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63화 (163/171)
  • 대고려 제국, 세상을 통일하다 - 1

    1347년 11월 16일

    [예루살렘 성 남쪽의 간이 막사]

    훗날 대화합의 날이라고 불리게 될 하루가 끝나고 새로운 아침이 밝아오자 왕기는 막사에서 잠을 자다가 주변에서 들려오는 어수선한 소리에 잠을 깼다.

    - 병사들은 사람들을 줄 세우시오. 사람들을 길게 줄 세우란 말이오.

    아침부터 목이 터져라 외치는 목은 이색의 고함과 그의 말을 통역하는 통역관들의 외침도 섞여서 들려오고 있었다.

    - Line up. line up...

    - 이스트푸아. 이스트푸아...

    잠에서 깨어난 왕기가 아침부터 이게 웬 소란인가 싶어 빠르게 막사를 나서자 눈앞에 특이한 광경이 들어왔다. 거대한 차양 아래 연필을 쥐고 있는 수십 명의 통역관들이 사람들을 면담하며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고, 그 뒤로는 병사들에 의해 길게 줄이 세워진 사람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있었으며, 통역관과의 면담이 끝난 자들은 대고려 제국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보급품 포대를 받아들고서 하룻밤 사이에 신들에 의해 예루살렘 성으로 이동한 하지 산으로 달려가 부지런히 흙을 퍼담고 있는 중이었다.

    괴이한 광경에 고개를 갸웃한 왕기가 소동의 주동자로 보이는 목은 이색에게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

    "이른 아침부터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게냐?"

    그러자 화들짝 놀란 목은 이색이 경건한 표정을 지으며 공손하게 답했다.

    "폐하. 지금 이 순간 인류가 믿는 종교의 새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중입니다."

    "종교의 새 역사를 창조하다니? 난데없이 그게 뭔 소리더냐?"

    "폐하께서는 소인 못지않게 가톨릭과 이슬람 교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못해보셨습니까?"

    "무엇이 이상하다는 거냐?"

    "성경과 코란에 나와있는 그 많은 기적들에 대한 증인이나 증거가 세상에 거의 남겨져 있지 않다는 사실 말입니다. 예를 들어 모세가 홍해를 가를 때 그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백성들이 있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모세를 따르는 히브리인의 숫자는 장정만 60만 명이며, 가족들을 포함하면 최소 200만 명에 달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바다가 둘로 갈리는 그 장엄한 광경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한 자들의 숫자가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직접 목격했다는 기록을 남긴 자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기록뿐만이 아닙니다. 반으로 갈린 홍해를 지나며 주었다는 조개껍데기 하나 돌멩이 하나 남아있지 않지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십니까?"

    "글쎄... 난 그대처럼 경전에 대해 깊이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그리고 지금은 몰라도 먼 훗날에 그러한 증거가 나타날 수도 있고. 과학적으로 사실이라고 증명이 될 수도 있을 테지. 하지만 짐이 한 가지 알고 있는 사실이 있긴 해. 모함메드가 히라 산 동굴에서 천사 가브리엘을 만났을 때 가브리엘이 말했다고 하더군. '읽으라. 읽으라. 읽으라'라고 말이야. 그때 모함메드가 이렇게 답했다지? '제가 어찌 읽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글을 모르는 까막눈입니다.'라고 말이야. 지금 이 시대에도 문맹이 넘쳐나지 않느냐? 모세가 홍해를 가르던 그 이전에는 더욱 그랬을 테지. 기록을 남기고 싶어도 글을 몰라 남길 방법이 없었을 것이야."

    "폐하. 아득한 옛날에도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디양한 방법을 통해 기록을 남겨왔사옵니다. 벽화에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그릇에 새겼을 수도 있으며, 조각품을 통해 전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200만 명에 달하는 사람 앞에서 신이 바다를 둘로 가르는 엄청난 기적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여줬으니 말이지요. 만약 제가 그러한 엄청난 일을 목도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기록을 남겨서 자손 대대로 물려줬을 겁니다. 정말로 그러한 일이 있었다면 전 세계에 각종 기록물들이 넘쳐나야 마땅할 것입니다."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일전에 폐하께서 병사들에게 칠성검을 전수할 때 하신 말씀이 있으십니다. '종교란 본디 신(神)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며, 기적(奇蹟)에 대한 갈구(渴求)이다'리고 말입니다. 그리고 소인의 집으로 찾아오셨을 때 제게 하신 말씀도 있으시지요. 종교란 본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의 토대 위에서 그 누구도 증명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모든 인간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파는 일종의 상행위이라고 말입니다. 페하께서 말씀하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란..."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독생자라는 예수도 결국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사흘 후 죽음에서 부활해 다시 하늘로 돌아갔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부활한 예수를 봤다는 자가 그 어디에도 없고, 그 어떤 기록에도 남겨져 있지 않으니 예수 역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기에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마지막 선지자라고 불리던 모하메드 역시 메카로 돌아온 지 불과 2년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모하메드는 자신이 그렇게 일찍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걸 전혀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후계자에 대한 유언이나 지시를 전혀 남겨 놓지 않는 바람에 이슬람교인들이 대혼란에 빠지고 여러 가지 분파로 쪼개지게 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았으니까요. 선지자답게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지했다면 그랬을 리가 만무하지요. 그 옛날 불로초를 찾아 헤매던 진시황도 죽었고 이 자리에 계시는 폐하와 소인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끝없이 찾아다니는 것이지요. 신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한 이유는 신의 기적이 존재해야만..."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이지. 신이 있어야만 사후 세계가 있는 것이고, 신이 있기 위해서는 인간이 행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야. 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서 말이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어젯밤처럼 확실하게 신이 자신의 존재를 직접 증명한 적이 없었고, 신이 행하는 엄청난 기적이 일어난 적은 없었사옵니다. 그리고 무려 백만에 달하는 인간들이 자신의 눈으로 직접 그 광경을 지켜보았지요. 하지 산이 신들에 의해 들려와 예루살렘 성으로 옮겨지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소인이 새로운 성경과 코란에 그 기록을 명명백백하게 남기려는 것입니다. 미래에 그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가 없도록 말입니다."

    목은 이색이 차양이 쳐져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고 전날 밤 직접 본 것을 기록으로 남기면 하지 산의 흙을 담아 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록들은 소신이 새롭게 지을 성경과 코란에 빠짐없이 기록될 것입니다. 그리 전달했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지요.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까요. 하지만... 그 모든 기록들보다 확실한 증거가 눈앞에 있지요. 예루살렘 성으로 옮겨진 하지 산 말입니다. 오늘부로 인류가 생각하는 종교는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신의 기적은 분명히 일어났고,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실하게 증명되었으니 앞으로 인류는 사후 세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이승과 저승이든 천당과 지옥이든 죽어서 육도윤회를 겪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따라서 인류가 살아가는 삶의 형태 역시 천천히 바뀌어 나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후 세계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니 당연히 죽은 후가 걱정이 될 테니까 말이지요."

    확신과 신념이 넘쳐나는 목은 이색의 말에 왕기가 부정적인 어조로 대꾸했다.

    "과연 정말 그럴까? 인간은 워낙 욕심이 많은 존재라서 말이여. 자기합리화 또한 뛰어난 족속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것은 쉽사리 인정하지 않으려고 들지. 인류가 믿는 종교는 거의 모두라고 할 만큼 사후 세계에 대함 묘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야만 장사가 되기 때문이지. 네 말 대로라면 신심이 뛰어난 자들은 모두 선인(善人)이여만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짐이 보아온 바로는 절대 그렇지가 않다. 신심이 깊은 자라고 해서 악행을 전혀 저지르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자 목은 이색이 주먹을 불끈 쥐며 답했다.

    "소신이 그리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새로운 성경과 코란을 집필하며 그러한 세상이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겠습니다."

    - 툭. 툭...

    왕기가 목은 이색의 포부에 대견하다는 듯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어디 한번 그리 만들어 보거라. 짐은 종교분쟁이 끝나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을 하겠지만... 만약 그대가 원하는 것처럼 된다면 네 이름은 인류 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니라. 전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려는 짐보다 더 위대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야. 그건 그렇고... 그대가 미래의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면 짐은 현실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

    "현실 세상에서 걱정되시는 일이 있으십니까? 오스만 제국이 대고려 제국 발밑으로 들어오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어제의 기적을 목도한 오스만 제국의 병사들은 설사 황제가 명령을 내려도 대고려 제국과는 두 번 다시 싸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슬람은 이미 폐하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과 다름이 없사옵니다."

    "현실에서는 이슬람 세력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가톨릭 세력을 걱정하시는 것입니까? 소인의 생각으로는 그들 또한 별다른 반항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어제 기적을 목도한 자들 중에 25만에 달하는 가톨릭 병사들도 있었으니까요."

    "그대는 인간의 욕심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군. 노름판에서 형세가 불리하다고 돈을 잃은 자가 그냥 일어나는 걸 본 적이 있느냐? 노름판에서 미련 없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노름 밑천을 다 탕진해야 가능한 법이지요. 폐하의 말씀은 가톨릭 세력 쪽에 아직 밑천이 남아있다는 말씀이신데 그러한 밑천이라면..."

    잠시 고민을 하던 목은 이색이 입을 열었다.

    "해군력이겠군요. 이집트를 점령할 때 끌고 왔다는 천척의 배가 예루살렘 앞바다에 그대로 남아 있고 그들은 배에 있느라 하지 산이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는 신의 기적을 보지 못한 자들일 테니까요."

    "정확히는 900척이지. 홍해에서 대포의 사정거리가 딸려 100척의 배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해보고 대고려 제국 해군에게 침몰 당했으니까. 그러니 더욱더 미련이 남아 있을 것이야. 제대로 붙기만 하면 이길 수도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새로운 방안을 세워서 해전에서 승부를 보려 들 것이니라. 짐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그게 더 잘 된 일이니라. 서역까지 철도를 깔아 육지에서 승부를 보는 것보다 바다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결과가 더 빨리 나올 테니까."

    왕기가 아직도 줄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더욱 늘어난 것으로 보이는 차양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람들과의 면접이 모두 끝나고 양쪽 세력이 고향으로 돌아가면 짐은 가톨릭 세력과의 해전을 준비하기 위해 떠날 것이니라. 그대가 짐작하고 짐이 예상하는 것을 최영 장군이 모를 리가 없지. 거기에 대한 준비책도 열심히 수행하고 있을 것이니라. 짐이 미리 명령을 내려놓은 것도 있고..."

    1347년 11월 30일

    하지 산의 흙을 담아 가기 위해 면담을 하려는 사람들을 모두 처리하는 데에는 무려 14일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신들이 협력하여 보여준 산을 통째로 옮긴 기적이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이 크다는 증거이리라. 예루살렘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양측의 세력이 모두 고향으로 떠난 것을 확인한 왕기가 최영 장군이 있는 곳으로 급하게 날아갔다. 가톨릭 세력과의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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