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6 대가(代價) =========================================================================
시현이 천장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완전 무방비입니다. 당신들이 손하나 까딱하면 바로 죽게 될 거에요. 동전 하나 남기고요.”
“......”
“햄버거는 어떻던가요.”
“상당히 괜찮은 아이템이더군요.”
나이아가 솔직하게 자신의 감상을 말했다. 회색방에서 중요한 것들 중에는 식량과 초능력이 있는데. 햄버거는 그 두 가지 모두와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햄버거는 아이템은 아니고.. 제 능력입니다. 하루에 몇 개씩 만들 수 있죠.”
“...네?”
사용자의 능력을 영구적으로 올려주는 음식이라니 그런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루에 15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12시가 넘어야 게임이 끝날 테니.. 저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게임이 끝나기 전에 햄버거 5개씩을 더 드리겠습니다. 지금 5개씩 드리고요.”
“이봐요.. 당신.. 우리는 당신을 죽일 생각이 없어요.”
“시현입니다. 나이아씨는 아닐지라도.. 노드 씨는 ..그렇죠?”
시현의 말에 노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어이.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나는 헌터가 아니라 키퍼(keeper)야.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고.”
의외라는 듯이 나이아가 노드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키퍼라고요?”
“...왜? 안 어울리나? 나는 사는 데에만 집중한다고.”
keeper? 시현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띄워졌다.
“저도 키퍼인지라.. 당신의 말이 의심스럽군요.”
“어허 왜이래. 이래 뵈도 헌터처럼 막 죽이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너네들이 반대하니까 저 친구 안 죽인 거 생각해봐.”
“...나중에 죽이려고 했던 것 아닙니까?”
투닥대는 나이아와 노드의 뒤로 시현의 질문이 날아왔다.
“저 죄송한데..”
“응? 왜 그러나 장애인 친구.”
이름을 알려줬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으로 굳어져버린 시현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키퍼가 뭡니까?”
골키퍼? 막는 사람? 헌터라도 막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시현을 향해 나이아가 입을 열었다.
“...회색방에 온지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나 보군요.”
“아..네. 다른 분들은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한 달 좀 넘었네요.”
“...멀었군.”
“후우.. 뭐. 키퍼라는 게 대단한 건 아니고.. 보통 회색 방에 모든 유저들을 ‘플레이어‘라고 부르잖습니까.”
“네.”
회색방에서 가장 먼저 들은 명칭. 당신은 플레이어입니다. 또는 플레이어가 승리하였습니다. 그런 시스템 음성이 들려오고는 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알고 있었다.
“플레이어 중에는 여러 가지 성향이 있는데, 헌터처럼 극단적으로 상대방을 죽여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타입이 있고..”
“..음..”
“keeper 란 ‘유지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유지하는 사람이요?”
“네,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회색방에서의 탈출을 포기한 채. 생존에만 신경 쓰는 사람들입니다.”
“...무슨 차이가 있죠?”
생존은 당연히 신경 써야 하는 것. 그런데 생존을 신경 쓴다고 키퍼?
“아. 플레이어중 생존에만 신경 쓰는 키퍼들은 승리조건에 달성했다고 해도 가능하면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지 않고 계속해서 승리를 미루는 유저들을 말합니다.”
승리를 하지 않고 계속해서 미룬다..?
시현의 머릿속에 칸나의 행동이 생각났다. 칸나는 진작 스테이지 클리어 조건을 이끌어 냈지만 양쪽의 합의로 인하여 일부러 클리어를 유보한 채 죽치고 앉아 있던 것이다.
‘스테이지의 허점을 노려서 계속해서 버티는 자들이군...’
“이해를 하신 것 같군요.”
“...키퍼 말고 다른 자들도 있습니까?”
“아, 물론요. 가칭과 정식명칭이긴 하지만 보통 키퍼나 세이비어(saviour), 그리고 이스케이퍼(escaper)가 있습니다.”
시현은 자신이 아직 회색 방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음을 직감했다.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고 자부했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던 것이다.
“세이비어는 보통. 플레이어들을 도와주거나 구원하는 일을 합니다. 선생님의 일을 하거나 헌터들이 난입 간 방을 방어하러 가는 식이죠.”
“아..”
선생님이란 이야기를 하자마자 시현의 머릿속에 셰네브가 생각났다. 그녀는 자신의 일을 알려주기는 힘들다고 했지만 플레이어들을 도와주며 실제로 시현일행의 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주었던 것이다.
“이스케이퍼는.. 말 그대로. 회색방을 탈출하려고 하는 자들이죠. 가장 숫자가 적고.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목숨을 걸고 방들을 뛰어넘는 자들이니까요. 당신은 어떤 타입이죠?”
나이아의 질문에 시현이 약간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이스케이퍼(escaper)와 키퍼(keeper)의 중간 같네요.”
“그 외에 여러 타입의 플레이어가 있습니다만. 사람의 특성에 따라 행동방식이 다르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곳에 떨어지면 뒤에 사람을 걱정하는 사람도, 살기위해 어딘가에 숨어버리는 사람도, 목숨을 걸고 탐험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납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현에게 노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그런고로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오래 살고 싶은 것이지 굳이 누굴 죽이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당신은 믿을 수 없어요.”
“이 여자가..”
서로를 향해 으르렁 거리는 남녀를 보며 시현이 크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지금.. 싸우는 것 보다 범인 찾는 게 우선 아닐까요.”
“아아. 맞다 범인 찾아야지.”
노드와 나이아가 서로를 못 잡아서 안달인 눈빛을 쏘아대며 헤어졌다. 노드는 원장의 방으로 나이아는 복도로 나간 것이다.
“잘 해보시죠. 자칭 키퍼님.”
“진짜라니까. 등산 키퍼님?”
노드가 사라지곤 난 뒤. 숨을 푹 쉰 나이아가 복도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옵니다.)
-끼익.
문이 열리고 나이아가 문의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순간. 양 옆에서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사람들의 손이 보였다. 갑작스러운 기습 공격에 그녀의 반응이 늦었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그녀가 몇 개의 손을 기묘하게 쳐냈다. 여선생과 학생들의 놀라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남은 손은 하나. 원장의 손이었다. 흥. 하고 나이아가 원장의 손을 잡아갔다. 그녀의 초능력은 텔레파시이지만 실제로는 체술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순식간에 그녀의 손이 원장의 팔을 쳐내고는 자신의 팔꿈치를 휘둘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남학생이 어깨를 감싸 쥐며 뒹굴었다. 동시에 그녀가 다른쪽 팔꿈치를 휘둘렀다. 가까운 거리에서도 살상력을 발휘하는 팔꿈치 공격. 그녀의 무술실력이 이정도일 줄은 죄수들이 알 리가 없었던 것이다.
‘받아라!’
휘둘러지는 팔꿈치 공격의 목표점은 원장의 턱이었다. 그녀는 온몸의 회전력을 실어 그의 턱을 가격했다.
퍽. 이라는 소리를 기대했던 그녀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원장이 그녀의 팔꿈치를 잡고 공격을 흘린 것이다. 동시에 그녀가 공격했던 힘을 역이용한 원장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퍽.
가까스로 안면이 아닌 어깨로 막는 것에 성공한 나이아는 문을 뒤로 밀치고는 두 발자국 정도 뒤로 물러나 있었다.
“...태극권?”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상대방의 공격을 흘리고 역이용하여 상대를 쓰러트리는 권법. 실전에서 사용이 극히 힘들다는 태극권을 원장이라는 자가 쓰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이아가 원장을 힐끗 보고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태극권을 사용한 당사자인 원장도 자신의 손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이게?”
흥. 연기라고 생각한 나이아가 그에게 디딤 발을 뻗으며 강력한 오른발 로우킥을 날렸다. 원장의 두 발이 그녀의 킥력에 쓸려가며 그의 몸이 허공에 떴다.
로우킥 후 자세를 되돌리는 그녀의 눈에 허공에서 제비를 도는 원장의 모습이 보였다. 공중에서 뒤집어진 상태에서 양 손을 땅에 닿게 해 덤블링 식으로 착지를 하는 원장. 그의 두 발은 어느새 땅에 닿아 있었다.
‘...저 낙법은..’
로우킥을 차는 순간 그녀는 제대로 맞았다는 감각이 없음을 알았다. 마치 물에 발길질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태극권... 상급 수련자?”
어떤 방향에서 공격하던 흘려보낸다. 나이아가 긴장어린 표정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자..잠시만.”
그러나 원장은 오히려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뭡니까.”
“...자..잠시.”
그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 순간. 나이아가 인벤토리에서 총을 꺼내들었다.
“체크 메이트입니다.”
“..자..잠시만 기다리게.”
“아..잠깐만요.”
원장을 제외한 3명의 죄수가 양손을 허공으로 들고는 나이아를 바라보았다. 반면에 원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내가 한 것이 태극권이 맞는가?”
자신의 행동을 물어보는 원장을 보며 나이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적어도 한 40년은 수련한 것 같아 보이는데요. 장난하시나요?”
“아..아닐세..난..”
철컥. 나이아가 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원장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나..나는 살아생전 무술을 연마한 적이 없네.”
“...뭐요?”
나이아의 미간이 좁아졌다.
============================ 작품 후기 ============================
-작가의 말.
은발의괴도 노블전부터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중도하차하는 일 없이 계속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shenz 죄수들이 탈출하면 시현이 위험해 지겠군요. 그리고 프롤로그가 좀 바뀐거 같네요.
/죄수들에게도 시현은 좋은 먹있감이 겠네요. 프롤로그는 시현의 시점으로 바뀌었습니다..[..]
퀸터♠ 내 햄버거의 명예를 걸고 범인을맞추겠다! ㅋㅋㅋㅋ
/김전일과 시현의 공통점은.. 자신의 명예는 걸지 않는다는것..?
루이레아 열쇠도 누가 넣어준것 같은데 기분탓일까요
/열쇠가 그 분의 주머니에 왜 있는것일까요..? 훔..
루미젤 잘보고갑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ㅎ
음유시인뮤즈 장애인 오빠 어쩔ㅜㅜㅋㅋ
/본격.. 장애인 오빠가 주인공인 소설 .. 대탈출.ㄷ
-마치며.
4인조 죄수의 습격에 강력한 무술실력을 발휘하는 나이아.
그런 그녀의 공격을 모두 흘려내는 원장.
하지만 그는 자신이 태극권을 수련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대탈출 217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