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7 전설의 용사 (The Legendary Hero) =========================================================================
왕궁 안.
“수고 했네 카리안.”
무릎을 꿇고 있는 거대한 카리안. 몇 계단이나 위쪽에 앉아있던 왕이 흡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손짓하자. 신하 한명이 그에게 작은 상자를 가져다주었다.
카리안이 상자를 받아들었다.
“......”
“쉬어도 좋네. 물러가게.”
왕이 손짓하자. 카리안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포상을 받은 직후였지만. 그의 얼굴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없었다.
오직 땅만을 바라보며 집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그의 발걸음이 집 앞에 닿았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머니... 저 왔어요. 몸 좀 괜찮으세요?”
멀리서. 그의 어머니가 카리안을 반기는 목소리가 들렸다.
“...카리안...요즘에는 바쁜 모양이구나.”
카리안이 거실을 지나 어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창백한 표정으로 천장만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그의 늙은 어머니. 흰 주름과 뼈만 앙상한 손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카리안이 슬프게 웃었다.
“왕께서, 약속하신 귀한 약초를 주셨어요. 어머니.”
“...카리안?”
“...네?”
그의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살 만큼 살았단다.”
병든 그의 어머니.
의사는 그의 어머니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 늦었습니다...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된다며 의사에게 제발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한 카리안. 의사는 딱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절망하는 카리안을 보며 의사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혹시.. 정말 구하기 힘들지만.. 어떤 약초를 구할 수 있다면... 몇 년은...)
카리안이 들고 온 상자를 열었다.
붉은 천위에. 사람처럼 생긴 약초가 놓여있었다.
“..카리안..?”
한 개의 매물이라도 경매에 올라온다면, 수많은 귀족들이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나타난다는 귀중한 약초가. 그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
카리안이 슬프게 웃었다.
친구를 팔아 구한 약초.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손가락질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
카리안의 어머님은 약초로 기력을 회복하신 덕에. 몇 년을 더 사셨다.
비가 수척수척 내리던
카리안의 어머니가 눈을 감던 날.
카리안은 슬픈 표정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침대에 똑바로 누운 어머니의 안색은 평온해 보였다.
오늘을 넘기시기 힘들 것이라는 의사의 말.
카리안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가 카리안을 찾았다.
“카리안..?”
“..네.. 네 어머니, 저 여기 있습니다.”
그녀가 눈을 뜨지 못한 채. 허공에 나지막하게 말했다.
“비가 오는구나...”
“...네.. 어머니.”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려무나...”
당신의 아픔보다
언제나 자식을 먼저 걱정하시던 어머니.
“그리고.. 길이 미끄러우니..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거라...”
마흔이 넘은 카리안.
하지만 아직도
어머니의 눈에는. 챙겨줄 것이 많은 어린아이였다.
그녀가 할 말을 다했다는 듯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눈을 감고 잠을 자려는 그녀를. 카리안이 말렸다.
지금 눈을 감으면. 어머니는 다시는 깨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 주무시면 안 됩니다... 저는 이제야...”
젊은 시절.
사고만 치고 다니던 카리안.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한
어머니의 한 없이 깊은 사랑.
카리안은 아직.
그녀에게 받은 사랑의 티끌조차
돌려드리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카리안.. 내가 없어도.. 잘 해 나가거라...”
그녀가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카리안이 다급하게 말했다.
“저..저는 아직 ...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도...”
나직하게 숨을 쉰 그녀가
마지막 말을 내 뱉었다.
“...부끄럽지 않게... 살거라..”
***
카리안 어머님의 장례식이 있던 날.
그는 기사단장 직을 반납했다.
애초에 돈이 필요했던 것도.
어머니에게 필요했던 약들 때문.
우울한 하늘.
그는 정처없이 떠돌았다.
시장을 걷던 그의 귀에.
지니가는 여인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니까. 그 헤나라는 여자. 아직도, 몇 년 전 도망간 사기꾼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니까?)
카리안이 고개를 들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수년이 지난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
헤나의 집 앞.
카리안의 눈에,
작은 남자아이를 안은 여인이 보였다.
의자에 앉아. 어딘가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는 여인.
작은 아이가. 서투른 단어들을 말했다.
“엄마! 아빠 언제 와?”
라는 말에.
“응. 곧 오실 거란다.”
그녀가 슬프게 미소지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그녀의 옆으로. 중년의 남성이 다가왔다. 그는 크게 심호흡 하며 등 뒤에 감추어 놓았던 무언가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헤나씨. 제 선물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화사한 꽃다발.
아름다운 외모 덕에. 그녀는 아이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그녀가 아들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죄송합니다... 아이 아빠를 기다리는 중이여서요.”
카리안은 그녀를 계속해서 지켜봤다.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도.
그녀는 언제까지나 이한을 기다렸다.
(고마워. 카리안. 이제 난... 평범한 삶을 살겠어)
오랜 친구가 소망했던 작은 꿈.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
카리안은 언제부턴가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그는 헤나의 집 주변을 서성이며.
그녀에게 해가 될 것 같은 건달들이나. 행패를 부리는 남자들과 싸웠다.
‘그래.. 그녀가 이한을 잊을 때 까지만 이라도..’
조금만 그녀를 지켜주자
그렇게 몇 번이고 되뇌었다.
하지만 이한을 기다리는 그녀와.
이한의 어릴 적 모습을 닮은 남자아이를 보자.
카리안은 그녀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
그는 매일 술을 마셨다.
길거리에 앉아.
독한 술을 들이키는 카리안.
술 때문에 볼록 튀어나온 뱃살.
검술을 언제 연마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빈민가의 여자아이인 페이가 그에게 다가와서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 술 냄새. 아저씨! 아저씨는 왜 매일 술만 마셔요?”
소녀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왜 매일 술을 마시냐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에게 당부했던 말.
(카리안...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네? 아저씨는 왜 맨날 술만 마셔요?”
그 물음에.
카리안이 힘없이 대답했다.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단다.”
***
시간은
세월을 뛰어넘어.
신은
이한에게
다시 한 번
그의 아들을 볼 기회를 주었다.
“..요..요한? 요한?”
그의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내.. 내아들.. 내 아들 요한이 나를.. 나를 찾아온 것인가?”
카리안이 그의 양 팔과 양 다리를 구속하던 쇠사슬을 풀었다.
이한은 제대로 서있지 조차 못했다.
시력도 상실 한 듯. 회색눈동자가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카리안.
그는 이한의 모습을 보는 순간부터 울먹거렸다.
“이한.. 정말.. 정말.. 미안하네..”
그의 말을 들은 이한이 평온하게 웃었다.
“카리안... 괜찮네.”
카리안의
오랜 친구.
수십년간을 어두운 감옥 속에서 보냈던
이한.
그는 자신의 오랜 친구
카리안을...
용서해 주었다.
“괜찮네. 카리안... 울지 말게나.”
모든 것을 잃은 이한은
그를 용서해 주었다.
카리안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 작품 후기 ============================
.
카리안 : 왕실 비밀 호위 기사단의 부단장. 이한의 친구. 이한의 단장직이 박탈되었을 때. 후임 단장이 된다.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왕을 돕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헤나의 곁을 맴돌며. 헤나와 요한을 지킨다.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잊고자. 매일 술을 마신다.
-작가의 말-
미래의장
이야... 타이밍이 예술이네요.. 보통 저런건 선물 주고 잡혀가는거 아닌가요 ㅠㅠ 작가님 너무 하십니다 어떻개 선물도 주기전에 잡아가다니...
/죄..죄송합니다; 저도 이한을 잡아간 왕이 밉습니다 ㅠㅠ
dark기사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다크 기사님!
歪曲
실제 역사 속에도 저런 왕 많잖아요. 우리나라만 해도 제일 유명한 건 선조.
/그렇습니다.. 자신의 안전에 불안함을 느낀 왕일수록. 유능한 신하들을 배척하고는 했었죠..
Eyrun
10번째 원고료
이번 편도 거의 끝나가네요
/감사합니다! 전설의 용사편의 과거도 모두 밝혀졌군요.
앞으로도 쭉 지켜봐주세요!
Croness
꼭 저런왕들때문에 충신들만 불쌍...
/그렇죠.. 왕이라고는 하나. 능력이 있어서 왕이 된 것이 아닌. 혈통에 따라 이어받은 왕이기에...
역사책을 보다보면 열통터지는 경우가..
dark기사
역시나 하얀방은 ㅋ
/그렇습니다. 하얀..회색..? 방은 참.. 좀 그렇죠.
루미젤
ㅋㅋㅋ 왕이참 멍청하네요 마왕군을 유일하게 이길수있고 자기를 도와준 영웅을 자기손으로 처리하다니ㄷㄷㄷ 완전 도둑놈심보네요 ㅋㅋ 잘보고갑니다
/왕이 참. 멍청하죠.
하지만.. 역사책 보다보면 저런왕이 은근히 많음에.. 놀라고는 합니다. 대부분의 왕들은 백성의 삶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의 안전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강철의혼
건필
/감사합니다. 열심히 적어보겠습니다.
이리온
이한이 아이템 옵션을 확인하는 걸로 봐서 용사란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를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므로 주인공이 황금칼을 얻어서 사용!!
/그..그런 전개가 될지.
앞으로 지켜봐야 알겠습니다만. 시현이 황금의 검을 얻는다면. 엄청난 파워업이 가능하겠군요.
phara
내가 국왕이라면 헤나를 인질로 잡겟어 ㅉㅉ 국왕이 너무하네...
/국왕이.. 좀 너무하죠. 하지만.. 현재 국왕은 아르칸달과 대치중으로. 바람앞에 등불같은 상황이군요.
ka첨이
작가님은 캐릭터설정과 캐릭터와관련된 스토리를 잘쓰시는것같습니다.
요한은 낚일뻔했으나 시현덕분에 진실을 알게됬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시현의 집념덕분에. 요한이 진실을 알게 되었죠.
진실을 말하자면. 인물들의 상황에 너무 몰입해서 생각할때는.
키보드 두드리다가 울기도[...] 합니다.
kunhe
슬픈이야기네요 랄까 계속 기다린 저 여인도 대단하군요
/어느 정도의 사랑이 있었기에. 그를 계속 기다릴 수 있었던 걸까요.
하늘에서뚝딱
다좋은데 여자한테할 선물살돈을 여자한테 빌리다니..ㅋㅋ 암튼 인생은 타이밍이죠.. 선물하고 잡혀갔으면 다른의미로 기다렸을건데..ㅋㅋ
/용사였지만.. 연애는 딱히 해본적이 없는[..] 이한. 그렇습니다. 여자 선물살돈을 여자에게 빌리다니. ㄷ
선물하고 잡혀갔으면.. 다른전개가 되었을텐데 말이죠.
gkgngh
아이는 스트레스의 원흉인데 물론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키우다보면. 가끔씩 멘탈이 날아갈것 같다고 말하시는분들이 계시더군요.
허허.
로베르트
용사불쌍하네요
/불쌍한 용사. 언젠가 좋은 날이 오기를. 기도해 봅니다.
유입인
55555555
/그렇습니다. 당신은 5등입니다.
카이마이
아르킨달은 전설의 용사가 될수없지요. 마법사가 검을 들고 싸울 이유가 ...
/그..그런?
타당하다고 생각되어. 본문 중간에 내용을 추가 삽입하였습니다. 의견 감사드립니다.
벨몬트
1/6 정도의 돈 >>> 살짝 부족했다, 약간 부족했다 라고 쓰시는게 훨씬 자연스러울것같아요. 많은 작가분들이 힘들어하시는게 골드나 아이템에 가치 매기는건데 두루뭉실하게 얘기하는게 좋을것같아요
/음. 확실히 1/6 이라고 딱 적어놓으니 무언가
읽다가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들더군요.
좋은 의견 감사드리며. 본문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벨몬트
만찍고 자러 ㅠ
/안녕하세요. 빛의 속도로 댓글[..]을 다시는 벨몬트님. 푹주무셨기를 바랍니다.
벨몬트
111
/...... 역시 벨몬트님은 빠르시군요.
!!
- 마치며 -
1) 전설의 용사의 숨겨진 모든 과거 이야기가 끝났네요.
2) 오늘 윤형빈씨의 프로대뷔전인.
일본인의 종합격투기 경기가 있습니다. 많은 관심바랍니다!
3) 선작이 800이 넘었군요.
대탈출을 사랑해주시는 모든독자님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4) 부모님에 대한 모든 오해를 풀게 된 요한. 어떤 전개가 이어질지. 대탈출 118편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