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5 전설의 용사 (The Legendary Hero) =========================================================================
“제 이름은 헤나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이한의 멈추어버린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
헤나의 집 안은 달콤한 꽃향기가 났다.
동화 속에서 나올 것 같은 초록색 줄무늬 창문과 분홍색의 장식용 레이스들.
아기자기한 분홍색 가구들.
평생을 전투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이한의 눈에, 그녀의 방은 별천지의 세계였다.
“흠.. 흠..”
이한이 천으로 머리의 물기를 닦으며 어색한 헛기침을 했다.
왜일까. 그는 자신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있음을 느꼈다.
머릿속에 쓸데없는 것들이 떠올랐다.
지금 목소리가 이상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빗속에 있어서 몰골이 말이 아닐 텐데...
그녀가 날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평생 처음 느끼는 감정.
이상한 기분이 그를 감쌌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부엌에서 무언가를 들고 왔다.
하얀색의 찻잔에서 따뜻한 김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거 드세요! 그리고 기운 내세요!”
“...네?”
그녀가 내민 찻잔을 받아든 이한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이한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와 함께. 이한의 가슴이 뛰었다.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포근한 미소.
“흠~ 제 평생에. 그렇게 방금이라도 죽을 것 같은. 우거지상을 한 거지 아저씨는 처음 봤다니까요~”
거지? 우거지상? 아저씨?
......
이한은 자신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높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가..감사했습니다..이 차 참.. 맛있네요.”
그의 의도와 다르게. 그의 입에서는 이상한 말들이 튀어나왔다. 말을 더듬는 그를 보며 그녀가 풋. 하고 웃었다.
“아저씨! 말은 왜 더듬어요! 남자가 씩씩하게 말해야죠!”
전설의 용사에게 씩씩하게 말하라고 요구하는 여자. 이한은 그녀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다.
“아..네.. 그래야..겠죠?”
그녀의 웃음을 볼 때마다. 그의 가슴이 사르르르 떨려왔다.
“그런데, 그 빗속에서 뭘 하고 계셨던 거예요?”
이한이 멋쩍게 웃었다.
“그냥... 잃어버린 ..행복한 시간들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그녀가 괜찮다는 듯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과거는 과거! 이제는 새로운 행복을 향해 나아가야죠!”
그녀가 초록색 창문을 활짝 열었다. 맑게 갠 하늘과. 따뜻한 햇살이 그들을 비추었다.
“자! 그럼 이제 자살 같은 거 하려고 하면 안 돼요?”
자..자살?
띵. 하고 이한은 머리에 무언가를 맞는 느낌을 받았다.
“빗속에서 얼어 죽기라니! 부모님에게 죄송하지도 않나요?”
라는 그녀의 말에.
“...저는 부모님이 없습니다만...”
라고 이한이 대답했다.
그녀가 헛. 하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그럼 남아있는 형제들에게 미안하지 않나요!?”
“형제도 없습니다만..‘
“친구들은..?”
“친구들도.. 이제는 만나지 못합니다만..”
그녀가 하아? 하며 입을 벌렸다.
“당신..”
“..네?”
그녀가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죽을 만 하군요?”
......
그녀의 말에. 이한은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고민했다.
그가 고민하는 사이.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 어쨌든! 이제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죠! 일자리도 찾으시고요!”
이..일자리?
그녀가 이한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보아하니 떠돌이 여행자 같으신데, 아무 일도 안하고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요? 사람은 자고로 일을 해야 한답니다!”
그녀의 강력한 주장에. 이한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네...”
“그런 의미에서!!”
“네?”
갑작스럽게, 그녀가 이한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한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당신 주특기는 뭐예요?”
“주..주특기요?”
“제가 일자리 구하는 거 도와줄 테니까. 앞으로 밥 굶지 말고 다녀요”
“......”
그녀가 그의 눈동자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잘하는 거!”
잘하는거라니.. 잘하는 게..
밀어붙이는 그녀의 박력에 이한은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싸...싸움 좀 합니다.”
느낌이 좀 다르긴 했지만.
용사가 싸움을 잘 하는 것은 사실.
그 말을 들은 그녀가 흐음~. 이라며 믿지 못하는 눈초리를 했다.
“싸~움이요?”
낡은 행색. 물에 빠진 생쥐 꼴. 우울한 분위기. 어딜 봐도 어디 가서 쥐어박히고 다닐 것 같은 이한의 행색이었다.
“..지..진짜..입니다...”
그녀가 얼굴을 이한에게 들이밀었다. 달콤한 꽃향기가 그녀에게서 풍겨져 나왔다. 이한이 얼굴을 붉혔다.
“음... 거짓말은 나쁜 건데...”
“......”
의심의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
이한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 때.
-쾅쾅쾅!-
누군가가 집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헤나 씨!! 헤나 씨!! 저 필립 입니다!!)
그 소리에.
“아...” 라며 헤나가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헤나 씨!! 헤나 씨!!)
이한이 그녀와 문 쪽을 바라보다가. 궁금한 듯 그녀를 보며 물었다.
“...저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나 보죠?”
푹 한숨을 쉰 그녀가 그의 말에 대답했다.
“난폭한 동내 건달이에요. 저를 어떻게 해서 돈이나 뜯어낼 생각인거 같더라고요.”
“...음?”
“한두 명도 아니고.. 하루에도 몇 명씩 제 돈을 노리는 남자들이 찾아오네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헤나가 문 쪽을 향해 소리 질렀다.
“돌아가세요!”
라는 그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헤나 씨!! 헤나 씨!!)
“당신에게 관심 없다니까요!!”
쿵. 쿵. 쿵 계속해서 그가 문을 두드리자 그녀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옹.. 돌아버리겠네.”
(문을 안 여시면 억지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녀가 히익.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이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지 아저씨?”
뚜벅. 뚜벅. 하며 이한이 문을 향해 걸어갔다.
“어..어쩌시려고 그래요!”
그녀가 말리려는 듯. 이한의 뒤를 따랐지만, 그보다 먼저 이한이 벌컥. 하고 문을 열었다.
문 앞에, 거대한 덩치를 지닌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서있었다.
“감사합니다. 헤나.. 엥? 네놈은 뭐야!!”
집 안에서 나오는 이한을 보며, 그가 소리 질렀다.
“어느 구역의 놈팡이냐!! 헤나 씨 재산은 너에게 줄 수 없다!!”
재산타령을 하는 그를 바라보며 이한이 몸을 움직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이한의 주먹이 그의 턱에 명중했다.
거짓말처럼. 그가 스르륵 쓰러졌다.
헤나가 멍한 표정으로 이한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향해. 그가 뒤돌아서며 말했다.
“...싸움은.. 좀 합니다.”
그녀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이한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짭니다.”
풉. 하고 헤나가 웃었다.
그녀는 그 후로도 한참을 웃었다.
영문을 모른 채 계속해서 그녀를 바라보던 이한.
시간이 지나자 조금 진정이 된 듯. 그녀가 이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봐요!”
“...네?”
“취직자리 정해졌네요!”
“.....어떤..?”
그녀가 자신의 옆 자리를 가리켰다.
무슨 뜻일까?
이한이 그녀의 옆자리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제 호위기사!”
***
-퍽!!-
“이한 씨 잘한다!!”
시장의 한 가운데. 헤나가 수십명의 남자에게 둘러싸인 이한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외쳤다.
“아가씨! 사고 좀 치고 다니지 마십시오!!”
그녀를 향해 고백해오는 남자에게 심한 말을 한 것이 원흉.
그리고 하필이면 그 남자가 이 근처 갱단의 두목이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러나 말거나. 헤나는 신난다는 표정으로 수십명에게 둘러싸인 이한을 응원했다.
“우리편!! 이겨라!!!”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한이 주먹을 들어올렸다. 예전보다는 약해진 몸이지만. 동내 건달들 따위.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퍽. 퍽. 퍽. 몇 번의 주먹소리가 울려퍼지고. 이한을 제외한 건달들이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가 기쁜 듯이 소리쳤다.
“이한!! 최고!!”
그녀가 따뜻한 눈동자로 이한을 바라보았다.
사고로 부모님을 잃자.
주변에는 자신의 유산을 노리는 사람뿐이었다.
하지만 단 한명.
이한만은 그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봐 주었다.
슬플때나 기쁠때나
언제나. 그는 그녀의 곁에 있었다.
“이한!!”
이한을 향해 달려간 그녀가. 달려가는 속도 그대로. 뒤에서 그의 목을 껴안았다.
“우악!”
숨이 막힌 듯한 이한이. 켁켁 거렸다.
하지만.
헤나와 이한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
시간이 지날수록.
이한과 헤나는 서로에게 빠져갔다.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라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이한의 헤나를 바라보며 살아갈 희망을 얻었고
헤나는 이한을 바라보며 용기를 얻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하고 얼마 뒤.
헤나가 임신을 한 것이다.
그리고 몇 달 뒤.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들은 이한.
그가 마을의 끝에서부터 그녀의 집까지 질주했다.
그의 입이 계속해서 웃었다.
‘나도 이제 아빠가 된건가!!“
가슴속부터 솟구치는 감동.
빗속에서 죽어가던 그에게 다가온 새로운 인생.
그녀를 만난 순간. 그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다.
이한이 다급하게 집 문을 열었다. 아이 우는 소리와 함께. 산모가 헤나의 아이를 안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건강하게 생긴 붉은 머리칼의 아이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이 뛰었다.
눈물.
이한이 아이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 빗속에서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 주지 않았다면.
자신이 이런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그는 아이를 바라보며,
또 한번의 인생을 허락하게 해 준.
신에게 감사드렸다.
***
“음.. 헤나? 아이 이름은...”
이한이 그녀에게 물으려는 순간. 그녀가 먼저 대답했다.
“요한!”
“...응?”
그녀가 이한을 바라보며 베시시 웃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요한.
300년전 전설의 용사의 이름.
이한이 뒷머리를 긁었다.
“헤나.. 그건 아이에게 지어주기에는 약간 거창한 이름이...“
라는 그의 말에
“요한!”
그녀가 한치도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왜 하필 그 이름이야?”
라는 이한의 물음에. 그녀가 대답했다.
“그거야...”
그녀가 웃었다.
“혹시 모르잖아요? 우리 아이가 전설의 용사가 될지?”
“...그게 뭐야?”
그녀의 눈은. 과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동 피우는 괴한을 한 주먹으로 잠재우던 이한의 모습.
“예전에 처음 만났을 때. 옆집 불량배가 괴롭히던 때 있잖아요.”
“응? 아. 내가 때려눕힌 그 친구.”
“그 때 주먹을 휘두르는 당신이...”
“내가..?”
그녀가 웃었다.
“맞아요. 당신. 제 눈에는 마치.... 전설속의 용사님 같았다고요.”
그녀의 말에. 이한이 피식하고 웃었다.
이한.
그는 아직도
그 누군가에게는
전설속의 용사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기지개를 폈다.
“요한도 반드시! 아버지를 닮은~ 전설의 용사가 될 거라고요!”
============================ 작품 후기 ============================
.
'요한' - 요한의 어머니 헤나가, 자신의 아들도 아버지를 닮은 '전설속의 용사처럼 용기있는 사람'이 되라고 지어준 이름.
-작가의 말-
카이마이 용사는 마왕이 없으면 주거침입 후 항아리나 깨는 무뢰배인법.델몬트(?)옹께선 미리 선견지명을 펼치시었다ㅋㅋ
/그..그렇습니다. 용사는 언제든 경찰에게 잡혀가도 상관이 없지요[..]
기물파손 죄. 살인 죄. 애완견 유기. 폭행 등등.. 말이죠[...]
...이거 사실 용사가 마왕보다 나쁜거 아니에요?
담뇨
그런 이유에서 끊으셨다니 요즘 좀 무리하시는게 아닌가 걱정되네요ㅠㅠ 읽기벅차요@[email protected](엄청 좋슴다)
/사실 요즘 좀 무리하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뭐. 무리 좀 하면 어때요. 헤나와 이한의 행복한 일상을 쓸 수 있다면 말이죠.. 하하.
하늘에서뚝딱
네... 문제는 그거죠 용사나 영웅은 그에 대적하는 마왕이나 폭군 등등이 있어야 존재의 가치가 있다는거.. 이한은 평범한 삶을 원하지만 과거를 숨겨야하겠지요. 가족의 안전을위해.. 로한은 일족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검의 소유주가 될수 있으니 숨기는 대신이 감옥에 간거겠지요?
/앞에 어떤분이 말해주셨듯이. 영웅이라는 것은. 권력자에게는 두려운 존재이죠. 강대한 적이 없다면.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영웅 역시.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에 불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에서뚝딱
이것이야 말로 전멸로가는 직행노선!! 예상을 더해보고싶지만 뒤에 한편이 더있는관계로 흐흐흐흐.. 다음편보러 휘리링
/그렇습니다. 마왕군의 침공을 막을 자는 보이지 않고. 마왕군은 점점 더 강해지고.. 왕은 도망가다가 아르칸달과 만나고.. 허허.
벨몬트
?!?!?! 신데렐라에 그런 묘수가. 이건 모든 포유류들이 꿈꾸는 자웅동체가아닌가
/이..이론상으로는 가능합니다만..
별로 소설로 적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kunhe
슬프고 안타깝지만 사실이죠 용사란 존재는 마왕이란 적이 있을때 존재하는 자 마왕이 없어지면 이제 모든 권력자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는 용사죠 화려한 겉면속에 숨겨진 뒷면의 이야기가 바로 용사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렇죠.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용사란. 권력자에게는 정말로 두려운 존재이죠. 마왕이라는 강대한 적이 없어지면. 용사는......
용사의 힘이 강해질 수록. 권력자는 불안에 떨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Croness
어두운 앞날의 이한님에게 여신님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평생 암울하라는 법은 없는데. 여신님이 강림하여 그를 구재해 주는군요. 그의 앞길에 축복이 가득하길..
-마치며-
헤나와 이한의 과거 이야기가 끝났네요.
세상을 지키는 이한의 임무는 끝났지만.
헤나의 눈에. 가족을 지키는, 늠름한 전설의 용사님이 보이는군요.
세상을 지키는 일이 아닌.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이한은 오늘도 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