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3 대가(代價) =========================================================================
시현은 헬사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왜 그래요?”
그녀의 천진난만한 웃음에 시현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냥..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누군가가 시현에게 말을 걸어왔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냐고. 네가 스스로 영웅이라고 생각 하냐고. 너는 살인자에 불과하다고 그것도 악질적인 살인자.
“괜찮아요?”
헬사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시현의 손을 잡았다. 반사적으로 시현은 그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그가 손을 움직일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녀와 손이 포개졌지만 말이다.
“걱정 말아요. 다 잘 될 거예요.”
그렇다. 다 잘 될 것이었다. 그녀를 속여서 몸을 회복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지내다가 나와 헤어진 그녀는 진실을 알게 될 것이었다. 다 잘 될 것이었다. 적어도 시현에게만. 그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위로를 받아야 할 것은 시현이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지금은 단서를.. 아니..”
“네?”
단서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려던 시현이 입을 다물었다. 그가 해야 할 것은 어떻게든 범인을 찾지 않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찌되었던 그는 이 방을 벗어나는 순간 죽는다. 다른 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자신이 없었다.
“......”
다른 사람들이 범인을 찾지 못하게 하거나, 자신이 먼저 범인을 찾은 후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것이 그가 살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는 혼자였다.
스스로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이고
어떤 사람이든 원한다면 그를 죽일 수 있었다.
시현은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살아서 다시 멤버들을 만나야 했다.
‘어떻게 해야...’
시현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죄수들과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오는 나이아와 노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시현의 앞에 서서는 말했다.
“이봐요 시현. 당신 말대로 시간이 돌아간 것이라면 죄수들에 대한 취조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그들에게 열쇠는 뺏어 두었으니...”
감시를 부탁한다는 나이아의 말.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저도 할 수 있겠군요. 혹시 단서를 찾으면 저에게도 귀띔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이아씨.”
그녀가 알았다고 말하고는 딸랑 하며 학원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헬사도 학원의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고마워요. 오빠. 당신이 아니었으면 시간이 돌아갔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에요.”
시현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자격이 없었다.
째깍. 째깍.
학원 문 틈 사이로.
작은 시계소리가 들려왔다.
시현은 두려움과 죄책감의 파도에 떠밀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악령들이 나타나 그의 몸을 휘감을 것 같았다.
그는 지옥의 염라대왕 앞에 가서 무릎을 꿇린 채 심판을 기다릴 것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뜨거운 유황이 펄펄 끓는 지옥의 바다로 떨어질 것이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말이다.
“자네 꼴도 말이 아니군.”
누군가의 말에 의해 시현이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감옥에 갇혀있던 원장이 누워있는 시현을 향해 말을 건넸던 것이다.
"차라리 우리처럼 감옥에 있는 것이 자네보다는 낫겠군."
그들은 감옥에 갇혀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지만. 시현은 감옥이 아닌 어디에 있던 움직이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차가운 금속 바닥의 냉기가 시현의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
대답이 없는 시현을 향해 원장이 물었다.
“이봐, 우리는.. 누구지?”
기억을 잃은, 조작을 당한 사람들.
"......"
그들이 누구일지는 시현도 몰랐다. 문득 어떠한 생각이 떠올랐다. 사실 자신이 만났던 모든 npc 들 중 몇 명은 어쩌면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당신들은..."
시현은 그들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천사가 쳐들어왔다는 것과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돕거나 서로를 죽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당신들도 살아남은 그들 중 한명일 것이라고 말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이군.”
평소의 시현이라면 몇 가지 이야기와 조언을 덧붙였겠지만 그는 이미 평정심을 잃은 상태였다. 헬사가 미소 짓던 모습이 눈앞에서 계속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
과거 그는,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죽음의 위기에서도 수 없이 벗어나고
힘을 합치고.
사라드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결과가 되어버린 것일까.
“고민이 있어 보이는구먼.”
다른 죄수들과 달리, 원장은 시현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마치. 학원의 학생을 대하는 듯한 말투였다.
“별...거 아닙니다. 그냥... 열심히 했는데도 일이 잘 안 풀리는군요.”
“살다보면 그런 일이 있지.”
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위로를 건넸다. 마치 과거에 수많은 위로를 건넸던 사람처럼 말이다.
“살다보면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어.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는 그나마 덜 하지만. 불합리한 이유로 잘 되지 않거나, 남들보다 노력을 더 많이 했음에도 잘 되지 않을 때. 많은 좌절을 느끼지.”
“잘 아시는 것처럼 이야기 하시는군요.”
그의 너무나도 편안한 어투 때문일까. 시현은 그와 대화를 해보고 싶다고 느꼈다. 천천히 시현의 마음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는 적어도... 불공평하지 않은 게임을 하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서로 웃을 수 있는 그런 게임을요.. 하지만 그게 잘 안되네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는 정말이지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햄버거 하나를 들고. 회색방의 수 없는 시련을 뛰어넘어 이곳까지 왔다. 그럼에도 그에게 남은 것이란 살인자라는 죄책감 밖에 없었다.
“이보게.”
“...네?”
원장이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세상이 어느 정도는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구먼.”
“......”
당연한 마음이었다. 적어도 공정한 게임을 했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장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자네의 말 대로 나는 기억을 잃었을 지도 모르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해주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신이 생명체를 위해서 세상을 창조했다. 라는 사실은 거짓일세.”
세상은 사람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시현의 가라앉은 마음이 그의 말이 귀를 기울였다.
“지구에서 인류가 탄생하기 까지. 수많은 생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졌지. 인류도 그 종들 중 하나일 뿐일 세. 그런데 말이야. 여태까지 지구에서 멸종한 생물들이 얼마나 되는 줄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멸종. 그것은 어째서 일어나는 것인가.
원장이 한숨을 나지막하게 쉬고는 말했다.
“멸종한 종이.. 99% 일세.”
“네?”
“신이 생명체를 만들었다고 하고, 그들에게 살아갈 땅을 주었다고 한다면 그 결과는 너무나도 잔혹해. 여태까지 나타난 생명체 중 99% 가 인류가 탄생하기 전에 멸종했다네.”
신이 생명체를 위해 우주를 만들었다면. 어째서 그 많은 종들이 멸망해 갔는가?
“......”
“지구만 그 증거가 아니야. 우주를 생각해보게. 우주의 거의 모든 부분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네. 당장 지구를 벗어나기만 해도 우주공간에서 사람은 몇 분 버틸 수 없지. 과연 정말로 신이 인류를 위해 우주를 만들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보네. 오히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맞춰 진화해 왔다고 봐야겠지.”
시현의 그에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원장의 걱정 말라는 어조의 말이 이어졌다.
“공평하지 않다고, 주변이 우호적이지 않다고 고민하지 말게나. 세상은 우리에게 호의적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네... 지금도 그리고 과거에도 다만...”
“......”
“우리는 수없이 많은 죽음의 환경을 지나왔지. 바로 우리의 힘으로 말일세. 그러니.. 자네도 힘을 내게. 살아남은 1%의 후손이니 말일세. 자네의 유전자속에는 이미 세상을 바꾸어 갈 힘이 있으니까 말일세.”
알기 힘든 이야기였다.
우리가 여태까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이유는, 환경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졌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환경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
그저 시현을 포섭하기 위해 한 이야기 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는 시현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주었다.
“......”
“미안하군. 별로 도움이 안 되었다면...”
"아닙니다.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갑작스럽게. 시현이 원장에게 말했다.
“당신들에게도 게임이 끝날 때 선택권이 있을 것입니다.”
잠깐의 변덕.
시현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 채. 그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로 했다.
“죄수 분들이 4명이므로, 투표권에서 우리와 같은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실을 토대로 나이아를 상대로 협상을 진행하시면... 길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자네...”
시현은 말하지 말아야 할 사실을 그에게 전해주었다.
죄수들을 포섭하기 위해 시현이 아껴두었던 패를, 생각의 정리도 없이 그냥 건네준 것이다.
원장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시현에게 조언을 해 주려던 것.
그것이 시현의 마음을 울렸다.
( 세상은 우리에게 호의적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네... 지금도 그리고 과거에도. )
원장의 말이 맞았다.
시현의 마음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주변의 사람들만을 구하려 했던 것이 문제였다.
환경이 우리를 비극으로 떨어뜨린다면, 환경 자체를 깨부순다.
주변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던 그.
‘회색방에 있는 모든 인류를 구한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일개 인간 주제에.
신을 향해 도전하려고 하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생각이었다.
회색 방 전체의 운명을 바꿀.
그의 생각이 시작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음유시인뮤즈
그러나 시현이 살인범이 아니라고 저는 배팅을...ㅎㅎ 그나저나 얄궂네요ㅜㅜ
/저도 이제 뭐가 뭔지[...] 범인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ㅠ
진노을
정말 재미있어요♡
/감사합니다!
퀸터♠
그렇게 진실이 밝혀지게되고 헬사는 플레이어를 포기하고 헌터가되어서 상대편으로...?
/헬사가 사실을 알게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루이레아
아직은 모르나본데 알게되면 ㅠㅠ 신데렐라폼은 모르겠지만 시현이 신데렐라일 때죽이고 싶어할것같아요 모르고 있다가 알게되겠지…
/헬사의 능력이라면.. 어떠한 능력자와도 상성이 될 수 있습니다..
루미젤
흠 리셋이라 과연어디까지 리셋할까요 ㄷㄷㄷ 잘보고갑니다~~!
/리셋의 끝은 어디인가.. 시현과 함께 떠나보시죠.
메일스트롬
캬... 볼때마다 반전...
대탈출은 짐직을 안하고 봐야할듯
/시현은 헬사에게 죽는 것일까요.
유조아。
EEE화 ㅊㅋ.
/감사합니다 .그러고보니 222화군요!
벌레
시현 마수를 어디까지 ㄷㄷㄷㄷㄷ
근데 고자를넘어 ts됏지 좋아 백합으로 가려무나
/[.....] 본격 주인공의 정체성이 의심되는 소설
이거2번쨰아이디
시현을 회복시켜주는 힐링은 칸나쨩...
/시현은 칸나 없었으면 멘탈이.. 붕괴되었을지도요
타카르튼
제대로통수 ㄷㄷ
/시현아 ㅠㅠ
shenz
대탈출에서 운명이란 참.. 복잡하군요.
/영웅과 살인자의 차이란......
-마치며.
오늘도 연참을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