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0 Episode 2-11 돈의 왕좌. =========================================================================
인섭이 있는 감옥을 바라보며 고아라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사람 잘못 보셨는데요.”
지지 않겠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녀의 입술이 잘게 떨리며 공포감이 있음을 말해주었다. 인섭의 눈빛이 철창을 지나 고아라의 얼굴에 머물렀다.
“크윽...”
인섭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마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당장에라도 수술실로 가야 할 부상이었지만 그가 치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시선은 고아라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니군.”
인섭의 말투가 다시 차갑게 변했다. 그러나 말거나 고아라는 다시 옷을 이어서 만든 줄을 던졌다. 텅. 텅. 허망한 소리가 감옥 안을 맴돌았다.
한동안 이어진 소득 없는 던지기 행위가 틱.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물어왔다.
“됐다!”
옷가지에 걸려온 작은 쇳덩이. 힘겹게 옷가지를 회수하고는 속옷차림의 몸을 가리며 눈높이 까지 들어올렸다. 그녀의 눈썹이 꿈틀댔다.
“이건..”
그 물건의 정체에 대해 그녀보다 인섭이 먼저 말을 꺼냈다.
“수류탄이다.”
“......”
잠시 수류탄을 바라보던 고아라가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핀 뽑으면 바로 터지는 건가요?”
“......”
“대충 문 쪽에 던지면...”
“감옥 안에서 던지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
“......”
고아라가 수류탄을 내려놓고 다시 옷가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
공터의 진흙탕에 연속적으로 빠르게 칸나의 발자국이 찍혔다. 저택에 동료들이 있을 거라는 헬라의 제보에 최대한 빠르게 발을 움직여 보았지만, 빗줄기 사이로 보이는 저택은 번개가 떨어지는 순간에 달린다고 해서 도달 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도플겡어가 들고 있는 수화기에서 저격수의 음성이 다급하게 흘러나왔다.
(목표물! 찾았습니다! 저택을 향해 쇄도 중.)
수화기를 든 그녀의 입에서 미소가 지어졌다.
‘걸려들었군요.’
“전체 폭파 시키세요! 지금 당장!”
“예!”
저택의 뒤쪽까지 이어져있는 수백의 도화선들이 동시에 반응하며 공터의 바닥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 폭약들이 칸나가 있는 공간을 집어삼켰다. 폭약들은 같이 심어져 있던 지뢰들을 연쇄적으로 터뜨렸고 수백평방미터에 이르던 진흙바닥이 터져나갔다.
칸나는 저택을 향해 달리다 발목 쪽에 불길한 느낌을 받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폭약과 함께 묻혀있던 크레모어들이 문제였다. 그녀의 작은 몸 위로 수백천개의 구슬파편들이 박혀 들어갔다.
칸나는 몸을 최대한 웅크리며 팔을 십자로 들어 올려 맞는 면적을 최소화했다. 폭발에 휩싸이는 순간, 크윽. 하고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곧이어 화염의 폭풍이 그녀를 뒤덮었다.
공터 전체에 화약연기와 수증기가 진동했다.
연기가 걷히고, 한손을 땅에 짚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칸나의 모습이 천천히 드러났다. 붉은 피가 그녀의 온몸에서 흘러내렸다.
‘배고파...’
칸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입 안의 혀도 피의 비린 맛에 잠겨버렸다. 그녀는 세상이 울렁인다고 느꼈다.
‘시현이 없어서 작전이...’
그녀의 두 무릎이 힘없이 쓰러지며 땅에 닿았다. 곧이어 수많은 빨간 점들이 이마에 모여들었다. 저격수들이 그녀를 발견한 것이었다.
“목표물, 침묵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도플겡어가 쌍안경을 통해 칸나를 바라봤다. 동시에 칸나가 고개를 들어 올려 그녀와 눈을 맞췄다. 섬뜩한 느낌이 도플겡어의 등골을 찌릿하게 자극했다.
“아직 입니다. 저격하세요.”
수십대의 저격 총이 저택옥상에서 불을 뿜었다. 수십 개의 금속 탄환이 빗속을 뚫고 칸나의 이마를 노렸다. 글러브를 낀 손이 이마를 막았지만 탄환이 그녀의 손을 뚫고 지나가며 피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그녀 아래 진흙탕이 붉은색이 되어 흘러내렸다.
‘배고파......’
칸나의 눈이 저택 위를 살폈다.
두 번째 사격이 날아온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온몸에 피부가 찢어지는 통증이 느껴졌다. 칸나는 결국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흙탕물 바닥에 얼굴을 박으며 쓰러졌다.
‘부하들을 구하러 가야해.’
그녀의 바람과 달리 몸은 웅덩이에 파묻혀 움직이지 않았다. 냉정한 빗줄기만이 그녀의 몸을 때리고 있을 뿐이었다.
(목표물, 완전 침묵.)
저격수의 무전에 도플겡어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정면으로는 붙고 싶지 않은 여자군요.”
그 말을 마치고 작게 웃음 짓는 그녀였다.
“이제부터는 제가 당신 대신 칸나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죠.”
소파에 기대자 그녀의 긴장감이 풀려왔다. 비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하늘도 꽤 좋은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목표물 이상 징후 발견!)
알 수 없는 무전에 그녀가 벌떡 일어서서 쌍안경을 집어 들었다.
칸나는 환각을 보고 있었다.
밀림이 가득한 아케넨 행성. 왕의 자리를 놓고 빗속에서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었다. 상대는 아케넨의 왕이었고. 그녀는 도전자이자 복수자였다.
왕이 그녀의 부모님을 죽이는 순간을, 수 없는 세월동안 단 한번이라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모든 힘은 지금 이 한 순간만을 위해서 키워 온 것이었다.
“겨우 이 정도냐 꼬마야. 파논이란 녀석은 너에게 길을 터주고 죽었을 테인데, 쓸데없는 개죽음이었군.”
칸나의 눈동자가 상대를 꿰뚫었다.
부모님을 죽이고 차갑게 웃던 아케넨의 왕의 기억이 지금 그녀를 조롱하는 모습과 겹쳐보였다.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리겠어.”
칸나의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미..미친...괴물입니다!)
“저격해! 저격하라고!”
거대한 은색의 괴수가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단 한 순간 에너지를 짜내어 괴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까마득하게 높은 위치로 뛰어오른 칸나의 변신은 이미 풀려있었다. 힘없는 핏덩어리 하나가 공중에 떠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녀가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인벤토리 오픈.”
거대한 은빛 창이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난 아케넨의 제왕 칸나. 어떤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아.”
도플겡어의 팔찌에서 시스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띠링-
[XA21333 지역에서 투창 기가스톰 개방 중. 번개 에너지 충전. 카운트다운 시작. 10%, 30%, 70%, 100%]
도플겡어가 팔찌의 음성을 들으며 수화기를 떨어뜨렸다.
“뭐..뭐야 이거... S급 아이템?”
[투창 기가스톰 에너지 충전율 100%, 임계점 돌파. 전격이 창의 내구도를 능가하고 있습니다. 번개폭풍에 주의하십시오.]
피칠을 한 채 허공에 떠있는 칸나의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투창 기가스톰, 개방(開放).”
그리고 다음 순간. 지상으로 은색 섬광이 쏘아지며 벼락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