 손이 쇠로된 고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녀의 어께가 풀로 휘둘러지며 손에 들려있던 쇠뭉치가 빠져나와 옥상의 문으로 날아왔다. 헬라가 손을 놓는 순간 작동하기 시작한 신관이 허공을 날며 타들어갔다.
맨 앞에 앉아 쏴 자세로 총을 당기려던 괴한이 황급히 소리쳤다.
“피해!! 수류탄이다!!”
쇠뭉치가 바닥에 닿으며 뇌관이 작동했다. 쇠뭉치의 몸통이 터지며 안에 있던 화약과 뭉게구름이 옥상전체로 퍼져나갔다.
“뭐야? 연막탄?”
대원 몇 명이 황급히 머리에 있는 야간투시경을 내려썼지만 연막탄의 뜨거운 열기와 시야방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연기와 연기 사이에 얼핏 무언가가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생각했을 때.
짧은 단말마가 대원들 사이에 울렸다.
“대형을 유지해!! 대형을 유지하라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헬라는 유령이 되어 어둠속을 누볐다.
불안에 떨던 대원 한 명의 눈앞에서 갑작스럽게 손이 뻗어 나왔다.
“으악!!”
연기 속에서 나타난 장검이 대원 한명을 깔끔하게 베고 지나갔다.
탁한 연기의 메케함과 피의 비릿함이 공간을 채웠다.
“으아아악!”
탕. 탕. 탕.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괴한들을 감싸며 오인사격이 시작되었다. 어떻게든 연기를 피해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된다는 생각에 계단에 있던 대원들이 밀려 넘어졌다.
총을 발포한 대원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쓰러지는 동료를 받아들었다. 그의 가슴에 총상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사격 중지해! 사격 중지하라고!! 대거 뽑아들어!!”
탕. 탕. 탕.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자신의 앞에 무언가 보였다는 느낌만 들어도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게 했다.
(쏘지 말라고!!)
헬라는 한명의 대원을 벤 뒤 옥상의 문 뒤 어둠에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여러 발의 총성이 계속해서 울렸다. 그녀의 유일한 동료는 어둠과 공포였고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또 한 개의 핀이 그녀의 손으로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두 번째 연막탄.
그녀가 바닥에 앉아 천천히 연막탄을 굴렸다. 또르르르 옥상의 바닥을 따라 굴러가던 연막탄이 문을 지나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괴한들의 소란이 심해졌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저 년이 나오지 못하게만 지켜!! 시간이 지나면 연기는 사라진다!!)
대장급의 지휘에 총성이 잦아들었다고 느낀 순간.
한 대원의 눈앞에 장검이 나타났다.
“여기! 크악!”
탕!
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헬라는 그것을 각인시켜갔다. 대원들의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며 작은 접촉에도 크게 반응했다.
(쏘지 마! 쏘지 말라고 이 새끼들아!)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오인사격으로 인해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내려가!! 내려가라고!!)
연기가 퍼지지 않은 아래층으로 괴한들이 밀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상황을 바라보던 헬라가 천천히 연기 속으로 숨어들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수십 개의 총기가 정조준 하고 있었다.
연기가 닿지 않는 어둠 밖으로 그녀가 나타난다면 한 순간에 벌집이 될 것이었다.
언제 그녀가 나타날 것인가.
대원들이 목이 타는지 조준상태로 침을 삼켰다.
괴한이 차고 있던 초시계의 초침이 한 바퀴 돌자 연기가 서서히 걷혔다.
“사격 준비!”
손가락들이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힘을 주기 시작했다.
“......”
연기가 걷히는 타이밍에 총탄을 쏟아 부을 예정이던 괴한들은
예상외인 텅 빈 계단을 바라보게 되었다.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 빨리!!”
로프를 허리에 묶은 헬라가 건물의 1층 벽에 도달했다. 드레스에 허리에 감겨있던 안전장치를 풀며 그녀가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우둑 하는 소리가 들리며 구두의 굽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발목이 크게 휘청이며 그녀의 입에서 신음성이 나왔다.
신발 두 짝이 길거리에 내팽개쳐지며 어느새 그녀는 맨발로 도심을 뛰어갔다. 힐끗 뒤를 돌아본 그녀의 시선은 옥상의 최상층을 향해있었다. 시야가 시멘트벽을 모조리 투시하며 최상층에 있는 괴한들의 모습이 보였다.
‘10분 후 따라 잡힐 거야.’
어두운 거리를 뛰는 그녀가 건물과 건물사이로 들어갔다.
얽히고설킨 미로 같은 곳을 단 한 번의 막힘도 없이 계속해서 달려갔다.
‘택시 승강장에 택시 한 대. 대기 중. 손님 없음’
택시를 타고 바로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그녀의 첫 번째 목표였다.
달리던 그녀의 앞에 막혀진 담벼락이 보였다. 멈추기는커녕 가속을 더한 그녀의 발이 담의 벽돌부분을 두 번 연속으로 밟았다. 그녀의 몸은 어느새 담벼락을 넘었고 눈앞에는 택시 승강장까지 가는 길이 펼쳐져 있었다.
‘더 빨리.’
건물 사이에서 빠져나오자 환한 도시의 불빛이 그녀를 비췄다.
땀이 머릿결에 엉킨 그녀가 헉헉 거리며 다리를 움직였다. 승강장에 서 있던 택시가 점점 시야에서 커지며 어느 순간 그녀는 택시의 문을 잡았다.
‘됐어!’
덜컹 하며 택시의 뒷문이 열리는 감촉을 느끼며 그녀가 소리쳤다.
“당장 출발해주세요!”
택시 기사 아저씨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영업 안 해요.”
“당장 출발해주세요! 이상한 괴한들이..!”
인자한 표정의 택시기사가 놀랍다는 표정을 보이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 화상자국이 보였다. 헬라의 동공이 커졌다. 그가 헬라에게 권총을 겨누며 말했다.
“이건 예상 못했나보지?”
탕.
총알이 택시의 지붕을 꿰뚫었다. 가까스로 도플겡어의 손목을 움켜줘 총구를 바꾼 헬라가 두 번째 총격을 맞지 않으려고 힘을 줬다.
탕. 탕. 탕.
택시의 내부에 바람구멍이 뚫려갔다. 권총의 실린더가 한 바퀴 돌때까지 총 하나를 잡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도플겡어가 손을 놓았다. 반사적으로 헬라가 문을 열고 택시의 밖으로 튀어나갔다. 도플겡어의 손에 들린 단검 한 자루가 보였다.
“그 아이템 좀 버려라 이 년아!”
헬라가 승강장 밖으로 뛰어가며 소리쳤다. 헉. 헉. 거리며 뛰는 그녀의 온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도플겡어가 차문을 박차고 나오며 그녀를 따라왔다. 인섭의 검을 허리에 꼽아놓은 도플겡어가 권총을 뽑아들었다.
지나가던 행인 몇 명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엎드렸다.
조준된 권총은 정확히 헬라를 노리고 있었고 도플겡어의 눈썹이 흔들리며 방아쇠를 쥔 손가락이 움직였다. 뇌관이 작동하며 총구에서 불이 뿜어지며 총알이 쏘아져나갔다. 사격을 예측했던 헬라가 황급히 몸을 앞으로 굴렀지만 그보다 빨리 총알의 궤적이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잡았다.
헬라의 어께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녀가 손으로 어께를 감싸며 짧게 비명 질렀다.
도플겡어 입에 미소가 번져가고,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며 두 번째 발포가 헬라를 노렸다. 이를 악물고 한 번 더 땅을 구른 헬라의 몸을 따라 핏자국이 이어졌다. 그녀가 건물사이의 어둠속으로 숨어들어가려고 할 때. 또 한 번의 총소리가 울러 퍼졌다.
비명소리가 또 한 번 공기를 흔들었다.
뜨거운 통증에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헬라가 가까스로 어둠속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