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고려 제국, 세상을 통일하다 - 3
1348년 1월 22일
[로마 교황청의 교황 집무실]
홍해에 머물던 대고려 제국의 제1함대와 제2함대가 운하를 순조롭게 통과하여 위고 교황이 머물고 있는 이탈리아반도를 향해 전속으로 항해하고 있는 가운데 교황청에서는 교황과 몬시뇰 프란치스코 두 사람이 만나 은밀한 대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찾아온 것을 보니 그 사이에 계획을 완벽하게 짠 것인가?"
위고 교황의 물음에 몬시뇰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성하시여. 저희 쪽에서 힘들게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대고려 제국의 황제란 자는 힘없는 백성들의 피해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성품이라고 합니다. 그런 반면 적이라고 생각되고 필요하다면 수십만의 병사들도 강에 수장시켜 죽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원나라의 황하라는 곳에서 그런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줬다고 하더군요. 이를 종합해 볼 때... 대고려 제국의 황제는 약자를 아끼는 성품이면서도 필요하다면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서슴없이 사람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냉혹한 성품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자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대고려 제국 황제의 성품에 기초하여 그들의 함대를 섬멸할 작전을 세워왔습니다."
"작전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고?"
"일단 그리스의 불을 바다 위에 광범위하게 뿌릴 수 있는 장치를 급히 제작하였습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장치이니 금방 제작이 가능하지요. 구리관 여러 개를 연결한 장치를 배밑에 붙이기만 하면 되니까요. 신호가 내려지면 배에 담겨있던 그리스의 불 원액이 배밑의 관을 통해 바다로 뿌려질 것입니다. 그럼 저절로 해상의 표면 위로 떠올라 둥둥 떠다니게 될 테지요. 그때 점화를 시키기만 하면 광범위한 구역이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이게 될 것이며 적들이 도망갈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의 불이 가진 위험성을 잘 알고 있겠지?"
"네. 성하께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로도 꺼지지 않고 오직 식초로만 끌 수 있는 그리스의 불은 화염을 일으킬 때 인간에게 유독한 연기를 내뿜습니다. 조금 들이마시는 정도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일정 시간 이상으로 연기에 노출되게 되면 사람으로 하여금 급격한 호흡곤란을 일으키게 되지요. 거기에 뜨거운 열기와 빗발치는 화살과 대포까지 가세할 것이니 적들이 오래 버티지를 못하고 질식사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대고려 제국군은 그리스의 불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탈리아로 출발한 전함에 식초를 대량으로 실지 않은 걸로 파악이 되었으니까요. 작전이 제대로만 진행되면 무방비 상태에 처할 것이 분명하옵니다."
"정확하네. 예전에 이슬람 병사들이 대패한 것은 단순히 배에 불이 붙어서가 아니야. 호흡곤란으로 인해 병사 대부분이 질식을 해서 죽었기 때문이지. 작전을 수행할 사람들을 모집할 수 있겠나? 적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소문이 안 나게 비밀을 잘 유지하면서 사람들을 모아야 할 텐데 말이야. 본인이 죽을 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을 알고서도 지원할 자들이 있겠는가?"
"그건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몬시뇰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작전에 투입되어 죽는다는 것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죽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순교자가 되는 길이며 주님의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 죽은 후 주님 곁으로 가 영광스러운 자리에 함께 앉을 것입니다. 교황청과 성하의 이름을 내세워 몰래 모집을 한다면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미 상당수를 비밀리에 모집한 상태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작전에 투입될 해적의 무리는 지중해 일대에 널리고 널렸습니다."
"작전에 투입되는 모든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축복과 교황이 내리는 은총이 천국에서도 계속 지속될 것이라고 알려주게나. 작전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작전 개요에 대해서 자세히 들어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우리 쪽에게 유리한 점이 있다면 작전을 펼칠 전장을 우리 쪽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몬시뇰의 말에 위고 교황이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렇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대고려 제국의 황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더 넓은 지중해 중 아무 곳이라도 전장으로 삼을 수가 있을 것인데 말이야. 이번 작전의 가장 핵심이 뭔지 잘 알고 있겠지? 그리스의 불이 깔릴 곳으로 적들을 끌어들이는 것일세."
"대고려 제국의 황제는 이번 기회에 서역을 완전히 정복할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역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지중해 일대의 해상 패권을 완전히 장악해야만 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하께서 거느리고 계시는 900척에 달하는 전함들을 반드시 깨 부셔야만 할 것입니다. 게다가 대고려 제국의 황제는 후환을 남겨두는 성격이 아닙니다. 900척의 전함들을 우리가 원하는 곳에 배치해 두면 반드시 그곳으로 달려들 것입니다."
"900척의 전함들을 미끼로 삼아서 유인하자는 뜻이로군. 전함을 어디에 둘 것인가?"
교황의 말에 몬시뇰이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이탈리아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반도 오른쪽의 아드리아해, 아래쪽의 이오니아해 그리고 왼쪽의 티레니아해로 말입니다. 그중에서... 작전을 펼치기 위해 해협의 폭이 가장 좁은 곳을 사전에 선정해 두었습니다. 바로 여기지요."
교황이 몬시뇰이 가리키는 곳을 보며 입을 열었다.
"거긴 시칠리아 섬과 이탈리아 본토 사이의 해협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시칠리아 섬 북동쪽 메시나(Messina)와 이탈리아 본토 사이의 너비가 불과 2마일에 불과한 좁은 해역이지요. 이보다 넓으면 그리스의 불 효과가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칠리아 섬이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이곳은 강풍이 불지 않는 곳입니다. 유독한 연기가 바람에 의해 짧은 시간 내에 흩어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시칠리아 섬을 방패 삼아 성하의 전함들을 해협 뒤쪽에 주둔시켜 놓으면 대고려 제국의 함대는 이 좁은 해협으로 반드시 밀려들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야. 해협의 넓이가 2마일에 불과하면 한꺼번에 많은 배들이 들이닥치기가 힘들지 않을까? 한 번에 깡그리 몰살을 시켜야 할 텐데 말이야."
"염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고려 제국군의 함대는 그 위력이 막강하나 수적으로는 오히려 성하께서 거느리고 있는 전함들보다 더 적습니다. 소인이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대고려 제국군의 함대는 전력 모함 1대와 4대의 거북선이라는 것과 100척의 전열함 그리고 100척의 보급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함대가 2개이니 적들의 배는 그 숫자가 410척에 불과하지요. 그 정도 숫자라면 한 번에 충분히 진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전투를 위해 대포를 잔뜩 장착한 전열함의 숫자로만 따지면 200척에 불과할 뿐이니 해협이 좁은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요."
몬시뇰의 말에 작전을 검토하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교황이 눈을 뜨며 말했다.
"나쁘지 않아 보이는군. 그럼 정보를 적들에게 슬쩍 흘려야 하겠군? 적들을 본토로 상륙하지 않고 함정을 파놓은 해협 쪽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말이야."
"성하시여. 그러실 필 요없습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오히려 적들의 의심만 살 것입니다. 대고려 제국군의 정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들이 알아서 함정을 파놓은 곳으로 자진해서 올 것입니다."
"그럼 본 교황이 도와줄 일이 없겠는가?"
"한 가지 명령을 내려주시고 한 가지 작전을 준비해 주셔야 합니다."
"한 가지 명령과 한 가지 작전? 그게 뭔가?"
"일전에 내린 지중해에서의 어업 금지령을 완전히 풀어주시지요. 지중해에 배들이 많이 떠다녀야만 적들의 경계심이 풀려 작전의 성공 가능성이 올라갈 것입니다."
"그거야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지. 오늘 당장이라도 명령을 내리겠네."
"그리고... 작전이 실패할 경우를 미리 대비해 두어야만 합니다. 적들의 함대가 두 개이기 때문에 하나의 함대만 걸려들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이번 작전은 두 번 다시 사용하기 힘든 작전입니다. 한번 겪어본 적들이 두 번은 걸려들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미리 대비를 해서 나쁠 것은 없지. 본 교황이 무슨 작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인가?"
"작전이 실패하는 즉시 휘하의 병력들을 이끌고 도망을 치실 준비를 하셔야지요. 적들이 상륙하게 되면 절대 버틸 수가 없습니다. 지상에서 보여줄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장갑차와 땅크의 위력은 무시무시하니까요. 대고려 제국의 황제는 후환을 남겨두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들의 손에 성하께서 잡히시게 되면 목숨을 부지하시기가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 곳으로 도망을 쳐서는 안됩니다. 그랬다가는 금방 따라잡히게 될 테니까요."
"그럼 어디로 가야 한다는 것인가?"
"땅크와 장갑차의 위력은 막강하나 그 크기가 짐마차보다도 더 큰 것들입니다. 따라서 이곳으로 피신하시기를 추천합니다."
위고 교황이 몬시뇰이 집는 곳을 살펴보며 말했다.
"거긴 프랑스의 '오트사부아(Haute-Savoie)' 주가 아닌가?"
"맞습니다. 앞쪽에 알프스(Alps) 산맥에서 가장 높은 몽블랑(Mont Blanc) 산이 버티고 있는 곳이지요. 소형 마차도 넘어가지 못하는 곳을 짐마차보다 더 큰 대고려 제국군의 땅크와 장갑차가 절대 넘어갈 수 없는 곳이지요. 이곳에서 머물며 성하께서 휘하의 병력들과 최대한 오래 버티셔야 적들이 장거리 원정에 지쳐 철수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생길 겁니다."
"그러도록 하지. 그런데... 해협 현장에서의 작전 지휘는 누가 할 것인가?"
"소인이 직접 할 것이옵니다."
죽을 자리를 찾아간다는 몬시뇰의 말에 교황이 몬시뇰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몬시뇰 프란치스카. 그대의 희생을 본 교황은 절대 잊지 않겠네. 오늘 밤 주님께 기도를 드릴 때 그대의 이름을 반드시 말씀드리겠네. 그럼 죽어서 천국에 도착했을 때 주님께서 그대를 특별하게 대우해 주실 것일세. 그럼 내가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서 지중해의 어업 금지령을 풀고 900척의 전함을 작전 지역으로 이동하라는 명을 내리겠네."
"'오트사부아에 식량을 미리 비축해 두라는 명도 내리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몬시뇰의 말이 끝나자마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교황이 다급히 사무실을 벗어났다. 그러한 교황을 뒤따라 나온 몬시뇰이 맘이 급한지 총총걸음으로 복도를 뛰어가는 교황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뇌까렸다.
'성하시여. 전 그곳에서 죽을 생각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정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천국보다는 이 세상에서 최대한 오래 살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절 위해 주님께 기도해 주시는 것은 감사하게 받아들이지요.'
이윽고 몬시뇰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몸종을 보며 명했다.
"오늘 중으로 준비해 줘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이옵니까? 몬시뇰경"
"튼튼한 양가죽과 질 좋은 돼지기름을 준비하거라. 양가죽은 바느질을 촘촘하게 해서 안에 집어넣은 공기가 빠지지 않도록 하고, 입구에는 입에 머금을 수 있는 관을 꼽고 마개를 달아두도록 해. 그리고 돼지기름은 겨울 바다에 빠져도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나의 몸에 바를 것이니 기름기가 가장 많은 것을 넉넉하게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몬시뇰경."
그리스의 불이 해상에 붙게 되면 공기를 잔뜩 집어넣은 양가죽을 껴앉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잠수를 해서 벗어날 준비를 끝마친 몬시뇰이 교황청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남은 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죽을 자들을 준비하는 것이로군. 교황청이 있는 로마 인근에는 그런 자들이 넘쳐나니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어."
1348년 1월 24일
운하를 통과한지 불과 4일 만에 이탈리아반도 인근 해역까지 도착한 왕기가 새롭게 입수된 정보에 의거해 최영 장군과 무지, 무장, 목은 이색이 참가한 작전 회의를 열고 있었다.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왕기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목은 이색이 손을 번쩍 치켜들며 말했다.
"폐하. 회의를 진행하기 전에 소인이 먼저 말씀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계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짐이 무얼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냐?"
"인간의 중요한 본성 중에 하나를 간과하고 계시는 것 같사옵니다."
"그게 무엇인가?"
"억울함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지요. 지금 페하께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