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탈출-179화 (179/373)

00179  Episode 2-7 혼란  =========================================================================

중년남자가 담배를 한 모금 들이켰다. 어느 곳을 먼저 갈 것인가. 잠시 생각을 하던 그가 웃으며 말했다.

“뭐, 오늘은 능력도 다 썼고 일단은 쉬자고.”

그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내일은, 어떤 쪽으로 향하시겠습니까?”

에스퍼의 물음에,

중년인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싸늘한 웃음을 한 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대천사.”

“알겠습니다. 준비해놓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려는 에스퍼를 보며 그가 기다리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워~ 워~ 인생 바쁠거 뭐 있어. 차나 한 잔 하러 가자고.”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 남성을 보며 에스퍼가 고개를 끄덕였다.

***

파란색 천이 처져 있는 곳에서, 금발머리의 여성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프린세스 디펜더의 촬영장.

정신없이 신데랄라의 모습을 바라보던 감독이 허공에 소리쳤다.

“컷!”

움직임을 멈추는 시현. 대부분이 CG로 이루어진 마법소녀물이었기 때문에, 단색의 배경으로 촬영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으로 감독이 카메라를 잡고 있는 사람에게 소리쳤다.

“아 참! 김씨아저씨!! 카메라멘이 자꾸 주인공의 움직임을 놓치면 어쩌자는거야!!”

감독의 말에, 김씨아저씨라고 불린 사람이 미안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예쁜배우님이라.. 저도 모르게 자꾸 빠져들어서..”

촬영을 하는 스텝들조차 빨아들이는 천상의 외모. 그의 말을 들은 감독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집중해! 집중! 자, 자. 다시 한번 갑니다!”

감독 그 자신도 종종 멍하니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였으니, 가까이에 있는 스텝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자신의 뺨을 찰싹찰싹 때린 카메라 감독이, 카메라를 움직여 신데렐라의 모습을 담았다. 감독이 다시 한번 스텝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모두 집중해서!! 액션!”

촬영은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지친 시현의 표정을 보며 감독이 미안하다는 듯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예쁘신.. 뭐라고 불러야되죠?”

금발머리의 여인이 감독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후광이 비치는 그 모습에 주변사람들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음.. 그냥 디펜더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본명은.. 아시다시피 밝히지 않기로 해서요.”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감독. 이번에 나타난 배우는 모든 것이 베일에 쌓여있었다.

‘내 생애 최고의.. 아니 전 우주 최고의 배우일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보낼 수는 없어!’

“처음으로 뵌 분이라. 스텝들과 축하파티를 할 예정인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양손을 다잡고 공손한 말투로 신데렐라를 바라보는 감독. 그의 뒤로, 스텝들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시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하하....’

스텝들의 뒤에서,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있는 케이시의 모습이 보였다.

제발 같이 가주세요. 라는 눈빛을 뿜어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시현이 난감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이 해야할 일은 여기까지. 남은 시간들은 자신과 동료들을 위해 써야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쉬고싶네요...”

허공에 흩날리는 아름다운 목소리. 내용까지 스텝들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으련만. 그의 이야기를 들은 스텝 몇 명이 울먹이는 표정을 지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꾸벅 인사를 한 시현이 촬영장의 밖으로 나갔다. 금색 머리를 휘날리며 사라지는 신데렐라를 보며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내일 또 뵈요. 아참. 방영은 오늘 바로 된다고요?”

그녀의 말에, 감독이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네! 영상 편집은 초능력으로 하므로, 저녁 7시쯤에 바로 방영될 예정입니다!”

초롱초롱한 눈빛들을 보며 시현의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 거북하다 거북해.. 빨리 도망가자.’

그는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선망에 찬 눈빛으로 계속해서 쳐다보는 것은 왠지 소름이 돋았다. 더군다나 그의 정신은 여자가 아닌 남자.

‘도망치자. 최대한 빨리.’

고개를 숙이고 축지법을 쓴 듯 어디론가 급하게 사라지는 시현. 스텝들이 아쉬운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간 아쉬운 표정을 하고있던 감독이. 스텝들을 향해 말했다.

“이번 작은... 최고의 심혈을 기울이도록 하세요!!”

그 말에 스텝들의 눈동자에서 불길이 피어올랐다. 살아생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최고의 미녀배우. 그녀의 작품을 자신들이 편집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회식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오늘 저녁은 컵라면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사실 매일매일 컵라면이 먹고 싶었습니다!!”

“제 취미는 사실 아무것도 안 먹고 작업하는 것입니다!!”

의욕이 충만한 스텝들이 작업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촬영장과 떨어져 있는 빌딩의 골목에서 케이시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아무도 없어요.”

그녀의 말과 함께 시현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천천히 길거리를 바라보는 그. 얼마간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가 한숨을 푹 쉬며 골목에서 나왔다.

“아.. 촬영이라는 것.. 정말 힘드네.”

어느새 원래의 몸으로 돌아와 있던 시현이, 지쳤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은곳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콘서트장 같은 곳 보다는 집에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보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다.

“정말 지쳤네... 갈까 케이시..”

케이시가 시현의 손을 잡았다. 그의 목적지는 주변의 까페였다. 시원한 음료 한잔 하면서 지친 몸을 회복시키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까페에 있는 다른사람들의 이야기들도 들어볼 생각이었다.

‘리자쪽은.. 심사에서 통과하지 못했다고 했지.’

길거리를 걸으며 리자일행을 생각하는 시현. 잼이 말해준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추방자의 영토쪽에 있다고 들었다.

‘뭐. 카푸씨의 능력이 있으니. 그쪽보다는 내가 걱정이지.’

시현은 리자일행보다 자신쪽이 더 약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끝도없는 리자의 무기나 카푸의 이동능력, 요한의 궁극기. 그에 비하면 자신은 햄버거 소환.

‘......’

오히려 그쪽이 시현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던 것이다.

“뭐. 나도 괜찮은 것 같으니..”

케이시의 손을 잡고 한동안 걷던 시현의 눈에 사람이 가득차 있는 야외 까페가 들어왔다.

‘저 정도 사람들이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구나.’

빌딩의 1층에, 바깥으로 많이 나와 있는 까페가 보였다. 흰색의 울타리 안에 수십개의 야외 테이블이 놓여져 있고 몇 명의 종업원이 음식을 주문받고 있었다.

“이곳의 음식은 모두 무료라고 했으니.. 가볼까?”

사라드의 음식등은 모두 무료였다. 잼에 말에 의하면 어차피 일요일 밤이 되면 모든 건물과 음식등이 ‘리셋’ 되기 때문에, 물자는 어느때보다 풍족하다고 했다. 길거리에 있는 가게는 모두 자원봉사자들이 여는 것이라고...

“음.. 자리가 없어 보이는데요?”

사람으로 가득 차 있는 테이블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케이시가 시현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리났어요 오빠!”

일어서는 사람들을 매의 눈으로 포착한 케이시였다.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시현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자신이 먹은 음식을 치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치우는것은 셀프서비스인가?’

돈을 받지 않고 일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자신이 먹은 자리는 자신이 치우고 가는 것 같았다. 자리를 떠난 사람들을 대신해, 시현과 케이시가 자리에 앉았다. 두명이 앉기에는 좀 큰 6인용의 테이블

“......”

커다란 테이블에 두명만이 앉아있는 상황에 케이시는 약간의 뻘쭘함을 느꼈다. 그녀 뿐만이 아닌 듯,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현의 옆으로 빨간 모자를 쓴 종업원이 다가왔다.

“딸기 쉐이크. 체리 주스. 마틸 오렌지. 셰네브 토마토. 나왔습니다.”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차가워보이는 얼음이 떠있는 음료를 건네는 종업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 메뉴는 4개 뿐이랍니다. 안 드시는 것은 나가시면서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

지구에 있는 재활용품 센터장들의 피눈물을 흐르는 발언을 하며, 종업원이 유리잔을 모두 내려놓았다.

음료잔을 받아들며 시현이 물었다.

“사람이 엄청 많군요.”

“아. 프린세스 할 시간이니까요.

그녀가 가게의 위에 달려있는 스크릿을 가리켰다.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인가보죠?”

그의 물음에 종업원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 사라드에서 저 프로그램 안보는건.. 아마 헌터 뿐일걸요?”

사라드는 헌터들은 들어오지 못한다. 즉 그녀의 말은 100명중 100명은 본다는 이야기.

“하하.. 그렇군요.”

“특히.. 오늘은 프린세스 K가 끝나고. 새로운 마법소녀가 나오는 날이니.. 사람들이 더 집중해서 보고있을거예요.”

어깨를 으쓱한 종업원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뒤, 케이시가 시현을 향해 말했다.

“우워.. 이렇게 인기있는 프로그램인줄 몰랐는데요..?”

“..그..그렇네..”

케이시가 오렌지주스를 한모금 마셨다. 얼음이 떠있는 달달하고 새콤한 음료가 그녀의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동시에, 그녀의 눈이 놀라움으로 빛났다.

“우와.. 오빠 이거 엄청맛있어요!”

“아아.. 그거. 이름이 아마..”

종업원이 해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린 시현과 케이시가 동시에 말했다.

“마틸 오렌지.”

과연 그녀의 사업은 어디에까지 뻗쳐있는 것일까. 놀랍다는 생각을 하는 시현이었다. 붉은색의 주스를 마시고 난 뒤. 시현이 말했다.

“셰네브 토마토도 괜찮은데?”

일반적인 토마토 주스와 달리. 시원 달콤한 느낌이 나는 주스. 한잔을 마시, 피로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시현이었다.

“..맛있네.”

시현과 케이시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케이시의 등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음..?”

자신의 뒤쪽을 바라보는 시현을 보며, 케이시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있는 중년 남성이 보였다.

“아이쿠~ 이거 참. 자리가 없어서 말이야. 여기 같이 앉아도 될 까 해서~”

사람이 가득 차 있는 까페. 시현과 케이시가 앉아있던 자리는 6인석. 다분히 이해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시현과 케이시가 의자를 살짝 옮기며 그를 배려했다.

“이거 이거 고마워~ 고마워~ 근데 우리 어디선 본적이 있던가?”

그의 말에, 시현은 그를 본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를 괴롭히던 남성.

“음..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던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비행기 타고 오시지 않았습니까?”

시현은 그가 겉보기와 달리 나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공항의 깐깐한 1:1 면접 테스트를 통과했다면, 믿을 만한 사람일 가능성이 더 높았기 때문이었다.

“아~ 맞아 맞아~ 그때 거기 타고있던 청년이었구만. 만나서 반가워!”

손을 내미는 남자. 시현의 일어서서 그의 손을 잡았다.

“시현입니다.”

“난 그냥 뭐.. 꿈과 희망을 품고 사업하는 아저씨라 불러줘.”

“아..네..”

까페의 상단에 달려있는 전광판을 바라보며 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참 행복한 세상이야. 그치?”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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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다양한 코멘트를 주신 iaksal님, 굴러다녀님, Nothings님, 벌레님 감사드립니다.

한달을 지르신 분이 계시군요.. 더욱더 열심히 써봐야 겠습니다..[...]

요즘따라 연참을 달리고 있는 대탈출입니다, 많은 응원 해주세요. 허허.

달려라 마법소녀 시현.

대탈출 180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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