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66화 (166/171)

대고려 제국, 세상을 통일하다 - 4

"억울함이지요. 지금 페하께서는 이슬람교도들로 이루어진 오스만 제국을 상대할 때와 달리 적들의 군사력에 대해서 너무 신경을 쓰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교도들로 이루어진 신성 프랑스 제국 역시 오스만 제국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제국을 유지하고 있는 기본은 그들이 모시고 있는 신에 대한 믿음이며, 이슬람교의 최고 종교직인 칼리프가 오스만 제국의 왕 역할을 하듯 신성 프랑스 제국 역시 가톨릭교의 최고 종교직인 교황이란 자가 왕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둘 다 종교와 세속적인 권력이 하나로 묶여있는 제정일치의 제국이라는 것입니다."

목은 이색의 장황한 말이 끝나자 왕기가 그걸 누가 모르냐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이 별다른 전쟁도 없이 대고려 제국의 발밑으로 들어온 이유를 간과하셔서는 곤란합니다. 폐하께서 그들의 성지인 하지 산을 신들의 도움을 받아 하룻밤 사이에 예루살렘 성으로 옮기는 기적을 그들의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여주셨기 때문이지요. 만약 그런 기적이 행해지지 않았더라면 오스만 제국의 병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덤벼들었을 것입니다. 신성 프랑스 제국을 굴복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적들의 전함을 신경 쓰기보다 최대한 빨리 상륙을 하여 일전에 소인이 말씀드렸던 타보란 산을 이동시키는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입니다. 교황이 거느리고 있는 900척의 전함은 대고려 제국의 해군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만에 하나 폐하께서 그러한 일을 행하시지 않는다면 훗날 큰 불씨가 되어 종교분쟁이 다시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목은 이색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린 왕기가 다시 물었다.

"큰 불씨가 될 것이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

"소인이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슬람 교인들은 불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왜 성지가 강제로 옮겨지는 일을 자신들만 겪어야만 하냐며 억울하다는 심정을 가지게 될 것이고, 신성 프랑스 제국의 가톨릭 교인들은 너희들이 믿는 신이 우리들이 믿는 신보다 하등해서 그런 일을 겪게 된 것이라고 자신들이 믿는 신의 우월성을 끊임없이 주장할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러한 불만과 반목들이 누적되면 또다시 종교분쟁이 발생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목은 이색의 말이 끝나자 왕기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툭 던졌다.

"하룻밤 사이에 산을 옮기는 것이 쉬워 보이느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 일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신들만이 행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소인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네 말이 맞다. 짐에게도 그런 능력이 없느니라. 여기에 있는 너희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 아니냐? 짐이 평범한 인간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이야. 짐은 단지 무공이 뛰어나고 실학에 대한 이해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람일 뿐이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산을 이리저리 마구 옮길 수는 없다는 뜻이니라. 운 좋게 신들의 협력을 한번 얻긴 했지만 그게 짐이 마음먹은 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야. 그러니 지금은 그 문제보다 교황이 거느리고 있는 900척의 전함들을 격파하는 문제부터 의논해야 할 것이다."

왕기의 말에도 불구하고 목은 이색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페하. 폐하께서 소인의 집을 찾아오셨을 때 분명히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각각의 종교에서 가중 중요시하게 여기는 산이 무엇이더냐고 말입니다. 그러한 말의 뜻은 산들을 마음먹은 대로 이리저리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가톨릭과 이슬람 종교에서 신성시 여기는 하나의 산을 옮기는 것은 가능하다는 뜻이라고 소인은 해석하고 있사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그 순간 왕기가 손을 들어 열변을 토하는 목은 이색의 말을 잘랐다.

"그만. 그 문제는 더 이상 꺼내지 말거라. 지금 당장은 새로 입수된 정보에 의한 작전만 의논하면 될 것이야."

말을 하며 왕기가 속으로 빠르게 뇌까렸다.

'내가 산을 이리저리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좋겠지만 난 우연찮게 과거로 끌려온 평범한 공돌이에 불과해. 미래의 과학과 공학 지식을 이용해 무공을 최단 시간 내에 익히고 각종 신물건들을 개발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산을 옮기는 일 따위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일은 날 과거로 끌고 온 천제 환인도 못하는 일이라고. 타보라 산을 단숨에 교황청이 있다는 로마로 옮겨버려 이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지만 그건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신들의 협약에 의해 산을 같은 땅에서 단순히 위치를 옮기는 것은 쉽지만 바다를 건너 산을 통째로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했으니까 말이야. 바다를 다스리는 신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라고 하며 다들 난색을 표명했다고. 빌어먹을... 신들이 조폭 새끼들도 아니고 왜 나와바리를 따지고 있냐고. 바다를 다스리는 신이 중립을 표명해 나에게 특별한 해를 끼치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예전부터 가톨릭 교인들이 믿는 신과 친분이 있다고 했었지? 그래서 모세가 홍해를 쉽게 갈랐다고 했고 말이야. 어떤 산을 어디로 옮길지는 고민을 깊이 해봐야만 해. 당장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신들의 도움을 얻어 산을 옮길 수 있는 찬스는 딱 한번뿐이니까.'

빠르게 생각의 정리를 끝마친 왕기가 무지를 보며 말했다.

"새로 들어온 정보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알겠습니다. 두 가지 새로운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하나는 교황이 거느리고 있던 로마 인근에 여기저기 퍼져있단 병사들이 교황이 내린 재물로 식량을 잔뜩 구입한 후에 일제히 이동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최종 목적지는 아직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알아내도록 해. 식량을 잔뜩 구입했다는 것은 농성을 준비한다는 뜻일 것이야. 병사들이 모여서 농성을 할 장소가 분명히 사전에 선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곳이 어디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정보는 교황이 어업 금지령을 완전히 풀었고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전함 900척을 일제히 이동시켰다고 하옵니다. 다행히 전함의 집결지는 입수할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곳으로 집결한다고 하더군요."

왕기가 무지가 지도에서 집어주는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

"어업 금지령 따위는 중요하지 않지만 900척의 전함은 교황이 가진 전 재산이나 다름없다. 그러한 전함들이 한꺼번에 이탈리아반도와 시칠리아 섬 사이의 좁은 해협으로 이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르겠습니다. 나름 대고려 제국의 전함들을 상대할 비책이 있기에 이동하는 것이라고 보이지만 정확힌 이유는 소인도 잘 모르겠사옵니다. 하지만 이곳은 적들의 앞마당이며 대고려 제국에서는 이곳의 바다에 대해 가진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유인하는 바닷속에 배들을 좌초시킬 암초들이 잔뜩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고, 물살이 끊임없이 회오리치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들이 우리를 함정으로 유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적들의 해군력을 한방에 일망타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에는 너무 아깝다. 그러니 제1함대와 제2함대는 전속력으로 그들의 뒤를 쫓아간다. 이동하는 내내 천리안을 운용해 적의 기습을 방비하는 한편 짐이 직접 최대한 빨리 해협을 정찰하고 오겠다. 물살이 이상하지는 않은지 바닷속에 암초가 있는지 등을 직접 살펴보고 올 것이야."

지도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을 하던 왕기의 눈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산을 이동시킬 적당한 곳이 하나 있군.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가능한지를 물어봐야 하겠어.'

그 순간 무지가 입을 열었다.

"페하. 차라리 양동 작전을 펼치시는 것이 어떠할는지요?"

"양동을?"

"그렇사옵니다. 적들이 우리를 유인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제1함대와 제2함대를 나누어 운용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제1함대는 적의 뒤를 쫓아가고 제2함대는 시칠리아 섬을 둘러가 적을 급습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왕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시칠리아 섬을 빙 둘러 가려면 단순 계산만으로도 4천리가 훌쩍 넘어간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그리고 이곳은 그대의 말처럼 적의 앞마당이며 우리 쪽 함대의 전력이 앞서기는 하지만 숫자가 적보다 적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각개격파를 항상 조심해야만 해. 이곳에서 배들이 고장이 나기라도 하면 수리할 조선소가 없어. 전력을 하나로 모아 돌격하는 것이 최선이다. 적의 함정은 짐이 직접 해협을 정찰하고 올 것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니라."

"잘 알겠사옵니다. 폐하. 설사 함정이 있더라도 대고려 제국의 용맹한 해군들은 능히 물리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폐하의 말씀대로 따르지요."

회의의 끝을 알리듯 최영 장군의 씩씩한 대답이 터져 나왔다.

1348년 1월 25일

시칠리아 섬과 이탈리아반도의 끝 칼라브리아주 사이의 좁은 해협인 메시나 해협을 정찰하고 온 왕기가 간부들에게 통보했다. 메시나 해협에는 암초도 없고 소용돌이치는 곳도 없는 곳이라고 말이다. 그에 따라 제1함대와 제2함대가 전속력으로 메시나 해협을 향해 달려갔다.

1348년 1월 28일

[메시나 해협 인근 바다]

대고려 제국 제1함대와 제2함대가 똘똘 뭉친 결과 400척이 넘는 철선들이 물살을 가르며 떼를 지어 이동하는 장관이 펼쳐지는 동안 천리안 수백 개가 상공에 떠서 주변을 끊임없이 정찰하고 있었다. 최영 장군이 타고 있는 제1함대 전력 항모의 조종실에서 주변에서 들어오는 정찰 결과를 끊임없이 받아보고 있던 왕기가 중얼거렸다.

"이거 살짝 걱정이 되는군. 여기까지 오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 적들이 함정을 꾸밀 시간을 너무 많이 준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그러자 최영 장군이 말을 받았다.

"페하. 어쩔 수 없었지 않습니까? 바다에 어선들과 상선들이 잔뜩 깔려 있어서 제대로 속도를 내기가 힘들었으니까요. 제법 오랜 시간 어업 금지령에 묶여있다가 풀려서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어부들과 상인들도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무작정 그들의 배를 들이받으면서 올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으실 것입니다. 천리안에서 보내온 정보로는 해협 쪽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니까요."

"좋아. 앞으로 반시진이면 해협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야. 이번 해전으로 적들의 해군력을 완전히 박살 낸 후 곧바로 이탈리아반도로 상륙한다. 그리고 로마까지 쾌속하게 진격하는 거야. 이탈리아반도에는 땅크와 장갑차가 달릴 수 있는 길이 아주 잘 깔려 있으니까 말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야. 그 옛날 길을 깐 로마 제국의 옥타비아누스 황제가 ‘길은 직선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깔아놓은 도로라고. 빠르면 이틀 늦어도 사흘이면 로마까지 기갑부대가 진격할 수 있을 것이야. 그럼 이번 전쟁도 끝이 나고 전 세계는 대고려 제국 발밑으로 들어올 테지. 세계가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야. 그렇게 되면 최영 장군 그대도 좀 쉴 수가 있겠지."

그러자 최영 장군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페하. 소장은 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소장의 나이 이제 겨우 서른셋이옵니다. 아직 한창 힘을 쓸 때이지요. 소장의 소원은 페하 밑에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구르는 것입니다. 소장의 소원이니 부디 들어주시지요."

최영 장군의 말에 왕기 역시 빙긋 웃으며 답했다.

"그대가 아직 젊다는 것을 짐이 가끔 잊어버린단 말이야. 그대의 소원이라고 하니 짐이 들어주도록 하지. 함대를 이끌고 죽을 때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도록 해주마. 대신 짐을 원망하지는 말도록."

"원망이라니요? 그렇게만 해주시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폐하."

그 순간 천리안에서 날아온 전통이 있었고, 그걸 해석한 통신 담당 장교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긴급. 긴급. 목적지인 해협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천리안에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전속력으로 해협을 진입하기 직전에 날아온 전통으로 조종실 안 분위기가 삽시간에 팽팽하게 당겨진 실처럼 긴장감이 넘쳐흘렀다. 그런 분위기 속에 왕기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난데없는 전투라니? 대고려 제국의 해군은 아직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누구와 누구가 붙고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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