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3 Episode 2-11 돈의 왕좌. =========================================================================
연장을 든 사내 한명이 탁자위에 시체와 함께 너부러져 있는 유리컵 하나를 집어 들었다.
“웬 개 같은 년이야!”
둥그런 유리컵은 회전하며 칸나에게 쏘아져 나갔다. 유리파편이 깨진다면 고운 얼굴에도 많은 상처가 날 것이고 그것이 사내의 노림수였다.
탁.
세상이 원하는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짓말처럼 유리컵은 여자의 손에 잡혀있었다. 피가 진득하게 묻어서 미끈거리는 잔. 동시에 칸나가 어깨를 털었다. 유리컵이 던져졌다고 생각한 순간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덩치한명이 얼굴을 감싸 쥐고 쓰러졌다.
“이 미치...”
섬광.
컵은 던진 칸나는 이미 덩치한명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덩치가 양손을 십자로 들어 올려 칸나의 공격을 방어하려했다. 빠른 속도였지만 몇 년간 운동을 해온 그였다. 펀치를 막고 여자를 잡아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친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정도 쯤이야.’
쏘아져오는 흰색의 유성.
‘막았..’
방어했다고 생각했다.
쿵!
칸나의 공격을 방어한 사내가 그대로 날아가 검은 대리석 기둥에 처박혔다. 흔들리는 기둥의 진동에 뱀 꼬리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날아가는 덩치를 보며 돌 머리의 입가에 웃음이 감돌았다. 뱀 꼬리의 어깨에 소름이 돋아갔다. 분위기는 점점 더 이상해졌다.. 퍽.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주점 내부의 등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뱀 꼬리가 본능적으로 입술을 핥았다. 먼 곳에서부터 비명소리와 함께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텅.
누군가가 차단기 스위치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주점 안은 암흑으로 변해버렸다. 왼쪽, 아니 오른쪽? 뱀 꼬리는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온 몸이 굳어버렸다. 복도의 끝. 비명소리와 함께 뱀 꼬리는 붉은 눈동자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미..미친 새끼.. 뭐... 뭘 부른 거냐?!”
뱀 꼬리가 자신의 주변으로 부하들을 불러 모으며 소리쳤다. 음산한 독사의 목소리가 뱀꼬리의 피부를 타고 기어 올라왔다.
“악마와 계약을 했지.”
살려달라는 애원의 비명소리가 잦아들었다.
“..상대는 한명이라고 이 새끼들아!! 가서 족쳐!!”
악이 오른 뱀 꼬리의 목소리에도 움직이는 조직원은 없었다. 자신을 바라봤던 붉은 눈.
‘부..분명 날 죽이러 온다.’
분노도, 증오도, 그 어떠한 감정도 담겨있지 않던 여자의 붉은 눈. 그것은 마치 오늘 먹을 사냥감의 목을 따는 무심한 맹수의 느낌이었다.
‘시..시발.’
꿀꺽. 비린 침이 뱀 꼬리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피의 맛과 공포감이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 긴장감에 자신도 모르게 입 안쪽을 깨물었던 것이다.
끼익. 끼익.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죽을 것 같았다. 적막 속에서 뱀 꼬리의 머리위에 매달려있는 상들리에만이 움직이며 소리를 냈다.
끼익. 끼익.
‘어..어디냐.’
뱀 꼬리는 어두운 실내를 훑었다.
끼익. 끼익.
기분 나쁜 소리만이 어둠을 흔들었다.
‘자..잠깐.’
척추 끝에서부터 찌릿하고 소름이 돋아 올라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위를 올려다보았다. 흰색의 머리카락이 그의 이마에 닿아있었다. 붉은 눈의 괴물. 그녀가 거꾸로 매달려 자신의 머리위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으아아악!!!!!!”
“형님!!”
뱀 꼬리의 몸이 허공으로 끌어올려졌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 비처럼 흘러내리는 피의 소리. 언어중추를 이미 상실한 듯 한 고깃덩어리의 비명소리.
제발 이 악몽이 빨리 끝나기를.
제발 이 악몽이 빨리 끝나기를.
누군가가 울먹이며 읊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어둠속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그 소리마저
어디론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