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2 Episode 2-11 돈의 왕좌. =========================================================================
카메라의 플래시가 연속적으로 하얀 세상을 만들어 냈다.
푸른색 상의를 착용한 간호사들과 의사가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환자 수송 침대를 밀고 들어왔다. 침대가 이동하는 궤적을 따라 붉은 선혈이 계속 이어졌다.
“비키세요! 다들 비켜요!”
드르르륵. 쉼 없이 굴러가는 바퀴 달린 응급 침대의 위에 천으로 덮어진 응급 환자가 보였다. 천의 위로 선홍색 피가 진하게 배어나왔다.
“나오세요! 응급환자입니다! 비켜요!!”
무거운 방송장비를 들은 기자들에 응급침대가 쉽사리 나아가지 못했다.
“비키라고요!!!”
대 저택의 불과 의문의 야산 폭파 사건. 출동한 기자들이 잡아낸 조직의 수많은 불법 무기들까지. 어떻게든 특종을 잡으려는 욕망과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료인들의 사명이 부딪혔다.
간단한 부상으로 치료받고 있던 환자들이 나와 수많은 기자들과 멱살잡이를 하지 않았다면 응급 엘리베이터는 한참 뒤에나 열릴 수 있게 되었을 것이었다.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침대가 이동했던 자리를 따라 바닥에 떨어져 있는 긴 흰색 머리카락들이 사람들의 구둣발에 밟혔다.
***
소극장에서 연일 대 호평을 받고 있는 금발머리의 여성 연주가가 로비에 비치되어있는 티비를 바라보며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야산 전체가 터져나간 폭파사건과 불법조직이 연관되어있고 사건에 연루된 몇 명의 사람들이 병원에 실려 갔으며 경찰이 조직들의 뒤를 쫒고 있다는 속보였다.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지만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에 사람들이 의아한 모습을 지었다.
“별일이 다 있죠? 무서운 세상이에요. 그쵸? 아론양?”
“아...네.”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중얼거렸다.
“이번 방도, 평화적인 녀석들은 없나. 하여간 야만적인 것들 같으니.”
기타의 코팅된 나무 몸체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손톱으로 반복적으로 두드리던 그녀를 향해 공연 관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론씨! 무대 세팅 끝났습니다! 들어오세요!”
“네!”
미적지근하게 일어서며 그녀가 손으로 엉덩이의 먼지를 털었다.
‘꼴등들은 어차피 정해진 것 같고, 나는 도망만 다니면 되려나?’
***
주식 상황판과 뉴스를 동시에 보던 정장을 입은 사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쯧. 하고 혀를 찬 그가 진한 커피향이 코로 훑으며 커피로 목을 축였다.
“능력자 3명이상은 맞짱 뜬 거 같은데. 중환자실로 이송된 녀석들 중에 플레이어가 있으면.. 그녀석이 이 게임의 최하위겠군.”
돈을 모으는데 남은 시간은 2주. 재수 없어서 게임이 끝날 때 까지 혼수상태에 빠져 있기라도 한다면 소독약 냄새만 맡다가 2주가 지난 후 꿈속에서 사망하게 될 것이었다.
“치료비는 또 어떻게 할 거여.”
응급실의 문부터 피가 이어져 있는 것을 보아. 사경을 헤맬 정도로 싸운 것일텐데. 이 나라 국민도 아닌 플레이어들이라면 부상정도에 따라 재수 없으면 억대의 치료비까지 지불해야 될 상황이 나올 수 있을 것이었다.
“뭐, 나야 중, 상위권만 유지하다가 방에서 탈출하면 되겠구만, 잠적할 준비나 해야겠어.”
그는 이번 게임의 룰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최하위자 두 명은 수명 -2000년.
“미라 두 구가 생기겠군.”
***
헬라는 걸레짝이 되어버린 자신의 검은색 드레스를 보며 한숨을 지었다. 딱딱한 방바닥 위에 찢어진 드레스를 이리저리 움직여 봤지만 도저히 복구 불가능인 상태였다.
“아, 비싼 건데.”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그녀의 시선이 옆에 죽은 듯이 자고 있는 남호를 향했다. 그는 평소와 다르게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불길함이 헬라의 몸을 감쌌다.
그녀가 신경질 부리며 동전을 집어 남호의 몸 위에 던졌다.
“도움 안 되는 바보 덩치.”
투덜거린 그녀가 자신의 이마에 손을 댔다. 고열이 손으로 전달되었다. 남은 시간은 2주. 남호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녀가 그의 돈 까지 모아야 할 판이었다.
그녀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어떤 생각이 계속해서 그녀를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남호와 자신.
두 명 다 최하위를 피할 수 있는가?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쁜 생각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속삭였다.
'피할 수 있잖아, 왜 그래?'
도플겡어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고, 병원으로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두 명의 플레이어가 이송되었다.
‘그래. 최하위를 피하는 방법은 모르지만...’
찢어진 검은 드레스 자락을 손으로 잡아 감촉을 느끼며 나쁜 생각에 이끌리는 그녀였다.
‘최하위 두 명을 만드는 방법은... 생겼어.’
게임의 룰을 반대로 적용시키면 된다.
자신들이 돈을 버는게 아니라.
최하위 두 명을 절대 돈을 벌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게 된다면
남호와 자신이 돈을 벌지 않아도
최하위를 피할 수 있었다.
"......"
방법은 간단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두 플레이어를 습격하여 2 주 후까지. 혼수상태로 만들거나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회복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이면 충분.
2주가 지날 때까지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수명 패널티를 먹고 회색방의 시스템에 의해 사라진다.
‘......’
악마가 그녀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계속해서 속삭이는 느낌이 들었다.
‘한명만 버리면 돼. 그러면 이 방에서도 확실히 살아 나갈 수 있다고. 별로 어려운 일 아니잖아?’
"하아..."
헬라는 미동도 하지 않는 남호의 몸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책임감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녀를 짓눌렀다.
‘내가 미적지근하게 움직이다가 두 명이 부상에서 회복되고 남호가 죽는 상황이 오면?’
먹구름 낀 하늘이 천둥소리를 내며 불길하게 울었다.
그녀의 시선이 창밖의 먹구름을 따라갔다.
"회색방......"
한동안 멍하니 먹구름을 바라보던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벤토리 오픈.”
긴 검이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손잡이의 익숙한 감각을 느끼며 허공에 검의 궤적을 몇 번 만든 그녀가 쓰러져 있는 남호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잠시 나갔다 올게요.”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낡은 문이 열렸다.
그녀가 문을 열고 나오자 마루에 앉아 불안한 듯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세나의 모습이 보였다.
"세나양."
헬라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는 세나였다.
"우비 어디서 팔죠?"
"네? 우산이라면 저쪽에 있는데요."
잠시 시선을 피하던 헬라가 먹구름을 바라봤다.
비구름이 조금씩 다른곳으로 이동해 가고 있었다.
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칠 것이었다.
헬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요, 우비가 필요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