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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고려제국건국기-170화 (170/171)
  • 대고려 제국, 세상을 통일하다 - 8

    [지금쯤이면 그대도 깨달았겠지? 그대가 무얼 착각하고 있었는지를 말이야.]

    연결이 되자마자 대뜸 물어오는 천제 환인의 말에 왕기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천제 환인님의 답변이 늦어져서 고민을 할 시간이 충분했으니까요. 일전에 바다를 경계로 산을 옮기는 게 불가능했던 이유가 절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는 바다와 관련된 신이 허락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자신의 영역을 지나가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그런 속 좁은 신이 자신의 영역인 바다에 산을 통째로 집어던지는 행위를 용납할 리가 없지요. 그 신의 입장에서는 제가 바라는 소원이 쓰레기를 바다에 무단으로 투기하는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을 테니까요.'

    [너무 그렇게 나쁘게만 말하지 말게나. 그래도 그 신 덕분에 인류가 탄생할 수 있었으니까. 이 시대의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대라면 인류가 어디서부터 나왔는지를 잘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지구에서의 최초의 생명은 바다에서 탄생했다고 많은 진화론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지요. 하지만 현대에서도 창조론을 믿는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창조론이 자꾸 비판을 받자 지적 설계론까지 등장했고요. 인간과 자연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해 진화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 절대적인 존재가 개입, 설계한 것이 틀림없다는 주장이지요. 전 그런 케케묵은 논쟁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니 집어치우시고... 결론부터 말해주시죠. 신이 반드시 진실만을 말하지는 않고, 또한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저도 충분히 깨달은 상태이니까요.'

    [너무 까칠한 거 아닌가? 그래도 나 덕분에 그대가 역사상 전 세계를 통일한 최초의 황제가 될 건데 말이야.]

    '그래서 천제 환인님의 눈에는 제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까? 전 현대에서 살 때가 더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결론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법 긴 시간이 걸린 걸 보니 신들의 협의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걸로 보입니다만...'

    [자네의 말이 맞네.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자는 쪽과 들어줄 수 없다는 쪽이 팽팽하게 맞서서 제법 오랜 공방전이 펼쳐졌지. 그리고 그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는 쪽으로 거의 기울었다네. 산을 옮기는 기적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행해줄 수 없다는 의견이 팽배했고, 바다를 관장하는 신이 적극적으로 반대를 표명했기 때문이었지. 그랬는데... 며칠 전에 극적인 반전이 벌어졌어. 자네 때문에 말이야.]

    '저 때문에요?'

    [그래. 난 미처 보지 못했지만 바다의 신이 그러더군. 얼마 전에 2천이나 되는 대고려 제국의 병사들이 죽은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면서 자네가 노국공주의 품에 안겨 하루 종일 펑펑 울었다고 말이야. 왜 그런 말도 있지 않는가? '진실이야말로 최대의 선전 선동이다(The truth is the best propaganda)'라는 말. 그대의 진심 어린 눈물을 보면서 그대가 보여주는 모든 정치적인 행보가 인류애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바다의 신이 마침내 인정을 했다네. 그동안 자네가 자신의 민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서슴없이 저지른 대량학살 때문에 그대의 진심을 인정하지 않던 신이 마침내 자네의 손을 들어준 것이지.]

    20세기 최고의 종군 사진기자였던 '로버트 카파(Robert Capa)'의 말을 일부 인용해서 하는 천제 환인의 말에 왕기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명색이 신이란 작자가 제가 눈물 조금 보였다고 절 인정해 줬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저 같은 평범한 공돌이보다는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나 연기자를 과거로 끌고 오시는 게 더 나을 것 같군요.'

    [평범한 공돌이라. 겸손이 심하군. 설마 자네가 과거로 끌려온 최초의 공학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제법 많은 숫자의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과거로 넘어왔다네. 그들이 역사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세우긴 했지만 자네처럼 전 세계를 통일하는 일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고. 신들이 반발력과 그에 따른 대적자 탄생이라는 시스템을 괜히 만들어 둔 줄 아나? 그리고 신들의 협력을 이끌어낸 사람은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고 말이야. 자네가 최초라고. 최초!]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자네가 원하는 대로 몽블랑 산을 들어서 지브롤터 해협으로 옮겨주기로 했네. 뾰쪽한 산봉우리도 예쁘게 깎아서 철도를 놓기 좋도록 해줄 것이야. 그 대신 한 가지 조건이 붙었네. 바다의 신이 아직도 완벽하게 자네의 편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대에게 기적을 너무 많이 일으키게 해주면 그대가 인간 세상에서 지나치게 신격화되는 것을 우려했어. 신의 자손이라는 명목으로 자손 대대로 천년만년 세상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한 것이지.]

    '그래서 제게 어떤 조건을 붙인 겁니까?'

    [아주 간단하네. 산을 옮겨주는 대가로 자네는 죽을 때까지 어떠한 경우에도 아들을 보지 못할 것이야. 일종의 저주이자 자네에 대한 견제장치인 셈이지.]

    천제 환인의 말에 왕기가 별다른 고민도 없이 즉답했다.

    '저에게만 국한되는 저주이고 제 후손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렇게나 쉽게 받아들인다고? 자네가 어렵게 건설한 통일 대고려 제국이 그대의 직계에게 이어지지 않는데도 말인가?]

    '일전에 제가 했던 말을 벌써 잊어버리신 겁니까? 제 뒤를 이을 황제는 이미 제 마음속에서 정해져 있습니다. 제 직계가 아니라 외가 쪽의 후손으로 말입니다.'

    [세종 대왕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어차피 제가 아들을 낳더라도 그 아들은 살아생전에 황제의 직위에는 올라가지 못할 겁니다. 제가 화경에 달한 고수이기 때문에 수명이 평범한 인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길 테니까요. 엘리자베드 여왕이 도통 죽지를 않아 나이가 70이 넘어가도 계속 황태자 자리에만 머물고 있는 영국의 찰스 황태자 같은 고통을 겪게 하느니 차라리 그게 더 나을 것입니다.'

    [확실히 그대가 평범한 인간은 아니야. 천하를 통일한 대고려 제국의 황제 자리를 그렇게 쉽게 외가 쪽으로 넘겨주다니 말일세.]

    '그 대상이 제가 존경하는 세종 대왕이니까요. 한민족 역사상 애민 정신이 가장 투철하고 정치적인 역량이 가장 뛰어났던 세종 대왕이라면 맘 놓고 제 자리를 물려줄 수 있습니다. 물론 세종 대왕 입장에서는 고생문이 훤하게 열린 것이겠지만요. 기존 역사에 따르면 세종 대왕은 삼시 세끼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안 먹을 정도로 고기를 사랑해서 나이가 들어 당뇨에 걸려 고생이 아주 심했다고 합니다. 제가 그렇게 되도록 그냥 놔두지 않을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주 혹독한 수련과 공부를 병행시킬 테니까요. 제 소명은 죽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통일 대고려 제국을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놓고 세종 대왕을 '제왕지재(帝王之材)'로 훈육하는 것입니다. 제가 할 일은 딱 거기까지입니다. 제가 신격화될 것을 우려하는 신들에게 전해주세요. 이번 전쟁을 끝으로 전 신들과의 교류를 완전히 끊고 평범한 사람의 아들로 돌아가 사람답게 살다가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전해주세요.'

    [알겠네. 신들에게 그리 전해주지. 그리고 그 신의 말을 마저 전달해 주겠네. 만약 아들을 못 낳는다는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몽블랑 산을 지브롤터 해협으로 옮김과 동시에 원한다면 지중해 일대에 거대한 해일을 일으켜 주겠다고 말하더군. 자네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할 테니 자신의 능력을 맘껏 이용해도 좋다고 했어]

    그러자 왕기가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흥... 쓸데없는 오지랖은 집어치우라고 전해주세요. 이번 기회에 자신의 능력을 저에게 과시라도 할 생각인가 본데... 인류애를 그렇게 따지던 신이 왜 해일을 일으켜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듭니까? 이래서 전 신들을 신뢰하지 않는 겁니다. 그냥 몽블랑 산만 해협 쪽으로 옮겨주고 철도를 깔기 좋도록 도와주는 것만으로 족하다고 전해주세요.'

    [알겠네. 내가 그렇게 전하도록 하지.]

    1348년 3월 1일

    [몽블랑 산 동쪽에 위치한 고원]

    마침내 알프스산맥에 도착한 왕기가 몽블랑 산 정상을 살펴보고 있었다. 평지에는 봄이 찾아오고 있었지만 ‘흰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몽블랑 산의 이름답게 산의 정상은 여전히 눈으로 가득 덮여있었다.

    '프랑스 쪽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데 비해 이탈리아에서 넘어가는 쪽은 비탈면이 매우 가파르군. 신들이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현대의 전쟁에서 간간이 행해졌던 전술처럼 공병대를 시켜 땅크와 장갑차를 조각조각 분해해서 넘어간 다음 다시 조립을 해서 싸우려고 했었는데... 만약 그랬다면 생각보다 더 많은 희생이 발생했겠어.'

    왕기가 고개를 돌려 프랑스 쪽의 완만한 경사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는 25만에 달하는 신성 프랑스 제국 병사들의 진영을 살펴보며 뇌까렸다.

    '저자들은 일전에 살려줬던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던 병사들이로군. 기껏 살려서 돌려보내 줬더니 다시 교황의 밑으로 기어 들어갔어. 하긴 사람의 본성이란 것이 쉽게 변하지 않지.'

    어느 정도 정찰을 끝마친 왕기가 이탈리아 방면 고원에 있는 대고려 제국군의 막사로 날아갔다.

    [대고려 제국군의 막사]

    최영과 무지 그리고 목은 이색을 보며 왕기가 입을 열었다.

    "내일 밤 이번 전쟁을 끝낼 것이니라. 짐이 몽블랑 산을 통째로 옮길 것이야. 그럼 적들은 대고려 제국군의 대포와 장갑차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것이다. 그 순간 땅크의 포격과 장갑차의 벌컨포로 그들을 완전히 쓸어버린다. 그들은 본인의 욕심에서든 종교적인 믿음에서든 교황 밑으로 모여들어 교황의 명만 충실히 따르는 병사들이다. 십자군 원정에도 나섰고 원정이 실패로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자들이야. 살려둬봐야 서역 전역으로 흩어져서 또다시 대고려 제국에게 반기를 들 것이니 이번 기회에 깡그리 소탕한다. 전 세계에 일벌백계(一罰百戒)로 보여주는 것이야. 대고려 제국에게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말이다. 그러니 다들 내일의 전투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 존명!

    1348년 3월 1일

    밤이 깊어가자 몽블랑 산 쪽으로 먹구름이 잔뜩 몰려와 하늘을 컴컴하게 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전에 예루살렘 성에서처럼 몽블랑 산 위쪽의 구름이 갈라지며 성서로운 빛이 산 정상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교황의 병사들이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인데? 맞아. 예루살렘 성에서 봤던 광경이라고.

    - 설마 또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건가? 우린 주님의 보호와 은총을 받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인가?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손과 발이 몽블랑 산 근처로 내려와 산 아랫부분에 손을 강제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삽으로 흙을 퍼올리듯 몽블랑 산을 가볍게 들어 올린 후 통째로 들고서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 쿵. 쿵. 쿵...

    다 같이 협력하여 산을 들고 가는 신들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가고 있을 때 장애물이 사라진 대고려 제국군의 진지에서 폭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쾅. 쾅. 쾅...

    100대에 달하는 땅크의 포격을 시작으로 3천 대의 장갑차에서 벌컨포가 불을 뿜었다.

    - 드르르...

    사방에서 피를 뿌리며 뒤로 넘어가는 병사들 속에서 공포에 질린 외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다들 도망쳐. 또다시 블랙 부처가 나타났다고.

    - 대항해봐야 소용없어. 우린 신의 저주를 받은 거야.

    - 맞아. 교황이 비겁한 작전을 펼친 것에 대한 벌을 받는 거라고.

    그렇게 일방적인 학살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자신의 전용기에 탑승해 계속해서 포격을 하며 앞으로 진격하고 있던 왕기의 머릿속으로 새로운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띠리링. 마지막 대적자를 처치하였습니다. 죽은 대적자의 능력을 흡수하시겠습니까?]

    '전투 도중에 교황이 죽은 모양이로군. 질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탐나긴 하지만 능력 흡수를 거부한다. 신들께 내 말을 전달해. 일전에 말했던 것처럼 난 사람답게 살다가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말이야. 더 이상 특별한 능력 따위는 필요가 없다고.'

    [띠리링. 과거로 넘어온 자가 대적자의 능력 흡수를 거부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대가로 그대를 이 세계로 소환한 신의 능력을 한번 이용할 찬스권이 주어집니다. 단 인간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수준에서 사용이 가능합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닥치고 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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